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홀리데이' 픽션과 논픽션 사이
작성 : 2006년 02월 07일(화) 16:05 가+가-

CGV 조기종영 사태를 빚었던 이성재 최민수 주연의 영화 ‘홀리데이’(감독 양윤호, 제작 현진씨네마)가 꾸준한 관객동원에 힘입어 전국 200만 관객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6일 영화사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개봉한 ‘홀리데이’는 개봉 첫주말 3일 동안 약 25만명의 관객을, 설 연휴 기간에는 30만명을 동원했다. 이는 첫주 222개의 스크린에서 현재 192개의 스크린으로 약 30개의 극장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관객 동원 상승세다.
●실화와 픽션의 완벽한조화 <홀리데이>, 실제와 다른 일곱가지 이야기
하나 - 6인의 빠삐용 왜 실명을 사용하지 못했나?
지강헌을 비롯해 마지막 인질극에 가담한 6인의 탈주범들과 마지막 인질이 되었던 사람들의 이름은 영화 속에서 모두 다르게 나온다. 그 이유는 영화 <홀리데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일정부분 픽션을 가미해 영화를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만 다를 뿐 그들이 죄를 짓고 형을 산 것은 실제 인물을 기초로 해서 구성됐다.
둘 -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 실제 인물인가?
지강혁 일당을 쫓으며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랄한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은 영화의 극적 긴장감과 탈주극의 묘미를 두기 위해 가공됐다. 김안석 역을 맡은 최민수는 8Kg의 살을 빼고 금니를 해 넣으며 소름 끼칠 정도의 모습으로 등장해 탈주범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간다. 무허가 주택 강제 철거 작업 중에 안석의 총에 친동생과도 같은 주환을 잃은 강혁은 이에 항거하다 교도소에 수감되고 안석은 강혁이 수감된 교도소 부소장으로 부임하면서 목숨을 건 혈투가 시작된다. 공권력이라는 절대적인 힘으로 강혁을 짓밟는 안석의 처절한 싸움은 주환의 죽음부터 시작해 최후의 인질극까지 이어지며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으로 관객들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셋 - 홍콩으로의 밀항
지강혁과 함께 탈주에 성공한 교도소 방장 대철과 그의 오른팔 광팔이 지강혁 일당과 떨어져 홍콩으로 밀항을 시도하려다 안석이 이끄는 경찰에게 죽음을 당하는 장면은 수많은 사건관계자를 만나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이야기에 기초해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재구성하였다. 특히 교도소에서 강혁을 괴롭히던 대철이 광팔과 함께 몰래 밀항을 결심하고 나머지 일행들이 잠든 새벽녘에 자신들의 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그 속에는 이들의 작전을 눈치챈 강혁이 도박장에서 훔쳐 밀항을 할 수 있도록 넣어준 돈이 들어있다. 강혁의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된 대철과 광팔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배신에 대해 자책한다.
넷 - 전직 대통령 항의 시도
탈주에 성공한 지강혁은 일당을 이끌고 연희동으로 향한다. 목표는 전직 대통령. 그들이 연희궁이라 불리는 그 곳에 간 이유가 무엇일까? 사건 취재시 이들이 탈주를 결심한 계기는 자신들은 잡범으로 보호감호 때문에 17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수감 당하는데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은 비리로 수백억을 횡령하고도 7년형을 선고 받고 이후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온 것에 격분해 탈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연희동 근처인 북가좌동에서 마지막 인질극을 벌인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에서 픽션으로 삽입됐다.
다섯 - 지강헌 자살인가, 사살인가?
지강헌 사건의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1명 사살, 2명 자살’이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지강헌은 동료 탈주범들이 총으로 자살을 하자, 깨진 유리로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던 중 특공요원 5명이 쏜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관계자들의 인터뷰 결과 언론의 보도와 상반된 주장이 대두되었으며, 지강헌의 죽음에 대한 결론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여섯 - 스콜피언스의 <홀리데이>가 아닌 비지스의 <홀리데이>인 까닭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지강헌은 시인이 꿈이었으며, 설득력 있는 말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수차례 인질극을 벌이는 동안 정중한 태도로 인질들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았던 점, 동료 탈주범에게 자수를 권고한 것 그리고 마지막 인질이었던 고씨가 오히려 지강헌을 보호하려 든 것 등은 세간의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10월 16일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던 그는 경찰에 팝 그룹 비지스의 ‘holiday’를 틀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이 지강헌에게 들려준 노래는 스콜피온스의 ‘holiday’였다. 지강헌은 왜 비지스의 ‘holiday’를 틀어 달라고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단 1초라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죽고 싶다”고 절규했던 그의 말처럼 ‘holiday’를 들으며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자유를 꿈꾸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강헌은 영화 속에서나마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비지스의 ‘Holiday’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일곱 - 어떻게 거대한 조직도 아닌 일개 잡범들이 8박 9일간 잡히지 않았는가?
