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당이 개혁도 하고 중도도 하고 보수도 한다면 당의 정체성은 도대체 어떻게 정의되는 것인가.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2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개혁적 중도보수'를 표방한 것과 관련, "비빔밥 정당"이라거나 "차기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갈짓자 행보"라는 등의 비판 목소리가 야권을 중심으로 들리고 있다.

안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서민과 중산층이 희망을 갖는 나라, 모든 국민이 더불어 잘 사는 나라, 모든 국민이 함께 행복한 사회를 활짝 열겠다"며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70% 복지' 시대를 여는 개혁적 중도보수 정당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다시 서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물론 보수적인 이미지의 한나라당을 서민과 중산층을 아우르는 중도 보수, 나아가 개혁 이미지까지 덧칠한 정당으로 외연을 확장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될 수 있다.

사실 정치권에서 "개혁적 중도보수"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나라당에서는 지난 6·2 지방선거 패배 직후 소장파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개혁적 중도보수"의 새로운 리더십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었다.

또 지난 2004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총선 당선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자신의 정치성향을 물은 한 여론조사에서 '중도진보, 중도, 중도보수'라는 응답이 90%가 넘게 나오자 당시 한나라당 소장파는 이를 토대로 당의 이념을 '개혁적 중도보수'로 정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주목되는 것은 개혁적 중도보수론이 제기됐던 시점이 모두 선거를 전후한 시점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선거정국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 의미상 반대라고 볼 수 있는 '보수'와 '개혁'을 하나로 묶어 당의 향후 비전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모순"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야당측 관계자는 "사실상 좋은 말들의 '짬뽕'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어떻게 보수와 개혁을 한 정당이 한 곳에 다 담을 수가 있겠는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은 당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민주당의 전현희 대변인은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개혁, 중도, 보수, 복지를 다 말했는데 이것은 민주당이 주장해왔던 것"이라며 "좋은 말만 모아서 모아놓은 것같다. 다 좋은데 실천 의지가 있는 지도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개념이 전혀 다른 개혁과 중도, 보수를 섞어 비빔밥 정당을 만들 참인가"라며 "보수의 가치는 시장기능과 개인의 창의성이 살아 숨 쉴 때 비로소 그 빛이 발하는 것이지, 현란한 수식어로 장식만 요란하게 한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