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칼럼] 선과 악, 인간은 무엇인가
작성 : 2026년 09월 03일(목) 10:26 가+가-
/선악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자유의지는 인간의 책임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를 묻는 것은 오래된 질문이다. 동양에서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맞섰고, 서양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질문 자체가 잘못됐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를 따지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선과 악은 인간 때문에 존재하는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선과 악은 인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기 전에도 선과 악은 존재한다. 인간은 선악의 창조자가 아니며, 자신의 판단으로 선악의 궁극적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유의지를 선과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능력으로만 이해하면 선악 자체가 인간의 선택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유의지는 선악을 만들어내거나 결정하는 힘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선과 악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행위가 드러나는 자리다.
전쟁터에 선 군인을 생각해보자.
그는 자신이 원해서 전쟁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전쟁이라는 악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전장에 나가 적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가 총을 쏘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행위를 개인의 죄와 동일시할 수 있을까.
반대로 평범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눈앞에서 범죄와 마주쳤다고 하자. 누군가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있다. 그 순간 그 사람에게는 여러 가능성이 생긴다. 외면할 수도 있고, 신고할 수도 있고, 위험을 감수하고 피해자를 도울 수도 있다.
두 사람 모두 악의 세계와 맞닥뜨렸다. 그러나 그 악의 존재 자체가 두 사람의 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터의 군인에게는 상황과 명령, 의도와 행위, 책임의 범위가 함께 따져져야 한다. 길 위의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그가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할 수 있었으며, 어떤 선택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이것이 선악과 죄를 구별해야 하는 이유다.
악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나의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내가 어떤 행위를 했다고 해서 그 행위의 도덕적 성격을 단순히 ‘선택했느냐, 악을 선택했느냐’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
죄는 악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죄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창세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그런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그것을 단순히 ‘선과 악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시험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이 정한 질서와 경계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의지를 앞세워 스스로 선악의 기준이 되려 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읽을 수 있다.
인간은 선악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를 통해 하나님의 질서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책임이 생긴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을 선과 악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려는 질문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인간은 선악의 창조자가 아니다. 선악의 최종 심판자도 아니다. 인간은 이미 선과 악이 존재하는 세계에 태어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리고 그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졌다.
그 자유는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맹자는 인간에게 선으로 향하는 마음의 싹이 있다고 보았고, 순자는 인간의 욕망이 질서와 교육을 통해 다스려져야 한다고 보았다. 서로 다른 주장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결국 인간의 욕망과 행위, 그리고 그것을 다스리는 질서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독교는 여기에 죄라는 개념을 더한다.
인간은 자유롭지만 그 자유가 무한한 것은 아니다. 자유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는 책임과 함께 주어진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큰 착각은 자유를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는 선악의 기준을 만드는 힘이 아니다.
자유는 이미 존재하는 선악의 세계 속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를 드러내는 힘이다.
선과 악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악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인간의 죄인 것도 아니다.
죄는 인간이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유는 상황과 의도, 행위와 책임의 문제를 함께 불러온다.
그러므로 인간의 문제를 ‘나는 본질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라는 질문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나는 선악의 주인인가,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선악의 세계 앞에 선 한 사람인가.
인간은 선과 악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정의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세계 안에서 자유를 부여받았고, 그 자유는 인간에게 책임을 남긴다.
그리고 그 책임의 가장 깊은 자리에 죄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인간은 선과 악의 주인이 아니다. 인간은 선과 악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자유를 부여받은 존재다. 그리고 그 자유가 책임이 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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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를 묻는 것은 오래된 질문이다. 동양에서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맞섰고, 서양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질문 자체가 잘못됐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를 따지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선과 악은 인간 때문에 존재하는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선과 악은 인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그것을 인식하기 전에도 선과 악은 존재한다. 인간은 선악의 창조자가 아니며, 자신의 판단으로 선악의 궁극적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자유의지를 선과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능력으로만 이해하면 선악 자체가 인간의 선택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유의지는 선악을 만들어내거나 결정하는 힘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선과 악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의지와 행위가 드러나는 자리다.
전쟁터에 선 군인을 생각해보자.
그는 자신이 원해서 전쟁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전쟁이라는 악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전장에 나가 적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가 총을 쏘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행위를 개인의 죄와 동일시할 수 있을까.
반대로 평범한 사람이 길을 걷다가 눈앞에서 범죄와 마주쳤다고 하자. 누군가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있다. 그 순간 그 사람에게는 여러 가능성이 생긴다. 외면할 수도 있고, 신고할 수도 있고, 위험을 감수하고 피해자를 도울 수도 있다.
두 사람 모두 악의 세계와 맞닥뜨렸다. 그러나 그 악의 존재 자체가 두 사람의 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터의 군인에게는 상황과 명령, 의도와 행위, 책임의 범위가 함께 따져져야 한다. 길 위의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그가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할 수 있었으며, 어떤 선택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이것이 선악과 죄를 구별해야 하는 이유다.
악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나의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내가 어떤 행위를 했다고 해서 그 행위의 도덕적 성격을 단순히 ‘선택했느냐, 악을 선택했느냐’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
죄는 악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죄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창세기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그런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그것을 단순히 ‘선과 악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시험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이 정한 질서와 경계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의지를 앞세워 스스로 선악의 기준이 되려 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읽을 수 있다.
인간은 선악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자유를 통해 하나님의 질서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책임이 생긴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을 선과 악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려는 질문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인간은 선악의 창조자가 아니다. 선악의 최종 심판자도 아니다. 인간은 이미 선과 악이 존재하는 세계에 태어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리고 그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졌다.
그 자유는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맹자는 인간에게 선으로 향하는 마음의 싹이 있다고 보았고, 순자는 인간의 욕망이 질서와 교육을 통해 다스려져야 한다고 보았다. 서로 다른 주장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 모두 결국 인간의 욕망과 행위, 그리고 그것을 다스리는 질서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독교는 여기에 죄라는 개념을 더한다.
인간은 자유롭지만 그 자유가 무한한 것은 아니다. 자유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는 책임과 함께 주어진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큰 착각은 자유를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자유는 선악의 기준을 만드는 힘이 아니다.
자유는 이미 존재하는 선악의 세계 속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를 드러내는 힘이다.
선과 악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악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인간의 죄인 것도 아니다.
죄는 인간이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유는 상황과 의도, 행위와 책임의 문제를 함께 불러온다.
그러므로 인간의 문제를 ‘나는 본질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라는 질문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나는 선악의 주인인가,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선악의 세계 앞에 선 한 사람인가.
인간은 선과 악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정의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세계 안에서 자유를 부여받았고, 그 자유는 인간에게 책임을 남긴다.
그리고 그 책임의 가장 깊은 자리에 죄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인간은 선과 악의 주인이 아니다. 인간은 선과 악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자유를 부여받은 존재다. 그리고 그 자유가 책임이 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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