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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아픔 간직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
작성 : 2018년 07월 19일(목) 10:58 가+가-

사진/구성옥 기자 <5년전 촬영>

한 사람이 통일을 꾸면 그것은 꿈이지만, 여러 사람이 꾸면 현실이 된다.

DMZ는 ‘Demilitarized Zone’의 약자로 무장을 하지 않는 지역이란 뜻의 비무장지대를 말한다.

공동경비구역(JSA)이 있는 판문점(板門店)의 원래 지명은 ‘널문리’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신하던 선조가 강을 건너려다 다리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자, 마을사람들이 대문짝 등으로 임시 다리를 놓아 건너게 한 뒤 그렇게 불렸다.

이 한적한 마을은 360여년 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소로 변했다. 6∙25전쟁의 휴전회담 장소로 중립적인 위치를 물색하던 유엔 측이 이곳을 회담장으로 제안했다.

이후 휴전회담은 이곳의 작은 주막집인 ‘널문리가게’ 앞의 콩밭 천막에서 진행됐다. 이때 ‘널문리가게’를 한자로 표기한 ‘판문점’이 공식지명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체결 후 이 다리를 통해 포로 송환이 이뤄졌다. 당시 포로들이 한 번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뜻에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 다리를 통해 유엔군사령부 측은 8만2000여명 이상의 포로를 북한으로 송환했으며, 북한과 중국은 1만3000여명을 남으로 송환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앞에는 시멘트 말뚝 위에 녹슨 철판 군사분계선 표지판만이 전쟁의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이 다리 한가운데에서 남북 경계가 나뉜다. 1976년 8월 이전까지는 공동경비구역 내의 남북 통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1976년 8월 18일 북한군이 시야확보를 위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UN군 측 병사들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감독하던 미군장교 2명을 토끼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로 유엔 측은 공동경비구역 내에도 군사분계선을 긋고 통행을 차단했다. 다리가 폐쇄되자 북한군은 크게 당황했다.

그래서 기존 다리보다 조금 위쪽에 새 교량을 부랴부랴 건설했다. 얼마나 급했는지 72시간여 만에 콘크리트 다리를 완공했다.

그렇게 해서 붙은 이름이 ‘72시간다리’다.

38선은 한반도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북위 38도의 위선을 말한다.(한반도의 대략적인 위치는 북위 33도-43도 동경 124-131도 사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함에 따라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명분으로 남한과 북한을 각각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상호간의 군사적 무력충돌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두 나라의 합의 하에 설정한 경계선을 말한다.

6∙25전쟁이 끝난 뒤에는 휴전선으로 바뀌어 남북 분단의 군사 분계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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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morni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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