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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귀퉁에 묻혀가는 '굿판'
사라져 가는 것들-거제도 별신굿②
작성 : 2004년 02월 03일(화) 00:00 가+가-
그동안 우리의 무속은 때로는 미신타파의 대상이 되어 음지에서 은밀히 행해지기도 했고, 때로는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어설프게 무대위에 올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인식되어 온 굿의 이미지는 숨겨야 할 치부도, 화려한 무대예술도 아닌 일상 속에 용해되어 함께 이어져 온 우리 삶의 일부였다.
죽은 넋을 천도해 주십사, 우리 마을을 잘 보살펴 주십사 하는 무수한 기원, 절대자에 대한 끊임없는 기원과 영원한 것에 대한 추구, 그리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 민족의 삶을 끈질기게 이어준 무속의 바탕이었고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 주변에서 이러한 굿의 현장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소외되고 천대받아 온 무당들의 업을, 그들의 한과 눈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삶의 한 원형으로서 존재해 온 굿판의 생명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역사의 한귀퉁이에 묻혀 버릴 것이다.
모닝뉴스는 지난 94년 도서출판 열화당에서 나온 '거제도 별신굿'(글 황루시, 사진 김수남)의 내용을 3회에 걸쳐 원문 그대로 옮겨 싣는다.

거제도 별신굿의 내용
1. 들맞이(들당산굿)
굿은 밤 7시 50분, 들맞이로 시작됐다. 굿장모 집에서 제물을 내오자 무녀, 악사, 주민 20여명은 깜깜한 밤길을 걷는다. 희끗희끗 눈 쌓인 산을 보며 잠깐 사이 마을 입구의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 앞에까지 왔다. 무녀는 옷치장을 하고 사람들은 제물을 진설한다. 메, 떡, 술, 삼색 과실, 과일로 푸짐하게 차린 제물진설이 끝나고 어렵사리 촛불에 불을 밝혔을 때 악사 박복률은 대금을 잡았다.
당산 옆에 있는 바위에 금줄을 치고 제물을 바쳤다.

몇번 입술에 대 보더니 문득 구슬픈 가락이 밤을 가른다. 긴 여운을 끌며 마을과 산, 그리고 바다로 퍼져 우주를 꽉 채워 가는 대금 소리는 신을 모셔오는 청산악이다. "이제 굿을 시작하니 어서 오십시오"하고 신에게 고하고 청하는 음악인 것이다.
이에 승방이 나섰다. 홍치마에 쾌자를 입고 큰머리를 쓴 정장 차림이다. 홍치마와 쾌자를 입는 것을 큰옷 입는다고 하는데, 색동소매가 달리고 등에는 한륭배가 있는 쾌자는 오히려 원삼과 비슷한 옷이다. 큰머리 낭자에는 긴 비녀를 꽂고, 오른손에는 부채, 왼손에는 방울과 손전을 들었다. 가느다란 막대기에 한지 오린 것을 매단 손전은 꼭 총채 같은 모양인데, 잡귀를 물리고 존신을 모셔온다고 믿는다.
바닷가에서 골매기굿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김윤희 승방은 굿하기 전 주민들에게 다짐을 둔다.
"사진을 찍으면 나 굿 안하고 갈테니 그리 아소. 절대 사진 찍지 마소."
무당의 완강한 태도는 주민들의 회유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굿이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아 조사자들을 애먹였다. 들맞이는 잡귀를 물리고 내일부터 별신굿을 한다고 신들에게 알리는 의례로, 간단히 춤추고 축원하는 것으로 마쳤다. 굿을 받은 신은 다시 구슬픈 대금 가락을 타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2. 산제
들맞이가 끝나면 마을은 무거운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길에는 사람은 물론 개도 다니지 않고 집집마다 불을 끄고 숨소리도 낮춘다.(이미 오전에 개는 모조리 이웃 마을로 보냈다.) 온 마을이 어둠과 어둠보다 더 무거운 침묵에 묻힌 긴장의 시간, 굿장모는 심부름해 줄 부수 두명을 데리고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에게 가장 경건한 제사를 모시기 위해 집을 나선다. 이때 만약 도중에서 움직이는 짐승을 보게 되면 즉시 돌아가 목욕 재계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금줄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부정을 막아 동네를 신성하게 보호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먼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는 당산할아버지당으로 올라가 메 짓고 제사를 모신다. 제사를 마치면 당우물로 내려가 김이 오르는 찬물에 목욕한 뒤 할머니당으로 간다. 역시 메 짓고 제물 차려 제사를 모신 뒤 밤을 세우게 되는데, 긴긴 밤 동안 굿장모는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당 밖에 불을 피워 놓고 앉아 한겨울 찬 공기에 떨면서 담배조차 금하는데, 이 엄격한 근신은 무릇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대개의 것은 부정하다는 오랜 경험의 소산일 것이다.
3.당산굿
어둠을 팽팽하게 지켜 주던 긴장은 바다 위로 떠오른 붉은 해와 함께 깨어진다. 이른 아침 10여미터 높이의 대나무에 쌀과 백지, 그리고 굿장모의 두루마기를 매단 서낭대(삼한대라고도 부른다)를 앞세우고 무당, 악사, 주민 대표들은 당산굿을 하기 위해 할머니당으로 올라간다. 뽀드득 뽀드득 눈 덮인 보리밭을 밟으며 때로 악사가 부족해 동네 아저씨가 함께 거드는 풍물 소리에 맞춰 아이들처럼 뜀박질도 하면서 10여분 올라가면 굵은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작은 시멘트 블록집이 바로 할머니당이다. 너무 낡아 1979년에 기와집을 허물고 다시 지었다는데, 비바람이나 간신히 가릴 정도로 초라하다.
무녀는 당 안으로 들어가 굿을 시작한다. 당이 좁은 관계로 무녀와 악사 둘, 그리고 굿장모가 빼곡히 앉고 섰다. 청신악이 울려 퍼지고 평복에 고깔 쓰고 치마를 어깨 위로 둘러 가사처럼 멘 무녀가 징을 들고 두드린 후 사방에 깊숙이 절한다.
미륵할머니는 죽림 주민들의 가장 가깝고 다정한 신앙체이다.

