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스리랑카를 보다
아시아 지진해일로 인한 스리랑카 피해지역 환경조사
작성 : 2005년 07월 22일(금) 11:43 가+가-
윤미숙 거제통영환경연합 정책실장이 지난 6일부터 16일까지 10일동안 스나미 피해지역 환경영향조사단 자격으로 스리랑카 현지를 다녀왔다
국제인구행동기금 아태지역본부(Asia Pacific Alliance, International Council on Population and Development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이번 조사는 환경연합부설 시민환경연구소 안병옥 부소장 등 4명과 스리랑카 현지 환경단체인 환경정의센터(Center for Environmental Justice)가 참여했다.
현지조사는 아시아 지진해일 기금전달 및 스리랑카 지진피해 증가지역 현지조사, 환경보호로 인한 쓰나미 피해 예방지역 현지조사, 쓰나미 발생이후 수인성 질병, 쓰레기 집중을 통한 지역주민 보건환경조사, 피해복구시 친환경적인 재건조사 등으로 진행됐다.
이 조사내용은 구호기금을 출현한, APA ICPD (인구 및 발전에 관한 국제위원회 아태지역 네트워크)의 회원단체인 Koica, 여성개발원, 가족계획복지협회, 환경운동연합 공동주관의 국제심포지엄에서 보고된다.
조사단은 모두 4명. 현지 조사를 맡은 환경운동연합 멤버들로, 총책임자 안병옥(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부책임자 윤미숙(통영.거제 환경연합 정책실장), 통역 및 프로그램 이성조(환경연합 국제연대팀), 복진오(환경연합 영상팀)으로 구성됐다.
조사단 일행은 인천공항을 출발, 싱가폴까지 여섯 시간, 싱가폴에서 스리랑카까지 두 시간 반, 총 여덟 시간 반의 비행 끝에 새벽 한시에 콜롬보 공항에 도착 현지에서의 활동에 들어갔다.
윤미숙 거제통영환경련 정책실장은 스리랑카 현지사정을 자체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피해지역의 난민촌들
역시 예상대로 덥긴 더웠다. 쨍쨍쨍 살을 태울 듯이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은 하루만에 팔목에 수포를 돋게 만들어 왜 원주민들이 입는 긴옷과 긴치마가 적당한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첫 날, 환경단체인 CEJ 사무실을 방문해서 조사루트와 현지사정에 대한 정보교류와 방문지 일정을 조정했다. 콜롬보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먹는물 큰 통을 차에 실은 뒤, 곧장 9박 10일간의 빡빡한 조사 일정이 시작됐다.
2005년 12월26일 발생한 지진해일 스나미로 인해 스리랑카 지역의 남동쪽은 큰 피해를 입었다. 스리랑카에서만 11,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도로와 집들이 휩쓸려 사라졌다. 스나미 최대 피해지역인 암파라를 향하는 곳곳의 크고 작은 피해 지역 마다 들러서 현장을 조사하고, 피해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타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콜롬보-골-마타라-함반보토아-암파라-바티칼로아-트린코말리-네곰보-콜롬보까지, 우리나라 지형으로 치자면 서울을 출발해서 군산 목포 남해 부산 포항 울진 다시 서울을 잇는 긴 여정이었다.
첫 번째 들린 아쿠랄라(Akurala) 해변 마을은 스나미의 흔적이 6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했다. 파괴된 해변들과 부서진 집들이 길거리에 즐비했다. 일차선 넓이의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다를 마주한 전형적인 해변 마을들이었다.
난민들은 임시로 지어진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집단 난민촌은 집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두 평도 못되는 임시가옥들은 얇은 통나무로 얼기설기 벽을 막고 양철지붕을 얹었는데 1cm도 채 못되는 시멘트 바닥을 친 것이 우리나라의 축사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바닥에는 아무것도 깔려져 있지 않았다. 그나마 이 집도 두 달 전에야 지어졌다고 했다.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 본 실내는 그야말로 단 한 개의 가구도 없는 맨바닥으로 이 한 평 반의 공간에서 많게는 7,8명의 식구가 생활한다고 했다.
