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역사의 정체성 밝혀줄 유적지 '왜곡'
신라시대 쌓은 성을 고려 의종이 쌓은 성으로 왜곡
"성곽 전체 발굴조사와 국가사적지 지정 서둘러야"
"성곽 전체 발굴조사와 국가사적지 지정 서둘러야"
작성 : 2007년 09월 03일(월) 17:02 가+가-
거제 역사의 정체성을 밝혀줄 중요한 역사 유적지인 연지(蓮池·연못)가 둔덕면 거림리 폐왕성지에서 지난달 2일 발굴됐다.
발굴된 지역의 폐왕성지 명칭이 역사 고증을 거치지 않은 유적지명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신라시대에 쌓은 성을 고려 의종이 쌓았다고 역사까지 일부 왜곡하고 있어 시정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1300여년전 만들어진 연못형태의 집수시설 발굴 개과
지난달 2일 둔덕면 거림리 산 93번지 '폐왕성지(廢王城址)'안에서, 1300여년 전 통일신라 시대에 축조된 연못의 원형이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에 의해 드러났다.
해발 326m 높이의 성 안에 만들어진 연못으로 최대 166,000ℓ의 물을 저장하여, 100명의 주둔 병력이 최대 830일을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직경 16.2m의 웅덩이를 파서 바닥에 돌을 깔고(직경 6.65m) 4단(직경 12.5m)으로 돌을 쌓아 연못을 만든 후(깊이 3.7m) 황토와 점토를 바깥에 채워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한 물을 모으는 시설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연못이 처음 만들어진 후 연못안에 흙이 채이자, 그 위에 다시 돌로 2차, 3차 연못을 만들어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사용했다. 올해 6월 발굴전까지도 물이 고여 있었다.
연못에서는 처음 만들어진 연못과 2차, 3차 연못층에서 각각 다른 시대의 기와·토기·자기·청동유물·목기·동물뼈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바닥의) 회색 뻘층에서는 토기·기와·목기 등의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집중 출토되었으며, 고려시대 이후의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다”는 보고서 내용은 연못이 13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 "성 축조 연대와 폐왕성지 유적지명을 고쳐야 하고, 연지 명칭도 역사성이 담긴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성의 축조 연대에 대한 정확한 역사 기록과 '폐왕성지(廢王城址)' 명칭에 대한 역사 고증을 거쳐 수정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나아가 연지(蓮池) 명칭을 통일신라시대에 축조한 역사성이 담겨 있는 명칭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폐왕성지의 현존 둘레는 526m, 높이는 5.5m이고, 2004년 동문지가 발굴 조사됐으며, 남문지, 서문지, 건물추정지 등에 대한 발굴 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폐왕성지 안내 표지판과 둔덕면사(屯德面史)에는 “폐왕성지는 1170년(고려 의종24)에 정중부 등이 무신란을 일으켰을 때 의종이 이곳에 쫓겨와 쌓은 것이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고려 의종이 쌓은 성이며, 연못도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폐왕성지는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축조되었다는 것은 2005년에 밝혀졌다. 거제 문화유적분포지도(2005) 책에 “폐왕성지(廢王城址)는 7세기 후반에 처음 성을 쌓아, 이후 고려시대(중심연대 12세기)에 고쳐 쌓았다”고 밝히고 있다.
유적분포지도책에서 “폐왕성지(廢王城址)는 거제도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성곽으로 판단되며, 거제도의 역사적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폐왕성지(廢王城址)’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1호에 지정된 시기는 1974년 2월 16일이다.
폐왕성지는 둔덕기성(屯德歧城) 또는 기성(歧城)이 역사적인 명칭이다. 신증동국여승람, 동국여지지 등에는 “둔덕기성(屯德歧城)은 내현(內縣) 서쪽 37리에 있는 돌로 쌓은 성이며, 둘레가 1002척, 높이가 9척이다. 성 안에는 연못이 있다. 고려 종성(宗姓·왕씨)이 유배를 온 곳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로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 영남읍지, 한국근대읍지, 경상도여지집성, 경상남도거제군읍지(1899년) 등에도 둔덕기성 또는 기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폐왕성 명칭이 등장하는 것은 1931년 11월에 발간된 ‘경남의 성지(慶南の 城址)’에 나타나고 있지만, 폐왕성 위치를 소개하는 지도에는 기성으로 돼있다.
전갑생 부산경남사학회 연구위원은 “폐왕성의 정식 명칭은 둔덕기성이 돼야 한다”며, “도 기념물로 지정할 때는 일제시대의 왜곡된 역사 자료만 참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전 씨는 2002년에 발간된 둔덕면사의 편찬을 맡았으나, 폐왕성지가 고려 의종이 쌓았다는 둔덕면사의 기록도 일부 잘못이 있음을 시인했다.
