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진실규명
진실화해위 민간인 희생사실, 규모 등 밝혀
작성 : 2008년 12월 18일(목) 17:58 가+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18일 ‘거제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과 ‘광주 민간인 희생 사건’ ‘대전지역 적대세력 사건’ 등 모두 3건의 사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거제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은 군.경 토벌대의 야산대 토벌과정에서 최소 38명 이상의 거제지역 주민들이 야산대 활동을 했거나 협조했다는 이유로 국군 16연대, 호림부대, 장승포경찰서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토벌대는 야산대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주민을 대살(代殺)하거나 밥 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주민들을 일주일간 방공호에 감금한 뒤, 이중 6명을 야산대 심부름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대전지역 적대세력 사건’은 한국전쟁 중 인민군 퇴각과정에서 대한청년단 및 국민회 간부를 비롯한 민간인들과 전쟁 포로(미군․군인․경찰), 외국인, 종교인 등이 희생된 사건이다
대전지역 희생자들은 모두 1557명이며, 대전형무소(당시 인민교화소), 프란치스코 수도원(당시 충남 정치보위부) 등지에 수감됐다가 정치보위부의 처형 명령에 따라 정치보위부원, 내무서원, 인민군에 의해 총살됐다.
그러나 당시 희생자들이 우물에 산 채로 수장되거나 생매장됐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광주 민간인 희생 사건’은 경찰의 공비토벌과정에서 광산경찰서.광주경찰서 소속 경찰들에 의해 빨치산, 좌익혐의자 또는 부역자로 몰린 민간인 23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경찰들은 빨치산이 출몰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붙잡아 빨치산의 위치를 취조하던 중 고문에 못 이겨 자백한 것이 허위로 드러나자 사실과 다르다”며 사살했으며 또 관내 이장, 반장 등 마을유지들을 회의 소집 차 지서로 출두시킨 뒤 이들 6명을 부역혐의자로 몰아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목격자, 생존자 등의 진술조사를 비롯해 미(美) 전쟁범죄조사단(KWC) 보고서,『장교 자력표』(육군본부),『공비토벌사』(육군본부),『전남경찰사』(전남지방경찰청) 등 자료조사와 당시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 대한 현장조사 등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혔다.
거제 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진실화해위원회는 ‘거제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을 조사한 결과 1949년 3월부터 같은 해 5월까지 약 3개월간 경남 거제지역에서 최소 38명의 주민들이 야산대 활동을 했거나 협조했다는 이유로 국군 16연대, 호림부대, 장승포경찰서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실을 밝혀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보고서’ (국회), ‘장교 자력표’(육군본부) 등 사건의 실재여부와 희생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조사와 생존자, 목격자를 비롯해 당시 16연대 사병과 호림부대원, 경찰 등에 대한 진술조사를 실시했다.
최소 38명의 거제지역 주민들은 야산대 토벌작전을 벌이던 군.경 토벌대에 의해 일운면 구조라리 인근 야산, 마전동 공동묘지, 신사터 등지에서 고문,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한 후 집단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군.경 토벌대는 토벌작전 중 야산대 활동을 했거나 야산대에 협조한 주민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마을주민들을 구타하고 고문을 가했으며, 대낮에 마을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부 주민들을 공개사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야산대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주민을 대살(代殺)하거나, 동명이인을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고 사살하기도 했다.
입산 후 야산대 활동을 하던 일운면 지세포리 이00은 토벌군이 진주하자 1949년 5월 자수했으나 16연대가 철수하면서 장승포 마전동 공동묘지에서 희생됐으며, 토벌을 피해 피신했던 구조라리 출신 강00 등 3명은 부산에서 연행된 뒤 신사터에서 토벌대에 의해 공개사살됐다.
일운면 구조라리 사건의 경우 밥을 해 달라는 16연대의 요청을 주민들이 거절하자 야산대 협조자를 색출한다며 주민 140여 명을 학교 방공호에 일주일간 감금한 뒤, 이중 6명을 야산대 심부름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살했다.
