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짊어져야할 사회적 책임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최근 대우조선해양(주)가 2천여평의 회사 땅을 두고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진퇴양란’의 처지에 놓여있다. 이곳에는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의 승리를 기려 세운 옥포대첩 승전기념 상징물인 기념탑과 옥포정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기념탑과 옥포정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이 땅을 요긴하게 사용해 볼 요량이지만 이해관계가 있는 거제시와 주민들은 이전불가, 요지부동이다.
사회적 합의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주동 주민들이 동의하고 이전부지가 제공된다면 문화재 복원과 이전, 공원조성비 등 수억원으로 추산되는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대우와 거제시가 협의해 대체공원을 조성해주지 않으면 상징물 이전도 불가하다고 맞서고 있다.

최근에는 실향민까지 가세해 아주정 옆에다 망향비를 세우겠다고 벼르고 있다.
대우조선이 이 땅의 소유권을 함부로 주장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증황증거와 법리적 실체와의 충돌(?)

옥포정이 세워진 이 땅은 법상 등기된 대우조선해양(주) 소유다.
그러나 대우조선공업이 지난 1980년 건설부로부터 받은 산업기지개발사업 준공인가서에는 ‘아주리 227, 아양리 644-1 2천500여평은 대우조선공업(주)의 토지로 하고 기념탑 및 옥포정은 거제군이 타지역으로 이전할 때까지 무상으로 사용한다’ 는 단서가 명시돼 있다.

지난 1991년 거제시(구 장승포시)는 조선단지안에 위치한 옥포정 부지가 협소하다며 옥포대첩기념공원으로 이전을 추진했다.
대우조선해양(주)는 사회공헌 일환으로 공원부지 2만여평을 무상기부했고 이때 거제군 무상사용이라는 단서조건마져 사라졌다. 새 기념탑과 옥포루도 세워졌다.
하지만 기업 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이번에도 이전비용은 회사가 부담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주동 주민들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아주동 227번지, 227-2번지, 644-1번지,644-3번지 등 현재의 옥포정 2천5백21평은 지난 1974년 대한조선공사가 당등산을 수용, 전체 등기를 한 후 기념탑 이설 부지로 거제군에 내놓은 땅이다."
"당시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측이 “이충무공의 옥포해전의 승리를 기리고 나아가 이주민과 거제군민을 위한 휴식 공원으로 활용토록 거제시에 기부채납 한”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주민들은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가 대우조선으로 바뀌는 과정과 거제군의 잦은 인사·측량비 부족 등으로 당시 실무자들이 이 땅을 거제군 앞으로 이전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소유권이 대우조선공업으로 넘어간 것이 행정적 실수 때문이라면 땅을 되찾는 문제도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들은 남아있는 기념탑과 옥포정이 문화재는 아니지만 옥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초등학생들과 주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최초의 기념물이라는 점에서 그 보전적, 상징적 가치는 어느 역사유물에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분란의 불씨라면 적극 사양하고 싶다

대우 측은 기념탑과 옥포정 이전문제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기업이미지를 저해하는 분란의 불씨가 될 것 같으면 적극 사양하겠다는 입장이다.

법률적인 소유권도 회사 측에 있고 새 기념탑과 옥포루가 옥포대첩기념공원에 세워져 옥포정의 상징적 의미도 사라진 만큼, 거제시나 주민들이 기한 없는 지상권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건널목도 없는, 국도 14호선 4차로가 가로막아 마을주민들 조차 이용할 수 없게된 소공원.
대우조선해양(주)는 거제시가 이전(공원사업 또는 도시계획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면 그때부터 어느 정도 역할을 맡을지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증황 증거와 법리적 실체와의 충돌만으로도 법정논쟁 감이다. 하지만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 양측의 논리가 팽팽하다.

2천여평의 땅을 두고 법정다툼을 벌여 대우조선이 승소 한다하더라도 얻는 이익보다 기업윤리나 이미지에 더 큰 손상을 가져오게 된다.
거제시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땅을 되찾더라도 효용가치가 없다. 후일 대우조선에 이 땅을 제발 좀 사달라고 애걸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치단체는 기업의 사회기여도에 대한 합당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적어도 옥포대승첩을 기리는 옥포대첩기념공원조성사업에 2만여평의 땅을 기부한 것에 대한 배려가 '목마른 사람이 우물파라' 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자치단체의 판단은 시민의식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거제시는 "당신들이 필요한 땅이니 당신들이 알아서하라" 거나 "대우조선 덕에 공원하나 거저먹어보자" 는 식의 심보는 버리고 지역기업과 주민들이 합일점을 찾아낼 수 있는 바른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옥포정 이전 win-win 해법 없나

대우조선 역시 협상에 나설 때는 정중한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법적 소유권 운운하며 배 내미는 장사치 근성으로 협상에 임하면 낭패를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아주동민들과 망향비를 세우려는 실향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제시와 대우조선해양(주)에게 있다. 아주동민 중 상당수가 대우조선해양(주) 직원이며 아주동 상권의 흥망도 대우조선해양(주)에 달려있다.

오는 3월2일 ‘옥포공원 조성 및 망향비건립 실무위원회’ 가 아주동 사무소에서 개최된다

거제시는 아주동에 아양근린공원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대우가 공원조성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하던 기념탑과 옥포정을 이곳으로 옮기고 공원의 명칭을 ‘대우 아양’ 또는 ‘아양 대우 근린공원’으로 하는 자치단체와 세계일류기업인 대우조선해양(주)가 과거사에 끌려다니지 말고 발전적으로 상생하는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거제시와 대우조선해양(주)가 기념비적인 일을 위해 협력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