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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표의 민생탐방] '걸어서 700리 - 오늘도 걷는다 ’
작성 : 2021년 09월 17일(금) 09:27 가+가-
<첫째 날>

‘엎드려 몸을 바쳐 나라를 위해 죽을 때까지 일할 뿐’이라는 삼국지 제갈량의 ‘국궁진췌(鞠躬盡瘁) 사이후이(死而後已)’의 출사표를 되뇌며, 거제 곳곳을 찾아가는 도보종주를 시작한다. 필자가 ‘걸어서 700리’ 민생탐방을 앞두고 이 말을 먼저 떠올리는 건, 나의 각오가 비장하고 분연함이다.

걸어서 700리는 민생탐방의 대장정이다. 길 위에서 거제의 재건과 재발견, 재도약을 구상하는 작은 몸부림이다. 9일 오전 시청광장 출발에 앞서 거제시민께 큰절부터 올렸다. 생소한 일정이라 밤새 뒤척인 탓인지 몸은 무거웠다.

시청 앞 길을 따라 걷다보니 문 닫은 가게들이 제법 된다. 조선불황에다 코로나까지 겹쳤으니 소상공인들이 고통이 오죽할까. 장평입구 상징탑 솔밭공원에 이르니 어린 꼬마들이 모여 있었다. 외손자들이 생각나 한참이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고 보면 이런 소공원이야 말로 어린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놀이공간이다.

상징탑 주변은 시설물 관리가 엉망이다. 손 본 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이런 쪽지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수시로 관리한다면 시민들에게 얼마나 뿌듯한 힐링 공간이 되겠는가. 위민(爲民)과 편민(便民)의 실행은 이런 작은 일에서 출발하는 것일진대, 방치되다시피 한 시설물을 바라보니 맘이 영 불편했다.

장평 육교를 건너 고현만 신 매립지 초입부에 들어섰다. 신매립지는 이런저런 얘기들로 아직도 소란스런 곳이다.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공유공간이 넉넉해 바다매립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립 이전보다 더 질 좋은 복지혜택이 시민들에게 돌아가야 그 원망이 멈출 것이다.

신매립지 옆 대로를 걷다보니 지나가는 차량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때마다 일일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중곡동은 신매립지와의 연결도로 공사로 어수선했다. 거제시 골목상권은 제일 활성화된 곳이지만 주차공간이 없어 늘 비좁은 곳이다. 올 때 마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해와나루 앞을 지나 신우마리나 아파트 근처에 이르니 벌써 점심때다. 길옆에 있는 순두부찌개 집으로 갔다. 홀에는 제법 손님들이 많았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젊은 여성 한 분이 식사하다 말고 쫓아 나오며 명함 한 장을 달라고 한다. 한동안 무거웠던 발걸음이 금새 가벼워짐을 느낀다.

오비 중촌 옛길을 걸었다. 주변에 잡풀과 함께 논 강아지풀이 유독 무성했다. 손으로 풀끝을 쓸어가니, 어느새 유년시절의 꼬맹이로 돌아간 기분이다. 오비 초등학교 강당은 국회의원 재임 당시 이 공사 예산확보를 위해 당시 H장관과 주고받은 밀당이 생각났다. “형님, 욕 듣고 줄 거요, 안 듣고 줄 거요”라고 항의하니, H장관이 “안 듣고 줄 거요”라고 했다. 현재 완공된 모습을 보니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오비는 동네 형상이 까마귀가 나는 모양새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은 곳곳에 조선기자재 공장들이 들어서, 한적했던 옛 정취는 거의 사라졌다. 한내로 접어드니 동네 초입에 아름드리 정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정자나무와 ‘허그’부터 했다. 옆길로 빠져나와 모감주 군락지로 갔다. 경남기념물 112호라고 적힌 낡은 표지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군락이라고 하지만 10여그루 남짓한 노목들이 전부다. 삼성중공업이 사곡방향이 아닌 한내 쪽으로 공장을 확장하려 해도 이 모감주 숲 탓에 번번히 좌절되었다고 들었다.

