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야마골’ 을 아십니까
통영연합신문 사라진 야마골 보도
작성 : 2005년 02월 16일(수) 11:06 가+가-

통영 유일의 집창촌이던 야마골은 지난 2003년 12월 31일을 끝으로 50여년간의 역사를 공식 마감했다. 현재는 일부는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절반 이상이 빈집으로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통영 ‘야마골’ 을 아십니까. 통영에서 발행되는 통영연합신문이 통영 수산업과 맥을 함께한 집창촌 야마골의 지금 모습을 취재했다.
연합신문은 지난 2003년 12월 31일을 끝으로 50여년간의 역사를 공식 마감한 ‘야마골’ 은 지금 현재는 주택으로 절반이상은 빈집으로 방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제공=통영연합신문] 지금은 사라진 야마골에 가보니
서호동 13∼15번지 일대. 통영 유일의 집창촌이 있던 곳이었다.
속칭 야마골이라고 불리던 곳. 하지만 지금은 홍등가로서의 명성은 뒤로한 채 환경을 개선해야할 고지대 지역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통영경찰서에 따르면 야마골의 공식적인 마감은 지난 2003년 12월 31일이다. 마지막 윤락녀였던 김모(37)씨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면서 야마골의 악명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야마골은 한국전쟁때 전국 각지의 군인들이 통영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전쟁 와중에 상이군인을 치료하는 병원이 현 충렬초등학교에 임시로 들어서면서 서호동에 이들을 상대로 막걸리나 동동주 등을 파는 술집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고 이들 술집들이 서서히 매춘에 나서면서 집창촌으로 이어지게 된 것.
전쟁이 끝난 후 서호동 꼭대기의 술집 골목은 야마골이라는 속명을 얻으며 집창촌으로의 명성을 더욱 이어나갔다. 수산업 1번지라는 통영의 명성을 반영하듯 야마골의 주요 고객은 통영항에 정박한 각종 어선의 선원들이었다.
야마골의 번성 역시 통영의 수산업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8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이어져 한창때에는 6∼70여개 업소에서 300여명에 이르는 윤락녀들이 자리를 잡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야마골은 집창촌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면서 장사를 하는 집 앞에 붉은 등을 켜 다른 집들과 구분했으며 포주들이 스스로 자율방범대를 조직, 경찰을 보조해 자체적으로 치안에 나서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야마골의 이같은 명성도 통영의 수산업 침체와 함께 통영을 찾던 선원들이 줄면서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다 80년대 중반 이후 다방이 우후죽숙 들어서고 룸사롱, 가요주점 등이 생겨나는 등 매춘 문화가 다변화(?)되면서 야마골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또 경찰도 단속에 나서는 한편 윤락녀에 대한 직업전환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 야마골 골목을 밝혔던 붉은 등이 하나 둘 사라져 주택가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생활하던 윤락녀들도 지난 98년을 전후해 20여명, 2000년엔 7명으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2003년엔 포주도 없이 혼자 남아 장사를 하던 윤락녀 김씨를 끝으로 50여년간 이어지던 야마골의 역사가 마감된 것이다.
야마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재 이 곳 서호동 일대는 고지대 저소득 주택가로만 남아있다. 그 마저도 이 일대 주택 30여동 가운데 절반은 주인도 없는 빈집으로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통영시는 서피랑 고지대에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벌이면서 야마골의 일부도 함께 개발할 예정이다.
이 곳에서 40여년간 통장일을 맡아온 박순자(62)씨는 “20∼25년 전만 하더라도 이 지역은 통영의 수산업 발전과 함께 또 다른 형태의 전성기를 맞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절반이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연합신문은 지난 2003년 12월 31일을 끝으로 50여년간의 역사를 공식 마감한 ‘야마골’ 은 지금 현재는 주택으로 절반이상은 빈집으로 방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제공=통영연합신문] 지금은 사라진 야마골에 가보니
서호동 13∼15번지 일대. 통영 유일의 집창촌이 있던 곳이었다.
속칭 야마골이라고 불리던 곳. 하지만 지금은 홍등가로서의 명성은 뒤로한 채 환경을 개선해야할 고지대 지역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통영경찰서에 따르면 야마골의 공식적인 마감은 지난 2003년 12월 31일이다. 마지막 윤락녀였던 김모(37)씨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면서 야마골의 악명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야마골은 한국전쟁때 전국 각지의 군인들이 통영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전쟁 와중에 상이군인을 치료하는 병원이 현 충렬초등학교에 임시로 들어서면서 서호동에 이들을 상대로 막걸리나 동동주 등을 파는 술집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고 이들 술집들이 서서히 매춘에 나서면서 집창촌으로 이어지게 된 것.
전쟁이 끝난 후 서호동 꼭대기의 술집 골목은 야마골이라는 속명을 얻으며 집창촌으로의 명성을 더욱 이어나갔다. 수산업 1번지라는 통영의 명성을 반영하듯 야마골의 주요 고객은 통영항에 정박한 각종 어선의 선원들이었다.
야마골의 번성 역시 통영의 수산업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8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이어져 한창때에는 6∼70여개 업소에서 300여명에 이르는 윤락녀들이 자리를 잡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야마골은 집창촌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면서 장사를 하는 집 앞에 붉은 등을 켜 다른 집들과 구분했으며 포주들이 스스로 자율방범대를 조직, 경찰을 보조해 자체적으로 치안에 나서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야마골의 이같은 명성도 통영의 수산업 침체와 함께 통영을 찾던 선원들이 줄면서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기다 80년대 중반 이후 다방이 우후죽숙 들어서고 룸사롱, 가요주점 등이 생겨나는 등 매춘 문화가 다변화(?)되면서 야마골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또 경찰도 단속에 나서는 한편 윤락녀에 대한 직업전환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 야마골 골목을 밝혔던 붉은 등이 하나 둘 사라져 주택가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생활하던 윤락녀들도 지난 98년을 전후해 20여명, 2000년엔 7명으로 줄어들더니 급기야 2003년엔 포주도 없이 혼자 남아 장사를 하던 윤락녀 김씨를 끝으로 50여년간 이어지던 야마골의 역사가 마감된 것이다.
야마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재 이 곳 서호동 일대는 고지대 저소득 주택가로만 남아있다. 그 마저도 이 일대 주택 30여동 가운데 절반은 주인도 없는 빈집으로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통영시는 서피랑 고지대에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벌이면서 야마골의 일부도 함께 개발할 예정이다.
이 곳에서 40여년간 통장일을 맡아온 박순자(62)씨는 “20∼25년 전만 하더라도 이 지역은 통영의 수산업 발전과 함께 또 다른 형태의 전성기를 맞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절반이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