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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것은 후보가 아니라 기대였다
거제시장 선거로 본 보수정당의 구조적 위기
작성 : 2026년 06월 23일(화) 10:39 가+가-
정치평론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후보가 약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만약 후보 개인이 약해서 졌다면 다음 선거에서 후보만 바꾸면 된다.

그러나 정당이 약해진 것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후자라면 후보를 바꿔도 진다.

거제시장 선거를 바라보는 핵심 질문도 여기에 있다.
국민의힘의 패배는 특정 후보의 실패였는가. 아니면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자체의 실패였는가.

반대로 민주당의 승리는 변광용 개인의 승리였는가. 아니면 민주당이라는 브랜드의 승리였는가.

사실 이 두 질문은 같은 질문이다.

표차의 정치학

선거는 숫자로 끝난다.
그러나 숫자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유권자는 심리로 움직인다. 실제 표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느끼는 표차다. 이를 정치학에서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고 부른다.

어짜피 안 될 건데 사표만들지 말자. 이기고 있는 쪽으로 표가 몰리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실제 격차가 4%포인트밖에 되지 않아도 여론조사에서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고 인식되는 순간 유권자들의 심리는 급격히 흔들린다.

"이미 끝난 선거 아니야?"
"이길 수 없는 게임인데?" 라는 생각이 생긴다.

선거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 표가 이동하면 단순히 1표가 아니다. 상대는 1표를 잃고 나는 1표를 얻는다.
실질적 효과는 2표다. 그래서 선거는 생각보다 작은 심리 변화가 거대한 결과를 만든다.

거제는 정말 민주당 도시가 됐는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오해가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며 말한다.

"거제가 민주당 도시가 됐다."
그러나 당 지지율을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거제는 오랫동안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다.

조선산업 노동자들이 많지만 동시에 자영업자와 중산층, 전통적 보수층도 두텁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종합해도 거제가 압도적 민주당 우세지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즉, 민주당 지지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아니라 국민의힘 지지층이 무너진 것이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민주당의 확장이 아니라 국민의힘의 붕괴다.

민주당이 잘해서 이긴 선거였나

정치평론가들은 종종 승자를 과대평가한다. 하지만 선거는 상대평가다.

100점을 받아서 이기는 선거도 있지만 상대가 40점을 받아서 이기는 선거도 있다.

이번 거제 선거를 보면 민주당이 완벽해서 승리했다기보다 국민의힘이 견제세력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유권자는 반드시 여당을 사랑해서 표를 주는 것이 아니다. 야당이 싫어서 표를 주는 경우도 많다.

민주주의는 결국 선택의 경쟁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어느 순간 선택지가 아니라 배제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잃어버린 것

국민의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이 아니다. 존재 이유다.

정당은 유권자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야 한다. "왜 당신이 우리를 선택해야 하는가."
그런데 최근 국민의힘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과거 보수정당은 적어도 명확한 가치가 있었다.

안보. 시장경제. 책임재정. 지역발전. 산업경쟁력. 그러나 최근 국민의힘은 이념보다 계파가 앞섰고 비전보다 권력투쟁이 앞섰다.

유권자는 미래를 보고 싶은데 정당은 내부를 보고 있었다.

장동혁 체제가 남긴 그림자

정당의 힘은 두 곳에서 나온다. 하나는 지지층을 묶어 세우는 결집력이고, 다른 하나는 중도와 무당층을 끌어들이는 확장력이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정당은 이 두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

최근 국민의힘은 결집에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확장에는 실패했다.

당 지도부는 당내 이견을 조율하기보다 충성 경쟁을 독려했고, 정책 경쟁보다 진영 대결을 강화하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당은 더욱 단단해졌지만 동시에 더욱 좁아졌다.

정당이 내부를 향해 문을 걸어 잠그는 순간 외부를 향한 설득의 언어는 사라진다. 국민의힘은 어느새 지지자들에게는 익숙한 정당이 되었지만 중도층에게는 낯선 정당이 됐다.

특히 장동혁 체제는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를 당의 중심에 놓는 데 집중했다. 문제는 선거는 지지층만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거는 결국 중간지대를 차지하는 세력의 싸움이다.

중도층은 정당이 얼마나 강경한지를 보지 않는다.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본다. 얼마나 공격적인지를 보지 않는다. 얼마나 미래를 이야기하는지를 본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어느 순간부터 상대를 비판하는 데 익숙해졌을 뿐 자신들이 만들 미래를 설명하는 데는 서툴러졌다.

보수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이유

거제는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를 민주당 지지층의 폭발적 증가로 해석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국민의힘 지지층의 이완이다.

민주당을 적극 지지해서라기보다 국민의힘에 기대를 접은 유권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상대 지지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지지자가 더 이상 열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정당은 유권자에게 승리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최근 국민의힘은 승리의 서사보다 패배의 정서를 먼저 만들어냈다.

당내 갈등은 반복됐고, 지도부의 리더십은 흔들렸으며, 비전은 보이지 않았다. 정권을 견제해야 할 야당이 국민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내부 문제에 매몰되는 모습이 반복됐다.

결국 보수 유권자들 사이에는 "이번에도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선거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심리가 먼저 움직인다. 패배는 개표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마음속에서 먼저 시작된다.

결사대오가 깨진 보수

보수정당의 가장 큰 자산은 조직력이다.
과거 보수는 선거 때마다 위기감을 공유하며 결집했다.

그러나 최근 국민의힘은 이러한 결사대오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당내 계파 갈등과 지도부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조직이나 연대도 사라졌다. 선거 과정에서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모습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더 자주 목격됐다.

유권자는 생각보다 예민하다. 정당 내부에서조차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감지하면 유권자의 선택 역시 흔들린다. 정치는 자신감의 경쟁이기도 하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데 유권자에게 신뢰를 요구할 수는 없다.

거제가 보여준 경고

이번 거제시장 선거는 단순히 한 선거의 승패가 아니다.

보수정당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정치적 기반이 더 이상 자동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에 가깝다.

과거에는 정당 간판만으로도 일정 수준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유권자는 다르다. 정당이 왜 존재하는지,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 왜 자신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국민의힘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2년 뒤 총선도, 4년 뒤 지방선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거제의 변화는 민주당의 압도적 성장이라기보다 국민의힘의 정치적 정체성 위기가 지역 선거를 통해 드러난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의 진짜 패배자는 특정 후보가 아니라, 유권자들에게 더 이상 기대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보수정당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서용찬 기자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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