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과 골매기, 그리고 방파제가 지켜주는 대숲께
사라져 가는 것들-거제도 별신굿①
작성 : 2004년 01월 29일(목) 00:00 가+가-
그동안 우리의 무속은 때로는 미신타파의 대상이 되어 음지에서 은밀히 행해지기도 했고, 때로는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어설프게 무대위에 올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인식되어 온 굿의 이미지는 숨겨야 할 치부도, 화려한 무대예술도 아닌 일상 속에 용해되어 함께 이어져 온 우리 삶의 일부였다.
죽은 넋을 천도해 주십사, 우리 마을을 잘 보살펴 주십사 하는 무수한 기원, 절대자에 대한 끊임없는 기원과 영원한 것에 대한 추구, 그리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 민족의 삶을 끈질기게 이어준 무속의 바탕이었고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 주변에서 이러한 굿의 현장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소외되고 천대받아 온 무당들의 업을, 그들의 한과 눈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삶의 한 원형으로서 존재해 온 굿판의 생명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역사의 한귀퉁이에 묻혀 버릴 것이다.
모닝뉴스는 지난 94년 도서출판 열화당에서 나온 '거제도 별신굿'(글 황루시, 사진 김수남)의 내용을 3회에 걸쳐 원문 그대로 옮겨 싣는다.
거제도 무속의 특징
바다를 의지하고 사는 지역들이 대개 그렇듯이 거제도 역시 무속신앙의 뿌리가 깊다. 하지만 거제도의 무속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인근의 통영, 마산 등지와 유사해 전라도, 경상도 무속의 경계를 이룬다. 굿 한 석이 끝날 때마다 수비를 풀어먹이는 것은 부산에서 동해안을 끼고 강원북부까지 분포되어 있는 경상도 무속과 같다. 그런가 하면 이 지역의 넋굿인 오귀새남에는 영둑굿이라고 부르는 씻김의 절차가 들어가 있어 전라도 무속과 상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제도에서 전승되는 굿은 크게 도신, 오귀새남, 별신굿으로 나눌 수 있다. 도신은 집안의 안녕과 재수발원, 자손의 창성을 목적으로 정월에 행하는 집굿이다. 삼년 터울을 두고 하는데 굿하기 전날 밤, 또는 굿하는 날 새벽에 집안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산신제 터에 가서 먼저 산신제를 모시는 것이 특징이다. 산신제는 조상의 신위를 모셔 놓고 비손하면서 굿을 하게 됨을 아뢰는 것이다.
오귀새남은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천도하는 굿이다. 부정굿을 한 뒤에 물에서 죽었으면 죽은 장소에서 넋건지기를 하고 육지에서 죽은 경우에는 무덤에 찾아가 혼백을 모셔오는데 이를 메맞이라고 한다. 대개 지역의 무속이 그렇듯이 염불을 많이 하는 것이 특징이다.
별신굿은 마을 단위로 안과태평(安過太平)과 생업의 번창을 비는 굿이다. 집굿에 비해 규모가 크고 마을의 축제로 치러진다. 그러나 마을 전체의 길복을 추구하는 의례이니만큼 엄격하게 금기가 지켜지고, 주민들은 대대로 내려온 전통을 따르려는 적극성을 보인다.
거제도에서는 무당을 승방이라고 부르고 악사는 고인수라고 하는데, 이들은 모두 세습무가 출신들이다. 특히 주무는 대모라고 부르며, 적어도 굿하는 동안만은 주민들이 극진하게 대접하여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나마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통영 오귀새남굿의 기능보유자 정모연 무녀가 별세한 후 마산의 김윤희가 남아 있는 유일한 세습무로 보인다. 악사 또한 소멸되어 전통적인 세습무의 굿은 이제 완전히 끊겼다고 하겠다.
죽림의 별신굿
. 때 : 1986년 2월 12일∼14일
·곳 : 거제시 거제면 죽림 마을
죽림은 해마다 정월이면 별신굿을 크게 벌여 온 마을이다. 굿할 때마다 마을의 가장 큰 걱정은 제관을 뽑는 일이다. 굿하는 동안 마을을 대표하는 세관을 굿장모라고 부르는데, 지켜야 할 금기가 상당히 많다. 일단 굿날짜를 받으면 굿장모는 집에 금줄을 치고 출입을 삼가며 근신한다. 굿이 끝난 후에도 사흘 동안은 전혀 집 밖으로 나올수 없고, 적어도 백일 동안은 초상집이나 개 잡는데 가지 못하고 몸단속을 해야하기 때문에 요즘은 굿장모를 꺼린다.
공연히 마을일을 잘못하면 뒤탈도 두렵고 또 제각기 사는데도 바빠서 전체를 위해 나서려는 사람이 없어 십여년 전 할 수 없이 마을에서는 논 세 마지기를 샀다. 굿장모를 하면 두해 동안 논을 부쳐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절대희생으로 일관해야 될 것 같은 제관을 논 세 마지기 흥정으로 맡기는 것은 일종의 타협이다. 그러나 세상변화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전통을 지키는 현실적인 사고가 바로 '논을 사는' 지혜라고 볼 수 있겠다.
