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솔직해지자구!
이문세 독창회 The Opera를 보고...
작성 : 2004년 02월 10일(화) 00:00 가+가-

이유가 뭘까? 드문드문 빈 좌석…
은근히 부끄러워졌다.
공연 시작 시간이 10여분 지나고 있었지만 막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낮공연이라 그런지 예상외로 관중석엔 빈 자리가 드문드문 보였고, 잠시 후 미처 손님이 다 오지 못한 관계로 지연되고 있다는 애매한 방송 멘트가 흘렀다.
예매 시작하자마자 매진될 것 같아 너무 서두른 것이 그만, 높은 발코니 때문에 무대가 반쯤 잘려 보이는 2층 맨 앞자리가 배정됐다(나는 7만원짜리 R석과 5만원짜리 S석중 S석을 구매했다).
이런 경우 눈치껏 1층으로 내려가는 사람도 있긴 한데…. 그래도 혹시 사람들이 조금 늦게 도착할 수도 있으려니 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관중석에 조명이 어두워질 때까지도 자리는 다 채워지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문화생활’에 목말라하던 이곳 사람들이, 예술회관만 생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던 사람들이, 왜 이런 유명한 공연에 시큰둥한지, 거의 모든 도시에서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는 그 유명한 이문세 공연인데……. 은근히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거제도의 문화적 자존심을 슬슬 긁기 시작하는데
공연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돈을 많이 들였다는 소문이 헛소문은 아닌가 보았다. 귀에 익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주제곡이 흘러나오고 검은 망토에 가면을 쓴 한 남자가 노래를 부르며 등장했다.
“끼악!! 오빠∼!!”
어디선가 탄성이 터져나오기 전까지도 나는 그 웅장한 테너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문세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원래 성악도를 꿈꾸었고, 고교시절에 예고에서 성악을 전공했다고 한다.
지금껏 본 적 없는 화려한 조명과 폭죽, 가슴까지 쩡쩡 울리는 음향, 중간중간 바뀌는 무대장치는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TV에서 익히 보아왔던 이문세의 화술은 거의 예술에 가까왔으며 그의 춤은 여느 십대의 댄스가수 못지 않게 날렵했다.
지역적 특성 때문일까? 그의 팬 중에는 30∼40대가 많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관객은 아줌마(!)였다. 이문세도 그 점을 염두에 두는 것 같았고, 재밌는 멘트를 섞어가며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만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예술회관이 생기기 전엔 경험이 거의 없었을 섬사람들이기에 첫 공연의 성공을 약간은 염려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과연 그는 깍쟁이처럼 그것을 잘 이용했다.
“예술회관이 생긴지 얼마 안 되서 이런 공연 보는 게 처음이신 분들 많죠? 저도 사실 거제도는 처음입니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오는 게 아니라 육로로 온다는 것을 어제 처음 알았거든요!”
은근히 그는 이곳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그것을 역이용 할 줄 알았다. ‘거제도를 무시해? 어디 한번 우리 수준을 보여주자!’라는 묘한 심리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고성, 통영, 거제도 분들이 대부분이지요? 자, 다들 어부의 아내(!)답게 남 눈치 보지 말고 즐겨보세요, 여기 바닷 바람 세잖아요!”
옆 눈치보던 사람들이 점점 공연에 몰입해갔다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즐길 줄 알게 된 것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분위기는 무르익고, 다들 모종의 합의를 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아는 노래는 힘껏 따라 불렀고, 막간을 틈 타 "오빠, 사랑해요!”를 외치는 용감한 아줌마들도 생겨났다.
‘숲 속의 작은 콘서트’세트장이 무대 앞으로 밀려나올 때는 공연의 3/2쯤이 될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시원하고 상큼한 숲 속 향기가 새어나왔다. 이 역시 기획자의 세심한 배려였다.
“오늘 생일이나 기념일 있으신 분!”
미적미적 대던 사람들이 한두명씩 자신의 결혼기념일이나 옆 친구의 생일을 외치기도 했다. 그중 1층 중간쯤에서 마흔 여덟번째 생일이라는 주부가 무대위로 불려 올라왔고 이문세는 그녀를 바라보며 축하곡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녀는 방금 그가 연주한 통기타를 싸인과 함께 선물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부끄러워 몸을 비비꼬던 그녀를 모두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예정된 2시간이 지나고 그가 무대에서 사라지자, 앵콜곡 몇 곡쯤 더 듣고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빗나갔다. 갑자기 빠른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젊은 래퍼와 현란한 복장의 댄서들이 이리저리 무대를 뛰어 다니며 나이트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문세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등장하고 무대는 금방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래! 모두들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터운 옷을 벗고 하나 둘 일어서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어둠이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전혀 어색할 것도 없었다. 점점 자리에 앉아 있기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그후 이런 댄스파티가 약 한 시간은 더 이어졌다.
