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학교 통합, 정말 답인가
역사·산업·지역을 지우는 국방교육 개편의 함정
작성 : 2026년 08월 13일(목) 12:28 가+가-
육군·해군·공군 사관학교를 하나로 묶는 국방교육 개편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분명하다. 미래전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고, 육·해·공군의 경계를 넘어서는 합동성이 중요해진 만큼 사관생도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우주, 사이버, 무인체계 등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미래 군사환경에 대응하려면 각 군의 칸막이를 넘어선 교육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합동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육사·해사·공사를 하나로 모아야 하는가.
공통교육을 강화하는 것과 학교 자체를 통합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합동교육을 위해 학교까지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가.”
통합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육·해·공군은 전쟁을 함께 수행한다. 그러나 전쟁의 공간과 임무는 다르다.
육군에게 지상은 단순한 교육장이 아니라 작전의 공간이다.
해군에게 바다는 교과서가 아니라 현장이다.
공군에게 하늘과 우주는 미래전의 무대다.
따라서 사관학교 교육에는 공통적으로 필요한 교육과 각 군만이 가질 수 있는 전문교육이 함께 존재한다.
헌법과 군 통수체계, 국제정세, 군사전략, AI, 사이버, 우주 등은 공동교육으로 묶을 수 있다. 생도 간 교류와 합동훈련도 확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학교를 하나로 합치지 않고도 합동성을 강화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공통교육은 통합하고, 전문교육은 특화하는 방식이다.
통합이 유일한 해답인지부터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학교 하나’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
사관학교를 일반적인 교육기관처럼 생각하면 통합의 논리는 간단해진다.
학생과 교수, 시설을 한곳에 모으면 운영이 효율적이고 교육자원을 공동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관학교는 일반 대학과 다르다.
한 지역에 오랜 기간 존재하면서 사람을 모으고, 교육과 연구를 만들고, 군 관련 산업과 연결되고,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만들어온 국가기관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지역의 ‘앵커기관’이다.
생도와 교수·교직원이 머물고, 가족과 동문이 방문한다. 입학식과 졸업식, 임관식 등 각종 행사가 이어진다. 숙박·음식·교통·소매·서비스업과 연결된다.
직접 소비효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관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와 군 관련 기관, 연구기관, 기업의 연결까지 고려하면 학교 하나의 이전은 건물과 인력의 이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역에 축적된 집적효과가 함께 움직이는 문제다.
따라서 사관학교 통합을 논하면서 이전 비용과 운영 효율만 따지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반대로 묻는 것이 먼저다.
“그 지역에서 무엇을 잃게 되는가.”
진해에서 해사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해군사관학교 문제는 특히 그렇다.
진해에서 해군은 하나의 군종을 넘어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에 가깝다.
해군의 역사, 군항도시의 형성, 해군 관련 시설, 군항제와 지역문화, 주변 상권과 관광자원까지 오랜 시간 축적돼 왔다.
그 중심에 해군사관학교가 있다.
해사는 단순히 해군 장교를 교육하는 학교가 아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를 보존하고 재생산하는 공간이며, 진해라는 도시가 가진 해양안보의 상징자산이기도 하다.
물론 해사 역시 시대 변화에 맞게 교육체계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명제와 별개다.
역사를 개혁하는 것과 역사의 공간을 없애는 것은 다르다.
아픈 역사도 역사다
사관학교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군사정권의 역사와 정치군인의 문제를 빼놓을 수는 없다.
5·16과 12·12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픈 기록이다.
군의 정치개입이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것과 그 시대를 만들어낸 제도 전체를 현재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관학교에서 배출된 모든 군인을 정치군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듯, 사관학교의 역사 전체를 군사정권의 역사로 환원할 수도 없다.
수많은 장교들이 전쟁과 국방의 현장에서 국가를 지켰고, 대한민국 군의 전문화와 현대화에 기여했다.
해군과 공군 역시 마찬가지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거에 현재가 지배당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역사교육이다.
