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장승포 산사태 … 그 후 48년
작성 : 2011년 08월 06일(토) 17:29 가+가-

강원도 원주시에 사는 김창열(남, 56세)씨.
1963년 6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그해 거제도 장승포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김씨도 부모ㆍ형제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을 잃고 힘들게 생활해야 했던 그에게는 ‘거제’와 ‘장승포’는 몹시 아픈 지명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몽 같은 기억은 더 짙어졌으며 그렇게 떠나버린 그는 48년 동안 장승포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는 올해 봄 장승포동장에게서 산사태 피해 유가족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고, 지난 6월 25일 열린 추모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김씨는 “이제야 묻어만 놓았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다. 끔찍한 기억 속의 장승포였는데 이제는 이곳을 고향이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 8월 3일 장승포동(동장 김용운)으로 전화를 걸었다. 장승포지역 주민들을 위해 500만원의 성금을 기탁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김씨는 현재 소아과 의사이다.
“나와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김 씨가 기탁한 성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장승포지역의 어려운 이웃 4세대, 초등학생 2명, 중학생 4명에게 각 50만 원씩 전달될 예정이다.
장승포산사태는 1963년 6월 초부터 장마가 시작돼 보리 수확을 못하고 있던 중 6월 19일 태풍 ‘셜리’와 6월 24일, 25일 이틀간 500㎜의 기록적인 폭우로 6월 25일 오전 8시 5분경 장승포동 474번지(속칭 굴세미골)의 주택 6동 12세대가 완전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 주민 61명이 사망하고 대피 지시를 하던 경찰관 9명이 순직했다.
추모비에는 산사태의 아픔을 노래한 이미자의 ‘한 많은 장승포’ 가사와 시인 원순련 씨의 추모 글, 사고경위, 사망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서용찬 기자 기사 더보기
1963년 6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그해 거제도 장승포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김씨도 부모ㆍ형제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가족들을 잃고 힘들게 생활해야 했던 그에게는 ‘거제’와 ‘장승포’는 몹시 아픈 지명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몽 같은 기억은 더 짙어졌으며 그렇게 떠나버린 그는 48년 동안 장승포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는 올해 봄 장승포동장에게서 산사태 피해 유가족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고, 지난 6월 25일 열린 추모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김씨는 “이제야 묻어만 놓았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이다. 끔찍한 기억 속의 장승포였는데 이제는 이곳을 고향이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지난 8월 3일 장승포동(동장 김용운)으로 전화를 걸었다. 장승포지역 주민들을 위해 500만원의 성금을 기탁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김씨는 현재 소아과 의사이다.
“나와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김 씨가 기탁한 성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장승포지역의 어려운 이웃 4세대, 초등학생 2명, 중학생 4명에게 각 50만 원씩 전달될 예정이다.
장승포산사태는 1963년 6월 초부터 장마가 시작돼 보리 수확을 못하고 있던 중 6월 19일 태풍 ‘셜리’와 6월 24일, 25일 이틀간 500㎜의 기록적인 폭우로 6월 25일 오전 8시 5분경 장승포동 474번지(속칭 굴세미골)의 주택 6동 12세대가 완전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 주민 61명이 사망하고 대피 지시를 하던 경찰관 9명이 순직했다.
추모비에는 산사태의 아픔을 노래한 이미자의 ‘한 많은 장승포’ 가사와 시인 원순련 씨의 추모 글, 사고경위, 사망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ycseo@morningnews.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