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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칼럼] 끝내 무엇을 소유했는가
“욕망은 작은 그릇에서 시작해 세상을 가두는 댐이 된다”
작성 : 2026년 08월 31일(월) 11:19 가+가-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인류의 문명도 물을 따라 흘렀다. 나일강과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과 황허강. 사람들은 강가에 모여 농사를 짓고 마을을 이루었으며 도시와 국가를 만들었다.
물은 생명을 낳았고 문명을 일으켰다.

그런데 물은 생명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욕망의 시작 이기도 했다.
처음 인간에게 필요한 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두 손으로 떠 마실 수 있고, 표주박 하나에 담을 수 있으면 됐다. 깨끗한 물 한 모금이면 목마름이 가셨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순간 표주박보다 큰 그릇을 원하기 시작했다.
그릇이 커지자 더 많은 물이 필요했고, 더 많은 물을 가지려 하자 물이 흐르는 길을 막기 시작했다. 수로를 만들고 둑을 쌓고 마침내 거대한 댐을 세웠다.

처음에는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가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고, 물을 필요한 곳에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소유의 욕망이 끼어드는 순간 물은 흐르는 생명이 아니라 가두어야 할 자산 이 된다.

물을 가진 자가 힘을 갖게 되고, 물길을 통제하는 자가 사람의 삶까지 통제하게 된다.
문명은 그렇게 질서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소유의 경계도 만들었다.

욕망의 시작은 작은 점 하나처럼 보인다.
조금 더 가지려는 마음,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마음,
조금 더 인정받으려는 마음이다.
점 하나가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마침내 다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처럼 커진다.

한 사람이 담을 수 있는 만족할 만 한 그릇의 크기는 어느정도일까.
그릇의 크기는 소유의 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워낼 수 있는 깊이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욕망에는 마지막이 없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원하고, 둘을 가지면 열을 원한다.
마침내 사람이 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 사람을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울타리를 만든다.
내 땅과 네 땅을 나누고,
내 물과 네 물을 나누고,
우리와 그들을 나눈다.

국가도 울타리를 만들고, 종교도 울타리를 만들며, 권력도 울타리를 만든다.
질서를 위한 경계는 필요하다.

문제는 경계가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사람을 배제하기 시작할 때다.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고, 밖에 있는 사람을 부족한 존재로 바라본다.
그때 선민의식이 생긴다.

부가 계급이 되고, 계급은 권력이 되며, 권력은 자신을 보호할 또 다른 질서를 만든다.
그렇게 사회는 어느 순간 거대한 설국열차처럼 변한다.
같은 열차를 타고 있지만 객차는 다르고, 같은 물을 필요로 하지만 물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전혀 달라진다.

더 무서운 것은 욕망이 사람의 눈을 가린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사람이 물을 바라본다.
그러나 욕망이 커지면 물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 많이 가진 것만 보이고, 더 높은 자리가 보이고, 더 강한 권력이 보인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것을 가지려 했는지는 잊어버린다.

욕망이 또아리를 트는 순간 신은 영안(靈眼)을 거두어가고 그 자리는 욕망의 눈이 또아리를 튼다.

사람은 자신이 갇힌 울타리를 보고 세상이라고 믿는다.
울타리 밖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한다.
자신이 가둔 것은 물이었지만, 결국 가두어진 것은 자신이었다.


성경은 인간에게 이 땅을 맡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유'와 '맡김'은 다르다.
맡겨진 것은 영원히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사용하는 동안에도 다음 세대의 몫이 남아 있고, 내가 누리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의 몫이 있다.

성경의 희년 사상 역시 결국 이 지점으로 돌아온다.
땅은 영원히 사고팔아 한 사람의 소유로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었다.

우리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은 종교의 언어를 넘어 오늘의 사회에도 던지는 질문이다.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자연은 누구의 것인가.
권력은 누구의 것인가.
종교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가진 재산은 과연 온전히 우리의 것인가.

물이 흐르지 않고 한곳에 고이면 썩는다.
권력도 그렇다.
부도 그렇다.
지식도 그렇다.
심지어 신앙도 그렇다.
흐르지 않는 것은 생명을 잃는다.
그래서 강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높은 곳에 머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까지 도달하기 위해 흐른다.
인간이 만든 댐은 물을 잠시 가둘 수 있지만, 자연의 흐름까지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어떤 권력도 영원하지 않았고, 어떤 부도 영원하지 않았으며, 어떤 국가도 영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은 결국 우리 손을 떠났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큰 착각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인지 모른다.
신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주인이든 나그네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목이 마르면 물을 찾는다.

지위와 상관없이 왕도 목이 마르고 거지도 목이 마른다.
권력자도 물이 필요하고 이름 없는 사람도 물이 필요하다.
생명 앞에서는 모두가 같다.

그런데 인간은 그 물에 다시 이름표를 붙인다.
누구의 물인지,
누가 관리하는지,
누가 더 많이 가져야 하는지,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를 정한다.
질서를 위해 만든 규칙이 어느 순간 소유를 위한 장벽이 된다.

두 손이면 충분했던 물.
표주박 하나면 충분했던 물.
목을 축이고 생명을 이어주면 그만이었던 물.
인간은 왜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욕망의 문제는 그릇의 크기가 아니라 족함을 모르는 마음 에 있는지 모른다.
세상에는 아무리 큰 그릇을 가져도 목마른 사람이 있고, 작은 그릇 하나로도 평생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진짜 가난은 가진 것이 적은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반대로 진짜 풍요는 많이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
내게 필요한 만큼 누리고, 나머지는 흘려보낼 수 있는 데 있다.

강물을 모두 가두어 놓으면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다.
생명을 품고 흘러야 할 물이 소유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 물은 사람을 살리는 것에서 사람을 지배하는 것으로 바뀐다.

국가도, 권력도, 종교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울타리를 높이고 그 안에 권위와 부와 정보를 쌓아두는 순간, 그것은 공동체를 위한 질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성벽이 된다.

그리고 성벽이 높아질수록 안에 있는 사람은 안전하다고 믿지만, 역설적으로 세상과의 연결은 끊어진다. 결국 가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신은 인간에게 이 땅을 허락했을 뿐, 영원한 소유권을 넘긴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잠시 맡아 쓰는 사람들이다.
오늘의 물도,
오늘의 땅도,
오늘의 권력도,
오늘의 부도,
오늘의 생명도 그렇다.

그러니 물을 가둔 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물을 소유한 것인가, 아니면 물을 잠시 맡은 것인가.
그리고 더 큰 그릇을 가진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 그릇은 얼마나 큰가가 아니라, 언제 비울 수 있는가.

욕망은 세상을 소유하려 하지만 지혜는 흘려보낼 줄 안다.
물은 높은 곳에 머물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도 그래야 한다.
흐르는 물처럼 살고, 맡겨진 것을 지키며, 내 것이 아닌 것에는 욕심을 내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오래된 사용설명서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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