군의 정치개입이 왜 잘못됐는지, 군인의 충성 대상이 특정 정권이 아니라 헌법과 국민이어야 하는지를 사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교육이 될 수 있다.
과거를 단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우는 것이다.
그러나 성숙한 사회가 선택하는 방법은 기록하고 가르치고 성찰하는 것이다.
교육도 산업이다
여기서 사관학교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필요하다.
교육도 산업이다.
대학을 지역경제의 중요한 자산으로 보는 이유는 학생들이 소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재를 만들고 지식을 생산하며 기업과 연구기관을 연결하고 지역의 브랜드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관학교도 다르지 않다.
특히 미래의 사관학교라면 더 그렇다.
AI, 사이버, 우주, 드론, 무인체계, 자율운항, 수중센서 등 군사기술은 민간산업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해사는 오히려 해양 AI와 자율운항, 무인수상정·무인잠수정, 수중감시체계, 잠수함 기술 등과 연결된 연구·교육의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육사는 지상무인체계와 국방로봇, 공사는 항공·우주와 미래항공체계 등으로 특화할 수도 있다.
공통교육은 국가 차원에서 통합하고, 각 지역의 전문교육과 연구기능은 특화하는 방식이다.
통합이 아니라 네트워크다.
학교를 하나로 만드는 것보다 학교와 연구기관, 방산기업, 대학을 연결하는 것이 미래전 교육에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정부의 지역 이전 정책과도 묘한 충돌
여기서 더 큰 질문이 나온다.
최근 국가균형발전의 핵심은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기관과 정부 기능을 지역으로 분산하는 것이었다.
기관을 지역으로 옮기고, 지역에 사람을 머물게 하고, 지역에 산업과 교육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국가정책의 중요한 방향이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지역에 수십 년, 길게는 80년 가까이 뿌리내린 국가 교육기관을 다시 한곳으로 모으려 한다.
이것은 단순한 사관학교 문제가 아니다.
국가는 기관을 지역에 보내면서 왜 이미 지역에 존재하는 국가기관의 가치는 다시 중앙집중 방식으로 계산하는가.
물론 대전에는 국방과학연구와 연구개발 인프라가 있고, 국방교육과 첨단기술을 결합하기 좋은 조건이 있다.
그렇다면 대전에 새로운 국방교육 거점을 만드는 것과 기존 사관학교를 해체하는 것은 반드시 같은 선택이어야 하는가.
대전에 국방AI·우주·사이버·합동전략 등 공통교육과 연구를 집적하고, 진해에는 해양안보와 해양방산, 함정·잠수함·무인해양체계 교육과 연구를 특화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대전과 진해를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역할을 나누는 것이다.
통합의 효율보다 해체의 비용부터 계산해야
정책에는 늘 비용과 편익이 따른다.
그렇다면 사관학교 통합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대전에 무엇이 생기는가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육사·해사·공사가 있던 지역에서 무엇이 사라지는지도 계산해야 한다.
학교 운영비가 얼마나 절감되는지뿐 아니라 지역의 소비와 인구, 교육·연구 네트워크, 역사문화 자산, 지역 브랜드, 군 관련 산업과의 연결성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특히 진해의 경우 해사를 둘러싼 해군 관련 시설과 조선·방산산업이 형성한 집적효과를 따져봐야 한다.
국가자산을 이동시키려면 이전의 편익과 해체의 비용을 동시에 계산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이다.
한쪽 숫자만 계산하는 순간 정책은 현실과 멀어진다.
진해에 필요한 것은 ‘해사를 대신할 공장’이 아니다
만약 해사를 이전한다면 진해가 요구해야 할 것은 단순한 보상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진해를 대한민국 해양안보와 해양방산의 국가 거점으로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해양무인체계와 수중센서, 자율운항, 잠수함 기술 등을 연구하는 국가 연구기관을 만들고, 해군과 조선·방산기업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센터를 구축할 수 있다.
진해만을 활용한 해양방산 테스트베드도 가능하다.
