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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기] 숲 속의 벤치
비워야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무는 낙엽으로 말해준다
작성 : 2025년 12월 29일(월) 11:38 가+가-

벤치.

필자는 산하(山河)를 누비는 산꾼이다. 지난 27일, 월곡재에서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등산 코스를 걸었다.

겨울 해가 게으르게 머리를 내미는 아침, 개천면 연화산 월곡재에 도착했다.

월곡재에서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중간지점에서 담비(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노란 목도리)가 노루를 추격하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너무 순간에 지나가 버려서 멋진 사진 찍기는 실패했다.

오늘은 그냥 내 눈 속 담아 두기로 했다.

잠시 후 시루봉 정상에서 본 전망, 탁 트인 경관과 함께 저 멀리 마산 앞바다까지 볼 수 있었다.

여기서 길 따라 걷다 보면 100여m 지점에 월곡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망중한을 즐기는 신선이 된다. 이제는 월곡마을로 가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걷는 내내 모든 풍경이 우연일까? ‘자연의 설계일까’라는 생각이 내내 잇따랐다.

계절의 틈새는 언제나 묘한 감정을 동반한다. 화려했던 단풍이 제빛을 다하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으로 변했지만, 필자는 홀로 숲속 벤치에 앉아 텅 빈 가지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정표.

어라, 태양은 대지 위에 빛과 그림자 수를 놓고, 바람에 밀려가며 구름은 그늘을 그린다. 바람이 실어 온 산 너머 이야기를 낙엽은 더듬는다.

오래된 숲에서 생명체들은 서로 기대며 산다. 도시의 소음이 차단된 정적 속에서 마시는 공기가 머릿속을 시원하게 씻어내고, 햇살과 바람은 겨울 추위뿐만 아니라 일상의 번잡함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안겨준다.

나무의 진짜 지혜는 절정을 지난 뒤 더 선명해진다. 잎은 끝까지 붙들려 하지 않고, 때가 되면 스스로 조용히 내려놓는다.

비워야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무는 낙엽으로 말해준다. 낙엽은 흙이라는 언어로 바뀌어 뿌리로 스며들고, 결국 다음 계절을 밀어 올리는 힘이 된다.

사람도 그렇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따뜻한 것들로 이 시기를 견딘다. 인간은 온기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에, 저마다 소소한 아랫목을 마련해 두어야 할 때가 왔다.

어제까지 잘했다고 내일을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구성옥 기자 기사 더보기

newsmorni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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