먼저 천수경을 일곱 번 반복한 뒤 마을에서 굿하는 내력을 고한 후 태풍으로 읽은 재물을 다시 찾게 해 달라고 축원한다. 잠시 춤춘 후 가사를 벗고 술 한 잔 들고 굿장모를 부른다. "내가 우짜든지 삼 년만에 죽림에서 별신한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내가 옳게 내려왔는지 상제 한번 불러 봅시다. 쉰세살 옥씨 상제야, 상제가 어디로 갔노. 설흔여섯살 구씨 이장 상제야, 와 대답이 없노."
"네에." 굿장모와 이장이 대답하자 무녀는 매우 화를 낸다.
"느그 죄를 느그가 아느냐. 괘심타. 아이구 괘심해서, 이만큼 평안하게 어짜든지 평안하게 해주었는데 아느냐."
"저희가 잘못했심더. 즈 죄를 이리 알고 준비 안 했능교."
굿장모가 살갑게 나서자 반분이나 풀린 무녀는 술 빚어 먹는 재담을 한 끝에 두 사람에게 잔을 내려 준다. 올라온 뒤 지금껏 부수를 위로하며 불가에 서 있던 사람들도 불로 올려 잔을 주는데, 아무쪼록 굴양식장 피해를 복구해 준다는 것이 일관된 축원 내용이다. 술을 받아 마시면 사람들은 '상이야' 하면서 부채 위에 천원 한 장씩을 놓는다. 음복이 끝난 후 무녀는 당 밖에 있는 바위 위에 제물을 차리고 거리를 메긴다. 육갑을 짚어 가엾은 혼신을 모두 풀어먹이는 육십갑자 풀이를 한 후 수비를 친다.
"수비로다, 수비로다. 부정님의 수비로다. 삼천 수비는 서른세 번, 중천 수비는 스물세 번, 하천 수비 열이 세 번, 울어내고 울어내자" 하면서 술잔을 버린다. 남은 제물을 모두 버리고 악사들이 당 주위를 돌며 오방지신을 누르면 당산굿이 끝난다. 굿을 모셨다는 표시로 댓가지 하나를 꽂아둔 뒤 당을 내려간다.
4. 골매기굿
당산굿으로 서낭대에 신을 실린 일행은 이제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잡귀들을 물리치는 골매기(고을막이) 굿을 한다. 굿장모가 서낭대를 들고 앞장서면 그 뒤로 골매기마다 꽂아둘 댓가지 묶음을 어깨에 맨 주민들이 악사들의 풍물 소리를 밟으며 따라간다.
죽림의 골매기는 열 군데가 넘는다. 먼저 당산 아래 옛날 무당이 죽었다는 자리에 제물을 차리고 간단히 빈다. 마을 입구를 지나 바닷가로 나가서는 요왕님께 빌고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와 옛날 우물터에서 잠시 매구를 친다. 동네 안에도 한 쌍의 벅시(장승)가 있는데, 역시 돌멩이로 만들었다. 잠시 빌고는 바다와 육지를 연결해 주는 선창가에서 풍물을 친 뒤 미륵당으로 간다. 양 옆에 포구나무가 서 있는 시멘트 집 안에는 2미터 크기의 돌미륵이 머리에 금줄을 두른 채 자애로운 모습으로 서 있다.
골매기굿이 끝나면 신이 좌정하신 표시로 댓가지를 꽂아 놓는다.

