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최연소 ‘31세 이장’ 최호석씨 화제
작성 : 2007년 06월 08일(금) 10:13 가+가-

[경향신문/서용찬 기자]= “이왕이면 젊은 사람을 이장으로 뽑자.”
도시라면 모를까 농어촌 마을에서 60세면 청춘이다.
주민들은 “나이 오십에 손자 볼 때가 가까워도 마을회의에서 발언권조차 얻기 힘든 것이 지금의 시골”이라고 푸념한다.
그래서 시골에서 30대 이장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영화 ‘이장과 군수’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동네 어른들에게 떼밀리다시피 이장에 선출됐다.
최 이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자네가 이장을 맡아야 해’하며 청하는 데 뿌리칠 수 없었다”고 했다.
고향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최 이장은 1995년 경상대 행정학과에 2학년까지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부산전문대에서 자동차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고향이 그리워 곧바로 귀향했다.
고향에서 빈 집을 사 횟집(신흥횟집)을 운영하면서 동네의 궂은 일은 도맡아 했다. 어르신들의 눈에 띄게 된 동기다.
지난해 7월 마을 주민들의 추대로 된 이제 1년차 초보 이장이다. 그래서 아직은 조심스럽다. 최 이장은 “나이가 어리다보니 아무래도 융통성이 부족하고 각종 모임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가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오는 대단하다.
“4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대포마을을 거제도 어느 곳에 견줘도 부족한 것 없이 단합이 잘되는 마을로 만들겠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활력이 넘치는 농어촌 마을을 만들기 위해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마을 청년들을 규합, 청년회를 조직하고 인근 마을과 협력해 거제관광의 백미로 손꼽히는 대포마을에 관광유람선을 띄운다는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좌절도 많았다. 잦은 술자리, 때로는 늦은 귀가. 그래도 부인 신진희씨(27)가 후원자를 자청하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젊은 시절 이웃 마을에서 이장을 맡았던 아버지(70)와 어머니(68)도 든든한 후견인이다.
아버지가 지역신문에 실린 최 이장의 기사를 수첩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하게 알게 됐다. 최 이장은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을 지키는 아들을 대견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의 속 마음을 그 때야 알았다.
“젊은 사람이 왜 다시 도회지로 나가고 싶지 않겠어요? 여러 번 흔들렸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과 기대가 고향을 지키며 살기로 각오한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도시라면 모를까 농어촌 마을에서 60세면 청춘이다.
주민들은 “나이 오십에 손자 볼 때가 가까워도 마을회의에서 발언권조차 얻기 힘든 것이 지금의 시골”이라고 푸념한다.
그래서 시골에서 30대 이장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영화 ‘이장과 군수’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동네 어른들에게 떼밀리다시피 이장에 선출됐다.
최 이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자네가 이장을 맡아야 해’하며 청하는 데 뿌리칠 수 없었다”고 했다.
고향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최 이장은 1995년 경상대 행정학과에 2학년까지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부산전문대에서 자동차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고향이 그리워 곧바로 귀향했다.
고향에서 빈 집을 사 횟집(신흥횟집)을 운영하면서 동네의 궂은 일은 도맡아 했다. 어르신들의 눈에 띄게 된 동기다.
지난해 7월 마을 주민들의 추대로 된 이제 1년차 초보 이장이다. 그래서 아직은 조심스럽다. 최 이장은 “나이가 어리다보니 아무래도 융통성이 부족하고 각종 모임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가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오는 대단하다.
“4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대포마을을 거제도 어느 곳에 견줘도 부족한 것 없이 단합이 잘되는 마을로 만들겠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활력이 넘치는 농어촌 마을을 만들기 위해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마을 청년들을 규합, 청년회를 조직하고 인근 마을과 협력해 거제관광의 백미로 손꼽히는 대포마을에 관광유람선을 띄운다는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그러나 곳곳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좌절도 많았다. 잦은 술자리, 때로는 늦은 귀가. 그래도 부인 신진희씨(27)가 후원자를 자청하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젊은 시절 이웃 마을에서 이장을 맡았던 아버지(70)와 어머니(68)도 든든한 후견인이다.
아버지가 지역신문에 실린 최 이장의 기사를 수첩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하게 알게 됐다. 최 이장은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을 지키는 아들을 대견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의 속 마음을 그 때야 알았다.
“젊은 사람이 왜 다시 도회지로 나가고 싶지 않겠어요? 여러 번 흔들렸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과 기대가 고향을 지키며 살기로 각오한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