일운면 지세포리에서는 토벌대가 야산대원의 거처를 밝혀내기 위해 야산대원의 처남을 연행해 취조하는 과정에서 구타와 고문으로 마지못해 자백한 사실이 허위로 드러나자 대신마을 모래밭으로 끌고 가 사살했다.
신현읍 수월리에서도 탈영병과 야산대 검거에 실패한 토벌대가 마을로 들어와 관련자 색출을 명목으로 초등학교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심문한 후 구장과 탈영병의 친척을 끌고 간 후 살해됐다.
연초면 이목리의 경우 좌익활동을 하던 남편의 소재를 추적하던 경찰을 피해 산으로 도망가던 여성이 경찰이 쏜 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천곡리에서는 토벌대가 야산의 굴 속에서 발견한 허리띠의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동명이인을 살해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희생자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모두 38명이나,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사건이후 멸족된 사례 등을 고려하면 이는 최소한의 희생자 수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 희생자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신원이 확인된 38명 중 청장년층인 20~30대가 35명으로 전체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10대와 여성도 각각 2명이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던 민간인들로 야산대에게 식량을 제공하거나 삐라 살포, 포스터 부착 등 단순 협조를 한 혐의로 구타와 고문을 당한 후 살해됐으며 사건의 가해 주체는 국군 16연대와 호림부대, 장승포경찰서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16연대는 거제지역에서 실시된 토벌작전의 주력부대로 활동했으며, 호림부대의 경우 육군정보국 산하에 있으면서 사건 발생 기간 동안 ‘거제파견대’ 이름으로 토벌작전에 참여했다는 것. 또한 장승포경찰은 각 지서경찰들과 대한청년단 등의 도움을 받아 야산대 및 야산대 협조자 색출작전을 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야산대 토벌작전이라는 명분으로 민간인들을 연행하여 적법한 절차없이 살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국민의 생명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임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공식 사과할 것과 군인, 경찰, 공무원을 대상으로 전시 평화인권교육을 실시할 것, 그리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위령사업을 지원할 것 등을 권고했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거제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은 군.경 토벌대의 야산대 토벌과정에서 최소 38명 이상의 거제지역 주민들이 야산대 활동을 했거나 협조했다는 이유로 국군 16연대, 호림부대, 장승포경찰서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토벌대는 야산대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주민을 대살(代殺)하거나 밥 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주민들을 일주일간 방공호에 감금한 뒤, 이중 6명을 야산대 심부름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대전지역 적대세력 사건’은 한국전쟁 중 인민군 퇴각과정에서 대한청년단 및 국민회 간부를 비롯한 민간인들과 전쟁 포로(미군․군인․경찰), 외국인, 종교인 등이 희생된 사건이다
대전지역 희생자들은 모두 1557명이며, 대전형무소(당시 인민교화소), 프란치스코 수도원(당시 충남 정치보위부) 등지에 수감됐다가 정치보위부의 처형 명령에 따라 정치보위부원, 내무서원, 인민군에 의해 총살됐다.
그러나 당시 희생자들이 우물에 산 채로 수장되거나 생매장됐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광주 민간인 희생 사건’은 경찰의 공비토벌과정에서 광산경찰서.광주경찰서 소속 경찰들에 의해 빨치산, 좌익혐의자 또는 부역자로 몰린 민간인 23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경찰들은 빨치산이 출몰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붙잡아 빨치산의 위치를 취조하던 중 고문에 못 이겨 자백한 것이 허위로 드러나자 사실과 다르다”며 사살했으며 또 관내 이장, 반장 등 마을유지들을 회의 소집 차 지서로 출두시킨 뒤 이들 6명을 부역혐의자로 몰아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목격자, 생존자 등의 진술조사를 비롯해 미(美) 전쟁범죄조사단(KWC) 보고서,『장교 자력표』(육군본부),『공비토벌사』(육군본부),『전남경찰사』(전남지방경찰청) 등 자료조사와 당시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 대한 현장조사 등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혔다.