거제와 창원, 부산으로 이어지는 조선·방산산업과 연결하면 동남권 해양방산 클러스터의 한 축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해군의 역사를 보존하고 교육·관광 콘텐츠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이렇게 접근하면 해사 이전은 지역의 상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해의 다음 80년을 설계하는 국가 프로젝트 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그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가 답해야 할 질문
그래서 이번 사관학교 통합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통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다음 질문들이다.
합동성은 왜 학교 통합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가.
공통교육과 전문교육을 분리하는 대안은 검토했는가.
사관학교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집적효과를 조사했는가.
80년 가까이 축적된 역사적·사회적 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해사를 옮긴 뒤 진해의 해양안보 생태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하면서 왜 기존 지역의 국가자산을 다시 한곳으로 모아야 하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효율은 누구를 위한 효율인가.”
국가 전체의 효율을 이야기하려면 한 지역의 손실을 다른 지역의 편익으로 단순 치환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어느 한 지역을 선택해 다른 지역의 자산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 축적된 자산을 국가 전체의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사관학교 개혁의 답은 ‘통합’이 아닐 수도 있다
사관학교가 변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미래전은 변하고 있고 군 교육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이 반드시 통합이어야 하는지는 아직 논쟁의 영역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사관학교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서로 다른 역사와 전문성을 가진 육·해·공군이 각자의 현장에서 축적해온 경험일 수 있다.
이를 하나로 지우기보다 연결하는 것이 미래전 교육에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육사·해사·공사를 하나의 학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 학교를 하나의 교육·연구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통합보다 더 합동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역의 역사와 산업을 국가전략에 연결하는 것이 진정한 균형발전일 수 있다.
사관학교의 과거가 완벽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잘못된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아픈 과거가 있다고 해서 그 공간과 전통과 긍정적 역사까지 함께 폐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잊지 않아야 한다.그러나 과거에 지배당해서도 안 된다.
국가의 개혁은 과거를 지우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과거의 자산과 실패를 모두 끌어안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관학교 통합 논의가 진정한 국방개혁이라면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한다.
통합으로 무엇을 얻는가가 아니라, 통합 때문에 무엇을 잃게 되는지까지 계산했는가.
그 계산서가 있어야 비로소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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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분명하다. 미래전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고, 육·해·공군의 경계를 넘어서는 합동성이 중요해진 만큼 사관생도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우주, 사이버, 무인체계 등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미래 군사환경에 대응하려면 각 군의 칸막이를 넘어선 교육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합동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육사·해사·공사를 하나로 모아야 하는가.
공통교육을 강화하는 것과 학교 자체를 통합하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왜 합동교육을 위해 학교까지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가.”
통합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육·해·공군은 전쟁을 함께 수행한다. 그러나 전쟁의 공간과 임무는 다르다.
육군에게 지상은 단순한 교육장이 아니라 작전의 공간이다.
해군에게 바다는 교과서가 아니라 현장이다.
공군에게 하늘과 우주는 미래전의 무대다.
따라서 사관학교 교육에는 공통적으로 필요한 교육과 각 군만이 가질 수 있는 전문교육이 함께 존재한다.
헌법과 군 통수체계, 국제정세, 군사전략, AI, 사이버, 우주 등은 공동교육으로 묶을 수 있다. 생도 간 교류와 합동훈련도 확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학교를 하나로 합치지 않고도 합동성을 강화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공통교육은 통합하고, 전문교육은 특화하는 방식이다.
통합이 유일한 해답인지부터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학교 하나’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
사관학교를 일반적인 교육기관처럼 생각하면 통합의 논리는 간단해진다.
학생과 교수, 시설을 한곳에 모으면 운영이 효율적이고 교육자원을 공동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관학교는 일반 대학과 다르다.
한 지역에 오랜 기간 존재하면서 사람을 모으고, 교육과 연구를 만들고, 군 관련 산업과 연결되고,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만들어온 국가기관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지역의 ‘앵커기관’이다.
생도와 교수·교직원이 머물고, 가족과 동문이 방문한다. 입학식과 졸업식, 임관식 등 각종 행사가 이어진다. 숙박·음식·교통·소매·서비스업과 연결된다.