굿장모는 경우 바르고 꼼꼼한 옥치문(53)씨가 맡게 되었다. 굿장모는 산신제와 굿에 쓸 제물을 구입하기 위해 장에 가는데, 물건을 살 때에는 일체 흥정을 하지 않고 달라는 값을 모두 준다. 굿장모는 집에 돌아와 안주인과 함께 제물을 장만한다.
죽림을 지켜주는 신들은 마을을 포근히 감싸면서 곳곳에 좌정해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시원스레 서 있는데, 양 옆으로 벽에 박혀 있는 두 개의 돌이 바로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이다. 이들은 일 미터가 채 안되는 자그마한 돌이지만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액으로부터 마을 주민들을 지켜주는 존재이다. 이곳에 금줄을 쳐서 굿을 하는 동안 부정을 막는다.
바닷가에 촘촘히 박힌 집들 뒤로는 군데군데 밭이 있고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당산할머니가 계신 당집이 있다. 당산할아버지는 그보다 멀찌기 떨어진 저쪽 산 위에서 점잖게 마을을 보호해 준다. 마을로 들어오면 바닷가 작은 집에 미륵님을 모시고 주민들은 희노애락을 나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골매기신들이 지켜 주어 든든히 보호를 받고 있는 마을이 바로 죽림인 것이다.
1986년 죽림의 별신굿은 유난히 규모가 컸다. 1984년 굿을 하지 않고 당골무당 한 사람만을 불러 빌어 모셨었다. 해를 걸러 해오던 굿을 그나마 소홀히함에 당산할머니가 노여워하신 탓일까. 이듬해 별 태풍이 오지도 않았는데 굴양식장이 몽땅 날아간 것이다. 2억 이상의 피해를 본 죽림 주민들은 결국 굿을 안 한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을 뒷산에서 바다를 굽어보며 모진 바람을 막아 주시던 당산할머니를 시대가 변해 좀 살만하게 되었음네 하며 우쭐하여 장고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빌어 모셨으니 당산할머니가 노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그동안 어장을 복구하느라고 죽을 고생을 했다. 이제 나라에 신청한 1억2천만원의 피해복구비가 나오면 마을은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기대와 믿음이 함께하는 이 중요한 순간, 주민들은 정성을 다해 당산할머니, 당산할아버지께 잘못을 빌고 전처럼 지켜 주시기를 바라는 신앙심에서 별신굿을 벌인 것이다.
윤광룡 기자 yong8128@chollian.net 기사 더보기
죽은 넋을 천도해 주십사, 우리 마을을 잘 보살펴 주십사 하는 무수한 기원, 절대자에 대한 끊임없는 기원과 영원한 것에 대한 추구, 그리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 민족의 삶을 끈질기게 이어준 무속의 바탕이었고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 주변에서 이러한 굿의 현장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소외되고 천대받아 온 무당들의 업을, 그들의 한과 눈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삶의 한 원형으로서 존재해 온 굿판의 생명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역사의 한귀퉁이에 묻혀 버릴 것이다.
모닝뉴스는 지난 94년 도서출판 열화당에서 나온 '거제도 별신굿'(글 황루시, 사진 김수남)의 내용을 3회에 걸쳐 원문 그대로 옮겨 싣는다.
거제도 무속의 특징
바다를 의지하고 사는 지역들이 대개 그렇듯이 거제도 역시 무속신앙의 뿌리가 깊다. 하지만 거제도의 무속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인근의 통영, 마산 등지와 유사해 전라도, 경상도 무속의 경계를 이룬다. 굿 한 석이 끝날 때마다 수비를 풀어먹이는 것은 부산에서 동해안을 끼고 강원북부까지 분포되어 있는 경상도 무속과 같다. 그런가 하면 이 지역의 넋굿인 오귀새남에는 영둑굿이라고 부르는 씻김의 절차가 들어가 있어 전라도 무속과 상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제도에서 전승되는 굿은 크게 도신, 오귀새남, 별신굿으로 나눌 수 있다. 도신은 집안의 안녕과 재수발원, 자손의 창성을 목적으로 정월에 행하는 집굿이다. 삼년 터울을 두고 하는데 굿하기 전날 밤, 또는 굿하는 날 새벽에 집안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산신제 터에 가서 먼저 산신제를 모시는 것이 특징이다. 산신제는 조상의 신위를 모셔 놓고 비손하면서 굿을 하게 됨을 아뢰는 것이다.
오귀새남은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천도하는 굿이다. 부정굿을 한 뒤에 물에서 죽었으면 죽은 장소에서 넋건지기를 하고 육지에서 죽은 경우에는 무덤에 찾아가 혼백을 모셔오는데 이를 메맞이라고 한다. 대개 지역의 무속이 그렇듯이 염불을 많이 하는 것이 특징이다.
