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전통무속,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사라져 가는 것들 - 거제도 별신굿③
작성 : 2004년 02월 10일(화) 12:20 가+가-
그동안 우리의 무속은 때로는 미신타파의 대상이 되어 음지에서 은밀히 행해지기도 했고, 때로는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어설프게 무대위에 올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인식되어 온 굿의 이미지는 숨겨야 할 치부도, 화려한 무대예술도 아닌 일상 속에 용해되어 함께 이어져 온 우리 삶의 일부였다.
죽은 넋을 천도해 주십사, 우리 마을을 잘 보살펴 주십사 하는 무수한 기원, 절대자에 대한 끊임없는 기원과 영원한 것에 대한 추구, 그리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 민족의 삶을 끈질기게 이어준 무속의 바탕이었고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 주변에서 이러한 굿의 현장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소외되고 천대받아 온 무당들의 업을, 그들의 한과 눈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삶의 한 원형으로서 존재해 온 굿판의 생명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역사의 한귀퉁이에 묻혀 버릴 것이다.
모닝뉴스는 지난 94년 도서출판 열화당에서 나온 '거제도 별신굿'(글 황루시, 사진 김수남)의 내용을 3회에 걸쳐 원문 그대로 옮겨 싣는다.
별신굿의 내용
9. 대내림
별신굿에서는 반드시 대를 내린다. 대를 내려 그 동안의 굿을 잘 받으셨는지 여부와 마을의 주요 관심사 등을 묻는 것이다. 대잡이는 거제면 서정에 사는 점쟁이 신덕아(64)로 마을 주민들이 데려왔다. 마을의 실정을 모르는 사람이라야 편견없이 대가 내린다고 믿은 것 같다.
먼저 당 안에서 작은 댓가지로 대를 내리는데, 신들린 사람인지라 금새 손을 떤다. 휘파람을 불고 대를 위아래로 흔들다가 일어나 댓가지를 가슴에 모아 쥔 후 두 발을 모으고 상하로 뛴다. 그렇게 뛰어서 밖으로 나간 대잡이는 서낭대 앞에 서서 절한다. 대가 내린 나무를 버린 후 서낭대를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 사방에 절하는 흉내를 낸다. 그 큰 서낭대를 휘어잡고 흔들던 대잡이는 신에 겨워 어깨를 떨더니 마침내 멈추었다.
무녀:금년에는 으짜든지 산도 세지 물도 세지 정월 초나흗날 상탕에 머리 감고 중탕에 목욕하고 하탕에 손발 씻고 상당신령님께 고양미 진상 노구메 진상 차려 놓고 정성들이는데 착실히 받으셨습니까. 즐겁고 반갑게 받으셨습니까.(대가 위아래로 떤다) 암, 잘 받고말고, 그 정성이 어떻다고, 예, 반갑다. 고맙습니다…(중략) 에, 집으로 들어와서 동수상에 모셔 놓고 부정굿하고 가망제석을 했으니 잘 받았습니까.
대잡이:차리차리 잘 받았다. 옥씨 대주 정성이 지극하여 차리차리 잘 받았소.
무녀:천천히 듣고 물어 볼 것이 있으면 물어 보이소.
주민:예, 물어 볼깁니더. 할아버지가 잘 받았이믄(받았어도) 밑에 자식들이 불평불만이 있으면 우짤깁니꺼.
무녀:무슨 불평불만 있을끼고.
주민:아니지, 할아버지 대접 잘 했넌데, 밑에 대접 안 하믄 아들도 용돈 줄 때 많이 주나.
대잡이:막막하다. 중생들아, 그 말 마라. 위테 조부가 마음이 좋으면 자손도 마음이 좋고, 나라가 펜헤야 신하가 펜하다. 미륵한 이 사람아.
무녀:맞습니다.
주민:그라면 우짜서 그동안 굿 잘했는데, 십년이나 해먹은 어장이 딴 데 다 괜찮은데 우리 어장만 날라갔습니까. 요왕님께 좀 물어 보이소.
