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일이 거제시의회 깨웠다
작성 : 2011년 07월 04일(월) 17:52 가+가-

거제시의원들이 김백일 동상 철거를 위한 서명운동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역사의 공통분모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는 민족과 나라의 정체성을 담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우리의 현주소이다.
역사는 통일된 시대적 사상과 이념을 담고 있다. 과거 역사의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은 미래를 향한 남은자의 몫이다.
거제는 지금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워진 김백일 장군 동상철거 논쟁이 한창이다.
거제시의원들도 친일파 동상 철거 결의안 까지 채택하고 4일부터 거리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다.
거리서명운동에는 유영수, 김은동, 박장섭, 이행규, 한기수, 옥영문 시의원이 참석했다.
시의원들은 철거 기자회견문에서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친일파 김백일 동상 철거’의 당위성과 김백일을 비롯해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홍보하며 동상 철거 서명운동을 벌여 나가겠다” 고 밝혔다.
한편 이날 경남도는 “김백일 장군 동상이 문화재법을 위반했다” 며 원상복구를 지시해 동상 이설 또는 철거가 불가피해졌다.
동상철거논란 왜 일어났나
동상철거논란의 중심이 된 김백일은(본명 김찬규)은 친일파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제5기로 졸업하고 1940년부터 만주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는데 김백일은 송석하 다음으로 이 특설 부대의 창설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이라는 기록이 있다.
만주군 상위로 태평양 전쟁에 종군, 일본 정부로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훈장, 서보장까지 수여받았다. 김백일이 창설에 관여한 간도특설대는 독립운동을 위한 군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식민지배에 맞선 항일 독립투사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그 가족들을 탄압했던 부대이다.
현재 알려진 간도특설대 소속 인물들의 대부분은 친일파로 인식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군 대위 경력 논란으로 인해 일본군에 복무해도 일본군 소좌 이상만 등재해 놓았다.
그러나 간도특설대의 경우는 다르다. 활동이 극히 악랄했기 때문이다. 독립군 말살이라는 임무 때문에 대위 이하 장교는 물론 사병까지 전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왜 이런 인물의 동상을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웠을까. 일본이 패망한 후 그의 행적 때문이다.
해방 후 김찬규는 이름을 지금의 김백일로 바꿨고 군에 투신했다. 여수 순천사건과 웅진반도전투 등에 참여해 윤군본부 참모부장에 이른다.
6·25전쟁때는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과 함께 휘하의 제1군단이 제일 먼저 38선을 돌파, 혜산(惠山)까지 북상했다. 12월의 흥남철수작전 때는 10만명의 피난민을 해상으로 수송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흥남철수작전에 기여한 공이 김백일 동상을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운 이유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가 거제시에 요청해 거제시가 받아들이면서 동상건립이 성사됐다.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세워진 동상 철거논란은 한 개인의 정죄 또는 용서의 관점이 아니다. 동상이 세워진 장소의 적합성 문제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이념의 아픔을 상징하는 곳이지만 국가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역사를 담고 있다.
나라 잃은 설움에 부릅 뜬 눈으로 긴 밤을 지세고, 머나먼 타국땅에서 산야를 누비며 조국해방을 염원하던 애국지사들에게 뭐라고 말 할 것인가. 그리고 역사 앞에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후세에는 어떻게 전할 것인가.
그가 흥남철수 작전과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웠다면 ‘개과천선’, ‘속죄’ 라는 말이 더 적합하지 않은가. 지금 거제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은 김백일의 개인적인 공과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역사의 잣대를 바로세우는 일이다.
시민의 감정 무시하고 법 절차도 무시했다
거제시는 국민감정에 반하는 인물의 동상까지 세우면서 시민들에게 사전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또한 김백일 동상을 세우기 위해 거쳐야 할 문화재영향평가 절차도 무시했다.
특정집단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에 앞설 수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특정단체의 이해보다 국민적 감정이 우선돼야 한다. 거제시가 특정단체의 요구에 동조해 역사적 진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하거나 왜곡 하려 해서도 안 된다.