맨발로 땟국물이 흐르는 옷을 입은 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의 얼굴은 지치고 쓸쓸해 보였다. 남편은 목수와 어부를 겸하는데 요즘은 바다에 나가지 않고 일일 노동일을 나간다고 했다. 169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이 마을에서 스나미로 인해 104명이 죽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
“오전 아홉시 삼십분 쯤, 저만큼 바다에서 커다란 파도가 벽처럼 일어서서 오는 것을 보았어요. 우리는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랐지만 바다의 그런 모습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어디선가 숲 뒤로 뛰어라는 고함소리가 나길래, 비로소 육지 쪽으로 뛰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마을 여기저기서 놀고 있었는데 미처 불러서 챙길 여유가 없었고, 나는 갓난아기를 안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무조건 뛰었어요. 1km 정도를 뛰었는데 바닷물이 거기까지 쫓아와서 우리는 몸이 물에 잠긴 채 코코넛나무(야자수)를 껴안고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버텼어요. 그러기를 세 차례 했어요. 왜냐면 큰 해일이 세 차례에 걸쳐서 왔으니까....“ (비리야 Biriya/27세).
“나는 그때 임신 7개월이었는데 남편이 달려오더니 뛰어야한다고 해서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뛰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한손에는 나를 다른 한손으로는 세살 먹은 딸을 안고 달리다가 야자수 나무를 껴안았는데 배가 부른 나와 아이와 야자수 나무를 한꺼번에 안고 있다가 손가락에 힘이 빠져서 그때 딸 아이를 잃었어요. 눈 앞에서 아이가 휩쓸려 떠내려갔어요...!” (마넬Manel/31세).
바다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햇빛과 어우러져 화사한 청옥빛을 띠고 있다. 시선을 붙잡을 섬 하나 없이 먼 수평선이 반듯한 인도양은 특유의 황금색 모래 해변과 코코넛 나무로 어우러져 풍경이야 더없이 아름다웠다.
저녁, 값싼 숙소를 찾아 헤매다가 여덟시가 넘어서야 해변의 여관(게스트 하우스)에 들어 짐을 풀었다. 왼종일 장거리에 시달리며 달려와서 피해 지역의 마을마다 들리느라, 차에 탔다 내렸다를 반복했더니 눕자마자 눈꺼풀이 저 먼저 내려오는데 가까이에서 파도소리가 들린다. 처음으로 파도소리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결이 오가는 소리가 죽은 영혼들의 슬픈 울음 소리가 섞여있는 듯하여 오랫동안 뒤척였다.
말하는 여성도, 듣는 우리도 잠시 먹먹한 심정이 되었다. 원래가 태풍이 없는 지역이라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 집들을 짓고 살았는데 이제 그 집들은 흔적도 없다. 해일로 인한 파도와 함께 모래가 육역의 2km까지 들어와서 인근의 숲은 모래사장으로 변했다.
복구의 손길은 느긋하고 더디기만 했다. 이제사 영구주택들을 짓기 시작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마을 도로변에 놓인 검은 플라스틱의 급수통이었는데 유럽의 여러 NGO가 보급한 것이라고 한다.
난민캠프와 각국의 NGO들
피해지역마다 난민캠프는 각 피해지역의 마을마다 형성돼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구호단체와 NGO들의 활동도 곳곳에서 값진 땀방울과 함께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우리는 남해안과 동해안의 피해지역 여러 곳을 조사하는 가운데 스리랑카의 환경단체가 운영하는 난민캠프 지원센터를 두 군데 방문했다.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적은 인원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역 풀뿌리 주민조직과 연대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새로 판 우물의 수질오염도 조사, 막힌 하수구 복구, 무료 탁아소 운영, 난민 캠프 방문으로 빡빡한 일정표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난민촌은 천막촌과 나무판대기로 지어진 축사 비슷한 형식의 두 가지 형태였다. 임시로 지어진 한 칸짜리 숙소에서, 또는 학교를 통째로 이용한 임시 사회보호시설에서의 생활은 파리들이 들끓었고, 공동 식수터와 목욕장은 너무나 부족했다.
여기저기 우물가에 서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더운 몸을 식히며 목욕을 하는 주민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남자도 여자도 다 옷을 입은 채 서서 목욕을 한다. 어린이들도 두레박으로 연신 물을 퍼올려 머리통에 부었다.
학교를 임시숙소로 활용한 꽤 큰 난민촌을 방문했을 때다. 여섯 가구가 교실 한 칸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어느 한 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복도에 모여서 놀던 아이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나 둘 모여든 아이들은 순식간에 열명이 넘어 적게는 대 여섯살, 많아야 열 살 정도인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음악은 경쾌하고 빨랐으며, 아이들의 선험적인 춤 동작은 우리네 청소년들이 그리도 배우고 즐기는 랩과 힙합을 한데 섞어놓은 몸짓으로 몹시 아름답고 활기찼다. 그 중 한 아이의 손에 이끌려 못추는 춤이지만 함께 춤을 추었다. 왠 구경거리냐며 모여든 난민들이 한차례의 춤이 끝나자 박수를 보냈다.