거제 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진실화해위원회는 ‘거제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을 조사한 결과 1949년 3월부터 같은 해 5월까지 약 3개월간 경남 거제지역에서 최소 38명의 주민들이 야산대 활동을 했거나 협조했다는 이유로 국군 16연대, 호림부대, 장승포경찰서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실을 밝혀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보고서’ (국회), ‘장교 자력표’(육군본부) 등 사건의 실재여부와 희생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조사와 생존자, 목격자를 비롯해 당시 16연대 사병과 호림부대원, 경찰 등에 대한 진술조사를 실시했다.
최소 38명의 거제지역 주민들은 야산대 토벌작전을 벌이던 군.경 토벌대에 의해 일운면 구조라리 인근 야산, 마전동 공동묘지, 신사터 등지에서 고문,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한 후 집단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군.경 토벌대는 토벌작전 중 야산대 활동을 했거나 야산대에 협조한 주민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마을주민들을 구타하고 고문을 가했으며, 대낮에 마을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부 주민들을 공개사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한 야산대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주민을 대살(代殺)하거나, 동명이인을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고 사살하기도 했다.
입산 후 야산대 활동을 하던 일운면 지세포리 이00은 토벌군이 진주하자 1949년 5월 자수했으나 16연대가 철수하면서 장승포 마전동 공동묘지에서 희생됐으며, 토벌을 피해 피신했던 구조라리 출신 강00 등 3명은 부산에서 연행된 뒤 신사터에서 토벌대에 의해 공개사살됐다.
일운면 구조라리 사건의 경우 밥을 해 달라는 16연대의 요청을 주민들이 거절하자 야산대 협조자를 색출한다며 주민 140여 명을 학교 방공호에 일주일간 감금한 뒤, 이중 6명을 야산대 심부름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살했다.
일운면 지세포리에서는 토벌대가 야산대원의 거처를 밝혀내기 위해 야산대원의 처남을 연행해 취조하는 과정에서 구타와 고문으로 마지못해 자백한 사실이 허위로 드러나자 대신마을 모래밭으로 끌고 가 사살했다.
신현읍 수월리에서도 탈영병과 야산대 검거에 실패한 토벌대가 마을로 들어와 관련자 색출을 명목으로 초등학교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심문한 후 구장과 탈영병의 친척을 끌고 간 후 살해됐다.
연초면 이목리의 경우 좌익활동을 하던 남편의 소재를 추적하던 경찰을 피해 산으로 도망가던 여성이 경찰이 쏜 총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천곡리에서는 토벌대가 야산의 굴 속에서 발견한 허리띠의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동명이인을 살해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희생자 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모두 38명이나,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사건이후 멸족된 사례 등을 고려하면 이는 최소한의 희생자 수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 희생자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신원이 확인된 38명 중 청장년층인 20~30대가 35명으로 전체의 92%를 차지하고 있으며, 10대와 여성도 각각 2명이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던 민간인들로 야산대에게 식량을 제공하거나 삐라 살포, 포스터 부착 등 단순 협조를 한 혐의로 구타와 고문을 당한 후 살해됐으며 사건의 가해 주체는 국군 16연대와 호림부대, 장승포경찰서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16연대는 거제지역에서 실시된 토벌작전의 주력부대로 활동했으며, 호림부대의 경우 육군정보국 산하에 있으면서 사건 발생 기간 동안 ‘거제파견대’ 이름으로 토벌작전에 참여했다는 것. 또한 장승포경찰은 각 지서경찰들과 대한청년단 등의 도움을 받아 야산대 및 야산대 협조자 색출작전을 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야산대 토벌작전이라는 명분으로 민간인들을 연행하여 적법한 절차없이 살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며, 국민의 생명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임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공식 사과할 것과 군인, 경찰, 공무원을 대상으로 전시 평화인권교육을 실시할 것, 그리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위령사업을 지원할 것 등을 권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