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
섬마을 꽃피우는‘백의의 천사’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운 그 사연
둔덕면 화도보건진료소 이기현 소장
작성 : 2005년 11월 09일(수) 23:48 가+가-

이른 새벽, 마을 주민들을 위해 진료에 나서는 이기현 소장.

【월간거제 모닝뉴스 합동취재】=둔덕면 술역리에 적(籍)을 둔 7개의 작은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화도. 행정구역상 거제시이지만 실제 생활권은 통영이다. 마을과 교통할 수 있는 연락선도 하루에 한번 통영에서만 운행하고 있다.
그 외로운 섬에 백의의 천사가 있었다. 마을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작은 것 하나라도 갖기 보다는 나누기를 좋아하는 화도 보건진료소 소장 이기현(여, 48세)씨.
처음 그녀에 대한 취재 요청이 들어왔을 땐 단순한 미담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정기 여객선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지만 거제와 화도를 잇는 정기 여객선은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통해 결국 화도 보건진료소운영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고상영(남, 52세)씨의 배를 얻어 타고 진료소에 도착한 시각은 18일 오후 4시 30여분.
도착하자마자 놀라운 광경은 취재의 주인공이 일하는 보건진료소가 기존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얀 색에 사각으로 정형화된 기존 보건소나 진료소의 개념을 탈피하고 있었다. 어떤 시각에서 보면 바닷가 그림 같은 집을 연상케 했다. 섬에 도착해 진료소 문을 두드렸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잠깐 머뭇거림이 있은 뒤 주인도 없는 집에 객이 짐을 풀었다.
‘어차피 여기가 목적지이고, 내가 이곳에서 뭘 훔칠 것도 아닌데 짐을 푼다고 주인이 타박할 것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하는 생각에서 였다.
여장을 풀기 무섭게 예쁜 진료소 2층 베란다에서 먼 바다와 그 끝에 있는 육지를 바라보며 감상에 잠시 빠졌다. 그리고 시선을 좁혀 들어올 무렵 저쪽 길 한 모퉁이로 하얀 가운에 자전거를 탄 사람이 나타났다. 그 하얀 가운이 이번 취재의 주인공 이기현 소장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안녕하세요. 온다고 고행하셨죠”.
‘밝고 경쾌한 목소리에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는 인상. 그녀도 주인 없는 집에 여장을 푼 불청객들이 취재를 온 그들일 거라 예상한 것일까’.
어색한 조우였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첫인상과 함께 차 한잔을 나누며 이 섬과 진료소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시골어촌 이야기
화도마을에서 최고령인 이순아 할머니를 진료하고 있는 이기현 소장.
그 예쁜 그림 같은 집은 그녀의 생활공간이자 화도의 유일한 의료기관이다. 그리고 그 집이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까지는 다른 바닷가 마을처럼 지난 2003년 늦은 여름에 들이닥친 태풍 ‘매미’와 관련되고 그 과정 속에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온 바닷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태풍 매미. 그 해 7월 1일자로 부임한 그녀에게 매미는 시련의 시작이자 그림 같은 진료소가 지어지게 된 계기였다.
비진도와 연화도 등 섬마을 오지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던 그녀는 누구보다 섬지역 주민들의 생활상과 진료소가 그들 생활 전체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도에 처음 발령을 받아 왔을 때 주민들이 진료소에 대한 역할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화도 보건진료소운영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고상영씨도 자신의 업무가 어떤 것인지 몰랐다가 그녀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업무를 알기 시작했다고 한다.
잠시 그녀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보건진료소는 지난 80년말 ‘농어촌보건의료를위한특별조치법(농특법)’에 따라 농어촌 의료취약지역에 설치된 최일선 의료기관으로 전국적으로 1,900여개가 있으며 운영형태는 독립채산제에 가깝다. 즉 마을주민들이 먹는 약과 주사는 모두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말이었다.