교도소를 탈옥한 지강헌과 일당들은 8박9일동안 서울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 이들은 <실미도>의 부대원처럼 훈련된 사람들도 거대한 조직들의 조직원도 아닌 일개 잡범들이었다. 어떻게 이들이 8박 9일동안 경찰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서울 시내를 활보할 수 있었을까? 당시 매스컴은 지강헌 일당들을 흉악범이라고 보도 했지만 지강헌 일당에 인질로 잡혔던 사람들은 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중한 태도로 대하며 자신들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은 점, 그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부분에 감화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강헌과 일당들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해 당시 현대판 홍길동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결국 인질로 잡힌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를 미루었고 그 결과 지강헌을 비롯한 일당들은 8박 9일간 경찰에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숨막히는 그들의 8박 9일간의 탈주일지 전격 공개!
9일동안 서울시내 곳곳을 누비며 원정강도와 인질극을 벌여온 지강헌과 탈주범 일당은 1988년 10월 16일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16시간동안 인질극을 벌이다 주범인 지강헌은 사살, 2명은 자살, 1명은 검거됨으로써 서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들의 탈주극은 막을 내리게 됐다.
그들의 지능적이고 대담한 탈주행각은 결국 비극으로 끝을 맺었지만, 당시 경찰의 수사방법과 교도행정, 보호감호제도 등 수많은 문제점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이들의 8박9일, 195시간에 걸친 숨막히는 탈주일지를 공개한다.
1988년 10월 8일
오전 9시30분 영등포 교도소를 출발, 대전 교도소를 거쳐 공주 교도소로 가는 이송버스에 재소자 총 25명이 탑승 이감 중, 안성 톨게이트 부근에서 호송관을 흉기로 위협하여 버스를 탈취하고 이 중 12명이 탈주. 권총 1정과 실탄을 빼앗아 도주한 지강헌과 일당들은 탈주 직후 신촌시장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 시내버스와 택시를 이용 고려대 근처로 이동해 근처 뒷산에서 하룻밤을 보냄. 1명 자수, 1명 검거.
10월 9일
새벽 2시경 지강헌을 포함한 탈주범 7명은 성북구 안암동 손씨집에 침입, 가족 6명을 인질로 26시간을 보냄.
10월 10일
지강헌 일당과 다른 방향으로 탈주했던 3명의 탈주범 룸싸롱에서 검거. 새벽 6시20분쯤 안암동 집을 나온 지강헌 일당은 대학노트와 영문책자를 빼앗아 대학생을 가장해 한양대로 이동해 뒷산에서 1박을 함. 첫 번째 인질이있던 손모씨 경찰에 신고.
10월 11일
새벽 4시30분경 행당동 박씨집에 침입. 가족 4명을 인질로 25시간동안 은신.
10월 12일
새벽 6시30분경 박씨집에서 나온 이들은 명동성당 미사에 참가 후 남산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한 후 뿔뿔이 흩어짐. 이후 이들과 헤어진 김모씨를 제외한 강헌과 일당들은 서울대병원에서 정씨를 납치, 문정동 정씨의 집으로 이동.
10월 13일
오후 9시50분경 가족들의 권유로 김모씨 자수.
오후 10시30분경 지강헌 등 3명 논현동에서 1차 원정강도.
10월 14일
새벽 5시경 자양동에서 2차 원정강도.
오후 5시경 문정동 정씨집에서 나와 오후 7시40분경 신촌 도착. 이중 손모씨 검거.
손씨의 검거를 목격한 지강헌 일당은 창천동 임씨집에 침임 일가족을 인질로 25시간동안 은신.
10월 15일
오후 9시20분쯤 창천동에서 출발. 검문을 피하기 위해 일부는 여장을 함.
오후 10시경 북가좌동 고씨집에 침입.
10월 16일
새벽 3시30분 지강헌 일당이 잠이 든 틈을 타 고씨가 탈출해 경찰에 신고.
이 후 경찰과 대치극을 벌이던 이들 중 강모씨 자수. 안모씨와 한모씨는 현장서 자살.
주범인 지강헌은 끝까지 인질극을 벌이다 현장에 투입된 경찰 특공대에 의해 사살.