대잡이:서낭님이 기다리신다.
무녀:우짜든지 서낭님이 기다리시는데, 이 동네에 서낭님도 착실히 위해야 굴바리 어장에 손해본 것 복구해 주고, 걱정하지 마라…(중략)… 큰굿도 하고 착실히 하믄 이제 덕볼끼라.
주민:질문 없습니까? 금년에도 피해가 나믄 뭐하믄 요왕님께 벌을 줘야 될끼라.(웃음) 안 그렇소?
대잡이:(화내면서) 네가 어디라고 그런 소리하나.
무녀:몰라서 그라요. 미륵한 중생들이.
대잡이:할아버지가 알려 줄라고 하는데 네 무슨 소리 하나. 남은 굿을 잘해야 동네가 펜코 만사가 대길하다.
주민:고만 승천하이소.
여기에서 보면 신과 인간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절대 복종하는 것과 크게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신은 명령하고 권위를 지키려고 하지만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주민들은 신이 마을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만큼 자기들을 제대로 도와주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래서 신에게 잘잘못을 따질 수도 있고, 대우 안 해준 것이 없는데 왜 하필 우리 어장이 태풍으로 날아갔느냐는 항변도 가능하다. 만약 기왕의 일이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지극하게 정성을 드렸으니 반드시 보답이 있어야 한다는 다짐을 둔다. 그리고 전처럼 또 일이 잘못되면 아무리 어른이라도 용돈을 줄 수 없다고, 또는 우스개이긴 하지만 벌을 주겠다고 협박까지 하는 것이다.
10. 서낭굿
서낭굿은 팔도명산의 서낭을 모시고 마을의 안과태평을 비는 굿이다. 먼저 악사가 장구치면서 서낭풀이를 부르고, 그 사이에 대모는 큰옷을 입는다. 이장은 서낭굿을 하니 많이 오시라고 마을 전체에 방송하고, 먼저 "상이야"하면서 부채 위에 돈 천 원을 놓는다. "어허이야 놀자, 놀고 가자"하면서 무녀가 춤추자 동수상을 비롯해 주민들에게서 상이 계속 나온다.
서낭굿 한 석에서 6만5천원까지 상이 나오자 무녀는 열두달 액을 막는 액살풀이를 한다. "정월이라 드는 액은 정월 대보름 막아 가고, 이월이라 드는 액은 이월 금신들 막아 가고, 삼월이라 드는 액은 삼월 삼잿날 막아 가고, 사월 드는 액은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 팔월 한가우날, 구월 구일, 시월 상달이며 동지 진상들, 섣달 여판들 일년 열두달, 과년 열석 달 삼백육십일 액막음 수막음 일체 액을 막아 줍소사."
마침내 무녀가 큰머리를 벗고 대구포를 들자 남자들은 모두 도망간다. 돈 쓰기도 겁나고 얻어맞기도 싫은 것이다. 그러나 무녀가 화를 내자 아주머니들이 남자들을 포위하여 굿상 앞으로 밀어낸다. 무녀는 더 힘껏 대구포로 때리고 악사는 징채로 엉덩이를 때리니 굿판은 온통 웃음판이 된다.
11. 큰굿
큰굿은 지동굿, 손풀이, 황천문답, 환생탄일, 열두축문, 시왕탄일염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산 사람의 발복(發福)을 기원하는 별신굿과는 조금 생소하게 망자를 위한 의례가 중심을 이룬다. 마을에서 이미 돌아간 망인들과, 또 산 사람들도 후에 죽게 되면 극락왕생하기를 빌어 주는 내용이 많은 것이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이고, 불교적 색채가 짙은 한편 유교적 내용도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12. 구능굿
전쟁에서 피흘려 간 군신을 모시는 굿이라고 하며, 별다른 내용 없이 축원덕담하고 공사준 뒤 수비푸는 것으로 간단히 마친다.