어딜가나 아이들의 얼굴은 천진스레 해맑아서 그들의 웃음은 해바라기 꽃처럼 우울한 난민촌을 밝히고 있었다. 스리랑칸들은 선천적으로 춤과 노래를 사랑한다고 한다.
느리지만 복구는 현재진행 중이었으며, 무척이나 다행한 것은 6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에게 집단 수인성전염병 등이 창궐한 예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부 아이들의 다리에는 모기나 진드기에 물려 긁어서 곪은 상처가 많은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한국에서 자원봉사차 나와 있는 Koica 팀들을 두 차례 만나서 오지게 반가웠다. 우리는 아껴먹던 김치와 라면을 두말없이 내주고, 대신 맛있는 점심을 얻어먹으며 한국의 소식들을 나누었다.
네 번째로 들린 난민촌은 푸른 천막으로 지어졌다. 시퍼런 천막을 들치고 들어서자 더운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실내는 옷가지들을 담은 종이박스 몇 개가 전부였고, 바깥에서 마른 야자수 나무를 주워와 불을 피워 조그맣고 둥근 솥단지에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야자수나무는 불땀이 좋고 연기가 많이 나지 않아 이곳 주민들이 즐겨 사용하는 땔나무다. 그러고 보면 야자수는 버릴 것이 없는 고마운 나무다. 야자수 나무 열매인 코코넛은 더위로 인한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껍질을 부수면 속껍질이 보드랍고 두터운데 마치 계란 프라이 흰자위와 같이 생겼다. 먹어보면 달착지근하고 맛이 좋다.
자그만 솥단지에 주식인 커리를 끓이던 시티카(Citica) 할머니는 올해 79세,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77세 인데 놀랄만큼 젊어 보인다.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는 손짓에 그러라고 손짓으로 답한 할머니는 내 노트에다 자신의 이름을 싱할라어로 꾹꾹 눌러서 적어준다. 스리랑카의 문맹율은 6% 정도로 매우 낮다. 일부 난민촌의 경우, 바닥이 아예 모래인 곳도 있었다. 임시 거처인 숙소에는 더워서 아무도 들어가지 않고 모두 바깥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숙소가 못되는 숙소인 셈이다. 방역과 최소한의 음식, 식수공급은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그것도 지역마저 천차만별이었다.
난민촌 주민들과 함께 스나미 이전에 살던 마을을 찾아가 보았다. 해안수림대가 전혀 없었던 이 마을은 꽤 큰 마을인데도 흔적도 없이 쓸려나가 남아있는 우물터 만이 이곳이 마을이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스나미 이후, 새로 짓는 가옥들은 해안선에서 모두 100m 이상 뒤로 물릴 것을 법으로 정했다. 그러나 해안선에서 100m 이격거리는 충분치 못한 상황이었다. 스리랑카 해안 지역들이 대부분 산이 없고 평지인 점을 감안할 때, 최소 300~500m의 거리는 두는 것이 적절할 것 같았다. 그나마 고층건물들이 적어서 건물붕괴로 인한 인명피해가 적었다는 평가였다.
구호품이 낳은 신종 쓰레기
태풍이나 지진해일 이후 어느 곳에서나 쓰레기가 문제다. 스리랑카 곳곳의 해변에는 아직도 다 치우지 못한 건물들의 잔재가 쓰러진 나무더미와 섞여 쌓여있다. 쓰레기 자체가 거의 발생되지 않았던 우리네 고유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처럼 이곳 시골의 삶은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삶을 유지해왔다. 구운 흙 벽돌과 코코넛 나무로 지어진 집과, 냉장고가 없는 생활은 불필요한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대도시 몇 곳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쓰레기 수거 체계 자체가 아예 없었다.
그런데 스나미 이후, 피해 지역마다 새로운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었다고 한다. 신종 쓰레기들은 대부분이 구호물자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것에서 발생됐다. 선진국들이 보낸 구호물품들은 모두가 썩지 않는 쓰레기들로 물병을 비롯한 각종 음료수병, 스티로폼과 여러종류의 비닐봉투, 여러 겹의 플라스틱 포장지들, 심지어 사용하지도 않는 생리대까지 들어와서 새로운 '환경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쓰나미 충격 이후,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구호단체들의 선심성 재난구호는 그 선의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지역문화를 무시한 채, 합리적이라는 명분아래 각국의 취향대로 진행되고 있어 새로운 문화충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불법소각이 만연할 수 밖에 없어 환경적 충격까지 보태진 셈이었다.
