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왕성 고려시대 이전에 쌓았다
거제시 폐왕성 발굴조사 결과 공식발표
작성 : 2004년 10월 22일(금) 18:09 가+가-

거제시가 고려 의종이 머물렀던 둔덕면 폐왕성 복원에 나선지 4년만에 남쪽 성 일부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폐왕성을 처음으로 쌓은 시기는 고려시대가 아니라 7-8세기 전후며 이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지난 2001년부터 폐왕성 복원정화사업을 벌이고 있는 동아문화연구원(원장 이현, 조사단장 신용민)은 22일 지난 9월2일부터 10월 11일까지 폐왕성의 동문지로 추정되는 지역에 대한 발굴(시굴)조사 결과 “발굴지점에 수목이 우거져 원상파악이 어려웠으나 그런대로 성의 구조확인이 가능한 상태였으며 성에는 3개소의 문터가 있고 남쪽에는 우물터가 확인됐다” 고 밝혔다.
연구원측은 “성은 약간 오목한 사면을 성내로 삼아 그 주위 능선상에 축조되었으며 외벽은 약간 다듬은 장방형의 납작한 석재를 이용, 지면에 수직하게 겉쌓기를 하고 내벽은 일반 막돌로 겉쌓기 했으며 내외벽 사이의 적석은 잡석으로 채운상태” 라고 덧 붙였다.
또 “이성은 외형이 매우 튼튼하고 정연한 전형적인 고려시대 축성수법을 나타내고 있으며, 성내 곳곳에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편과 자기편이 확인돼 문헌기록과 상부에 나타나는 축조방법만으로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퇴뫼식 산성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고 전했다.
동아연구원은 그러나 “시굴조사 결과 각 트렌치에서 확인되는 성체와 동문지의 구조 및 출토유물에서 이 성은 7~8세기를 전후해 처음으로 쌓기 시작해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됐다”고 추정했다.
거제시관계자는 동아연구원의 이번 발표를 통해 이제까지 폐왕성이 고려 의종과의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고려시대 산성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보다 훨씬 앞선 삼국시대부터 거림리의 기성현 치소와 함께 유사시의 치소로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지리적 중요성이 부각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또한 폐왕성을 처음으로 쌓은 시기는 고려시대가 아니라 7-8세기 전후며 이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지난 2001년부터 폐왕성 복원정화사업을 벌이고 있는 동아문화연구원(원장 이현, 조사단장 신용민)은 22일 지난 9월2일부터 10월 11일까지 폐왕성의 동문지로 추정되는 지역에 대한 발굴(시굴)조사 결과 “발굴지점에 수목이 우거져 원상파악이 어려웠으나 그런대로 성의 구조확인이 가능한 상태였으며 성에는 3개소의 문터가 있고 남쪽에는 우물터가 확인됐다” 고 밝혔다.
연구원측은 “성은 약간 오목한 사면을 성내로 삼아 그 주위 능선상에 축조되었으며 외벽은 약간 다듬은 장방형의 납작한 석재를 이용, 지면에 수직하게 겉쌓기를 하고 내벽은 일반 막돌로 겉쌓기 했으며 내외벽 사이의 적석은 잡석으로 채운상태” 라고 덧 붙였다.
또 “이성은 외형이 매우 튼튼하고 정연한 전형적인 고려시대 축성수법을 나타내고 있으며, 성내 곳곳에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편과 자기편이 확인돼 문헌기록과 상부에 나타나는 축조방법만으로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퇴뫼식 산성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고 전했다.
동아연구원은 그러나 “시굴조사 결과 각 트렌치에서 확인되는 성체와 동문지의 구조 및 출토유물에서 이 성은 7~8세기를 전후해 처음으로 쌓기 시작해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됐다”고 추정했다.
거제시관계자는 동아연구원의 이번 발표를 통해 이제까지 폐왕성이 고려 의종과의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고려시대 산성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보다 훨씬 앞선 삼국시대부터 거림리의 기성현 치소와 함께 유사시의 치소로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지리적 중요성이 부각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