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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별세 “그대가 있어서 행복했다”
작성 : 2011년 01월 22일(토) 21:41 가+가-

【서울=뉴시스】서재훈 기자 = 22일 오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소설가 故 박완서씨의 빈소가 차려지고 있다. 지난해 등단 40주년을 맞이한 소설가 故 박완서씨(80)는 이날 오전 5시20분께 경기 구리시 아차동 자택에서 지병인 담낭암으로 투병중 별세했다. 장지는 용인천주교공원, 발인은 25일.

지난해 등단 40주년을 맞이한 소설가 박완서씨(80)가 22일 별세했다.

박씨의 타계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고인의 넋을 위로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박완서라는 문학계의 큰별이 졌다는 소식에 마음 한 구석이 매우 허전합니다. 고인의 책을 통해 많은 것 느끼고 배웠습니다. 부디 편안한 곳에서 가서 편히 쉬길 바랍니다."(김순이씨·45·주부)

"고인의 책을 통해 아름다운 문장과 뜨거운 감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아름답고 따뜻한 작품들 많이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이인석씨·26·대학생)

"따뜻하고 편안한 글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줬던 박완서 선생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남겨주신 작품들 고이 간직하며 읽겠습니다."(이석호씨·33·직장인)

네티즌들과 트위터리안들은 추모글을 올리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내내 박완서님의 책이 있어서… 또한 박완서님의 내용이 있어서… 저희 대한민국의 여성들을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박완서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일 빕니다."(아이디 'goethe159')

"오늘 새벽 박완서 선생님께서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아이디 'coffeejinny')

"이른 새벽에 내리는 눈이 쓸쓸해보이더니만… 평소 존경했던 마음으로부터 그곳에서도 멈추지 마시고 행복하세요. 박완서 선생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아이디 'ryd12')

"어젯밤 책꽂이를 가만히 보다가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이 눈에 띄어 오랜만에 '아 좋다' 하면서 읽었는데… 내가 그걸 다 읽는 동안 가셨구나… 생각해보니 참 우연이었지만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하다."(아이디 'jieunkim2010')

"책장 마지막까지 창작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으신 박완서 선생님 존경합니다. 부디 가시는 길 편안하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아이디 'uhuhboo')

한편 담낭암으로 투병중이었던 박씨는 22일 오전 6시17분께 경기 구리시 아차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80세.

고인의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6호실에 마련됐다. 장지는 용인 천주교공원이다. 발인은 25일이다.

문인들 가난하다 부의금 받지 말라

지난해 등단 40주년을 맞이한 소설가 박완서(80·여) 선생이 22일 오전 5시20분께 경기 구리시 아차동 자택에서 담낭암으로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구 서울삼섬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빈소에는 활짝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이 놓였다.

박 선생은 지난해 10월 담낭암 수술을 받고 상태가 호전돼 이달 11일부터 자택에서 큰딸 호원숙씨(57·여)와 함께 지냈다.

큰딸 호씨는 "어머니가 주무시다 편안히 돌아가셨다"며 "특별한 임종 시에 유지를 남기시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셋째 사위인 권오정씨(53)는 "더 이상 장모님의 훌륭한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게 너무 슬프다"며 "장모님과 대화를 나누는게 인생의 재미중에 하나"였다고 심경을 전했다.

오전 11시께 찾은 고인의 빈소는 지인들과 가족들의 장례준비로 분주했다. 오전 11시30분께는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도 도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박 선생의 지인들과 문학계 후배들의 조문도 이어지고 있다.

오전 11시50분께 빈소를 찾은 가수 김창완씨(57)는 "한달전쯤 고인을 만났을때 '몸이 안좋아요'라고 첫 마디를 나눴다'"며 "그게 마지막이 됐다"고 고인과의 인연을 털어놨다.

눈가가 촉촉해진 김씨는 "그래도 선생님이 많은 것을 남겨주셨다"고 안도했다.

고인의 빈소 입구에는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

고인은 평소 "문인들은 돈이 없다"며 "내가 죽거든 찾아오는 문인들을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사위인 권씨가 밝혔다.

박완서 선생은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한 뒤 마흔이 되던 1970년에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 현상공모에 당선돼 문단에 들어왔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현대문학상(1993), 대산문학상(1997),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상 예술상(2006) 등을 받았다. 1998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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