바다가 무서운 사람들
쓰나미가 남긴 상처는 물질적인 피해나 인명피해가 전부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잃은 상처는 당장의 놀람이 잦아들자 우물처럼 깊어갔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는 몇몇 사람들을 장애우로 만들었는가 하면 충격과 놀람으로 말문을 닫게 만들었고, 눈을 감으면 바닷물에 머리꼭대기까지 잠기는 피해망상을 보이며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주민들도 있었다.
어느 난민촌에서 만난 분열증 환자인 젊은 남성는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고 자신만 살아남았지만 그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은지 오래라고 한다. 대부분이 어부였던 주민들은 나무로 만든 작은 배들이 남김없이 부서지기도 했지만 배가 남은 어부들도 선뜻 바다로 나가지 못했고,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배를 띄우지 않는가하면 바다를 몹시 두려워한다고 한다. 공포의 기억은 때때로 현실을 장악한다.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영어가 너무 짧아서 마음속의 말들은 하나도 전하지 못하고 그저 마주 잡은 손에 힘만 꾹꾹 들어갔다.
발전과 보전이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
일인당 국민소득이 900불도 채 안되는 가난한 나라(우리나라 12,000불 수준)에서 시민단체라니!
처음에 이 가난한 나라에 환경단체가 여럿 있다는 것이 우리는 좀 놀라웠다. 우리네 70년대와 비슷한 생활상을 가진 나라에서 친환경적인 의식과 환경중심의 개발의지가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스리랑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았고 지속가능한 계획이 수립될 것임을 조사기간 내내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발전과 보전이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웃는 사람들
스리랑카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좋고 비싼 물건들이 많아야 행복한(행복하다고 믿는) 선진국의 잣대로 볼 때, 가난하다고 익히 알려진 이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너무나 높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런지.
사실 행복감(幸福感), 행복을 느끼는 감정은 성적순도 아니고, 자동차의 대수나 빌딩 높이와도 상관없는, 돈의 많고 적음도 아닌, 양명한 마음의 평온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잘 웃는 사람들을 본적이 있었던가.
사람들은 눈만 마주치면 편안한 미소로 응대한다. 어디서나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평화스럽고 웃음이 이어진다. 순박한 인심과 순수한 얼굴들은 산업화 이전 우리네 6,70년대의 시골사람들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더러 사람들은 신발도 안 신는 미개한 나라에 갔다 왔다고 말하는 것을 본다. 맨발인 것은 더운 기후의 영향일 뿐, 신발이 없어서 못 신은 것은 아니다. 땅과 물이 오염되지 않았으므로 맨발로 다녀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좀 멀리 외출할 때는 슬리퍼나 신발을 신고 간다. 더러 지저분하긴 해도 그것이 환경적으로 치명적인 유해물질이나 독성은 전혀 없다. 자연물에서 온 것들, 쌓인 흙먼지나 물때일 뿐이다.
우리는 마을 안길까지 시멘트로 발라 놓고는 이제는 돈을 엄청 들여서 지압로를 만들어서 맨발로 걸으면 건강에 좋다더라고 밟으러 다닌다. 나무나 숲을 모두 베어 버리고, 개울물은 숨 막히게 덮어버리고는 그 위에 다시 돈을 엄청 들여서 공원을 만들고 돈을 내고 보러간다. 가만 돌이켜보면 바보들의 행진이거나 무슨 코미디 같다. 심사숙고와 병행, 사전 배려는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코끼리와 공작과 왕도마뱀 그리고...
스리랑카는 길쭉하고 둥그스름한 복주머니 모양으로 생겼다. 산이 적고 평야는 한없이 넓어서 어딜 가나 넓은 들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어 크기가 작은 나라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널찍한 들판 곳곳에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이루고 있어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땅 ‘이용중독증’에 걸린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왜 저렇게 비워났는지 몹시 궁금할 ‘휴경지’도 상당히 많아서 곳곳에 형성된 습지에는 연꽃과 부레옥잠이 가득히 자라고, 중대백로나 뜸부기, 날렵하게 생긴 까마귀와 장다리물떼새가 한가로이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무란 나무들은 모두 열매를 매달았다. 과일이 풍성해서 예로부터 굶어죽는 일은 없다고 한다. 열대지방답게 꽃과 나무가 사방천지에 가득한 나라인데도 집집마다 꽃 화분이 많고 정원마다 꽃과 나무가 그득하다.