하청면 표지판이 서 있는 고개를 지나 석포마을로 내려갔다. 시골길이지만, 지나치는 차량이 많아 조심스레 걸었다. 인도가 있는 도로개선이 시급해 보였다. 첫째 날 마지막 코스 석포 승마장으로 향했다. 승마장 가는 길은 잡풀이 무성했다. 요즘엔 말을 타러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듯 했다. 덩그런 승마장을 보고 있자니 ‘세상사 세옹지마’라는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시청에서 출발해 마지막 여정 석포 승마장까지 7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총 2만 792보, 거리는 14,554m다. 우리 식으로 셈하면 35리를 걸었다. 오늘 밤은 잠이 절로 올 것만 같다. (2021. 9. 9.)

<둘째 날>

첫날 일정을 정리하고 나니 밤 1시를 훌쩍 넘겼다. 다음날 아침을 대강 챙겨먹고, 어제 빼 먹은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 뒤, 첫날 장정의 끝 지점으로 갔다.

승마장을 내려와 덕곡 입구에 이르니 고란초 군락지가 눈에 들어왔다. 안내간판이 있긴 한데, 페인트가 벗겨져 무슨 말이 쓰여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마을 안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들판 한가운데에 SKI 공장이 들어서 있다. 왠지 부자연스러웠다. 노인 한 분과 인사를 나누다 덕곡 방파제 민원을 들었다. 마을 방파제가 없어 뗏목을 엮어 방파제로 대용한다고 했다. 만들어 준다는 소리는 몇 번이나 했는데, 실상은 감감무소식이란다.

덕곡 도로는 석포와 마찬가지로 인도가 없어 걷기가 불편하고 위험했다. 각종 둘레 길도 좋지만, 사람사는 동네의 차도 옆 인도는 더 급한 일이 아닐까 덕곡 부두를 나오는데, 가지런히 서 있는 바다 빠짐 방지용 무지개색깔 방지 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시각적으로 꽤 신경을 쓴 흔적이라 여겼다. 낚시꾼 출입금지 안내판을 보면서 동네 어촌계와 낚시꾼들 사이에 불편한 일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대마을을 지나는데 도로변 주변에 핀 각양각색의 꽃들이 나를 반겼다. 입구에서 서항마을 이장인 친구를 만나 차 한 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담소를 즐겼다. 야구장 옆을 지나며 때늦은 점심도 먹었다.

하청 본동을 지나 신창·행복마을 주공아파트 앞에 이르자 옛 생각이 떠올랐다. 주공아파트 임대가격을 낮춰달라는 입주민들의 부탁을 받고, LH공사 임직원들을 설득해 파격적인 인하를 끌어냈던 기억이다. 이 소식을 들은 일운 소동마을 주공임대아파트 주민들도 부리나케 나를 찾아왔고, 역시 같은 조건이 적용될 수 있었다. 전국 임대아파트 임대료 인하는 이 하청 주공아파트에서 출발한 쾌거였다. 지금 생각해도 어려운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 준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행복마을 이장이 정화조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거제시 차원을 넘어 환경부에서 다뤄야 할 문제라고 걱정이 태산이다. 잘 살펴봐야겠다.

하청 주공아파트가 들어설 무렵, 예전에 검토했던 주택사업을 백지화시킨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구 유입 중단으로 학교 존립을 걱정하던 마을 주민들이 이제 막 국회의원에 당선된 나를 찾아와 하소연하기에, 발 빠르게 대응해 사업을 추진했던 기억이 벌써 10년 전이다.

와항마을을 지나니 굴곡도로 개선작업이 한창이다. 이 사업들은 착공시기가 처져있던 순위를 국토부 등을 집중 설득해 앞쪽으로 쭉 끌어올려 조기에 시행토록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 일정의 끝은 칠천도 다리 입구다. 다리 앞 쪽지공원엔 커다란 기념비와 함께 외국인 의료원장님, 열녀, 문인, 지역발전유공자 등의 공적이 새겨져 있다. 평소엔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은 한분 한분의 공적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후학들의 귀감이 되도록 잘 관리해야 할 일이다.