역사는 오늘도 기록된다
거제시의 인구가 24만에 가깝다. 대우 삼성 양대조선소가 세워지면서 급속한 성장세에 있는 도시다. 조선공업도시인 거제는 다른 도시에 비해 외지인구의 유입률이 매우 높은 도시다.
많은 사람들이 거제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질적인 도시가 아니라 거제시민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며 거제인의 한사람으로서 자긍심을 갖기 원한다. 조선 해양관광도시로는 부족하다. 거제에서 살아가려면 거제에서 살아갈 만한 사회 통합적 요소가 있어야 한다.
거제는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있는 도시, 옥포대첩의 승전지로서 구국의 고장이라는 역사적 긍지가 있는 도시다. 구국의 고장은 거제시민으로서 긍지를 가질 만한 통합적 관심사다.
이제는 정치 지도자들이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경남도 김백일 동상 철거 지시
상급기관인 경남도가 거제시보다 확실히 낫다.
경남도는 4일 “김백일 동상은 문화재보호법 13조와 경상남도 문화재 관리조례 제44조 1항에 따라 동상건립 과정에 ‘문화재영향검토’를 이행치 않아 무단설치된 시설물이기 때문에 ‘원상복구하라’고 거제시에 통보했다.
또 “김백일 동상 이건(移建) 또는 철거계획을 수립해 도에 통보하라” 고 덧 붙였다.
1983년 12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 대표적 문화재 자료는 공원 끝 지점 PX 잔존시설이다.
경남도 조례에는 “도시 지역 중 녹지지역은 문화재 자료 외곽경계로부터 300m 이내 지역에 시설물을 건축하는 경우 시설물이 문화재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김백일 동상은 PX잔존건물로부터 직선거리로 250여m 떨어져 있어 문화재영향검토 대상이다.
거제시 문화공보과는 흥남철수기념사업회와 거제시 관광과에 동상을 자진 철거 통보 공문을 보낼 예정이다. 한 두 차례 통보한 후 동상을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통해 동상을 철거하게 된다.
서용찬 기자 기사 더보기
역사는 민족과 나라의 정체성을 담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라 우리의 현주소이다.
역사는 통일된 시대적 사상과 이념을 담고 있다. 과거 역사의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은 미래를 향한 남은자의 몫이다.
거제는 지금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워진 김백일 장군 동상철거 논쟁이 한창이다.
거제시의원들도 친일파 동상 철거 결의안 까지 채택하고 4일부터 거리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다.
거리서명운동에는 유영수, 김은동, 박장섭, 이행규, 한기수, 옥영문 시의원이 참석했다.
시의원들은 철거 기자회견문에서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친일파 김백일 동상 철거’의 당위성과 김백일을 비롯해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홍보하며 동상 철거 서명운동을 벌여 나가겠다” 고 밝혔다.
한편 이날 경남도는 “김백일 장군 동상이 문화재법을 위반했다” 며 원상복구를 지시해 동상 이설 또는 철거가 불가피해졌다.
동상철거논란 왜 일어났나
동상철거논란의 중심이 된 김백일은(본명 김찬규)은 친일파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만주국 봉천군관학교를 제5기로 졸업하고 1940년부터 만주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는데 김백일은 송석하 다음으로 이 특설 부대의 창설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이라는 기록이 있다.
만주군 상위로 태평양 전쟁에 종군, 일본 정부로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훈장, 서보장까지 수여받았다. 김백일이 창설에 관여한 간도특설대는 독립운동을 위한 군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식민지배에 맞선 항일 독립투사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그 가족들을 탄압했던 부대이다.
현재 알려진 간도특설대 소속 인물들의 대부분은 친일파로 인식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군 대위 경력 논란으로 인해 일본군에 복무해도 일본군 소좌 이상만 등재해 놓았다.
그러나 간도특설대의 경우는 다르다. 활동이 극히 악랄했기 때문이다. 독립군 말살이라는 임무 때문에 대위 이하 장교는 물론 사병까지 전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 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왜 이런 인물의 동상을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웠을까. 일본이 패망한 후 그의 행적 때문이다.