지역적 차별과 세대간 차별을 뛰어 넘어
지칠 줄 모르고 뛰었더니 겨드랑이가 축축이 젖고 목도 말랐다. 급히 들어가느라 몰랐는데 알고 보니 공연장 입구에는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무료 생수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콘서트를 잘 안 다니는 티가 이럴 때 드러났다. 그리고,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 한가지가 있다.
이런 콘서트장에 올 때 복장은 쉽게 벗을 수 있는 가벼운 차림이 좋다는 것이다. 높은 구두도 금물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공연은 처음이거나 한 두 번이 고작일 것이다. 특히 거제도는 진주나 부산 등 인근 대도시로 먼 걸음 하지 않으면 이런 콘서트 보기가 쉽지 않다. 오늘 공연은 이곳 사람들에게 적잖은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관객 수준은 훌륭했다. 처음에는 약간 걱정하는 듯 했던 이문세도 끝인사에서 첫공연을 훌륭하게 마칠 수 있게 해서 너무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했고, 2년 후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전 한 뉴스에서 이런 보도를 본 적 있다. 요즘 40∼50대가 점점 문화의 중요한 수요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그 예로, 70∼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던 4인 혼성그룹‘아바’의 일대기를 엮은 뮤지컬이 그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많은 중년층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너무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지금까지 문화 혜택에 있어서 지역적 차별뿐만 아니라 세대간 차별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지방에 사는 나이 든 세대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었다. 그러나 오늘 공연을 보고 약간의 희망을 가져본다. 어느덧 아줌마 반열에 들어가는 나로서는 이런 생각이 점점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지….
3시간 반이나 이어졌던 콘서트가 끝나고 대극장을 빠져나오니 밖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갈매기 형상의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 긴 회랑을 지나며 남은 7시 공연은 더 성공적으로 치뤄지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김미령 기자 potzzi@hanmail.net 기사 더보기
은근히 부끄러워졌다.
공연 시작 시간이 10여분 지나고 있었지만 막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낮공연이라 그런지 예상외로 관중석엔 빈 자리가 드문드문 보였고, 잠시 후 미처 손님이 다 오지 못한 관계로 지연되고 있다는 애매한 방송 멘트가 흘렀다.
예매 시작하자마자 매진될 것 같아 너무 서두른 것이 그만, 높은 발코니 때문에 무대가 반쯤 잘려 보이는 2층 맨 앞자리가 배정됐다(나는 7만원짜리 R석과 5만원짜리 S석중 S석을 구매했다).
이런 경우 눈치껏 1층으로 내려가는 사람도 있긴 한데…. 그래도 혹시 사람들이 조금 늦게 도착할 수도 있으려니 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관중석에 조명이 어두워질 때까지도 자리는 다 채워지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문화생활’에 목말라하던 이곳 사람들이, 예술회관만 생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던 사람들이, 왜 이런 유명한 공연에 시큰둥한지, 거의 모든 도시에서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는 그 유명한 이문세 공연인데……. 은근히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거제도의 문화적 자존심을 슬슬 긁기 시작하는데
공연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돈을 많이 들였다는 소문이 헛소문은 아닌가 보았다. 귀에 익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주제곡이 흘러나오고 검은 망토에 가면을 쓴 한 남자가 노래를 부르며 등장했다.
“끼악!! 오빠∼!!”
어디선가 탄성이 터져나오기 전까지도 나는 그 웅장한 테너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문세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원래 성악도를 꿈꾸었고, 고교시절에 예고에서 성악을 전공했다고 한다.
지금껏 본 적 없는 화려한 조명과 폭죽, 가슴까지 쩡쩡 울리는 음향, 중간중간 바뀌는 무대장치는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TV에서 익히 보아왔던 이문세의 화술은 거의 예술에 가까왔으며 그의 춤은 여느 십대의 댄스가수 못지 않게 날렵했다.