도로는 대부분 이차선이거나 왕복 일차선으로 빨리 달려도 80km를 넘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차량들도 간간히 보이지만 일본제 차들이 월등히 많다. 작은 도시에서도 삼성과 금성의 간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들판에서 한가하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 코끼리를 볼 수 있었다. 꽤 큰 도시로 진입하는 도로변의 쓰레기매립장을 뒤지는 코끼리를 카메라에 담던 영상감독은 차에 올라서 코끼리가 너무 불쌍하다고, 200루피라도 주자고 한다.
숲 속에서 우아하게 거니는 공작새를 보던 일행이 농담 삼아 한마디한다. “쟤네들 동물원에서 탈출한 거 아냐?”
동물원에서 탈출한 듯이 보이는 야생동물은 차창 너머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느릿느릿 도로를 건너가는 왕도마뱀은 길이가 족히 1.5m 가까이 되어 보였다. 차들은 도마뱀이 길을 건너갈 때 까지 기다려주었고, 경적을 울리거나 쫓는 사람들도 없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는 낯선 사람을 보고도 짖지 않는 순하게 생긴 동네 개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배를 뒤집고 달콤한 낮잠 속에 빠져있었다.
그린벨트 혹은 방풍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그린벨트를 조성하고 있었다. 스나미를 분석해 볼 때, 방풍림이 울창했던 지역과 베어낸 지역과의 차이는 매우 컸다는 것을 스리랑카 정부 측이나 시민단체들 모두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숲 사이로 밀려든 바닷물은 수많은 나무 줄기를 거치면서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었고, 숲 사이로 스며든 바닷물은 그리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물러갔지만, 나무들을 잘라내어 사방이 훤히 트인 마을의 경우, 2km 이상까지 파도가 들어와 휩쓸고 나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경단체 CEJ는 그린벨트 조성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재앙으로 잠시의 공황상태에 빠진 주민들을 일터로 불러냈다. 나무는 저 스스로 씨앗을 뿌리고 자라는 존재로 사람의 손으로 심고 기른다는 생각을 도무지 할 이유가 없었던 주민들은 서툴지만 새싹을 발아시켜 묘목을 키우고 있었다.
스리랑카 정부도 이 사업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이 나무들은 곧 텅빈 해변에서 울창한 숲을 이루어 쑥쑥 자라게 될 것이다. 나무를 심고 기른다는 일은 그 자체가 삶의 새 기운을 상호 북돋아주는 일이요,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자연재앙에 대한 푸른 보험이요, 우리와 다음 세대간의 초록 희망선을 잇는 일이므로 더욱 가치롭다고 하겠다.
네곰보 해안의 맹그로브 숲
떠나오기 하루 전, 수도 콜롬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 네곰보(Negombo) 해안을 장식한 넓은 맹그로브 숲을 방문했다.
자연적인 해안선에 자란 10여종의 염생식물인 이 나무 군락은 그 뿌리가 마치 인공적으로 만든 모래 포집기를 닮았다. 단단히 땅을 움켜진 뿌리는 어떤 태풍이나 물살에도 견딜 수 있는 천연의 요새이다. 숲에는 새들이 둥지를 만들었고, 습지로 형성된 바닥에는 게들이 부산히 오가고 있었다.
맹그로브 숲 한가운데 스리랑카 정부가 출연한 NARA(National Aqualic Resource Agency) 맹그로브 연구소가 자리해 있었습니다. 담당 행정사무관 Vasantha의 말에 의하면 27에이커에 달하는 이 맹그로브 숲이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15년 전인 1993년으로 개인 소유의 땅들을 매입해서 보호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스나미 이전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맹그로브 숲을 없애고 건축물이나 도로를 만든 지역의 피해는 상상 이외로 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같은 지역이 많지만, 콘크리트 옹벽을 더 튼튼히 하자고 할 뿐, 방풍림을 조성하자는 정책은 아직도 묘연하다.
사실은 방풍림을 심을 공간조차 남겨두지 않고 해안선을 모두 점령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우리의 천년전의 정치가들은 방풍림을 조성하여 자연재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태풍으로 인한 큰 물살이 넘나듦을 자연재해라고 할 때, 이를 효과적으로 막는 것도 역시 자연재인 나무숲이었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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