13. 거리굿
오후 4시30분. 이제 굿이 모두 끝났다. 주민들은 철상을 하며 커다란 고무그릇에 밥이며 나물, 술 등을 부어 물밥을 만든다. 한편에서는 새마을 2호 선장 이두억씨가 적덕이 분장을 하고 있다. 적덕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잡귀를 쫓는 신으로 믿는데, 워낙은 양중들이 하던 것이라 한다. 이두억씨는 붉게 칠한 나무칼을 들고 어깨에는 쌀조멩이를 메었는데, 안에는 출어할 때 먹을 음식이 들어 있다. 적덕이는 칼춤을 추며 한동안 놀다가 선창가에 놓인 물밥 옆에 주저앉는다. 무녀는 당 안에서 액풀이 무가를 부른다. 일년 열두달 액을 물린 후 다시 육십갑자를 짚어 고혼을 위로한다. 이때마다 물밥을 한 바가지씩 퍼서 여기저기 버리며 풀어먹인다.
14. 떼배 띄우기
물밥이 다 없어져 잡귀들 배도 충분히 채웠을 무렵, 동사 앞에는 '축 대어'라는 깃발을 무수히 꽂은 두 척의 배 새마을호와 통일호가 출어준비를 끝내고 대기하고 있다. 배 안에는 음식도 넉넉하고, 이물과 고물에는 선원들도 비록 허수아비일망정 제자리에 앉아 있다. 이 떼배에는 마을의 온갖 액이 몽땅 담겨 있다고 믿는다.
징, 장고, 피리 소리와 함께 오백여명 주민 절반 이상이 떼배 뒤를 따라 산을 넘어 마을 뒤 바다로 나갔다. 영차, 영차, 철썩-. 배는 바다에 던져졌다. '저 멀리 떠 간다. 파도를 타고 멀리 사라져 간다.' 마을은 이제 깨끗하다. 더 이상 태풍이 마을을 범접하는 일도 없고,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 그늘 아래 평화로운 삶이 보장 될 것이다.
검은 바위에 걸터앉아 떼배가 파도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미더덕을 주워 입안에 넣고 터뜨리며 놀고, 어른들은 다시 동사로 돌아간다. 한편 허전하고 한편 뿌듯한 마음은 아무래도 술 한잔이 필요한 것 같다. 대모가 마을에 감사하며 일만오천원을 내어 술값에 보태고, 남은 제물로 다시 동네잔치가 벌어질 참이다. 이장은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시작한다.
"사흘 동안 동민 여러분의 협조로 무사히 행사를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삼일간은 장구 소리나 징 소리 등 일체 잡음 소리를 내지 않도록 동민 모두가 조심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이제부터 남은 음식으로 잔치를 하겠습니다. 모두 오이소. 아줌마들도 모두 오시기 바랍니다."
밖은 저녁바람이 찬데 마을 주민들이 모여앉은 동사 안은 훈훈하기만 하다. 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을일을 잘 해냈다는 긍지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주민 모두의 얼굴을 붉고 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상으로 거제도 죽림 마을의 별신굿 내용을 살펴보았다. 마을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집단적으로 행하는 별신굿은 지역사회 통합과 소속감의 증대, 그리고 마을에의 긍지회복 등이 중요한 기능으로 지적된 바 있다. 이는 죽림의 경우에도 크게 다를바가 없는데, 특히 마을에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일어났을 때 굿을 통해 단결심을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취적 자세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은 아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뒤 나머지를 신에게 맡기는 자세가 보였다. 또한 신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도와줄 것을 요구하며 자존적 자세를 잃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거제도에서는 불교와의 습합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별신굿에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내용이 있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현상이다. 게다가 제사를 모시는 유교적 제차까지 포함되어 외래신앙의 영향이 크다 하겠다.
윤광룡 기자 yong8128@chollian.net 기사 더보기
죽은 넋을 천도해 주십사, 우리 마을을 잘 보살펴 주십사 하는 무수한 기원, 절대자에 대한 끊임없는 기원과 영원한 것에 대한 추구, 그리고 생명에 대한 외경심,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 민족의 삶을 끈질기게 이어준 무속의 바탕이었고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들 주변에서 이러한 굿의 현장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소외되고 천대받아 온 무당들의 업을, 그들의 한과 눈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삶의 한 원형으로서 존재해 온 굿판의 생명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역사의 한귀퉁이에 묻혀 버릴 것이다.