지역적 특성 때문일까? 그의 팬 중에는 30∼40대가 많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관객은 아줌마(!)였다. 이문세도 그 점을 염두에 두는 것 같았고, 재밌는 멘트를 섞어가며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만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예술회관이 생기기 전엔 경험이 거의 없었을 섬사람들이기에 첫 공연의 성공을 약간은 염려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과연 그는 깍쟁이처럼 그것을 잘 이용했다.
“예술회관이 생긴지 얼마 안 되서 이런 공연 보는 게 처음이신 분들 많죠? 저도 사실 거제도는 처음입니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오는 게 아니라 육로로 온다는 것을 어제 처음 알았거든요!”
은근히 그는 이곳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그것을 역이용 할 줄 알았다. ‘거제도를 무시해? 어디 한번 우리 수준을 보여주자!’라는 묘한 심리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고성, 통영, 거제도 분들이 대부분이지요? 자, 다들 어부의 아내(!)답게 남 눈치 보지 말고 즐겨보세요, 여기 바닷 바람 세잖아요!”
옆 눈치보던 사람들이 점점 공연에 몰입해갔다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즐길 줄 알게 된 것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분위기는 무르익고, 다들 모종의 합의를 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아는 노래는 힘껏 따라 불렀고, 막간을 틈 타 "오빠, 사랑해요!”를 외치는 용감한 아줌마들도 생겨났다.
‘숲 속의 작은 콘서트’세트장이 무대 앞으로 밀려나올 때는 공연의 3/2쯤이 될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시원하고 상큼한 숲 속 향기가 새어나왔다. 이 역시 기획자의 세심한 배려였다.
“오늘 생일이나 기념일 있으신 분!”
미적미적 대던 사람들이 한두명씩 자신의 결혼기념일이나 옆 친구의 생일을 외치기도 했다. 그중 1층 중간쯤에서 마흔 여덟번째 생일이라는 주부가 무대위로 불려 올라왔고 이문세는 그녀를 바라보며 축하곡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녀는 방금 그가 연주한 통기타를 싸인과 함께 선물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부끄러워 몸을 비비꼬던 그녀를 모두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예정된 2시간이 지나고 그가 무대에서 사라지자, 앵콜곡 몇 곡쯤 더 듣고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빗나갔다. 갑자기 빠른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젊은 래퍼와 현란한 복장의 댄서들이 이리저리 무대를 뛰어 다니며 나이트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문세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등장하고 무대는 금방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래! 모두들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터운 옷을 벗고 하나 둘 일어서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어둠이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전혀 어색할 것도 없었다. 점점 자리에 앉아 있기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그후 이런 댄스파티가 약 한 시간은 더 이어졌다.
지역적 차별과 세대간 차별을 뛰어 넘어
지칠 줄 모르고 뛰었더니 겨드랑이가 축축이 젖고 목도 말랐다. 급히 들어가느라 몰랐는데 알고 보니 공연장 입구에는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무료 생수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콘서트를 잘 안 다니는 티가 이럴 때 드러났다. 그리고,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 한가지가 있다.
이런 콘서트장에 올 때 복장은 쉽게 벗을 수 있는 가벼운 차림이 좋다는 것이다. 높은 구두도 금물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공연은 처음이거나 한 두 번이 고작일 것이다. 특히 거제도는 진주나 부산 등 인근 대도시로 먼 걸음 하지 않으면 이런 콘서트 보기가 쉽지 않다. 오늘 공연은 이곳 사람들에게 적잖은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관객 수준은 훌륭했다. 처음에는 약간 걱정하는 듯 했던 이문세도 끝인사에서 첫공연을 훌륭하게 마칠 수 있게 해서 너무 감사하다고 거듭 인사했고, 2년 후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전 한 뉴스에서 이런 보도를 본 적 있다. 요즘 40∼50대가 점점 문화의 중요한 수요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그 예로, 70∼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던 4인 혼성그룹‘아바’의 일대기를 엮은 뮤지컬이 그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많은 중년층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너무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지금까지 문화 혜택에 있어서 지역적 차별뿐만 아니라 세대간 차별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지방에 사는 나이 든 세대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었다. 그러나 오늘 공연을 보고 약간의 희망을 가져본다. 어느덧 아줌마 반열에 들어가는 나로서는 이런 생각이 점점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지….
3시간 반이나 이어졌던 콘서트가 끝나고 대극장을 빠져나오니 밖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갈매기 형상의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 긴 회랑을 지나며 남은 7시 공연은 더 성공적으로 치뤄지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