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병원에서 보냈다.
일주일 전 마산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중인 어머님의 문병(問病)때문이었다.
연로한 몸으로 두 번씩이나 수술을 받고 누워계신 어머님 생각에 명절 기분이 예전같지 않았다.
연휴가 짧은 탓도 있겠지만 추석날 오후 마산으로 가는 길은 차량의 피난행렬 그 자체였다.

명절때 외지(外地)로 다녀본 적이 별로 없으니 교통 정체(停滯) 이야기는 늘 관심 밖이었는데 직접 경험을 해보니 명절의 의미(意味)와 우리의 질서의식에 대하여 느끼는 바가 많았다.
태어나고 자란곳이 도시든 시골이건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고향(故鄕)이 있게 마련이다.

고향은 세월이 가도 변함없이 일상에 지친 우리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마음의 안식처다.
어릴적 고향의 명절은 비록 척박한 살림살이에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명절 때가 되면 배 타러 갔던 이웃집 형이나 식모살이 갔던 누나들의 선물 보따리가 무척 부러웠다.
그 눈물어린 사연도 모른채 내겐 형이나 누나가 왜 없는지 부모님께 속절없는 투정을 부리기도 하였다.
그래도 풍성한 계절의 어귀에서 맞이하던 그 시절의 추석은 가진 것이 없어도 늘 넉넉한 모습으로 추억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요즘 명절은 가히 ‘전쟁판’이다.
아예 집을 나서기 전부터 ‘전쟁터’로 나가는 준비가 필요하다.
군인들처럼 비상식량과 옷가지 등을 미리 챙겨두지 않으면 낭패는 뻔하다.
길이나 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오래 버티기 작전’을 제대로 극복하느냐가 명절 기분을 좌우한다.
요행히 살아서 제때 고향에 도착한 사람들은 친지들에게 대단한 자랑거리다.

길에서 밤을 지새느라 파김치가 되거나, 지쳐서 중도에 되돌아가거나, 차(車)가지 퍼져서 온 가족이 길 가운데서 고생해본 사람들은 완전히 패전병 신세다.
그나마 고향에 머무는 것도 아주 잠시다.
아침 일찍 차례를 끝내고 서둘러 나서지 않으면 제대로 집에 돌아갈 수도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고 정신없는 전쟁을 치루고도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별 일 없는 한 또 다시 각자의 고향으로 향할 것이다.
마치 연어의 회귀(回歸)본능처럼 말이다.

또 신기한 것은 명절연휴에 극심한 정체가 몇시간씩 계속되는데도 소통(疏通)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을 별로 나무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명절때 그 정도의 고생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경찰서에 전화하여 정체가 언제쯤 풀릴 것인지 문의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별 수가 없어서 그러는지, 경찰이 측은해서 그러는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참고 견딜 줄 아는 마음은 고향이 주는 아늑함과 여유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는 와중에도 꼭 ‘비겁한 작전’ 을 하는 사람들은 빠지지 않는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참기 힘든 생리적 현상을 과감하게(?) 해결하는 것은 그래도 좀 낫다.

위급한 구급차 꽁무니를 바싹 붙어 마치 환자 가족처럼 태연스럽게 비상등까지 켜고 따라 붙이고, 불과 몇 백미터 밖에 못 가면서 비좁은 농로(農路)를 따라 무슨 각개전투(各個戰鬪) 하듯 잽싸게 가로질러 새치기를 밥먹듯 하고, 그렇게 맛있게 피운 담배꽁초를 신경질적으로 길 바닥에 마구 던져 버리는 얌체족들을 보면 아주 불쾌하다.
어렵고 힘들때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야말로 그 나라의 국민 수준을 엿 볼 수 있다고 했다.

누군들 빨리 가고싶지 않고 짜증나지 않겠는가. 남을 생각하지 않고 나와 내 가족이 당장의 불편함에서 벗어나고자 습관적으로 그런 반칙으로 하는 그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비록 각박하고 힘든 삶을 살지라도 조상들께서 물려준 명절의 여유로움과 나눔의 의미를 호손들에게 제대로 물려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