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는 역사의 ‘광맥’이 묻혀있는 보고(寶庫)
김철문 황포출신 향인
역사는 민초(民草)들의 지난한 삶이 응축된 생명체
역사는 민초(民草)들의 지난한 삶이 응축된 생명체
작성 : 2006년 01월 10일(화) 15:12 가+가-

몇 달 전 TV에서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에 대한 여운(餘韻)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전장(戰場)에서 최후를 맞을 것이 아니라, 노량해전 승리 여세를 몰아 당쟁으로 얼룩진 조정(朝廷)을 혁파(革罷)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였을 것이다. 모함과 정쟁으로 얼룩진 그때의 정치를 오늘의 정치와 대비시키면서 답답함에 한숨지었을 것이다. 또한 따뜻한 햇볕 한 줌 쬐지 못하고 역사의 응달에서 소리없이 사라져간 민초들의 지난한 삶에서는 숙연함을 느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과제로 돌아오는 생환(生還)이며, 미래로 나아가는 좌표이다. 역사는, 진열장에 전시된 유물처럼,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민초(民草)들의 심난(甚難)한 삶이 응축된 살아있는 생명체다. 역사적 유적과 사건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바로 보게 하며, 현재의 모순을 깨우쳐준다.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거제도, 생민(生民), 바다를 건져 올렸다. 충무공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류(時流)에서 한 발 비켜나, ‘역사서의 다음 페이지’에 눈길을 맞춰본다. 왜란에서 거제가 겪은 역사적 무게는 얼마큼 컸으며, 거제가 소화시켜 사표(史表)로 삼아야 할 ‘역사의 자양분’은 무엇인가를 짚어본다.
거제에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역사적 현장, 지명, 사실(史實)이 많이 있다. 광이(廣耳)바다, 견내량, 옥포, 율포진, 칠천도, 장문포진, 영등진, 송말포, 야부마을, 물안, 군령포, 고현성, 오아포, 가배만, 제장군묘, 장좌마을, 남려산, 밀바대들, 덕치마을, 굴재봉, 조라포진, 망치재, 반송이재굴, 지세포진, 역개, 실전마을, 양지암, 하청장터의 설욕전 등이 왜란과 관련이 있는 지역이나 역사적 사건이다.
옥포대첩에서부터 율포해전, 한산도대첩, 제1,2차 장문포(장목)해전, 영등포해전, 칠천량해전 등은 거제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합포해전,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당항포해전의 승리를 위해 교두보와 전진기지로 삼았던 곳이 칠천도와 영등포진(장목면 구영)이고, 해전을 벌인 곳은 거제를 향해 큰 귀를 열고 있는 광이(廣耳)바다이다. 충무공과 조선 수군이 옥포대첩 전날 밤 전의를 불사른 곳도 거제 송말포(남부면 다대)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이 한산도로 옮기기 전, 가장 먼저 통제영을 설치한 곳이 동부면 가배만이다.
1592년 5월 7일 왜군과의 첫 해전지 옥포만은 통쾌한 승리의 격전지였다. 매년 「옥포대첩 기념제전」을 열어 조선 수군의 쾌거, 거제의 역사적 자랑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옥포대첩 ‘다음페이지 역사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옥포대첩에서 왜선 26척을 격침당한 왜군 잔병이 육지(거제도)로 상륙하여 5월 12일 거제읍성(고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성주 윤승보, 거제현령 김준민과 의병장 제인국이 항전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거제읍성을 점령한 후 왜군이 거제도 생민들에게 저질렀을 살육과 만행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생민(生民)들이 인육(人肉)을 잘못 먹어 전염병에 걸리는 장면이 TV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칠천량해전 패배 후 뒤따랐을 왜군의 무자비한 만행을 상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거제도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을 거치면서 숱한 역사를 가슴에 묻고 있다. 거제도는 승리의 역사 현장이기도 했지만, 왜군에게 많은 상처를 입은 고난의 섬이기도 했다. 광이(廣耳)바다는 큰 귀를 열고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광이바다가 간직하고 있는 사류(史流)는 한없이 깊다. 광이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거제도 생민들의 든든한 삶의 터전이다. 칠천도 어온리 물안마을과 역개는 408년이 지난 오늘도 칠천량 해전에서 크게 패한 조선 수군의 원혼을 파도가 달래고 있다. 좌절과 절망으로 얼룩진 민초들은 이름없는 잡초만큼이나 끈질긴 삶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초상지풍초필언(草上之風草必偃)이나 수지풍중초부립(誰知風中草復立)이랴. 民草들은 바람이 불면 바람보다 먼저 엎드릴 수밖에 없지만, 民草들은 세찬 바람을 헤치고 다시 꼿꼿하게 일어선다.
