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개혁 대통령에서 국민의 대통령으로
작성 : 2026년 09월 18일(금) 13:57 가+가-
이재명 대통령의 오늘 기자회견은 국민에게 한발 더 다가서겠다는 성찰의 메시지로 시작했다.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 실망과 우려에 대해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배려와 섬세함, 소통, 국민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을 수 있다고 했다. ‘언제나 국민이 옳다’는 말도 거듭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더 듣겠다고 한 것은 당연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반성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을 ‘개혁 대통령’으로 규정했고 검찰개혁을 비롯한 사회대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1987년 헌법을 시대에 맞지 않는 헌법으로 규정하며 개헌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여기서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개혁의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혁의 방식이 아닌가.
국가는 대통령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대통령 역시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람이다. 대통령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곧 국가가 따라야 할 가치가 되는 순간, 개혁은 국민을 위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대통령의 세계관을 제도화하는 일로 비칠 수 있다.
대통령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대통령의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는 참모도 필요하다. 그러나 믿을 만한 사람만 곁에 두면 대통령의 귀에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어올 수 있다.
내 생각과 같은 말이 옳은 말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에게 필요한 사람은 대통령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사람과 함께 대통령의 생각에 틀린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인사의 탕평이고 국정의 균형이다.
오늘 회견에서 민주주의와 진보, 개혁을 함께 추구한 사람들을 두고 “모두 친문이고 친노이며 친김대중이고 이재명의 동지들”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아쉽다.
정치적 맥락에서는 당내 갈등을 봉합하고 서로를 배척하지 말자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자리에서는 다르게 들릴 수 있다.
대통령은 정당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을 기억하는 국민도 국민이고 노무현을 기억하는 국민도 국민이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국민도 국민이고 그들과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진 국민도 국민이다.
국민이 특정 정권이나 이념에 매몰돼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각은 세뇌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과 시대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산업화의 기억도 대한민국의 역사이고 민주화의 기억도 역사다. 어느 정부에 대한 지지와 실망도 모두 역사의 일부다. 역사는 과거와 단절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기억하되 과거에 갇히지 않는 것, 그것이 역사에 대한 존중이고 포용이다.
그래서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에게 과거를 잊으라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국민이 어떤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 보여주는 일이다.
사법개혁도 같은 기준에서 봐야 한다.
개인의 경험이 제도의 문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개인이 겪은 일이 곧 국가 전체의 제도적 문제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 자신의 경험과 국가의 시스템은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억울함을 국가의 제도적 억울함으로 확대해서도 안 되고,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국가 시스템의 기준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개혁은 제도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문제가 있는 곳을 찾아 고치는 일이다.
병든 가지가 있다면 가지를 잘라내야 한다. 병든 가지 하나를 보고 나무 전체를 없애는 것이 개혁일 수는 없다.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잘못된 제도가 있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찾아 고치고, 그 과정에서 권력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견제 장치를 함께 만드는 것이 제도개혁의 본래 목적이어야 한다.
모든 제도는 국민의 자유를 넓히기 위해 존재한다.
국민이 제도 때문에 부득이하게 감당해야 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제도가 국민에게 더 많은 선택과 자유를 돌려주는 방향이어야 한다.
물에 비친 달을 진짜 달이라고 생각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아서는 안 된다.
제도가 목적이 되는 순간 국민은 사라지고 제도만 남는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오늘 개헌에 대해 “대통령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와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자신은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 말 자체는 분명하다.
다만 ‘연임할 생각이 없다’와 ‘개헌으로 연임이 가능해져도 연임하지 않겠다’는 말에는 정치적 의미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현재의 의사이고 후자는 미래의 선택에 대한 약속이다.
대통령이 정말 개헌을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일로 생각한다면, 개헌의 혜택이 자신에게 돌아가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될 국가의 규칙을 만드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개헌의 중심에 서는 순간 개헌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논의에서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관한 논쟁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 회견에서 대통령이 보여줘야 할 가장 큰 변화는 개혁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개혁의 중심에서 대통령 자신이 조금 더 내려오는 것이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나라보다 국민이 요구하고 전문가가 검증하며 국회가 논의하고 행정부가 집행하고 사법부가 견제하는 나라가 더 오래 간다.
대통령이 옳기 때문에 작동하는 시스템보다 대통령이 틀렸을 때도 작동하는 시스템이 더 강한 국가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철학을 국가에 남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떠난 뒤에도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제도를 남기는 일이다.