연지발굴에 조사원으로 참가한 심종훈(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전임연구원) 씨는 “거제의 역사적 정체성을 밝혀줄 중요한 역사적 유물에 대한 검증을 거쳐 바로 잡을 필요도 있다”고 했다.
김석환 경남도청 문화예술과 담당자는 “역사성이 담겨 있는 지명에 대한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위원회가 타당성을 검토해 변경가능하다”고 했다.
성 명칭이 잘못돼 있어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연지(蓮池)도 역사성이 담겨 있는 제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폐왕성지(廢王城池)'또는 '폐왕성 연지(蓮池)'로 불리고 있다.
△ 폐왕성지 전체 발굴 시급, 국가사적지 지정 서둘러야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연지 발굴을 통해, 둔덕면 거림리 일대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거제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국사기에 “거제군은 677년 문무왕이 처음으로 상군(裳郡)을 설치했던 곳으로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이었는데, 757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도 그대로(거제군) 부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둔덕면 거림리 거림마을에는 1997년 1월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62호로 지정된 거제 고군현 치소지(巨濟 古郡縣 治所址)가 있다.
이곳을 발굴조사하면서 출토된 유물 중에 ‘상사리(裳四里)’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다.
심봉근 박사(동아대 박물관)는 “상사리(裳四里)는 당시의 기와제작과 운반거리를 생각한다면 이 명문 기와가 출토된 거림리 주변 (지명을)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실정이다. 상군 주위에 상일리(裳一里)에서 시작하여 상사리(裳四里) 이상의 행정지명이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제 문화유적분포지도 책에는 “상사리 명문 기와는 최소한 고려 이전의 거제 군현 위치가 거림리 일대”며, “명문기와는 상군(裳郡)의 위치가 둔덕면 거림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승철 거제향토사연구소장은 “거제에 23개의 성이 있지만, 폐왕성지는 거제에서 가장 빠른 시기인 신라시대에 쌓은 성이고, 고려·조선 시대에 남해안 방어성의 역할을 한 곳”이라며, “거림리의 고군현지, 거제관문 역할을 한 사등면 오량성 등이 주위에 있는 귀중한 유적지이기 때문에 전체 발굴 조사와 사적지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김철문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발굴된 지역의 폐왕성지 명칭이 역사 고증을 거치지 않은 유적지명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신라시대에 쌓은 성을 고려 의종이 쌓았다고 역사까지 일부 왜곡하고 있어 시정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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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0여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연지(蓮池) |
△ 1300여년전 만들어진 연못형태의 집수시설 발굴 개과
지난달 2일 둔덕면 거림리 산 93번지 '폐왕성지(廢王城址)'안에서, 1300여년 전 통일신라 시대에 축조된 연못의 원형이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의 발굴조사에 의해 드러났다.
해발 326m 높이의 성 안에 만들어진 연못으로 최대 166,000ℓ의 물을 저장하여, 100명의 주둔 병력이 최대 830일을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직경 16.2m의 웅덩이를 파서 바닥에 돌을 깔고(직경 6.65m) 4단(직경 12.5m)으로 돌을 쌓아 연못을 만든 후(깊이 3.7m) 황토와 점토를 바깥에 채워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한 물을 모으는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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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의 발굴 과정에서 수습한 유물 |
통일신라시대에 연못이 처음 만들어진 후 연못안에 흙이 채이자, 그 위에 다시 돌로 2차, 3차 연못을 만들어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사용했다. 올해 6월 발굴전까지도 물이 고여 있었다.
연못에서는 처음 만들어진 연못과 2차, 3차 연못층에서 각각 다른 시대의 기와·토기·자기·청동유물·목기·동물뼈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바닥의) 회색 뻘층에서는 토기·기와·목기 등의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집중 출토되었으며, 고려시대 이후의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다”는 보고서 내용은 연못이 13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 "성 축조 연대와 폐왕성지 유적지명을 고쳐야 하고, 연지 명칭도 역사성이 담긴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성의 축조 연대에 대한 정확한 역사 기록과 '폐왕성지(廢王城址)' 명칭에 대한 역사 고증을 거쳐 수정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나아가 연지(蓮池) 명칭을 통일신라시대에 축조한 역사성이 담겨 있는 명칭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폐왕성지의 현존 둘레는 526m, 높이는 5.5m이고, 2004년 동문지가 발굴 조사됐으며, 남문지, 서문지, 건물추정지 등에 대한 발굴 조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폐왕성지 안내 표지판과 둔덕면사(屯德面史)에는 “폐왕성지는 1170년(고려 의종24)에 정중부 등이 무신란을 일으켰을 때 의종이 이곳에 쫓겨와 쌓은 것이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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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시대 쌓은 성을 고려 의종이 쌓은 성으로 표기하고 있는 폐왕성지 안내표지판 |
고려 의종이 쌓은 성이며, 연못도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폐왕성지는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축조되었다는 것은 2005년에 밝혀졌다. 거제 문화유적분포지도(2005) 책에 “폐왕성지(廢王城址)는 7세기 후반에 처음 성을 쌓아, 이후 고려시대(중심연대 12세기)에 고쳐 쌓았다”고 밝히고 있다.