TV ‘불멸의 이순신’ 영향으로 통영, 남해, 여수, 진도 등 각 지자체가 충무공을 내세워 역사적 사실(事實)을 상품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역사는 물신만능주의 시대의 유행상품이 아니다. 역사에 겸허해야 하며, 역사에 묻혀 있는 진실에 머리 숙여야 한다.
거제도는 역사적 사실(史實)의 무진장한 보고(寶庫)이다. 남부면, 동부면, 일운면, 장승포, 장목면, 하청면, 연초면, 둔덕면, 사등면, 신현읍 등에 ‘역사적 광맥’이 묻혀있다. ‘역사적 광맥’을 오늘에 되살리고, 거제의 자랑으로 만드는 일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충무공, 조선수군, 민초들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리고, 역사적 교훈, 나아가 ‘거제의 역사적 자랑’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지자체가 벌이고 있는 방법을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관점의 역사적 접근이 필요하다. 패러다임(paradigm) 대전환이 절실하다. ‘역사의 앞 페이지’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역사의 다음페이지’에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열린 역사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충무공이 내비치는 역사적 광채는 다른 곳을 비추고 있다. 대명무사조(大明無私照), 햇빛은 온 천지를 두루 비추어준다. 충무공의 빛나는 광채는 수많은 민초들의 반딧불이 모인 ‘은하수’이다. 충무공의 진정한 바람은 민초들의 고뇌와 삶의 애환을 역사가 따뜻하게 보듬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불바다에서 ‘공격하라!’ 호령할 때도, 적을 호시(虎視)할 때도, 그리고 모함에서 풀려나 군진으로 돌아올 때도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민초들이 있었다.
'난중일기' 에는 충무공의 애민정신이 육필(肉筆)처럼 살아있다. 군관·병사는 말할 것도 없이 노인, 양민, 노복(奴僕)에 이르기까지 이름과 대소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충무공의 섬광처럼 번뜩이는 전략도 민(民)으로부터 나오며, 불패신화도 민(民)으로부터 나오며, 군량도 병력도 민(民)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민초들의 정직성과 진정성에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다. 관어해자 난위수(觀於海者 難爲水)이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인 바다의 큰 물을 보았기에 작은 물에 연연하지 않는 ….
거제 바다는 긴 역사의 잠류(潛流) 속에서도 우리들을 말없이 꾸짖고 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의 바다이다. 수선리만물이부쟁이고 처중인지소오(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라.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다투지 않는다.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천한다. 물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孕胎)하고, 끊임없는 윤회의 시작이 물이며 바다이다. 청천하늘 흰구름으로 승화하는 평화와 평등의 세계가 바다이다. (부산 향인)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과제로 돌아오는 생환(生還)이며, 미래로 나아가는 좌표이다. 역사는, 진열장에 전시된 유물처럼,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민초(民草)들의 심난(甚難)한 삶이 응축된 살아있는 생명체다. 역사적 유적과 사건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바로 보게 하며, 현재의 모순을 깨우쳐준다.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거제도, 생민(生民), 바다를 건져 올렸다. 충무공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류(時流)에서 한 발 비켜나, ‘역사서의 다음 페이지’에 눈길을 맞춰본다. 왜란에서 거제가 겪은 역사적 무게는 얼마큼 컸으며, 거제가 소화시켜 사표(史表)로 삼아야 할 ‘역사의 자양분’은 무엇인가를 짚어본다.
거제에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역사적 현장, 지명, 사실(史實)이 많이 있다. 광이(廣耳)바다, 견내량, 옥포, 율포진, 칠천도, 장문포진, 영등진, 송말포, 야부마을, 물안, 군령포, 고현성, 오아포, 가배만, 제장군묘, 장좌마을, 남려산, 밀바대들, 덕치마을, 굴재봉, 조라포진, 망치재, 반송이재굴, 지세포진, 역개, 실전마을, 양지암, 하청장터의 설욕전 등이 왜란과 관련이 있는 지역이나 역사적 사건이다.
옥포대첩에서부터 율포해전, 한산도대첩, 제1,2차 장문포(장목)해전, 영등포해전, 칠천량해전 등은 거제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합포해전,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당항포해전의 승리를 위해 교두보와 전진기지로 삼았던 곳이 칠천도와 영등포진(장목면 구영)이고, 해전을 벌인 곳은 거제를 향해 큰 귀를 열고 있는 광이(廣耳)바다이다. 충무공과 조선 수군이 옥포대첩 전날 밤 전의를 불사른 곳도 거제 송말포(남부면 다대)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이 한산도로 옮기기 전, 가장 먼저 통제영을 설치한 곳이 동부면 가배만이다.
