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만 보내주면 눈을 감을텐데...”
오대양 납북 선원가족 사진보며 절규
“제발 우리영감 보내주이소” 송환촉구
“제발 우리영감 보내주이소” 송환촉구
작성 : 2005년 02월 05일(토) 13:36 가+가-

오대양 납북 선원가족 유우봉씨와 옥철순씨가 남편을 북으로 떠나보낸 후 30여년간의 고충을 밝히며 조기송환을 호소하고 있다
[거제신문 제휴기사]=“통일도 모르고 이념도 모릅니다. 영감만 보내주면 눈을 감고 죽을 수 있을겁니다. 영감 만나보고 죽을라고 이제까지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죽기전에 영감 만나 자식들 이렇게 잘 키웠다고 말이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 72년 남편을 북으로 떠나 보내고 30년 넘게 남편 소식에 목말라 하던 박두현씨(납북당시 36세)의 부인 유우봉씨(69)는 사진속에서 남편의 얼굴을 찾아내고 “오랜세월 가슴에 멍이 들었는데 남편의 생사여부만이라도 알려달라”며 오열했다.
유씨는 “처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옷가지도 채 챙기지 않고 선주로부터 받은 선급금을 던져주며 배에 올랐던 남편이었다” 며 지난 30여년간 지내온 일을 하나하나 떠 올렸다.
72년 7월 27일 남편을 떠나보낼때부터 그해 12월 27일 남편을 만나기 위해 인천항으로 갔던 일들, 남편을 북으로 보내고 자식들을 키우며 고생했던 기억들, 빨갱이 가족이라며 감시받고 천대받던 서러움들, 연좌제로 인해 자식들이 올바른 직장조차 잡기 힘들었던 지난날을 메인 목을 부여잡고 뱉어낸다.
특히 “연좌제로 인한 가족들의 불이익과 홀대, 정보기관의 감시등은 지금도 치가 떨린다” 며 아픈기억들을 회상했다.
또다른 납북자 박두남씨(70)의 부인 옥철순씨(72)는 “이제와서 지난일들을 말해 뭐하겠느냐” 고 체념하며 “이제는 생사 확인이라도 하고, 살아있다면 얼굴한번 보는게 소원” 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이 가족들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마을 옥유봉씨(여.69)는 33년전 납북된 동갑내기 남편 박두현씨, 둘째오빠 유경준씨(사망)의 사진을 확인하고 이들에 대한 애뜻한 정을 느끼며 흐느겼다. 유씨는 그동안 남편의 제사를 지내오다 3-4년전부터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에 더 이상 제사를 지내오지 않고 있었다.
유씨의 자녀들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귀한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고 덧붙였다. 유씨는 “오빠는 지난 2003년 이산가족 상봉 신청때 북에서 사망했다는 연락이 왔다” 며 생전의 오빠모습을 사진속에서 보고 슬픔을 더 했다. 유씨의 남편은 오대양호 기관장으로 오빠는 선장으로 근무했었다.
같은 마을 박정순씨도 오대양 61호를 타고 갔던 당시 28세의 남편 이재명씨의 모습을 확인하고 30년간 가슴에 묻어왔던 한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박씨는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납북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이래 여지껏 가슴앓이를 해 왔었다” 고 말했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지난 72년 남편을 북으로 떠나 보내고 30년 넘게 남편 소식에 목말라 하던 박두현씨(납북당시 36세)의 부인 유우봉씨(69)는 사진속에서 남편의 얼굴을 찾아내고 “오랜세월 가슴에 멍이 들었는데 남편의 생사여부만이라도 알려달라”며 오열했다.
유씨는 “처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옷가지도 채 챙기지 않고 선주로부터 받은 선급금을 던져주며 배에 올랐던 남편이었다” 며 지난 30여년간 지내온 일을 하나하나 떠 올렸다.
72년 7월 27일 남편을 떠나보낼때부터 그해 12월 27일 남편을 만나기 위해 인천항으로 갔던 일들, 남편을 북으로 보내고 자식들을 키우며 고생했던 기억들, 빨갱이 가족이라며 감시받고 천대받던 서러움들, 연좌제로 인해 자식들이 올바른 직장조차 잡기 힘들었던 지난날을 메인 목을 부여잡고 뱉어낸다.
특히 “연좌제로 인한 가족들의 불이익과 홀대, 정보기관의 감시등은 지금도 치가 떨린다” 며 아픈기억들을 회상했다.
또다른 납북자 박두남씨(70)의 부인 옥철순씨(72)는 “이제와서 지난일들을 말해 뭐하겠느냐” 고 체념하며 “이제는 생사 확인이라도 하고, 살아있다면 얼굴한번 보는게 소원” 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들이 가족들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마을 옥유봉씨(여.69)는 33년전 납북된 동갑내기 남편 박두현씨, 둘째오빠 유경준씨(사망)의 사진을 확인하고 이들에 대한 애뜻한 정을 느끼며 흐느겼다. 유씨는 그동안 남편의 제사를 지내오다 3-4년전부터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에 더 이상 제사를 지내오지 않고 있었다.
유씨의 자녀들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귀한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고 덧붙였다. 유씨는 “오빠는 지난 2003년 이산가족 상봉 신청때 북에서 사망했다는 연락이 왔다” 며 생전의 오빠모습을 사진속에서 보고 슬픔을 더 했다. 유씨의 남편은 오대양호 기관장으로 오빠는 선장으로 근무했었다.
같은 마을 박정순씨도 오대양 61호를 타고 갔던 당시 28세의 남편 이재명씨의 모습을 확인하고 30년간 가슴에 묻어왔던 한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박씨는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납북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한이래 여지껏 가슴앓이를 해 왔었다” 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