직접 소비효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관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와 군 관련 기관, 연구기관, 기업의 연결까지 고려하면 학교 하나의 이전은 건물과 인력의 이동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역에 축적된 집적효과가 함께 움직이는 문제다.
따라서 사관학교 통합을 논하면서 이전 비용과 운영 효율만 따지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반대로 묻는 것이 먼저다.
“그 지역에서 무엇을 잃게 되는가.”
진해에서 해사를 빼면 무엇이 남는가
해군사관학교 문제는 특히 그렇다.
진해에서 해군은 하나의 군종을 넘어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에 가깝다.
해군의 역사, 군항도시의 형성, 해군 관련 시설, 군항제와 지역문화, 주변 상권과 관광자원까지 오랜 시간 축적돼 왔다.
그 중심에 해군사관학교가 있다.
해사는 단순히 해군 장교를 교육하는 학교가 아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를 보존하고 재생산하는 공간이며, 진해라는 도시가 가진 해양안보의 상징자산이기도 하다.
물론 해사 역시 시대 변화에 맞게 교육체계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명제와 별개다.
역사를 개혁하는 것과 역사의 공간을 없애는 것은 다르다.
아픈 역사도 역사다
사관학교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군사정권의 역사와 정치군인의 문제를 빼놓을 수는 없다.
5·16과 12·12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픈 기록이다.
군의 정치개입이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는 것과 그 시대를 만들어낸 제도 전체를 현재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관학교에서 배출된 모든 군인을 정치군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듯, 사관학교의 역사 전체를 군사정권의 역사로 환원할 수도 없다.
수많은 장교들이 전쟁과 국방의 현장에서 국가를 지켰고, 대한민국 군의 전문화와 현대화에 기여했다.
해군과 공군 역시 마찬가지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거에 현재가 지배당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역사교육이다.
군의 정치개입이 왜 잘못됐는지, 군인의 충성 대상이 특정 정권이 아니라 헌법과 국민이어야 하는지를 사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교육이 될 수 있다.
과거를 단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우는 것이다.
그러나 성숙한 사회가 선택하는 방법은 기록하고 가르치고 성찰하는 것이다.
교육도 산업이다
여기서 사관학교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필요하다.
교육도 산업이다.
대학을 지역경제의 중요한 자산으로 보는 이유는 학생들이 소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재를 만들고 지식을 생산하며 기업과 연구기관을 연결하고 지역의 브랜드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관학교도 다르지 않다.
특히 미래의 사관학교라면 더 그렇다.
AI, 사이버, 우주, 드론, 무인체계, 자율운항, 수중센서 등 군사기술은 민간산업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해사는 오히려 해양 AI와 자율운항, 무인수상정·무인잠수정, 수중감시체계, 잠수함 기술 등과 연결된 연구·교육의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육사는 지상무인체계와 국방로봇, 공사는 항공·우주와 미래항공체계 등으로 특화할 수도 있다.
공통교육은 국가 차원에서 통합하고, 각 지역의 전문교육과 연구기능은 특화하는 방식이다.
통합이 아니라 네트워크다.
학교를 하나로 만드는 것보다 학교와 연구기관, 방산기업, 대학을 연결하는 것이 미래전 교육에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정부의 지역 이전 정책과도 묘한 충돌
여기서 더 큰 질문이 나온다.
최근 국가균형발전의 핵심은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기관과 정부 기능을 지역으로 분산하는 것이었다.
기관을 지역으로 옮기고, 지역에 사람을 머물게 하고, 지역에 산업과 교육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국가정책의 중요한 방향이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지역에 수십 년, 길게는 80년 가까이 뿌리내린 국가 교육기관을 다시 한곳으로 모으려 한다.
이것은 단순한 사관학교 문제가 아니다.
국가는 기관을 지역에 보내면서 왜 이미 지역에 존재하는 국가기관의 가치는 다시 중앙집중 방식으로 계산하는가.
물론 대전에는 국방과학연구와 연구개발 인프라가 있고, 국방교육과 첨단기술을 결합하기 좋은 조건이 있다.