1592년 5월 7일 왜군과의 첫 해전지 옥포만은 통쾌한 승리의 격전지였다. 매년 「옥포대첩 기념제전」을 열어 조선 수군의 쾌거, 거제의 역사적 자랑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옥포대첩 ‘다음페이지 역사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옥포대첩에서 왜선 26척을 격침당한 왜군 잔병이 육지(거제도)로 상륙하여 5월 12일 거제읍성(고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성주 윤승보, 거제현령 김준민과 의병장 제인국이 항전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거제읍성을 점령한 후 왜군이 거제도 생민들에게 저질렀을 살육과 만행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생민(生民)들이 인육(人肉)을 잘못 먹어 전염병에 걸리는 장면이 TV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칠천량해전 패배 후 뒤따랐을 왜군의 무자비한 만행을 상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거제도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을 거치면서 숱한 역사를 가슴에 묻고 있다. 거제도는 승리의 역사 현장이기도 했지만, 왜군에게 많은 상처를 입은 고난의 섬이기도 했다. 광이(廣耳)바다는 큰 귀를 열고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광이바다가 간직하고 있는 사류(史流)는 한없이 깊다. 광이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거제도 생민들의 든든한 삶의 터전이다. 칠천도 어온리 물안마을과 역개는 408년이 지난 오늘도 칠천량 해전에서 크게 패한 조선 수군의 원혼을 파도가 달래고 있다. 좌절과 절망으로 얼룩진 민초들은 이름없는 잡초만큼이나 끈질긴 삶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초상지풍초필언(草上之風草必偃)이나 수지풍중초부립(誰知風中草復立)이랴. 民草들은 바람이 불면 바람보다 먼저 엎드릴 수밖에 없지만, 民草들은 세찬 바람을 헤치고 다시 꼿꼿하게 일어선다.
TV ‘불멸의 이순신’ 영향으로 통영, 남해, 여수, 진도 등 각 지자체가 충무공을 내세워 역사적 사실(事實)을 상품화(?)하기에 여념이 없다. 역사는 물신만능주의 시대의 유행상품이 아니다. 역사에 겸허해야 하며, 역사에 묻혀 있는 진실에 머리 숙여야 한다.
거제도는 역사적 사실(史實)의 무진장한 보고(寶庫)이다. 남부면, 동부면, 일운면, 장승포, 장목면, 하청면, 연초면, 둔덕면, 사등면, 신현읍 등에 ‘역사적 광맥’이 묻혀있다. ‘역사적 광맥’을 오늘에 되살리고, 거제의 자랑으로 만드는 일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충무공, 조선수군, 민초들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리고, 역사적 교훈, 나아가 ‘거제의 역사적 자랑’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지자체가 벌이고 있는 방법을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관점의 역사적 접근이 필요하다. 패러다임(paradigm) 대전환이 절실하다. ‘역사의 앞 페이지’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역사의 다음페이지’에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열린 역사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충무공이 내비치는 역사적 광채는 다른 곳을 비추고 있다. 대명무사조(大明無私照), 햇빛은 온 천지를 두루 비추어준다. 충무공의 빛나는 광채는 수많은 민초들의 반딧불이 모인 ‘은하수’이다. 충무공의 진정한 바람은 민초들의 고뇌와 삶의 애환을 역사가 따뜻하게 보듬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불바다에서 ‘공격하라!’ 호령할 때도, 적을 호시(虎視)할 때도, 그리고 모함에서 풀려나 군진으로 돌아올 때도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민초들이 있었다.
'난중일기' 에는 충무공의 애민정신이 육필(肉筆)처럼 살아있다. 군관·병사는 말할 것도 없이 노인, 양민, 노복(奴僕)에 이르기까지 이름과 대소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충무공의 섬광처럼 번뜩이는 전략도 민(民)으로부터 나오며, 불패신화도 민(民)으로부터 나오며, 군량도 병력도 민(民)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민초들의 정직성과 진정성에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다. 관어해자 난위수(觀於海者 難爲水)이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인 바다의 큰 물을 보았기에 작은 물에 연연하지 않는 ….
거제 바다는 긴 역사의 잠류(潛流) 속에서도 우리들을 말없이 꾸짖고 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의 바다이다. 수선리만물이부쟁이고 처중인지소오(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라.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다투지 않는다.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실천한다. 물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孕胎)하고, 끊임없는 윤회의 시작이 물이며 바다이다. 청천하늘 흰구름으로 승화하는 평화와 평등의 세계가 바다이다. (부산 향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