소장의 급여 정도만 정부에서 지원되고 나머지는 주민들의 의료행위에서 발생하는 건강보험료의 의료수가로 유지되는 형태라는 것이었다. 시군구 단위에 있는 보건소나 읍면동 단위에 있는 보건지소와도 그 의미나 인적 구성에서 조금은 차이가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또한 보건진료소는 각 설치 지역마다 주민들로 구성된 ‘보건진료소운영협의회’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므로 협의회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렇게 그녀로부터 진료소의 정체성을 알기 시작한 협의회장은 그녀의 감시자이자 동지로서 진료소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화도에서의 생활. 하지만 2개월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태풍 매미가 닥치면서 진료소는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폐허가 돼버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위에 넋 놓고 앉아 자연을 원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시 진료소를 짓고 마을 주민들을 보살피는 일이 그녀에겐 더 급했다. 하지만 주무부서에 섬의 사정을 설명하고 정상화를 위해 도움을 호소했지만 피해지역이 너무 많아 화도에만 신경을 써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보는 부서 담당자들도 그러한 현실에 대해 많이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화도의 절박한 상황을 해결 해야만 한다는 보건소 소장의 결심으로 인해 진료소를 짓기 위한 재원이 마련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화도 보건진료소는 11월 7일 개소식(開所式)을 가졌다. 깔끔하면서 나이 든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라고 찜질방까지 마련된 진료소. 하지만 협의회장은 지금의 진료소에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 등 몇 가지 편의시설이 더 갖춰졌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의 지금의 진료소에 더 필요한 시설과 그가 바라 본 진료소장에 대한 감회 등을 듣고 있는 동안 그렇게 밤은 깊어 갔다. 나머지 사연들은 다음 날 듣기로 하고 첫날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동행
전체가 85가구에 250여명이 호적에 올라있지만 실제는 200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화도. 오전 6시 진료소를 나와 썬크림을 바르는 일로 그녀의 하루는 시작됐다.
“오늘은 미포와 왜선포에 외래진료를 나갈 거예요”
잠이 덜 깨 부시시한 차림으로 그녀를 따라 길을 나섰다. 매일 오전을 이렇게 외진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 역시 태풍 매미가 있은 뒤부터. 임시 진료소가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시골마을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마을에도 노약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담’이 왔나. 이 쪽이 자꾸 결리고 아프다. 한번 봐주라”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자기네 집 대문 앞에 서서 인사보다 먼저 아픈 곳을 말하고 진료를 청하는 할머니.
“가입시다”
먼저 혈압부터 측정한 뒤 아픈 부위를 살피고 파스 하나를 건네자 이내 할머니의 세상살이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멸치가 잘 안 잡힌다. 손지(손자) 대학갈 때가 됐는데 걱정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기도 하고 맞장구치기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나이 차이만 존재할 뿐 영락없는 친구의 그것이었다.
“파스는 12시간 지나면 효과 없으니까, 내일 다시 바까(바꿔) 주이소”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고 나선 다음 행선지는 이 마을 최고령자인 이순아(95세) 할머니댁. 바로 좀 전에 들렀던 할머니의 어머니가 이순아 할머니였다.
“들어가자”
며칠 전 드셨던 감 때문에 변비가 있다는 할머니는 그녀를 보자 방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한다.
나이가 들면 오히려 애가 된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것일까. 들어서기 무섭게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눈물을 글썽이며 이런저런 회한을 말씀하시는 할머니. 아들 내외와 함께 살며 근처에 딸도 있는데도 사람이 그리운 할머니는 그녀의 외진이 끝나고 나면 다음 외진이 있을 때까지 일주일 내내 그녀를 기다린다고 한다.
“이빨을 왜 안 빼주노. 어릴 때 하던 대로 실에 매달아 쏙 땡기모 빠질낀데”, “힘이 없어서 기침도 못 하겄다” 등등 눈물 섞인 할머니의 푸념은 계속됐다.
아마도 일주일을 기다리게 한 그녀에 대한 원망과 이렇게 또 하루를 더 살아 너를 만나는구나 하는 반가움에 대한 표현이었으리라.
그런 할머니 모습에 그녀도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다른 할머니들을 위해 아쉬운 마음만 간직한 채 다시 발길을 옮겼다. 여든 가까운 나이에도 멍게 채모용 섭(긴 줄을 발처럼 엮어 만든 도구)을 만들고 있는 아들 내외를 도와주지 못 하는 안타까움에 문밖을 서성이는 한 할머니. 그 할머니 댁이 그녀의 바로 다음 행선지였다.
