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효자문 유래 효자비 201년 만에 귀향
오는 13일 오전 11시 효촌마을 입구에서 제막
작성 : 2006년 01월 11일(수) 17:36 가+가-
연초면 효촌마을 효자문의 유래가 된 이돌대의 유적비가 마을을 떠난지 201년만에 다시 이 마을 입구에 세워져 13일 준공 제막식을 갖는다.
이날 오전 11시 열리게 될 제막식에는 김한겸 시장을 비롯한 지역기관단체장들과 주민 등 약 200여명이 참석하며 옥경호 효촌이장과 옥영복 노인회장에게 공로패가 수여되고 마을 주민들이 잔치음식을 마련하는 등 성대하게 치러진다.
옥포 어린이 공원에 있던 이돌대의 유적비는 효촌마을 입구에 새롭게 조성된 30여평의 공원에 세워지며 새 비각옆에는 효자비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비도 같이 세워진다.
효자비 유래와 이건사업 추진
중종실록 제30권에는 중종12년(1517년) 10월 6일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金安國)이 올린 장계(狀啓)가 소개돼 있다.
그 내용은 지금의 효촌마을에 염한(鹽漢) 이돌대라는 사람이 일곱 살에 아버지를 잃었는데 어려운 가세(家勢)에도 그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여 달마다 세 번 음식을 풍성히 장만하고 잔치를 베풀어서 어머니를 즐겁게 했다고 기록돼있다.
또 그는 어머니가 죽자 3년동안 여묘(廬墓)살이를 하면서 조석의 제전(祭奠)을 아주 깨끗하도록 힘썼으며 가난때문에 때로는 빌어다가 제사를 지내는 등 조금도 게을리한 적이 없었고 흙을 져다가 무덤을 만들되 특이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상기(喪期)를 마치고 나서는 무덤곁에 아버지를 옮겨 묻고서 명일(名日)과 기일(忌日)에 지성으로 제사하고 매월 그믐날에 무덤에서 별제(別祭)하되 제사 때마다 반드시 하루 전에 무덤있는 곳에 올라가 치제(致齊)하고 쇄소(灑掃)하고 잡초를 제거하였다라고 전해진다.
숙종때 이 사록(史錄)에 의해 정려문(旌閭門)을 하사돼 하청면 사환리에 비각을 건립했으나 풍우에 퇴락(頹落)함에 따라 지금의 효촌마을로 옮겨 세웠으며 이때 효자문(孝子門)이라는 마을이름을 얻게 됐다고 기록돼있다.
이후 순조5년(1805년)에 봉산재(송정고개)에 옮긴 후 이후에도 수차례 중수(重修) 했으며 이 비각도 세월에 씻겨 잔폐지경(殘廢之境)이 되자 1938년 이공의 후손인 이성춘(李醒春)이 건의, 거제 명륜당에서 다시 비문을 짓고 비각을 건립했으나, 1991년 7월경 국도14호선 확장사업으로 인해 옥포어린이놀이터에 옮겨 보존됐다.
2001년 8월부터 이돌대의 본향인 효촌마을 주민들이 이 비각을 효촌마을로 다시 되옮기기로 뜻을 모으고 추진해 오던 중 마침내 2005년 7월 옥포지역 주민들과 효촌마을 주민들간에 이건(移建)에 합의, 사업비를 시로부터 지원받아 새롭게 단장하고 이날 준공식을 갖게 됐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이날 오전 11시 열리게 될 제막식에는 김한겸 시장을 비롯한 지역기관단체장들과 주민 등 약 200여명이 참석하며 옥경호 효촌이장과 옥영복 노인회장에게 공로패가 수여되고 마을 주민들이 잔치음식을 마련하는 등 성대하게 치러진다.
옥포 어린이 공원에 있던 이돌대의 유적비는 효촌마을 입구에 새롭게 조성된 30여평의 공원에 세워지며 새 비각옆에는 효자비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비도 같이 세워진다.
효자비 유래와 이건사업 추진
중종실록 제30권에는 중종12년(1517년) 10월 6일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金安國)이 올린 장계(狀啓)가 소개돼 있다.
그 내용은 지금의 효촌마을에 염한(鹽漢) 이돌대라는 사람이 일곱 살에 아버지를 잃었는데 어려운 가세(家勢)에도 그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여 달마다 세 번 음식을 풍성히 장만하고 잔치를 베풀어서 어머니를 즐겁게 했다고 기록돼있다.
또 그는 어머니가 죽자 3년동안 여묘(廬墓)살이를 하면서 조석의 제전(祭奠)을 아주 깨끗하도록 힘썼으며 가난때문에 때로는 빌어다가 제사를 지내는 등 조금도 게을리한 적이 없었고 흙을 져다가 무덤을 만들되 특이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상기(喪期)를 마치고 나서는 무덤곁에 아버지를 옮겨 묻고서 명일(名日)과 기일(忌日)에 지성으로 제사하고 매월 그믐날에 무덤에서 별제(別祭)하되 제사 때마다 반드시 하루 전에 무덤있는 곳에 올라가 치제(致齊)하고 쇄소(灑掃)하고 잡초를 제거하였다라고 전해진다.
숙종때 이 사록(史錄)에 의해 정려문(旌閭門)을 하사돼 하청면 사환리에 비각을 건립했으나 풍우에 퇴락(頹落)함에 따라 지금의 효촌마을로 옮겨 세웠으며 이때 효자문(孝子門)이라는 마을이름을 얻게 됐다고 기록돼있다.
이후 순조5년(1805년)에 봉산재(송정고개)에 옮긴 후 이후에도 수차례 중수(重修) 했으며 이 비각도 세월에 씻겨 잔폐지경(殘廢之境)이 되자 1938년 이공의 후손인 이성춘(李醒春)이 건의, 거제 명륜당에서 다시 비문을 짓고 비각을 건립했으나, 1991년 7월경 국도14호선 확장사업으로 인해 옥포어린이놀이터에 옮겨 보존됐다.
2001년 8월부터 이돌대의 본향인 효촌마을 주민들이 이 비각을 효촌마을로 다시 되옮기기로 뜻을 모으고 추진해 오던 중 마침내 2005년 7월 옥포지역 주민들과 효촌마을 주민들간에 이건(移建)에 합의, 사업비를 시로부터 지원받아 새롭게 단장하고 이날 준공식을 갖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