‘국민은 언제나 옳다’는 대통령의 오늘 말이 진정한 국정철학이 되려면 그 말은 선언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국민이 대통령의 생각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내가 아니어도 국민이 원하는 결대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는 것.
그때 비로소 ‘개혁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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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더 듣겠다고 한 것은 당연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반성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을 ‘개혁 대통령’으로 규정했고 검찰개혁을 비롯한 사회대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1987년 헌법을 시대에 맞지 않는 헌법으로 규정하며 개헌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여기서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개혁의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혁의 방식이 아닌가.
국가는 대통령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대통령 역시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람이다. 대통령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곧 국가가 따라야 할 가치가 되는 순간, 개혁은 국민을 위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대통령의 세계관을 제도화하는 일로 비칠 수 있다.
대통령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대통령의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는 참모도 필요하다. 그러나 믿을 만한 사람만 곁에 두면 대통령의 귀에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어올 수 있다.
내 생각과 같은 말이 옳은 말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에게 필요한 사람은 대통령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사람과 함께 대통령의 생각에 틀린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인사의 탕평이고 국정의 균형이다.
오늘 회견에서 민주주의와 진보, 개혁을 함께 추구한 사람들을 두고 “모두 친문이고 친노이며 친김대중이고 이재명의 동지들”이라고 표현한 대목도 아쉽다.
정치적 맥락에서는 당내 갈등을 봉합하고 서로를 배척하지 말자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자리에서는 다르게 들릴 수 있다.
대통령은 정당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을 기억하는 국민도 국민이고 노무현을 기억하는 국민도 국민이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국민도 국민이고 그들과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진 국민도 국민이다.
국민이 특정 정권이나 이념에 매몰돼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각은 세뇌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과 시대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산업화의 기억도 대한민국의 역사이고 민주화의 기억도 역사다. 어느 정부에 대한 지지와 실망도 모두 역사의 일부다. 역사는 과거와 단절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기억하되 과거에 갇히지 않는 것, 그것이 역사에 대한 존중이고 포용이다.
그래서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에게 과거를 잊으라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국민이 어떤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지 보여주는 일이다.
사법개혁도 같은 기준에서 봐야 한다.
개인의 경험이 제도의 문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개인이 겪은 일이 곧 국가 전체의 제도적 문제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 자신의 경험과 국가의 시스템은 분리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억울함을 국가의 제도적 억울함으로 확대해서도 안 되고,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국가 시스템의 기준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개혁은 제도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문제가 있는 곳을 찾아 고치는 일이다.
병든 가지가 있다면 가지를 잘라내야 한다. 병든 가지 하나를 보고 나무 전체를 없애는 것이 개혁일 수는 없다.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잘못된 제도가 있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찾아 고치고, 그 과정에서 권력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견제 장치를 함께 만드는 것이 제도개혁의 본래 목적이어야 한다.
모든 제도는 국민의 자유를 넓히기 위해 존재한다.
국민이 제도 때문에 부득이하게 감당해야 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제도가 국민에게 더 많은 선택과 자유를 돌려주는 방향이어야 한다.
물에 비친 달을 진짜 달이라고 생각해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아서는 안 된다.
제도가 목적이 되는 순간 국민은 사라지고 제도만 남는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오늘 개헌에 대해 “대통령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와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자신은 연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 말 자체는 분명하다.
다만 ‘연임할 생각이 없다’와 ‘개헌으로 연임이 가능해져도 연임하지 않겠다’는 말에는 정치적 의미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현재의 의사이고 후자는 미래의 선택에 대한 약속이다.
대통령이 정말 개헌을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일로 생각한다면, 개헌의 혜택이 자신에게 돌아가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될 국가의 규칙을 만드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개헌의 중심에 서는 순간 개헌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논의에서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관한 논쟁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 회견에서 대통령이 보여줘야 할 가장 큰 변화는 개혁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개혁의 중심에서 대통령 자신이 조금 더 내려오는 것이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나라보다 국민이 요구하고 전문가가 검증하며 국회가 논의하고 행정부가 집행하고 사법부가 견제하는 나라가 더 오래 간다.
대통령이 옳기 때문에 작동하는 시스템보다 대통령이 틀렸을 때도 작동하는 시스템이 더 강한 국가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철학을 국가에 남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떠난 뒤에도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제도를 남기는 일이다.
‘국민은 언제나 옳다’는 대통령의 오늘 말이 진정한 국정철학이 되려면 그 말은 선언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국민이 대통령의 생각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내가 아니어도 국민이 원하는 결대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는 것.
그때 비로소 ‘개혁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으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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