해방 후 김찬규는 이름을 지금의 김백일로 바꿨고 군에 투신했다. 여수 순천사건과 웅진반도전투 등에 참여해 윤군본부 참모부장에 이른다.
6·25전쟁때는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과 함께 휘하의 제1군단이 제일 먼저 38선을 돌파, 혜산(惠山)까지 북상했다. 12월의 흥남철수작전 때는 10만명의 피난민을 해상으로 수송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흥남철수작전에 기여한 공이 김백일 동상을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운 이유다. 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가 거제시에 요청해 거제시가 받아들이면서 동상건립이 성사됐다.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세워진 동상 철거논란은 한 개인의 정죄 또는 용서의 관점이 아니다. 동상이 세워진 장소의 적합성 문제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이념의 아픔을 상징하는 곳이지만 국가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역사를 담고 있다.
나라 잃은 설움에 부릅 뜬 눈으로 긴 밤을 지세고, 머나먼 타국땅에서 산야를 누비며 조국해방을 염원하던 애국지사들에게 뭐라고 말 할 것인가. 그리고 역사 앞에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후세에는 어떻게 전할 것인가.
그가 흥남철수 작전과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웠다면 ‘개과천선’, ‘속죄’ 라는 말이 더 적합하지 않은가. 지금 거제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은 김백일의 개인적인 공과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역사의 잣대를 바로세우는 일이다.
시민의 감정 무시하고 법 절차도 무시했다
거제시는 국민감정에 반하는 인물의 동상까지 세우면서 시민들에게 사전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또한 김백일 동상을 세우기 위해 거쳐야 할 문화재영향평가 절차도 무시했다.
특정집단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에 앞설 수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특정단체의 이해보다 국민적 감정이 우선돼야 한다. 거제시가 특정단체의 요구에 동조해 역사적 진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하거나 왜곡 하려 해서도 안 된다.
역사는 오늘도 기록된다
거제시의 인구가 24만에 가깝다. 대우 삼성 양대조선소가 세워지면서 급속한 성장세에 있는 도시다. 조선공업도시인 거제는 다른 도시에 비해 외지인구의 유입률이 매우 높은 도시다.
많은 사람들이 거제를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질적인 도시가 아니라 거제시민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며 거제인의 한사람으로서 자긍심을 갖기 원한다. 조선 해양관광도시로는 부족하다. 거제에서 살아가려면 거제에서 살아갈 만한 사회 통합적 요소가 있어야 한다.
거제는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있는 도시, 옥포대첩의 승전지로서 구국의 고장이라는 역사적 긍지가 있는 도시다. 구국의 고장은 거제시민으로서 긍지를 가질 만한 통합적 관심사다.
이제는 정치 지도자들이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경남도 김백일 동상 철거 지시
상급기관인 경남도가 거제시보다 확실히 낫다.
경남도는 4일 “김백일 동상은 문화재보호법 13조와 경상남도 문화재 관리조례 제44조 1항에 따라 동상건립 과정에 ‘문화재영향검토’를 이행치 않아 무단설치된 시설물이기 때문에 ‘원상복구하라’고 거제시에 통보했다.
또 “김백일 동상 이건(移建) 또는 철거계획을 수립해 도에 통보하라” 고 덧 붙였다.
1983년 12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 대표적 문화재 자료는 공원 끝 지점 PX 잔존시설이다.
경남도 조례에는 “도시 지역 중 녹지지역은 문화재 자료 외곽경계로부터 300m 이내 지역에 시설물을 건축하는 경우 시설물이 문화재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김백일 동상은 PX잔존건물로부터 직선거리로 250여m 떨어져 있어 문화재영향검토 대상이다.
거제시 문화공보과는 흥남철수기념사업회와 거제시 관광과에 동상을 자진 철거 통보 공문을 보낼 예정이다. 한 두 차례 통보한 후 동상을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을 통해 동상을 철거하게 된다.
ycseo@morningnews.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