별신굿은 마을 단위로 안과태평(安過太平)과 생업의 번창을 비는 굿이다. 집굿에 비해 규모가 크고 마을의 축제로 치러진다. 그러나 마을 전체의 길복을 추구하는 의례이니만큼 엄격하게 금기가 지켜지고, 주민들은 대대로 내려온 전통을 따르려는 적극성을 보인다.
거제도에서는 무당을 승방이라고 부르고 악사는 고인수라고 하는데, 이들은 모두 세습무가 출신들이다. 특히 주무는 대모라고 부르며, 적어도 굿하는 동안만은 주민들이 극진하게 대접하여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나마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통영 오귀새남굿의 기능보유자 정모연 무녀가 별세한 후 마산의 김윤희가 남아 있는 유일한 세습무로 보인다. 악사 또한 소멸되어 전통적인 세습무의 굿은 이제 완전히 끊겼다고 하겠다.
죽림의 별신굿
. 때 : 1986년 2월 12일∼14일
·곳 : 거제시 거제면 죽림 마을
죽림은 해마다 정월이면 별신굿을 크게 벌여 온 마을이다. 굿할 때마다 마을의 가장 큰 걱정은 제관을 뽑는 일이다. 굿하는 동안 마을을 대표하는 세관을 굿장모라고 부르는데, 지켜야 할 금기가 상당히 많다. 일단 굿날짜를 받으면 굿장모는 집에 금줄을 치고 출입을 삼가며 근신한다. 굿이 끝난 후에도 사흘 동안은 전혀 집 밖으로 나올수 없고, 적어도 백일 동안은 초상집이나 개 잡는데 가지 못하고 몸단속을 해야하기 때문에 요즘은 굿장모를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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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림마을을 보호해 주는 당산할머니당. 마을 뒷산에 있는데 작고 초라한 모습이다. 이백여 년이 넘는 소나무들에 둘러싸여 있다. |
공연히 마을일을 잘못하면 뒤탈도 두렵고 또 제각기 사는데도 바빠서 전체를 위해 나서려는 사람이 없어 십여년 전 할 수 없이 마을에서는 논 세 마지기를 샀다. 굿장모를 하면 두해 동안 논을 부쳐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절대희생으로 일관해야 될 것 같은 제관을 논 세 마지기 흥정으로 맡기는 것은 일종의 타협이다. 그러나 세상변화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전통을 지키는 현실적인 사고가 바로 '논을 사는' 지혜라고 볼 수 있겠다.
굿장모는 경우 바르고 꼼꼼한 옥치문(53)씨가 맡게 되었다. 굿장모는 산신제와 굿에 쓸 제물을 구입하기 위해 장에 가는데, 물건을 살 때에는 일체 흥정을 하지 않고 달라는 값을 모두 준다. 굿장모는 집에 돌아와 안주인과 함께 제물을 장만한다.
죽림을 지켜주는 신들은 마을을 포근히 감싸면서 곳곳에 좌정해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시원스레 서 있는데, 양 옆으로 벽에 박혀 있는 두 개의 돌이 바로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이다. 이들은 일 미터가 채 안되는 자그마한 돌이지만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액으로부터 마을 주민들을 지켜주는 존재이다. 이곳에 금줄을 쳐서 굿을 하는 동안 부정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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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림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장승들. 장승에게도 제물을 바치고 제를 지낸다. |
바닷가에 촘촘히 박힌 집들 뒤로는 군데군데 밭이 있고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당산할머니가 계신 당집이 있다. 당산할아버지는 그보다 멀찌기 떨어진 저쪽 산 위에서 점잖게 마을을 보호해 준다. 마을로 들어오면 바닷가 작은 집에 미륵님을 모시고 주민들은 희노애락을 나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골매기신들이 지켜 주어 든든히 보호를 받고 있는 마을이 바로 죽림인 것이다.
1986년 죽림의 별신굿은 유난히 규모가 컸다. 1984년 굿을 하지 않고 당골무당 한 사람만을 불러 빌어 모셨었다. 해를 걸러 해오던 굿을 그나마 소홀히함에 당산할머니가 노여워하신 탓일까. 이듬해 별 태풍이 오지도 않았는데 굴양식장이 몽땅 날아간 것이다. 2억 이상의 피해를 본 죽림 주민들은 결국 굿을 안 한 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을 뒷산에서 바다를 굽어보며 모진 바람을 막아 주시던 당산할머니를 시대가 변해 좀 살만하게 되었음네 하며 우쭐하여 장고 소리 한번 내지 않고 빌어 모셨으니 당산할머니가 노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그동안 어장을 복구하느라고 죽을 고생을 했다. 이제 나라에 신청한 1억2천만원의 피해복구비가 나오면 마을은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다. 기대와 믿음이 함께하는 이 중요한 순간, 주민들은 정성을 다해 당산할머니, 당산할아버지께 잘못을 빌고 전처럼 지켜 주시기를 바라는 신앙심에서 별신굿을 벌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