모닝뉴스는 지난 94년 도서출판 열화당에서 나온 '거제도 별신굿'(글 황루시, 사진 김수남)의 내용을 3회에 걸쳐 원문 그대로 옮겨 싣는다.
별신굿의 내용
9. 대내림
별신굿에서는 반드시 대를 내린다. 대를 내려 그 동안의 굿을 잘 받으셨는지 여부와 마을의 주요 관심사 등을 묻는 것이다. 대잡이는 거제면 서정에 사는 점쟁이 신덕아(64)로 마을 주민들이 데려왔다. 마을의 실정을 모르는 사람이라야 편견없이 대가 내린다고 믿은 것 같다.
먼저 당 안에서 작은 댓가지로 대를 내리는데, 신들린 사람인지라 금새 손을 떤다. 휘파람을 불고 대를 위아래로 흔들다가 일어나 댓가지를 가슴에 모아 쥔 후 두 발을 모으고 상하로 뛴다. 그렇게 뛰어서 밖으로 나간 대잡이는 서낭대 앞에 서서 절한다. 대가 내린 나무를 버린 후 서낭대를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 사방에 절하는 흉내를 낸다. 그 큰 서낭대를 휘어잡고 흔들던 대잡이는 신에 겨워 어깨를 떨더니 마침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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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낭대를 잡고 신을 모시고 있는 대잡이. 무녀는 옆에서 굿을 잘 받으셨는지 여쭤 본다. |
무녀:금년에는 으짜든지 산도 세지 물도 세지 정월 초나흗날 상탕에 머리 감고 중탕에 목욕하고 하탕에 손발 씻고 상당신령님께 고양미 진상 노구메 진상 차려 놓고 정성들이는데 착실히 받으셨습니까. 즐겁고 반갑게 받으셨습니까.(대가 위아래로 떤다) 암, 잘 받고말고, 그 정성이 어떻다고, 예, 반갑다. 고맙습니다…(중략) 에, 집으로 들어와서 동수상에 모셔 놓고 부정굿하고 가망제석을 했으니 잘 받았습니까.
대잡이:차리차리 잘 받았다. 옥씨 대주 정성이 지극하여 차리차리 잘 받았소.
무녀:천천히 듣고 물어 볼 것이 있으면 물어 보이소.
주민:예, 물어 볼깁니더. 할아버지가 잘 받았이믄(받았어도) 밑에 자식들이 불평불만이 있으면 우짤깁니꺼.
무녀:무슨 불평불만 있을끼고.
주민:아니지, 할아버지 대접 잘 했넌데, 밑에 대접 안 하믄 아들도 용돈 줄 때 많이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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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먹이는 굿에서 잡귀 풀어먹이는 역할을 맡은 새마을호 선장 이두억씨가 나무칼을 휘두르며 춤을 추면서 굿당 밖으로 나가고 있다. |
대잡이:막막하다. 중생들아, 그 말 마라. 위테 조부가 마음이 좋으면 자손도 마음이 좋고, 나라가 펜헤야 신하가 펜하다. 미륵한 이 사람아.
무녀:맞습니다.
주민:그라면 우짜서 그동안 굿 잘했는데, 십년이나 해먹은 어장이 딴 데 다 괜찮은데 우리 어장만 날라갔습니까. 요왕님께 좀 물어 보이소.
대잡이:서낭님이 기다리신다.
무녀:우짜든지 서낭님이 기다리시는데, 이 동네에 서낭님도 착실히 위해야 굴바리 어장에 손해본 것 복구해 주고, 걱정하지 마라…(중략)… 큰굿도 하고 착실히 하믄 이제 덕볼끼라.