그렇다면 대전에 새로운 국방교육 거점을 만드는 것과 기존 사관학교를 해체하는 것은 반드시 같은 선택이어야 하는가.
대전에 국방AI·우주·사이버·합동전략 등 공통교육과 연구를 집적하고, 진해에는 해양안보와 해양방산, 함정·잠수함·무인해양체계 교육과 연구를 특화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대전과 진해를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역할을 나누는 것이다.
통합의 효율보다 해체의 비용부터 계산해야
정책에는 늘 비용과 편익이 따른다.
그렇다면 사관학교 통합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대전에 무엇이 생기는가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육사·해사·공사가 있던 지역에서 무엇이 사라지는지도 계산해야 한다.
학교 운영비가 얼마나 절감되는지뿐 아니라 지역의 소비와 인구, 교육·연구 네트워크, 역사문화 자산, 지역 브랜드, 군 관련 산업과의 연결성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특히 진해의 경우 해사를 둘러싼 해군 관련 시설과 조선·방산산업이 형성한 집적효과를 따져봐야 한다.
국가자산을 이동시키려면 이전의 편익과 해체의 비용을 동시에 계산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이다.
한쪽 숫자만 계산하는 순간 정책은 현실과 멀어진다.
진해에 필요한 것은 ‘해사를 대신할 공장’이 아니다
만약 해사를 이전한다면 진해가 요구해야 할 것은 단순한 보상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진해를 대한민국 해양안보와 해양방산의 국가 거점으로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해양무인체계와 수중센서, 자율운항, 잠수함 기술 등을 연구하는 국가 연구기관을 만들고, 해군과 조선·방산기업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센터를 구축할 수 있다.
진해만을 활용한 해양방산 테스트베드도 가능하다.
거제와 창원, 부산으로 이어지는 조선·방산산업과 연결하면 동남권 해양방산 클러스터의 한 축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해군의 역사를 보존하고 교육·관광 콘텐츠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이렇게 접근하면 해사 이전은 지역의 상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해의 다음 80년을 설계하는 국가 프로젝트 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그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가 답해야 할 질문
그래서 이번 사관학교 통합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통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다음 질문들이다.
합동성은 왜 학교 통합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가.
공통교육과 전문교육을 분리하는 대안은 검토했는가.
사관학교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집적효과를 조사했는가.
80년 가까이 축적된 역사적·사회적 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해사를 옮긴 뒤 진해의 해양안보 생태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하면서 왜 기존 지역의 국가자산을 다시 한곳으로 모아야 하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효율은 누구를 위한 효율인가.”
국가 전체의 효율을 이야기하려면 한 지역의 손실을 다른 지역의 편익으로 단순 치환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어느 한 지역을 선택해 다른 지역의 자산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 축적된 자산을 국가 전체의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사관학교 개혁의 답은 ‘통합’이 아닐 수도 있다
사관학교가 변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미래전은 변하고 있고 군 교육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변화의 방향이 반드시 통합이어야 하는지는 아직 논쟁의 영역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사관학교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서로 다른 역사와 전문성을 가진 육·해·공군이 각자의 현장에서 축적해온 경험일 수 있다.
이를 하나로 지우기보다 연결하는 것이 미래전 교육에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육사·해사·공사를 하나의 학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 학교를 하나의 교육·연구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통합보다 더 합동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역의 역사와 산업을 국가전략에 연결하는 것이 진정한 균형발전일 수 있다.
사관학교의 과거가 완벽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잘못된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아픈 과거가 있다고 해서 그 공간과 전통과 긍정적 역사까지 함께 폐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잊지 않아야 한다.그러나 과거에 지배당해서도 안 된다.
국가의 개혁은 과거를 지우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과거의 자산과 실패를 모두 끌어안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관학교 통합 논의가 진정한 국방개혁이라면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한다.
통합으로 무엇을 얻는가가 아니라, 통합 때문에 무엇을 잃게 되는지까지 계산했는가.
그 계산서가 있어야 비로소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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