이 후 유일하게 행방을 모르던 김모씨는 사건 발생 1년 9개월 후 면목동 인쇄소 기숙사에서 검거.
윤광룡 기자 ykyong@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6일 영화사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개봉한 ‘홀리데이’는 개봉 첫주말 3일 동안 약 25만명의 관객을, 설 연휴 기간에는 30만명을 동원했다. 이는 첫주 222개의 스크린에서 현재 192개의 스크린으로 약 30개의 극장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관객 동원 상승세다.
![]() |
●실화와 픽션의 완벽한조화 <홀리데이>, 실제와 다른 일곱가지 이야기
하나 - 6인의 빠삐용 왜 실명을 사용하지 못했나?
지강헌을 비롯해 마지막 인질극에 가담한 6인의 탈주범들과 마지막 인질이 되었던 사람들의 이름은 영화 속에서 모두 다르게 나온다. 그 이유는 영화 <홀리데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일정부분 픽션을 가미해 영화를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만 다를 뿐 그들이 죄를 짓고 형을 산 것은 실제 인물을 기초로 해서 구성됐다.
둘 -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 실제 인물인가?
지강혁 일당을 쫓으며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랄한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은 영화의 극적 긴장감과 탈주극의 묘미를 두기 위해 가공됐다. 김안석 역을 맡은 최민수는 8Kg의 살을 빼고 금니를 해 넣으며 소름 끼칠 정도의 모습으로 등장해 탈주범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간다. 무허가 주택 강제 철거 작업 중에 안석의 총에 친동생과도 같은 주환을 잃은 강혁은 이에 항거하다 교도소에 수감되고 안석은 강혁이 수감된 교도소 부소장으로 부임하면서 목숨을 건 혈투가 시작된다. 공권력이라는 절대적인 힘으로 강혁을 짓밟는 안석의 처절한 싸움은 주환의 죽음부터 시작해 최후의 인질극까지 이어지며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으로 관객들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셋 - 홍콩으로의 밀항
지강혁과 함께 탈주에 성공한 교도소 방장 대철과 그의 오른팔 광팔이 지강혁 일당과 떨어져 홍콩으로 밀항을 시도하려다 안석이 이끄는 경찰에게 죽음을 당하는 장면은 수많은 사건관계자를 만나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이야기에 기초해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재구성하였다. 특히 교도소에서 강혁을 괴롭히던 대철이 광팔과 함께 몰래 밀항을 결심하고 나머지 일행들이 잠든 새벽녘에 자신들의 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그 속에는 이들의 작전을 눈치챈 강혁이 도박장에서 훔쳐 밀항을 할 수 있도록 넣어준 돈이 들어있다. 강혁의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된 대철과 광팔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배신에 대해 자책한다.
넷 - 전직 대통령 항의 시도
탈주에 성공한 지강혁은 일당을 이끌고 연희동으로 향한다. 목표는 전직 대통령. 그들이 연희궁이라 불리는 그 곳에 간 이유가 무엇일까? 사건 취재시 이들이 탈주를 결심한 계기는 자신들은 잡범으로 보호감호 때문에 17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수감 당하는데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은 비리로 수백억을 횡령하고도 7년형을 선고 받고 이후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온 것에 격분해 탈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연희동 근처인 북가좌동에서 마지막 인질극을 벌인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에서 픽션으로 삽입됐다.
다섯 - 지강헌 자살인가, 사살인가?
지강헌 사건의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1명 사살, 2명 자살’이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지강헌은 동료 탈주범들이 총으로 자살을 하자, 깨진 유리로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던 중 특공요원 5명이 쏜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관계자들의 인터뷰 결과 언론의 보도와 상반된 주장이 대두되었으며, 지강헌의 죽음에 대한 결론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여섯 - 스콜피언스의 <홀리데이>가 아닌 비지스의 <홀리데이>인 까닭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지강헌은 시인이 꿈이었으며, 설득력 있는 말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수차례 인질극을 벌이는 동안 정중한 태도로 인질들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았던 점, 동료 탈주범에게 자수를 권고한 것 그리고 마지막 인질이었던 고씨가 오히려 지강헌을 보호하려 든 것 등은 세간의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10월 16일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던 그는 경찰에 팝 그룹 비지스의 ‘holiday’를 틀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이 지강헌에게 들려준 노래는 스콜피온스의 ‘holiday’였다. 지강헌은 왜 비지스의 ‘holiday’를 틀어 달라고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단 1초라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죽고 싶다”고 절규했던 그의 말처럼 ‘holiday’를 들으며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자유를 꿈꾸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강헌은 영화 속에서나마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비지스의 ‘Holiday’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일곱 - 어떻게 거대한 조직도 아닌 일개 잡범들이 8박 9일간 잡히지 않았는가?