주민:질문 없습니까? 금년에도 피해가 나믄 뭐하믄 요왕님께 벌을 줘야 될끼라.(웃음) 안 그렇소?
대잡이:(화내면서) 네가 어디라고 그런 소리하나.
무녀:몰라서 그라요. 미륵한 중생들이.
대잡이:할아버지가 알려 줄라고 하는데 네 무슨 소리 하나. 남은 굿을 잘해야 동네가 펜코 만사가 대길하다.
주민:고만 승천하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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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당의 제물로 만든 물밥을 퍼서 바다로 던지고 있다. 수중고혼이며 여러 잡신들, 객귀들을 대접해서 돌려보내는 것이다. |
여기에서 보면 신과 인간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절대 복종하는 것과 크게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신은 명령하고 권위를 지키려고 하지만 인간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주민들은 신이 마을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만큼 자기들을 제대로 도와주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래서 신에게 잘잘못을 따질 수도 있고, 대우 안 해준 것이 없는데 왜 하필 우리 어장이 태풍으로 날아갔느냐는 항변도 가능하다. 만약 기왕의 일이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지극하게 정성을 드렸으니 반드시 보답이 있어야 한다는 다짐을 둔다. 그리고 전처럼 또 일이 잘못되면 아무리 어른이라도 용돈을 줄 수 없다고, 또는 우스개이긴 하지만 벌을 주겠다고 협박까지 하는 것이다.
10. 서낭굿
서낭굿은 팔도명산의 서낭을 모시고 마을의 안과태평을 비는 굿이다. 먼저 악사가 장구치면서 서낭풀이를 부르고, 그 사이에 대모는 큰옷을 입는다. 이장은 서낭굿을 하니 많이 오시라고 마을 전체에 방송하고, 먼저 "상이야"하면서 부채 위에 돈 천 원을 놓는다. "어허이야 놀자, 놀고 가자"하면서 무녀가 춤추자 동수상을 비롯해 주민들에게서 상이 계속 나온다.
서낭굿 한 석에서 6만5천원까지 상이 나오자 무녀는 열두달 액을 막는 액살풀이를 한다. "정월이라 드는 액은 정월 대보름 막아 가고, 이월이라 드는 액은 이월 금신들 막아 가고, 삼월이라 드는 액은 삼월 삼잿날 막아 가고, 사월 드는 액은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 팔월 한가우날, 구월 구일, 시월 상달이며 동지 진상들, 섣달 여판들 일년 열두달, 과년 열석 달 삼백육십일 액막음 수막음 일체 액을 막아 줍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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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호, 통일호라고 이름 지어진 떼배들. 이제 굿은 끝나고 떼배를 띄워 보내는 일만 남았다. |
마침내 무녀가 큰머리를 벗고 대구포를 들자 남자들은 모두 도망간다. 돈 쓰기도 겁나고 얻어맞기도 싫은 것이다. 그러나 무녀가 화를 내자 아주머니들이 남자들을 포위하여 굿상 앞으로 밀어낸다. 무녀는 더 힘껏 대구포로 때리고 악사는 징채로 엉덩이를 때리니 굿판은 온통 웃음판이 된다.
11. 큰굿
큰굿은 지동굿, 손풀이, 황천문답, 환생탄일, 열두축문, 시왕탄일염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산 사람의 발복(發福)을 기원하는 별신굿과는 조금 생소하게 망자를 위한 의례가 중심을 이룬다. 마을에서 이미 돌아간 망인들과, 또 산 사람들도 후에 죽게 되면 극락왕생하기를 빌어 주는 내용이 많은 것이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이고, 불교적 색채가 짙은 한편 유교적 내용도 함께 있는 것이 특징이다.
12. 구능굿
전쟁에서 피흘려 간 군신을 모시는 굿이라고 하며, 별다른 내용 없이 축원덕담하고 공사준 뒤 수비푸는 것으로 간단히 마친다.