팔각정 아래에 도착하니 예정된 일정이 끝이 났다. 총 2만 230보. 14,161m다. 어제와 같은 35리 거리다. 700리 길의 10분의 1쯤 걸은 셈이다.(2021. 9. 10.)

<셋째 날>

오늘은 토요일. 그래도 걷는다. 쉬는 날은 일요일뿐이다. 칠천교 옆 팔각정을 시작으로 다리를 건넜다. 장안마을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돌아 물안 해수욕장까지 쭉 걸었다. 물안 방파제에는 낚시꾼들이 제법 보였다. 섬 주민의 후한 인심에 화장실도 잘 관리되고 있었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도 잔잔히 흘러 나왔다. 여느 도회지 못지않은 수준이다.

송포 앞바다를 보며 대곡마을까지 왔다. 황덕도 다리가 눈앞에 있지만 오늘은 이 다리를 건너지 못한다. 별도 일정을 잡아 가기로 했지만, 나의 황덕도 사랑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2015년 10월19일 준공된 황덕도다리는 국비가 109억원이나 투입됐다. 황덕도 주민들의 건의 덕에 준공일 다섯 달 전 이미 개통이 시작됐던 다리다. 나의 의정경험 중 잊혀 지지 않는 일 중 하나다.

부산대병원 연수원이 있는 대곡에서 금곡 넘어오는 길에는 쉴만한 공간이 없었다. 이런 한적한 도로일수록 길 옆 소공원이 더 많아야 하는데….

칠천도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하프마라톤 최적 코스로 사랑받는 곳이다.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이 앞을 질주해 간다. 겉다보니 트레킹 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단지 흠이라면 인도가 거의 없어 위험하다는 점이다.

칠천도는 빼어난 풍광과 한적한 공간도 있어 향후 전국적인 마라톤 코스나 자전거 도로를 잘 만들고 인도 등을 정비해 트레킹 코스로 개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라톤, 싸이클, 트레킹이 어울리는 관광도로 코스를 집중적으로 개발하면 어떨까.

걷는 도중에 캠핑카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차박할 장소를 찾지 못해서’ 라고 한다. 옥계마을 칠천량 해전 공원 입구에 있는 캠핑촌은 공간이 너무 좁아 차박이 어려워보였다. 칠천도 주변 펜션 등과 상의해 전국적인 특화된 오토캠핑장을 만들면 주민소득증대는 물론 이용객들의 불편도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옥계초교 정문을 좀 지나 젊은이 한명과 인사를 주고 받았다. 부산소재 대학교를 다니는데, 나를 안다고 했다. 고현사거리 근처에 살고 있고, 만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질문하나 해도 되느냐고 하더니 ‘우리 사회가 너무 공정하지 못한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젊은 친구의 용기 있는 돌직구에 칭찬부터 해 줬다. 그리고는 “공정을 실현하리라고 생각했던 정치인과 그 집단들이 오히려 공정을 무너뜨리는데 먼저 앞장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성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프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공정이 무너지면 우리 사회가 무너진다. 우리는 그 실례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나 혼자 그렇게 한다고 공정한 사회가 되는 건 아니지만, 나의 노력이 없어지면 공정사회 도달도 그만큼 늦어진다. 우리가 함께 공정의 가치를 실천해가면 언젠가 우리가 바라는 수준의 세상이 오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답해줬다. 젊은 친구도 이내 내 말에 공감했다. 정의와 공정에 핏발 선 그 청년의 무운장구를 빈다.

다시 마칠 장소를 향해 걸었다. 아침에 출발했던 칠천도 다리 앞이다. 조금 더 걷고 싶었지만, 주변 일행이 말린다. 전화기에 달린 만보기를 보니 2만 3456보. 거리는 16,419m 다른 날 보다 확실히 많이 걸었다. 40리를 걸었으니.(2021. 9. 11.)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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