“아들이 얼마 전에 허리를 수술해서 일도 하기 힘들낀데. 사람도 없고 안 그렀나”.
할머니 당신의 몸 걱정을 해도 모자랄 것 같건만 그녀를 만나 나누는 첫 마디가 아들 걱정에 일 걱정이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올 시간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 진료가 끝나자마자 밥 먹고 가라고 재촉이다.
소찬에 밥 한 공기가 전부였지만 그렇게 맛있는 아침을 먹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 아침식사였다.
그렇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쉬지 않고 내달아 미포의 몇몇 집과 고개 너머 왜선포의 곽계운 할머니 댁에서 몇 분의 할머니들을 진료하고 나니 이때 시간이 11시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개의 고개를 넘는 것으로 오전의 진료가 끝났다.
미포에서 바라보는 통영항, 왜선포에서 한산도 쪽으로 펼쳐진 다도해의 장관. 돌아오는 길엔 이곳을 찾은 객을 위해 잠시 그러한 멋진 풍경을 감상할 시간을 줘도 괜찮을 것 같건만 그녀는 진료소로 향해 발길을 채근했다.
진료소 도착과 함께 오전에 진료한 환자들의 증상에 맞는 제약 업무가 시작됐다. 매일 방문하기 힘들기 때문에 오토바이로 마을의 연락업무를 거의 도맡다시피 하고 있는 이 마을 교회 목사님 편으로 오후에 약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들이 끝났다고 한숨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암으로 고생하고 있는 할머니 한 분과 류마티스에 고혈압으로 거동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할머니댁을 반드시 방문하고 건강상태를 항상 점검한 뒤 다른 진료소들이 하는 것처럼 방문환자 진료와 급한 환자에 대한 외진, 이외의 일반적 행정업무가 이어졌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소장과 동고동락한 고상영씨 내외.
경상도 사람들의 성정은 대체로 무뚝뚝하다. 갯가 사람들은 거기에 거친 성격까지 더해진다. 그런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2년 남짓한 시간을 감안할 때 그녀가 섬사람들과 어느 정도 친해졌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오전의 동행에서 그녀를 반기는 사람들의 태도는 몇 십년을 함께 한 지기(知己)를 대하는 모습이었다.
“진료소가 없는 2년여 동안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화도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것들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라고 말하는 협의회장 고상영씨..
그녀와 주민들이 왜 그렇게 친해질 수 있었는지는 늘 그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동고동락해왔던 협의회장 부부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협의회장에 따르면 진료소가 사라지고 처음 당분간은 노인회관을 임시 진료소로 활용했다고 한다. 당시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오전은 외진, 오후는 기타 업무를 처리하는 형식이었던 것도 같았다. 그러한 업무 중 구별되는 것 한 가지는 ‘공부방’이었다. 글을 모르는 노인들이 자식들에게 전화하고 주소 정도만이라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두 글자씩 가르치던 것이 나중엔 아예 공부방으로 발전했다. 이젠 글읽는 재미를 아는 부모들을 위해 동화책을 선물하는 자식들이 있을 정도이고 왜선포에 사는 곽계운 할머니의 아들은 글을 깨우쳐 줘 고맙다며 진료소를 지을 수 있도록 땅을 내놓겠다고까지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노인회관에서의 생활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곳엔 많은 이유가 있고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성격에는 차별이 있는 법. 그러한 사유들로 인해 임시 진료소는 2평 남짓한 단칸방으로 옮겨졌다.
전형적인 시골집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진료소이고 보면 주인 아주머니 볼 면목이 서지 않을 정도였고 늦은 밤 갑자기 환자가 들이 닥치는 날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특히 이곳은 암 환자가 많아 그런 일이 자주 발생했다.
여기에 밤 늦게는 샤워는 물론이고 화장실 한번 제대로 갈 수 없을 정도의 시골집이고 보면 남자라도 그런 환경에서는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남들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그녀 나름대로 노력했겠지만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면 혼자 울었던 적도 많았던 것 같다. 협의회장의 아내 김둘금(50세)씨가 그런 그녀를 감싸 안고 함께 눈물 글썽였던 날이 부지기수였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칸방에서 지냈던 그 날들이 자신의 삶을 더욱 더 아름답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었고 더 많은 것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단칸방에서의 생활 중 다른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일들도 많았다고 한다.
