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변하는 동안 제 영어점수도 변했죠”
삼성重 한상현씨, 12년간 서른한 번의 도전장 던져 토익 1급 따
외국인 선주들과 공동으로 선박제작하는 조선업에서 영어는 필수
외국인 선주들과 공동으로 선박제작하는 조선업에서 영어는 필수
작성 : 2006년 02월 22일(수) 11:04 가+가-

최근 치른 서른 두 번째 토익시험에서 870점을 얻어 토익1급을 손에 쥔 한상현씨.
“요즘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은 대부분 토익1급의 성적을 갖고 있다지요. 하지만 저는 토익1급을 따기 위해 제가 걸어 온 인생의 3분의 1을 투자해야 했습니다. 길고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목표를 이뤘기에 더욱 감회가 새롭습니다.”
삼성중공업에서 해양구조물의 계장설계를 맡고 있는 한상현 과장(41)은 최근 참으로 값진 성과를 이뤄내 주위 동료들로부터 부러운 시선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12년간 토익1급을 따기 위해 무려 서른한 번의 시험을 치렀다. 지칠 법도 한 세월동안 그는 포기를 모르는 근성과 승부욕으로 목표를 향한 노력을 끝까지 거두지 않았고, 결국 최근 치른 서른 두 번째 시험에서 870점의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토익1급을 손에 거머쥔 것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한 그는, 지난 23년간 해양설계부문 베테랑으로 근무하면서 영어 공부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선박을 발주한 선주와 감독관 등 1천여명의 외국인이 근무하는 조선소에서 업무를 공동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못하면 업무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외국인 선주들과의 잦은 통화와 회의의 압박, 그리고 이메일을 수시로 주고 받아야 하는 상황은 그로 하여금 더더욱 영어에 대한 향학열을 불태우게 했다.
“첫 토익 시험에서 435점을 받았습니다. 그 때만 해도 영어로 가득한 문서를 이해하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하지만 토익 점수가 나날이 오를수록 전화 한 통만으로도 간단히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토익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었던 거죠.”
퇴근 후 매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토익책과 씨름한 결과 토익을 처음 접한지 4년만에 토익2급을 땄지만 무슨 일이든 파고 들면 들수록 더 어려워진다고 했던가. 2급에서 1급으로 올라가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그는 CNN과 아리랑 방송을 매일 30분씩 청취했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매일 작업복 뒷주머니에 영자신문 조각을 넣고 다니며 짬이 날 때마다 외우고 또 외웠다.
또한 그에게 외국인 동료들은 영어공부를 하는데 있어 가장 훌륭한 스승이었다. 업무를 통해 서로 도움도 주고 받고 또한 ‘사교’를 통한 영어공부도 하고 일석이조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현재까지 지속적인 교류를 펼치고 있는 외국인 동료만도 대략 서른 명이나 된다니 발로 뛰는 학습의 결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토익이 아무리 1급이라 하더라도 외국인과 대화 한 마디 하지 못한다면 죽은 영어나 다름없다. 하지만 한씨는 현재 외국인 선주들과 서너 시간 이상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의사소통에서도 걸림돌이 없는 수준이다.
‘남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불혹의 나이에 토익1급을 달성한 한상현씨.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노력한 만큼 점수가 오르지 않아 좌절했던 경험도 있었지만, 언젠가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그는 앞으로 선주와의 미팅 및 프레젠테이션에 있어서 더욱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영어회의 매뉴얼을 정립할 계획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삼성중공업에서 해양구조물의 계장설계를 맡고 있는 한상현 과장(41)은 최근 참으로 값진 성과를 이뤄내 주위 동료들로부터 부러운 시선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12년간 토익1급을 따기 위해 무려 서른한 번의 시험을 치렀다. 지칠 법도 한 세월동안 그는 포기를 모르는 근성과 승부욕으로 목표를 향한 노력을 끝까지 거두지 않았고, 결국 최근 치른 서른 두 번째 시험에서 870점의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토익1급을 손에 거머쥔 것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한 그는, 지난 23년간 해양설계부문 베테랑으로 근무하면서 영어 공부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선박을 발주한 선주와 감독관 등 1천여명의 외국인이 근무하는 조선소에서 업무를 공동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못하면 업무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외국인 선주들과의 잦은 통화와 회의의 압박, 그리고 이메일을 수시로 주고 받아야 하는 상황은 그로 하여금 더더욱 영어에 대한 향학열을 불태우게 했다.
“첫 토익 시험에서 435점을 받았습니다. 그 때만 해도 영어로 가득한 문서를 이해하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하지만 토익 점수가 나날이 오를수록 전화 한 통만으로도 간단히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토익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었던 거죠.”
퇴근 후 매일 밤 9시부터 11시까지 토익책과 씨름한 결과 토익을 처음 접한지 4년만에 토익2급을 땄지만 무슨 일이든 파고 들면 들수록 더 어려워진다고 했던가. 2급에서 1급으로 올라가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그는 CNN과 아리랑 방송을 매일 30분씩 청취했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매일 작업복 뒷주머니에 영자신문 조각을 넣고 다니며 짬이 날 때마다 외우고 또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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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현씨(해양 의장설계그룹 전계장설계)의 동료들이 ‘토익 정복’을 축하해주고 있다. 가운데 ‘me?’를 들고있는 이가 바로 한상현씨. |
또한 그에게 외국인 동료들은 영어공부를 하는데 있어 가장 훌륭한 스승이었다. 업무를 통해 서로 도움도 주고 받고 또한 ‘사교’를 통한 영어공부도 하고 일석이조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현재까지 지속적인 교류를 펼치고 있는 외국인 동료만도 대략 서른 명이나 된다니 발로 뛰는 학습의 결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토익이 아무리 1급이라 하더라도 외국인과 대화 한 마디 하지 못한다면 죽은 영어나 다름없다. 하지만 한씨는 현재 외국인 선주들과 서너 시간 이상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의사소통에서도 걸림돌이 없는 수준이다.
‘남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불혹의 나이에 토익1급을 달성한 한상현씨.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노력한 만큼 점수가 오르지 않아 좌절했던 경험도 있었지만, 언젠가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그는 앞으로 선주와의 미팅 및 프레젠테이션에 있어서 더욱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영어회의 매뉴얼을 정립할 계획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