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 우리가락 좋을시고~
사등면 덕호리 박점순씨 시조창 부문 명인 탄생
작성 : 2005년 10월 10일(월) 14:36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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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시민의 날 기념행사와 제12회 거제예술제 일환으로 거제문화원이 주최하고 (사)대한시조협회거제시지회(지회장 천장록)가 주관한 이번 대회는 을부, 갑부, 특부, 명창부 등 4개 종목에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150명의 경창인들이 참가, 성황을 이뤘다.
이날 명창부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점순씨는 “전국대회로써 우수한 분들이 많이 응창을 해 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된데다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돼 매우 기쁘다, 앞으로 시조창의 저변확대를 위해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며 수상소감을 밝혔다.
시조창의 유래
고려 인종때 문신 정서(鄭敍)가 내시랑(內侍郞)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던 중 그를 시기하는 간신들의 모함에 걸려 고향인 동래(지금의 부산)로 귀양 갔는데 곧 소명(召命) 하겠다던 왕이 오래도록 부르지 않아 연군(戀君)의 뜻으로 지은 정과정곡(鄭瓜亭曲)인 삼진작(三眞勺), 곧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이 전해오다가 만대엽은 조선 초기에 실전되고 중대엽은 조선 영조 이전에 또한 실전됐다.
다만 삭대엽은 초삭 2삭 및 중, 평, 두거외 삼삭대엽이 전해오면서 발전, 잦노래로 농, 락, 편 등이 드는 곡이 파생하는데 우락시조, 계락시조가 들어있다.
영조 때 가객 이세춘(李世春)의 생각에 “같은 정가(正歌)로 엄숙한 우조(羽調)와 애원한 계면조(界面調)가 있는데 어찌 화평한 평조(平調)가 없어서 되겠는가?” 하고 새로 작곡한 것을 평시조라고 명칭 하였음이 추정된다.
이세춘이 평양에서 이 시조를 전파하니 가곡으로 부르던 창을 시조로 부르는 이가 많아져서 가곡의 가사를 호칭해 왔다.
당시에는 명칭상 국문학의 술어로 시조시라 하고 음악의 곡으로는 시조창이라 구분, 시조창이 생긴 이전의 가집(歌集)은 청구영언(靑丘永言), 해동가요(海東歌謠), 가곡원류(歌曲源流)가 전해왔고 이후에는 육당 시조집(六堂 時調集) 등이 있다.
이후 석암(石菴) 정경태 박사(1975년 중요 무형문화재 41호 가사기능보유자)가 선율 보를 개발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우고 시조창 본래의 아름다운 선율과 시김새를 완벽하게 표현토록 정돈 시조보를 제시해 근본으로 삼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