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창] 나다운 그림
작성 : 2026년 08월 10일(월) 18:28 가+가-
그림을 그릴 때 우리는 쉽게 말한다.
“잘 그렸다.”“못 그렸다.”
그런데 누가 정한 기준일까.
선을 곧게 그어야 하고,사람은 사람답게 그려야 하고,하늘은 하늘색이어야 하고,꽃은 꽃처럼 보여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림을 가르치면서 그림을 그리는 법보다 그림을 평가받는 법부터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선을 긋는 법을 알아야 하고,색을 섞는 법도 알아야 하며,빛과 그림자를 이해해야 한다.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원근법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알게 되면 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을 배웠다고 해서 모든 그림이 같은 모양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다.
사진을 찍으면 된다.
그림에는 사진이 담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그날의 기분,기억,상상,그리고 말로 표현하지 못한 무언가.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가?” 가 아니라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일지도 모른다.
어디에 그릴 것인가.무엇을 담을 것인가.어떤 색을 사용할 것인가.그리고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배워야 할 것은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상상해야 할 것까지 대신 상상해주어서는 안 된다.
과학에는 법칙이 있다.수학에는 답을 찾는 방법이 있다.
더하기와 빼기를 모르면 계산할 수 없고,과학의 기본 원리를 모르면 자연의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배워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인생에는 수학 공식처럼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렇다.
부모가 해야 할 책임을 큰아이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네가 형이니까.”“네가 누나니까.”“동생을 잘 봐야지.”
형과 누나는 부모가 아니다.
동생을 사랑하고 돌볼 수는 있지만,부모의 책임까지 대신 질 수는 없다.
아이에게 책임을 가르치는 것과 어른의 책임을 아이에게 떠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교육은 아이를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서 잘못을 지적할 때도 사람을 부수어서는 안 된다.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림을 찢어버릴 필요는 없다.
다시 그릴 수도 있고, 다른 색을 칠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처음 그린 선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잘못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은 사람을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용서도 그렇다.
“나는 너를 용서했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잘못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용서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용서하는 사람 역시 상대의 잘못 때문에 자신의 마음까지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용서는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잘못이 나의 남은 삶까지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는 상대를 위한 일이면서 결국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림도,교육도,양육도,인생도 결국 비슷하다.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정답까지 대신 그려주어서는 안 된다.
색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어떤 색을 좋아할지는 대신 정할 수 없다.
그림의 기술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어떤 세상을 그릴지는 아이의 몫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그림을 보고 “잘 그렸다.” “못 그렸다.” 라고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무엇을 그리고 싶었니?”
그 질문 하나가 아이의 마음을 열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잘 그리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똑같은 그림이 너무 많다.
비슷한 성공,비슷한 공부,비슷한 직업,비슷한 삶.
그러나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 아이의 그림을 내가 그린 그림과 비교하지 말자.
내가 좋아하는 색을 아이에게 강요하지도 말자.
필요한 기술은 가르치되, 상상할 자유는 남겨두자. 그리고 우리의 그림도 너무 미워하지 말자.
조금 삐뚤어진 선도,지워버리고 싶은 색도,잘못 칠한 것 같은 얼룩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그 그림을 완성한 하나의 색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인생에는 완성된 그림이 없다.
우리는 매일 한 줄씩,한 색씩,우리의 삶을 그려간다.
그러니 잘 그리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림은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는지가 중요하니까.
모닝뉴스 기자 기사 더보기
“잘 그렸다.”“못 그렸다.”
그런데 누가 정한 기준일까.
선을 곧게 그어야 하고,사람은 사람답게 그려야 하고,하늘은 하늘색이어야 하고,꽃은 꽃처럼 보여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림을 가르치면서 그림을 그리는 법보다 그림을 평가받는 법부터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선을 긋는 법을 알아야 하고,색을 섞는 법도 알아야 하며,빛과 그림자를 이해해야 한다.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원근법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알게 되면 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을 배웠다고 해서 모든 그림이 같은 모양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다.
사진을 찍으면 된다.
그림에는 사진이 담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그날의 기분,기억,상상,그리고 말로 표현하지 못한 무언가.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가?” 가 아니라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일지도 모른다.
어디에 그릴 것인가.무엇을 담을 것인가.어떤 색을 사용할 것인가.그리고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배워야 할 것은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상상해야 할 것까지 대신 상상해주어서는 안 된다.
과학에는 법칙이 있다.수학에는 답을 찾는 방법이 있다.
더하기와 빼기를 모르면 계산할 수 없고,과학의 기본 원리를 모르면 자연의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배워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인생에는 수학 공식처럼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렇다.
부모가 해야 할 책임을 큰아이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네가 형이니까.”“네가 누나니까.”“동생을 잘 봐야지.”
형과 누나는 부모가 아니다.
동생을 사랑하고 돌볼 수는 있지만,부모의 책임까지 대신 질 수는 없다.
아이에게 책임을 가르치는 것과 어른의 책임을 아이에게 떠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교육은 아이를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일이어야 한다.
그래서 잘못을 지적할 때도 사람을 부수어서는 안 된다.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림을 찢어버릴 필요는 없다.
다시 그릴 수도 있고, 다른 색을 칠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처음 그린 선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잘못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은 사람을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용서도 그렇다.
“나는 너를 용서했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잘못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용서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용서하는 사람 역시 상대의 잘못 때문에 자신의 마음까지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용서는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잘못이 나의 남은 삶까지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는 상대를 위한 일이면서 결국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림도,교육도,양육도,인생도 결국 비슷하다.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정답까지 대신 그려주어서는 안 된다.
색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어떤 색을 좋아할지는 대신 정할 수 없다.
그림의 기술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어떤 세상을 그릴지는 아이의 몫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그림을 보고 “잘 그렸다.” “못 그렸다.” 라고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무엇을 그리고 싶었니?”
그 질문 하나가 아이의 마음을 열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잘 그리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교육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똑같은 그림이 너무 많다.
비슷한 성공,비슷한 공부,비슷한 직업,비슷한 삶.
그러나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 아이의 그림을 내가 그린 그림과 비교하지 말자.
내가 좋아하는 색을 아이에게 강요하지도 말자.
필요한 기술은 가르치되, 상상할 자유는 남겨두자. 그리고 우리의 그림도 너무 미워하지 말자.
조금 삐뚤어진 선도,지워버리고 싶은 색도,잘못 칠한 것 같은 얼룩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그 그림을 완성한 하나의 색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인생에는 완성된 그림이 없다.
우리는 매일 한 줄씩,한 색씩,우리의 삶을 그려간다.
그러니 잘 그리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림은 잘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는지가 중요하니까.
newsmorning@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