유적분포지도책에서 “폐왕성지(廢王城址)는 거제도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성곽으로 판단되며, 거제도의 역사적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폐왕성지(廢王城址)’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1호에 지정된 시기는 1974년 2월 16일이다.
폐왕성지는 둔덕기성(屯德歧城) 또는 기성(歧城)이 역사적인 명칭이다. 신증동국여승람, 동국여지지 등에는 “둔덕기성(屯德歧城)은 내현(內縣) 서쪽 37리에 있는 돌로 쌓은 성이며, 둘레가 1002척, 높이가 9척이다. 성 안에는 연못이 있다. 고려 종성(宗姓·왕씨)이 유배를 온 곳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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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동지도(1750)에 지금의 폐왕성지를 기성(歧城)으로 기록하고 있다. |
이후로 여지도서, 증보문헌비고, 영남읍지, 한국근대읍지, 경상도여지집성, 경상남도거제군읍지(1899년) 등에도 둔덕기성 또는 기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폐왕성 명칭이 등장하는 것은 1931년 11월에 발간된 ‘경남의 성지(慶南の 城址)’에 나타나고 있지만, 폐왕성 위치를 소개하는 지도에는 기성으로 돼있다.
전갑생 부산경남사학회 연구위원은 “폐왕성의 정식 명칭은 둔덕기성이 돼야 한다”며, “도 기념물로 지정할 때는 일제시대의 왜곡된 역사 자료만 참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전 씨는 2002년에 발간된 둔덕면사의 편찬을 맡았으나, 폐왕성지가 고려 의종이 쌓았다는 둔덕면사의 기록도 일부 잘못이 있음을 시인했다.
연지발굴에 조사원으로 참가한 심종훈(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전임연구원) 씨는 “거제의 역사적 정체성을 밝혀줄 중요한 역사적 유물에 대한 검증을 거쳐 바로 잡을 필요도 있다”고 했다.
김석환 경남도청 문화예술과 담당자는 “역사성이 담겨 있는 지명에 대한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위원회가 타당성을 검토해 변경가능하다”고 했다.
성 명칭이 잘못돼 있어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연지(蓮池)도 역사성이 담겨 있는 제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폐왕성지(廢王城池)'또는 '폐왕성 연지(蓮池)'로 불리고 있다.
△ 폐왕성지 전체 발굴 시급, 국가사적지 지정 서둘러야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연지 발굴을 통해, 둔덕면 거림리 일대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거제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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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본 폐왕성지의 모습(성 아래쪽 흰 부문이 연지가 발굴된 곳임) |
삼국사기에 “거제군은 677년 문무왕이 처음으로 상군(裳郡)을 설치했던 곳으로 바다 가운데에 있는 섬이었는데, 757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도 그대로(거제군) 부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둔덕면 거림리 거림마을에는 1997년 1월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62호로 지정된 거제 고군현 치소지(巨濟 古郡縣 治所址)가 있다.
이곳을 발굴조사하면서 출토된 유물 중에 ‘상사리(裳四里)’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다.
심봉근 박사(동아대 박물관)는 “상사리(裳四里)는 당시의 기와제작과 운반거리를 생각한다면 이 명문 기와가 출토된 거림리 주변 (지명을)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실정이다. 상군 주위에 상일리(裳一里)에서 시작하여 상사리(裳四里) 이상의 행정지명이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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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림리 거제고군현 치소지에서 출토된 상사리(裳四里)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기와 |
거제 문화유적분포지도 책에는 “상사리 명문 기와는 최소한 고려 이전의 거제 군현 위치가 거림리 일대”며, “명문기와는 상군(裳郡)의 위치가 둔덕면 거림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승철 거제향토사연구소장은 “거제에 23개의 성이 있지만, 폐왕성지는 거제에서 가장 빠른 시기인 신라시대에 쌓은 성이고, 고려·조선 시대에 남해안 방어성의 역할을 한 곳”이라며, “거림리의 고군현지, 거제관문 역할을 한 사등면 오량성 등이 주위에 있는 귀중한 유적지이기 때문에 전체 발굴 조사와 사적지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