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립운동가 곽종석 선생
작성 : 2006년 06월 05일(월) 10:58 가+가-

포고천하문(布告天下文)(1896년)
명성황후 시해만행, 단발령 등 일제의 만행에 대응하기 위해 이승희, 윤주하 등 한주학파 5명과 함께 서구열강에 만국공법(萬國公法)에 의거, 일제를 심판해 줄 것을 요청하며 각국 공사관에 발송했다.
국가보훈처는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 헌신한 면우 곽종석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46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단발령 강요 등 일제의 만행이 이어지자 1896년 각국 공사관에 ‘천하포고문’을 보내 일본을 규탄했다.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영남유림을 이끌고 호서유림과 연합해 유림대표로 독립청원서를 작성, 김창숙 선생을 파리강화회의에 보냈다. 또 청원서를 영어, 불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 각국 공사관과 언론기관에 보내 한민족의 자주의지와 독립결의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
이 때문에 선생은 일본 경찰에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으며, 1919년 6월 병보석으로 출옥했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돼 같은 해 8월24일 서거했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1846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단발령 강요 등 일제의 만행이 이어지자 1896년 각국 공사관에 ‘천하포고문’을 보내 일본을 규탄했다.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영남유림을 이끌고 호서유림과 연합해 유림대표로 독립청원서를 작성, 김창숙 선생을 파리강화회의에 보냈다. 또 청원서를 영어, 불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 각국 공사관과 언론기관에 보내 한민족의 자주의지와 독립결의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
이 때문에 선생은 일본 경찰에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으며, 1919년 6월 병보석으로 출옥했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돼 같은 해 8월24일 서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