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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유족 - 통영시 출생지 논란 3라운드
지난 9일 청마유족 대법원 상고, 변호사 선임 나서
거제시 상고심 결과 상관없이 기념관 건립사업 추진
작성 : 2004년 08월 24일(화) 14:08 가+가-

8월24일 현재 통영시 청마문학관 홈페이지 연보에는 청마의 출생지를 태평동 552번지로 안내하고 있다.

“통영시가 운영하는 청마문학관의 안내판에 청마의 출생지를 통영이라고 적어 청마의 인격권을 침해했다” 며 청마의 유족들이 통영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서울 고등법원이 원고패소판결을 내리자 지난 9일 유족들이 대법원에 상고했다.
특히 이번 상고심은 청마의 출생지확인이 아닌 청마와 유족에 대한 인격권침해여부를 가리는 소(訴)이지만 대법원의 결정이 청마 출생지에 대한 사회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된다는 점에서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할 계획이다.
지난 7월 16일 서울고등법원은 유족들이 낸 항소심에서 "가족들은 유치환 선생이 거제에서 태어나 통영으로 이사했다고 주장하지만 자작시에서 스스로 통영에서 출생했다고 밝힌 만큼 출생지를 거제로 단정할 수 없다" 며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지난 2002년 2월 청마의 유가족들의 소송으로 시작된 청마의 출생지 논란은 법원의 강제조정, 청구취지변경, 이의신청, 항소제기, 조정 등을 겪으며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분쟁의 발단
청마 출생의 분쟁은 1986년 거제시 둔덕면 청년들이 청마시비건립에 나서면서 청마의 출생설이 제기됐고 2000년 초에 거제시가 동랑.청마 기념사업에 착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게 됨에 따라 기존 청마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는 통영시와 출생지 논란이 일어나게 됐다.
출생지 관련 소송 진행과정
유인전, 춘비, 자연씨 등 청마의 자녀들은 통영시를 상대로 2002년2월8일 “통영시가 운영하는 청마문학관의 안내판에 청마의 출생지를 통영시로 잘못 표시함으로서 청마의 인격권 중 공표거절권 등을 침해하고 상속인의 인격권도 침해했다” 며 “통영시 정량동에 있는 청마문학관 1 층 전시관 동편벽에 부착된 년보 출생지란에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에서 출생’을 삭재하라” 는 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냈다.
서울지방법원은 2003년 4월3일 당사자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피고 통영시는 2003년 5.5일까지 청마문학관의 안내판에 기재된 출생지 표시중 ‘1908. 7. 14(음)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에서 출생’을 ‘1908. 7. 14(음) 통영에서 유년시절을 보냄’ 으로 수정한다” 는 내용의 강제조정을 내렸었다.
그러나 통영시는 청마문학관의 안내판에 ‘1908. 7. 14(음)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에서 출생’ 대신 ‘1908. 7. 14(음) 출생(주1)’ 으로 수정하고 안내판 아래에 ‘(주1) 청마는1959년 발간한 자작시 해설집(구름에 그린다)에서 “내가 태어난 곳은 통영이다” 라고 밝혔다’ 라고 기재 법원의 강제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통영시가 안내판의 문구를 수정한 후 강제조정에 이의를 제기하자 유족들은 2003년 6월 “피고들이 청마의 연보를 수정했다고 해도 각주를 표시한 형식과 내용이 실질적으로 청마의 출생지를 통영시라고 기재한 종전의 상황과 다를바 없으며 가사 그렇다 해도 청마의 출생지가 통영시라고 오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출생(주1)청마는 1959년에 발간한 자작시 해설집(구름에 그린다)에서 내가 태어난 곳은 통영이라 밝혔다’를 삭재하라는 내용의 청구취지 변경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이 소송에서 서울지방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유족들은 2003년 7월 25일 다시 서울고등법원에 “출생지(주1)을 삭재해 줄 것과 세 자녀에 대한 인격권 침해에 대한 1인당 3천5백만원씩의 위자료 청구소를 서울고등법원에 냈다.
서울고등법원도 2004. 6. 15일 “피고 통영시는 2004. 8. 20일까지 청마문학관 안내판 연보에 기재된 출생지 (주1)부분을 삭재하고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는 모두 포기한다 는 등의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으나 통영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결국 고등법원도 원고청구 기각판결을 내렸다.
특히 서울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설령 청마의 출생지가 거제시 둔덕면이라 해도 스스로 통영에서 자랐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면 청마문학관 안내판에 청마의 출생지를 통영시 태평동으로 표시했다 해서 청마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었다.
날 생(生) 과 살 생(生)의 차이로 인격권 침해를 논할 수 없다. ‘낳아도 생가 살아도 생가’ 라는 앞선 두 번의 판결에 이어 대법원은 청마의 출생지 논란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거제군과 통영군의 통합이 빚은 혼선
원고들은 청마의 출생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청마는 서기 1908년 7월14일(음력)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번지(당시 통영군)에서 태어났다. 둔덕면은 진주 유(柳) 씨 집성촌으로서 청마의 8대 조부가 둔덕에 이주해 정착함으로서 촌락을 이뤘다.”
“청마의 부친 유준수(柳焌秀) 씨는 둔덕면 방하리에서 한약국을 경영하던 박현석 씨의 박약국의 약동으로 일하다가 1904년 박 씨의 딸 박은수 씨와 혼인, 1905년 11월 19일 장남 동랑(東浪) 유치진(柳致眞)을 낳고, 1908년 7월14일 차남인 청마 유치환을 낳았다.”
“유준수 씨는 동랑이 5세, 청마가 2세 되던 1910년 1월 12일 통영군 동면 신흥동 26호(구번지)로 이사하였다가 이듬해 1월 23일 다시 통영군 통영면 등부동 5통16호(구번지·지금의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로 이사했다.”
유치환이 자작시에 “통영에서 태어났다” 고 밝힌것도 한일합방 후 1914년 3월 18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용남군, 진남군, 거제군이 통폐합돼 1951년 복군때까지 통영군으로 불리웠던 사회적인 영향도 컸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결국 거제시와 통영시의 청마 출생지 논란은 당시 거제군과 용남군이 통합된 통영군으로 개칭하면서 만들어진 호적부가 명쾌하지 않아 빚어지게 됐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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