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
잊혀진 역사의 편린을 음미하며
길따라 칠백리 내고향 둔덕(1)
거제시 허가과장 서용태
작성 : 2004년 11월 04일(목) 18:24 가+가-

청마 생가

길을 떠나며
누구나 멀리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요즈음처럼 가을이 되어 산자락을 타고 흐르는 단풍이 만산홍엽을 이룰 때는 더욱 그러한 유혹에 마음이 들뜬다.
박목월 시인의 노래처럼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가 되어 배낭하나 짊어지고 호젓한 시골길을 따라 순박한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며 그 곳 역사며, 생김새며, 자연을 음미하며 혼자도 좋고 처자를 동반해도 좋고, 친한 친구 한사람 쯤 길벗삼아 떠나보는 재미가 그만이다.
눈에 밟히는 한려수도
서용태 과장
거제의 서쪽 끝이 둔덕면 술역리 방화도가 된다. 거제대교를 건너면 제일먼저 고려 18대 왕 의종의 울분을 느낄 수가 있다.
오늘도 도도하게 흐르는 견내량 물길은 변함이 없건만 권좌를 찬탈당한 의종이 피눈물을 머금고 나룻배로 견내량 해협을 건너 이 곳 거제 땅을 밟았으니 세인의 입에서 입을 통하여 전하가 건넜다하여 전하도라 불려지고 있다.
구 거제 대교를 지나 둔덕면의 첫 동네 학산리 아사마을을 밟으면 한려수도가 시작되는 물길을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다. 둔덕만은 내만으로써 바다이라기보다 큰 호수 같은 착각이 드는 곳이다. 봄이면 아른거리는 아지랭이 속에서 바다위에 떠있는 작은 섬들은 꼭 오수에 졸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여름이면 겁 없이 첨벙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어머니 품속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기에 둔덕만은 잔잔하고 순진한 때묻지 않은 시골여성 같은 바다여서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거제의 동쪽이나 남쪽바다와는 완연히 분위기가 다르다. 사람은 자연을 닮는다고 했던가, 둔덕사람은 한결같이 온후하고 인심이 좋다.
이렇게 둔덕은 바다가 잔잔하고 땅이 기름지고 내가 길게 형성되어 물이 풍부한 곳이라 일찍이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하여 살은 흔적이 있다. 둔덕면 학산리 아사마을에는 청동기시대의 상징인 고인돌이 있다. 이 고인돌은 아사마을 인근 영등과 술역,방하리에서 모두 8기가 존재한다.
바다가 잔잔하고 땅이 기름진 땅
선사시대에 육지에서 거제도 둔덕 땅으로 인류가 이동하면서 최초로 정착한 곳으로 추정되는 아사마을은 1623년 인조 원년 계해년에 장목면 구영등진을 지금의 학산마을로 옮겼으니 ,당시 지명은 영등으로 1899년에 진이 폐지될 때까지 영등진이 위치한 해상방어진지였던 곳이다.
그 영등진을 관장하던 만호가 군관 9명과 녹사 8명,진무 9명, 사령 6명 과 함께 상주하여 오늘 날로 말하면 군사, 행정의 관청을 아사라 하였으니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되었다. 1910년 까지는 영등으로 불리어오다가 비학산 아래 마을이라 하여 학산이 되었다. 1982년에 학산에서 분동하여 아사행정마을이 된 것이다.
나그네는 선사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까지 넘나들다 다시 의종의 한 맺힌 발길을 따라 술역마을에 닿았다. 술역마을에서 바라다본 통영만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불멸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펼치면서 한산도에서 통영 통제영까지 구국의 일념으로 수없이 왕래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의종이 둔덕면 거림리 우두봉산자락에 둔덕기성(지금의 폐왕성)을 보수하여 3년간 머물면서 뱃길을 이용하여 진남(지금의 통영)과 물자 교역을 하였으니 술역마을의 본명은 수역으로써 물가에 있는 역촌이었으나 어원의 변천으로 술역이 된 것이다.
구 거제대교에서 바라본 견내량
어느 새 나그네는 붉은 노을로 곱게 물든 통영 쪽 아름다운 낙조를 바라보면서 호곡마을을 지나 녹산마을에 닿았다. 6.25전쟁 때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려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둔덕출신 전몰용사의 영령을 고이 모신 충혼탑 앞에서 잠시 옷깃을 여미고 묵념으로 명복을 빌었다.
잠시 눈길을 돌려 녹산만을 바라보니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아름다운 방조제 뚝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색하고 싶은 사람, 다정한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을 맞아 줄 것 같은 방조제 뚝이 오래 된 성곽처럼 펼쳐져 한 폭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둔덕의 젖줄 둔덕천
일제 강점기인 1926년에 시작하여 1935년 12월에 준공한 60여 헥타아르의 간척지를 조성한 대형토목 공사였다고하니 그 당시 장비와 기술 인력으로 볼 때 가히 대역사였을 것이다.
둔덕의 젖줄인 둔덕천의 하구에 위치한 이 뚝길을 걸어서 숭덕초등학교에 다니던 어구마을 사람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가 되었고 여름밤 시원하고 모기 없어 밤늦게 까지 도란도란 세상사는 이야기하며 낚시를 즐기던 곳,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던 청소년의 쉼터가 되어준 고마운 뚝이라 감회도 새록새록 끝이 없다
의종이 복위를 꿈꾸며 절치부심하면서 안정을 찾아 갈 무렵 상하둔의 둔전을 설치하고, 군사를 배치하여 호위토록 하였으니 둔덕면의 지명이 된 것이다. 그 하둔이 바로 둔덕면의 소재지마을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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