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언제나 옥포에 남아 있지요”
대우조선해양, LNG운반선 건조의 숨은 공로자 한스 피터 헤클러씨 명예 사원으로 위촉
작성 : 2007년 02월 21일(수) 14:27 가+가-

사진설명 :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지난 15일 은퇴를 맞은 한스 피터 헤클러씨의 은퇴 송별식을 이 회사 양식당에서 열고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표시 하고 있다.
최근 LNG운반선과 액화천연가스 해상공급 설비를 탑재한 대우조선해양 LNG-RV 건조 신화의 숨은 주역인 벽안(碧眼)의 선주감독관이 은퇴했다.
30여년간 전 세계 조선소를 돌며 청춘을 바친 벨기에 엑스마사의 수석 선주 감독관 한스 피터 헤클러(Hans-Peter Hechler66)씨가 그 주인공.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5일 이 회사에서 7년여간 근무 하며 유로나브(Euronav)사 초대형 원유운반선 2척, 엑스마(EXMAR)사 LNG선 및 LNG-RV(액화천연가스 재기화 선박) 6척을 건조 감독한 헤클러씨의 은퇴를 기념, 언제든 회사 방문이 가능한 명예사원증 수여와 함께 송별회를 열었다.
1천여명이 넘는 외국인이 근무하고 있는 옥포조선소에서 헤클러씨의 은퇴식을 특별히 마련한 것만 보아도 그의 숨은 공로를 알 수 있다. 특히 선주 측 고객에게 송별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대우조선해양에서 근무하면서 제공했던 기술적 조언이 가스선 분야의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게 된 기틀이 됐기 때문.
헤클러씨는 아시아, 유럽 등을 다니며 30여 년간 쌓아온 자신의 노하우를 이곳에서 선주 감독관을 지내며 끊임없이 의견과 대안을 제시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대우조선해양 뿐만 아니라 LNG운반선 건조경험이 일천했던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90년 초반 잠시 선박건조를 위해 왔던 그는 엑스마사가 가스수송선박에 관심을 가지면서 2000년부터 대우조선해양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됐다.
헤클러씨는 “대우조선해양은 설계, 기획, 건조 등 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조선소다. 특히 세계 최초로 LNG-RV를 건조하면서 두려움 없는 도전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미지의 시장을 개척한 대우조선해양의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이제 헤클러씨는 30여 년간의 조선 인생을 정리하고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낸 아들이 있는 벨기에로 3월께 돌아갈 예정. 그러나 여기서 만난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 생각에 떠날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고. 그래서일까 떠나기도 전에 그는 벌써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단 생각을 한단다.
애써 서운한 표정을 감추며 능숙해진 우리 말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송별사를 남긴 그의 말속에 한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30여년간 전 세계 조선소를 돌며 청춘을 바친 벨기에 엑스마사의 수석 선주 감독관 한스 피터 헤클러(Hans-Peter Hechler66)씨가 그 주인공.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5일 이 회사에서 7년여간 근무 하며 유로나브(Euronav)사 초대형 원유운반선 2척, 엑스마(EXMAR)사 LNG선 및 LNG-RV(액화천연가스 재기화 선박) 6척을 건조 감독한 헤클러씨의 은퇴를 기념, 언제든 회사 방문이 가능한 명예사원증 수여와 함께 송별회를 열었다.
피터 한스 헤클러씨와의 인터뷰
15년전 한국 조선업체가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때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큰 신뢰 갖고 수에즈 막스급 살물선 건조를 위해 왔던 것이 첫 인연이다. 거제에서 생활을 어떠했나 처음 옥포는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아주 작은 도시였다.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사는 게 내 아내 바바라에게는 불편한 점이 많았을 거라 생각되지만 언제나 나를 끈기 있게 도와주었고 우리 사무실 팀원들 역시 그랬다. 불편한 건 다소 있지만 우린 이 곳에 사는 게 즐거웠다. 지금 돌아보면, 대우조선해양과 옥포가 많이 바뀌고 성장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들과의 재회가 남다르다는데 19년간 아시아 여러 조선소에 몸 담은 관계로 아들과는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다. 아들은 아시아에 아버지를 빼앗긴 것 같다고 말 할 정도로 우리 부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한국 양녀의 전통결혼식이다. 그 아이는 오랜 시간 나와 함께 근무하며 정을 쌓은 비서(문선영)였고 의붓 부녀관계를 맺고 딸로 여기며 지내왔다. 아들 하나뿐인 나에겐 한국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다. 지난해 선영이는 우리 회사인 엑스마사 검사관(벨기에)과 전통혼례를 올렸다. 예쁜 한국 딸과 아름다운 한국의 전통 결혼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1천여명이 넘는 외국인이 근무하고 있는 옥포조선소에서 헤클러씨의 은퇴식을 특별히 마련한 것만 보아도 그의 숨은 공로를 알 수 있다. 특히 선주 측 고객에게 송별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대우조선해양에서 근무하면서 제공했던 기술적 조언이 가스선 분야의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게 된 기틀이 됐기 때문.
헤클러씨는 아시아, 유럽 등을 다니며 30여 년간 쌓아온 자신의 노하우를 이곳에서 선주 감독관을 지내며 끊임없이 의견과 대안을 제시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대우조선해양 뿐만 아니라 LNG운반선 건조경험이 일천했던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90년 초반 잠시 선박건조를 위해 왔던 그는 엑스마사가 가스수송선박에 관심을 가지면서 2000년부터 대우조선해양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됐다.
헤클러씨는 “대우조선해양은 설계, 기획, 건조 등 전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조선소다. 특히 세계 최초로 LNG-RV를 건조하면서 두려움 없는 도전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미지의 시장을 개척한 대우조선해양의 도전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이제 헤클러씨는 30여 년간의 조선 인생을 정리하고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낸 아들이 있는 벨기에로 3월께 돌아갈 예정. 그러나 여기서 만난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 생각에 떠날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고. 그래서일까 떠나기도 전에 그는 벌써 한국에 다시 오고 싶단 생각을 한단다.
애써 서운한 표정을 감추며 능숙해진 우리 말로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송별사를 남긴 그의 말속에 한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