간질을 앓는 아가씨가 있었다고 한다. 소장을 알기 전까지 그 아가씨는 과도한 체중과 운동부족으로 상태가 매우 좋지 못했단다. 하지만 소장과 함께 매일 운동을 하고 마을주민들과의 접촉도 늘어나면서 상태가 많이 양호해졌다고 한다. 몰라서, 부끄러워서 그저 그렇게 방치되고 있던 한 아가씨는 그렇게 소장을 알고부터 같이 생활하면서부터 그렇게 병이 호전됐고 또한 소장의 노력으로 생활보호대상자까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아가씨뿐만 아니라 복지혜택의 사각에 놓여 있던 마을 주민 몇 사람이 생활보호대상자가 되거나 이전에 받지 못하던 혜택을 누리게 된 데에도 그녀의 공이 컸다고 한다.
이외에도 그녀의 역할은 많았다. 매일 가가호호 방문하다 보니 거동이 불편하거나 글을 모르는 노인들의 전기요금 등 세금의 납부와 잔심부름 등. 그렇게 섬마을 일에 사통팔달로 통하다 보니 나중엔 하다 못해 집에 전기나 보일러가 고장 나도 노인들은 그녀에게 먼저 연락을 취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런 그녀이고 보니 무뚝뚝하고 억세기 그지 없는 갯가 사람들도 10년 된 지기보다 더 그녀를 반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못다한 얘기들
이기현 소장의 든든한 버팀목 고상영씨는 이 소장의 남편(52세)과 막역(莫逆)하는 사이다. 화도 태생인 협의회장도 그렇고 소장의 남편 또한 경남 진주, 경상도 출신이다. 그리고 그들은 50년이란 세월을 모르고 살다가 2년 남짓한 시간에 친구가 됐다. 당연히 그 매개는 이 소장이었다.
신현 시내에서 업을 하는 그녀의 남편과 화도에서 멍게 어장을 하는 협의회장.
모르고 살았던 5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만든 그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들은 그렇게 많은 사연을 겪으면서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

생활편의 시설이나 농협, 하다 못해 구멍가게조차도 없는 섬에서 글 모르고 거동 불편한 노인들의 잔심부름을 도맡다시피 하는 소장은 가끔 육지로 볼일 보러 나갈 일이 생긴다. 하지만 거제에서 화도에 닿는 정기 여객선은 없는 실정이다. 그럴 때면 항상 소장은 협의회장에게 배를 부탁한다.
또한 소장 내외와 협의회장 내외는 가끔 화도에서 만난다고 했다. 도시에 사는 소장 남편이 잠시나마 도시를 떠나 자연을 즐기는 곳이 바로 화도라는 것. 가족이 있고 가족처럼 편한 친구가 있고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이 화도라는 게 취재 전 만났던 소장 남편의 설명이었다.
통영의 아름다운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미포, 한산섬이 그리 멀지 않은 발치에 떠있는 왜선포에 아늑한 밤풍경이 백미인 송포까지. 이러한 풍경들이 소장 남편은 더없이 좋다고 했다.
또한 화도에서는 누구나 강태공이 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불량 낚시인도 잠시 짬을 내서 던진 낚싯대로 감성돔 수마리를 낚았을 정도다.
화도에서의 1박하는 동안 겪고 보고 들은 것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 모든 사연들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다.
글 쓰는 자의 능력이 이들의 사연을 세세히 기술하기엔 역부족이라서 많은 지면을 할애 받기 부끄러움이요 또한 혹시나 서툰 글솜씨로 인해 화도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사연이 일상의 가십(Gossip)정도로 인구에 회자될까 하는 두려움에서이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취재는 요 몇 년간 겪어보지 못한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고 그들이 겪어온 지난 2년의 시간은 무미건조한 도시에서 10여년 넘게 생활한 한 사람에겐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화도는 ‘여기가 내 고향에 부속된 섬이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멋진 풍경을 하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배종근 기자 mrmax@paran.com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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