미륵할머니는 엄한 당산할머니와 달라 집안에 궂은 일이 생기면 아무때라도 찾아가 빌 수 있는 편안한 신앙의 대상이다. 동네 안에 내려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주민들은 무람없이 미륵할머니를 대하되 존경심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액을 막아달라는 무녀의 축원이 끝나면 요즈음 쓰는 선창에 가서 메구를 치고, 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마을의 공동우물이었던 곳에 가서 샘굿도 친다. 마지막으로 방파제에서 한바탕 굿을 친 후 동사(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간다.
5. 판매구(판놀이)
동사 안에 제물을 차려 놓고 준비가 끝나면 마을의 어른들은 지동궤를 꺼낸다. 지동궤는 마을에서 별신굿을 할 때마다 일을 담당한 임원의 이름, 제물, 비용, 굿의 석수에 관한 내용을 적은 문서들이 들어 있는 나무함이다. 굿하는 동안 내내 지동궤를 앞에 놓고 다섯 명의 동네 노인들이 앉아 굿을 감시하고 점검한다. 이들을 동수상이라고 하는데,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이순으로 맡게 된다.
6. 부정굿
다섯 명의 노인들이 지동궤 앞에 앉아 동표를 쓴다. 동표는 종이에 '부정굿 일 만원', '판매구 일만오천원' 등을 써서 각 석마다 무당에게 내리는 것이다. 무녀는 황톳물, 잿물, 청수를 주위에 뿌린 후 종이에 불을 붙여 태우며 굿청의 부정을 물린다. 이어서 마을의 안과태평과 풍어를 축원한 뒤에 마을의 남자들을 손짓으로 불러 굿상 앞에 일렬로 꿇어앉힌다. 눈치를 채고 빠지려고 하는 어저씨들도 있지만 구경꾼들이 밀어내는 바람에 그만 엎어지고 만다.
연세대 김인희 교수에게 별비를 받고 개인 축원을 해주고 있다. 김윤희 무녀는 사진, 특히 비디오 촬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걸려든 아저씨들이 제법 많아 두 줄로 열댓 명이 엎드리자 무녀는 잘 마른 대구포를 들고 사정없이 엉덩이와 등짝을 후려갈긴다. 한술 더 떠서 악사 박복률은 징을 놓더니 엎드린 사람들 위를 구른다. 사람들은 고개도 못 든 채 아파서 엉덩이를 만지는데, 만약 그 모습이 무녀 눈에 뜨이면 대구포로 한 차례 더 얻어맞을 뿐이다.
7.가망굿
가망은 선후조상을 모시는 굿이다. 무녀는 큰머리 쓰고 옷을 입은 후 부채, 방울, 손전을 들고 느리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오날이야, 오날이야, 먼 날은 후려 잡고 가까운 날은 당겨 받아…' 하면서 악사들이 노래하면 무녀는 춤으로 가망을 모신 후 축원한다. 다시 공사를 준다면서 사람들을 엎드리게 하자 아저씨들은 불만이 대단하다.
물에서 죽어 수중고혼이 된 조상들에게 바칠 봉지쌀을 싸서 바다에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

"너 진리 알겠나, 모르겠제. 못허면 신령 탓이고 잘되면 즈꺼고."
공연히 항의하다가 대구포로 엉덩이만 한 대 얻어 맞고 고개를 떨군다. 무녀는 굴바리 어장 복구시켜 준다고 공사를 마친 뒤 소지 종이에 불 붙여 머리 위로 돌리며 해갈시킨다. 해갈은 부정을 가신다는 의미이다. 역시 잔 주고 수비풀어 마친다. 굿하는 도중 청년들이 떼배(띠배)를 두 척 만들어 들고 들어와 동수상에게 이름을 받았다. 배이름은 새마을호와 통일호이다.
8.제석굿
제석은 복을 주는 신이다. 악사들이 "오날이야, 오날이로다" 하고 가락을 내면 무녀는 "이월이라 제석달에 밤중 밤중 야밤중에 제석님네 오실 적에, 이월이라 풍신제석, 삼월이라 하단제석…" 하면서 무가를 부르고 춤춘 뒤 다시 공사를 준다. 역시 수비푼 뒤 마친다. 다른 지역에서는 제석굿에서 생산신(生産神) 신화인 당금애기풀이를 부르는데, 이곳에는 없다.
윤광룡 기자 yong8128@chollian.net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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