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한강’을 읽게 된 이유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쓴 붓글씨 제호 때문이었다. 물론 조정래 작가의 명성은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으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작가다.

소설을 읽은 사람의 관점(paradigm)에 따라 후감(後感)은 다를 것이다. 오늘의 경제적 성취를 위해서 생민(生民)들이 흘린 땀과 노력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또한 생민들의 허리 굽힌 지난한 삶이 어떻게 권력 희생양이 되며, 권력에 기생한 천민자본주의 추종세력에 이용당하게 되는지 ‘분노의 눈’으로 보게 된다. 또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잔인한 폭력성에 치를 떨게 된다. ‘연좌제 멍에’에 온 몸으로 몸부림치는 유일민, 유일표, 혜촌댁의 ‘한(恨)’ 많은 삶에서는 머리가 숙연해진다.

소설 ‘한강’이 그리고 있는 현대사 줄거리는 거제로 옮겨보아도 매일반이다. 거제의 경제적 성취를 위해 노동자·농민·어민들이 흘리는 ‘땀’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거제의 자연을 온전하게 후손에게 물려준 생민(生民)들에게 마음이 닿으면, 거제의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바닷가의 몽돌 하나도 가벼이 볼 수 없다. 농민, 어민,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놓은 ‘거제의 빛나는 영광’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세력은 없는지 되묻게 된다.

한국 전쟁 전후 반공이데올로기의 폭력에 희생된 거제인과 그 후손이 겪은 연좌제 ‘한(恨)’에 마음이 닿으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희생된 거제인’과 ‘후손의 연좌제 한(恨)’ 이야기는 57년 세월이 담겨있다.

45년, 해방을 맞이했다. 거제의 치안과 행정은 친일세력을 배제시킨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의 합일체인 인민위원회가 맡았다. 친일잔재를 청산해나갔다. 평온한 거제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은 49년 4월 미군을 앞세운 비호부대, 백호부대의 거제 상륙이었다. 숨죽였던 친일세력은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군인들보다 앞장서 이웃을 고자질해, 무고한 시민들이 줄줄이 잡혀가 총살을 당했다. 야산대(빨치산) 토벌 명목으로 살육 만행이 자행됐다. 동부 구천계곡, 일운 지세포, 연초면 송정, 둔덕, 거제면 등 거제 전역에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50년 4월까지 계속됐다.

거제에 한바탕 혈풍(血風)이 몰아치고 나서 좀 잠잠해졌다. 6·25전쟁이 발발했다. 이보다 앞서 49년 10월 사회주의에 가담해 전향했거나 사회주의 세력에 부역을 한 혐의가 있는 사람을 계도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적으로 국민보도연맹을 결성시켰다. 30여만명의 회원이었으며, 거제도 700명이 넘었다.

6월 27일부터 ‘이승만 대통령 특명에 의해’ 강원도 횡성을 시작으로 30만명의 보도연맹원 처형 전선도 남진(南進)하기 시작했다. 거제도 ‘보도연맹원 처형 전선’이 상륙했다. 7월 22일 보도연맹원 소집령이 내려졌다. 거제경찰서에 모두 집결당했다. 731명이었다. 수장(水葬)은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에 걸쳐 이루어졌다. 새끼줄에 10명, 20명 단위로 묶여 지심도 앞바다, 칠천도 앞바다 등지에서 수장(水葬)당했다.

한국 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들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람이 보도연맹 희생자이다. 49년 4월부터 50년 4월까지 미군과 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도 보도연맹원들은 죄가 없어 모두 살아남았다. 그런데 보도연맹원 처형 특명이 50년 6월 27일부터 내려지면서 모두 희생을 당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57년 만에 그때 희생된 사람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진실화해를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는 지난달 27일 집단 희생 매몰지로 추정되는 전남 구례군 봉성산 공동묘지 개토제를 시작으로 한국 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 유해매장 추정지에 대한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 유해발굴지는 전남 구례를 포함하여, 충북 청원 분터골,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 4곳을 우선 발굴지로 선정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유해매장 추정지 168개소 가운데 37곳을 올해 안으로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조사를 거쳐 명예가 회복되고, 응분의 보상을 받기 까지는 요원하다. 거제의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4천 페이지가 넘는 ‘거제시지’에 한 줄도 기록하지 않는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발굴 조사에 때맞춰 거제 유족들도 움직임이 있다. 내부를 다듬고 있다. 7월 중순부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 및 위령탑 건립, 역사 바로 세우기 추진위원회가 나서 시민의 동참을 호소할 움직임이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 과거, 현재를 짐지지 않은 미래도 없다. 역사는 과거, 현재의 안받침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과거 현재가 단절된 미래가 우리에게 어느날 갑자기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천하무인(天下無人)’은 세상에 남이란 없다는 뜻이다. 거제는 한발 건너 모두 친척 아닌 사람이 없다. 모두가 인연의 질긴 끈으로 엮어져 있다.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이기선하지(以其善下之). 바다가 모든 계곡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의 바다이다. 바다의 마음을 가진 거제인의 넓은 심성으로, 역사의 응달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한많은 거제인’을 따뜻하게 안아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