교도소를 탈옥한 지강헌과 일당들은 8박9일동안 서울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 이들은 <실미도>의 부대원처럼 훈련된 사람들도 거대한 조직들의 조직원도 아닌 일개 잡범들이었다. 어떻게 이들이 8박 9일동안 경찰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서울 시내를 활보할 수 있었을까? 당시 매스컴은 지강헌 일당들을 흉악범이라고 보도 했지만 지강헌 일당에 인질로 잡혔던 사람들은 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중한 태도로 대하며 자신들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은 점, 그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부분에 감화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강헌과 일당들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해 당시 현대판 홍길동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결국 인질로 잡힌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를 미루었고 그 결과 지강헌을 비롯한 일당들은 8박 9일간 경찰에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숨막히는 그들의 8박 9일간의 탈주일지 전격 공개!
9일동안 서울시내 곳곳을 누비며 원정강도와 인질극을 벌여온 지강헌과 탈주범 일당은 1988년 10월 16일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16시간동안 인질극을 벌이다 주범인 지강헌은 사살, 2명은 자살, 1명은 검거됨으로써 서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들의 탈주극은 막을 내리게 됐다.
그들의 지능적이고 대담한 탈주행각은 결국 비극으로 끝을 맺었지만, 당시 경찰의 수사방법과 교도행정, 보호감호제도 등 수많은 문제점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이들의 8박9일, 195시간에 걸친 숨막히는 탈주일지를 공개한다.
1988년 10월 8일
오전 9시30분 영등포 교도소를 출발, 대전 교도소를 거쳐 공주 교도소로 가는 이송버스에 재소자 총 25명이 탑승 이감 중, 안성 톨게이트 부근에서 호송관을 흉기로 위협하여 버스를 탈취하고 이 중 12명이 탈주. 권총 1정과 실탄을 빼앗아 도주한 지강헌과 일당들은 탈주 직후 신촌시장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후 시내버스와 택시를 이용 고려대 근처로 이동해 근처 뒷산에서 하룻밤을 보냄. 1명 자수, 1명 검거.
10월 9일
새벽 2시경 지강헌을 포함한 탈주범 7명은 성북구 안암동 손씨집에 침입, 가족 6명을 인질로 26시간을 보냄.
10월 10일
지강헌 일당과 다른 방향으로 탈주했던 3명의 탈주범 룸싸롱에서 검거. 새벽 6시20분쯤 안암동 집을 나온 지강헌 일당은 대학노트와 영문책자를 빼앗아 대학생을 가장해 한양대로 이동해 뒷산에서 1박을 함. 첫 번째 인질이있던 손모씨 경찰에 신고.
10월 11일
새벽 4시30분경 행당동 박씨집에 침입. 가족 4명을 인질로 25시간동안 은신.
10월 12일
새벽 6시30분경 박씨집에서 나온 이들은 명동성당 미사에 참가 후 남산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한 후 뿔뿔이 흩어짐. 이후 이들과 헤어진 김모씨를 제외한 강헌과 일당들은 서울대병원에서 정씨를 납치, 문정동 정씨의 집으로 이동.
10월 13일
오후 9시50분경 가족들의 권유로 김모씨 자수.
오후 10시30분경 지강헌 등 3명 논현동에서 1차 원정강도.
10월 14일
새벽 5시경 자양동에서 2차 원정강도.
오후 5시경 문정동 정씨집에서 나와 오후 7시40분경 신촌 도착. 이중 손모씨 검거.
손씨의 검거를 목격한 지강헌 일당은 창천동 임씨집에 침임 일가족을 인질로 25시간동안 은신.
10월 15일
오후 9시20분쯤 창천동에서 출발. 검문을 피하기 위해 일부는 여장을 함.
오후 10시경 북가좌동 고씨집에 침입.
10월 16일
새벽 3시30분 지강헌 일당이 잠이 든 틈을 타 고씨가 탈출해 경찰에 신고.
이 후 경찰과 대치극을 벌이던 이들 중 강모씨 자수. 안모씨와 한모씨는 현장서 자살.
주범인 지강헌은 끝까지 인질극을 벌이다 현장에 투입된 경찰 특공대에 의해 사살.
이 후 유일하게 행방을 모르던 김모씨는 사건 발생 1년 9개월 후 면목동 인쇄소 기숙사에서 검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