13. 거리굿
오후 4시30분. 이제 굿이 모두 끝났다. 주민들은 철상을 하며 커다란 고무그릇에 밥이며 나물, 술 등을 부어 물밥을 만든다. 한편에서는 새마을 2호 선장 이두억씨가 적덕이 분장을 하고 있다. 적덕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잡귀를 쫓는 신으로 믿는데, 워낙은 양중들이 하던 것이라 한다. 이두억씨는 붉게 칠한 나무칼을 들고 어깨에는 쌀조멩이를 메었는데, 안에는 출어할 때 먹을 음식이 들어 있다. 적덕이는 칼춤을 추며 한동안 놀다가 선창가에 놓인 물밥 옆에 주저앉는다. 무녀는 당 안에서 액풀이 무가를 부른다. 일년 열두달 액을 물린 후 다시 육십갑자를 짚어 고혼을 위로한다. 이때마다 물밥을 한 바가지씩 퍼서 여기저기 버리며 풀어먹인다.
14. 떼배 띄우기
물밥이 다 없어져 잡귀들 배도 충분히 채웠을 무렵, 동사 앞에는 '축 대어'라는 깃발을 무수히 꽂은 두 척의 배 새마을호와 통일호가 출어준비를 끝내고 대기하고 있다. 배 안에는 음식도 넉넉하고, 이물과 고물에는 선원들도 비록 허수아비일망정 제자리에 앉아 있다. 이 떼배에는 마을의 온갖 액이 몽땅 담겨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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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떼배를 띄우고 있다. "멀리멀리 가거라, 절대로 돌아오지 말아라." 마을 주민들은 나쁜 것, 부정한 것 등 모든 액운을 싣고 떠나가는 떼배를 보며 기원한다. |
징, 장고, 피리 소리와 함께 오백여명 주민 절반 이상이 떼배 뒤를 따라 산을 넘어 마을 뒤 바다로 나갔다. 영차, 영차, 철썩-. 배는 바다에 던져졌다. '저 멀리 떠 간다. 파도를 타고 멀리 사라져 간다.' 마을은 이제 깨끗하다. 더 이상 태풍이 마을을 범접하는 일도 없고,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 그늘 아래 평화로운 삶이 보장 될 것이다.
검은 바위에 걸터앉아 떼배가 파도에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미더덕을 주워 입안에 넣고 터뜨리며 놀고, 어른들은 다시 동사로 돌아간다. 한편 허전하고 한편 뿌듯한 마음은 아무래도 술 한잔이 필요한 것 같다. 대모가 마을에 감사하며 일만오천원을 내어 술값에 보태고, 남은 제물로 다시 동네잔치가 벌어질 참이다. 이장은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시작한다.
"사흘 동안 동민 여러분의 협조로 무사히 행사를 마쳤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삼일간은 장구 소리나 징 소리 등 일체 잡음 소리를 내지 않도록 동민 모두가 조심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이제부터 남은 음식으로 잔치를 하겠습니다. 모두 오이소. 아줌마들도 모두 오시기 바랍니다."
밖은 저녁바람이 찬데 마을 주민들이 모여앉은 동사 안은 훈훈하기만 하다. 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을일을 잘 해냈다는 긍지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주민 모두의 얼굴을 붉고 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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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림마을 주민들과 조사자 일행의 기념 촬영. |
이상으로 거제도 죽림 마을의 별신굿 내용을 살펴보았다. 마을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집단적으로 행하는 별신굿은 지역사회 통합과 소속감의 증대, 그리고 마을에의 긍지회복 등이 중요한 기능으로 지적된 바 있다. 이는 죽림의 경우에도 크게 다를바가 없는데, 특히 마을에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일어났을 때 굿을 통해 단결심을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취적 자세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은 아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뒤 나머지를 신에게 맡기는 자세가 보였다. 또한 신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히 도와줄 것을 요구하며 자존적 자세를 잃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거제도에서는 불교와의 습합이 뚜렷하게 보이는데, 별신굿에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내용이 있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현상이다. 게다가 제사를 모시는 유교적 제차까지 포함되어 외래신앙의 영향이 크다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