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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문화비평] 스타 대오에 들어선 신민아
작성 : 2010년 10월 09일(토) 11:53 가+가-
배우 신민아가 마침내 제대로 된 스타 대오에 들어섰다.

최근작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덕택이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는 동시간대 최강자였던 KBS2 ‘제빵왕 김탁구’가 종영된 후 마지막 3회 동안 19.2%, 16.6%, 19.9%(AGB닐슨)의 시청률을 기록, 뒷심을 보여줬다.

물론 평균시청률은 12.62%로 딱히 성공작이라 보긴 어렵다. 그러나 프로그램 광고단가 기준이 되는 수도권 시청률 면에서 대부분 전체 시청률을 능가했다는 점, 무엇보다 방영 내내 뜨거운 시청자 반응을 얻었다는 점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될 만하다. 그리고 그 성과의 중심으로 신민아가 줄곧 언급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신민아는 CF업계에선 이미 공인된 대어(大魚)였기 때문이다. 2007년 소니 사이버샷 모델로 시작된 신민아 CF 열풍은 LG XNOTE, 캘빈 클라인 등으로 확대되다 지난해 맥심 T.O.P. CF에서 마침내 폭발했다. 이후 최상종가의 CF모델을 언급할 때 신민아가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CF 승승장구가 이어지고 있었음에도 막상 신민아의 대표 콘텐트를 언급할 때면 댈 만한 게 없었다. 일단 콘텐트 자체도 별로 없었고, 흥행작은 더 드물었다. 반대로 말하면, 흥행작이 없으니 콘텐트도 적었던 셈이다.

TV드라마 쪽에선 2003년 주연급으로 급성장시켰던 SBS ‘때려’가 흥행 불발되면서 일단 흐름이 끊겼다. 이후 KBS2 ‘이 죽일놈의 사랑’과 ‘마왕’에 출연했지만, 저주 받은 걸작 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청률이 저조했던 드라마로 끝나버렸다. 영화 쪽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1년 ‘화산고’로 데뷔한 이래 ‘마들렌’, ‘달콤한 인생’, ‘새드 무비’, ‘야수와 미녀’, ‘고고70’, ‘키친’ 등 다양한 영화에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출연했지만 딱히 성공작이랄 만한 게 단 한 편도 없었다. 더군다나 신민아의 존재감조차 흐릿했다.

결국 신민아는 점차 확대되는 스타성에도 불구, 끊임없이 잘못된 선택만을 반복했기에 ‘CF에서만 잘 나가는 스타’로 수년을 보냈어야 했다는 얘기다. 늘 ‘대기’ 상태였던 잠재적 특A급 스타가 마침내 히트작을 내니 미디어의 관심도 오로지 그에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렇게 놓고 보면 신민아와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성공기는 여러모로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게 다가온다. 뜰 사람이 뜨고, 뜰 콘텐트가 떴다는 식이다. ‘선택’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업계 미담 또는 교훈격 얘기로도 들린다.

그러나 신민아의 성공기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스타성과 콘텐트 성공의 문제만 놓고 보면 위와 같은 단순 경로로 끝나버린다. 그러나 신민아라는 배우의 근원적 콘셉트 면부터 따지고 들어가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어떤 의미에선 세대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언급했듯, 신민아는 잘못된 선택이 많았던 배우다. 심지어 CF 업계에서 최고급 스타가 돼있음에도 이를 살리는데 3년여가 걸렸다. 그러나 이를 모조리 신민아 본인의 선택 미스로만 몰고 갈 것이 아니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코너로 처음으로 몰려있었다.

신민아는 1998년 10대 패션지 ‘키키’ 전속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우리 나이 15세 때의 일이다. 1990년대 후반 당시는 쎄시, 신디더퍼키 등 10대 소녀용 패션·문화지들이 범람하던 때였고, 동시기 배두나, 이요원, 김민희 등의 소녀 모델들이 발굴돼 각종 지면과 CF 등에 들이밀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경우 외형적 조건은 물론 전반적 콘셉트까지도 사실상 서로 일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길고 슬림한 몸매를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전형적인 미인형에선 벗어난 퍼니 페이스를 지녔다. 10대 소녀들의 동경을 얻어낼 만한 요소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거리감을 줘선 안 된다는 복합적 전략의 산물이었다.

한편 이 같은 외모를 바탕으로 전반적 콘셉트는 모조리 ‘우리는 달라’로 잡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X세대 열풍의 연장인지, 아니면 일종의 세기말 증후군이었는지는 알기 힘들다. 어쩌면 둘 다였을 수도 있다. 어찌됐건 이들은 기성사회 질서에서 벗어난 존재, 새로운 존재, 자유로운 존재, 역발상적인 존재로서 어필했다. 그리고 이런 전략이 먹혔다. 이들은 단기간 내에 소녀잡지를 벗어나 브라운관으로 스크린으로 줄기차게 진출했다. 그리고 신민아의 비극도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배두나, 이요원, 김민희 등은 모두 브라운관과 스크린으로 진출하면서 소녀 모델 시절의 이미지와 콘셉트를 대부분 그대로 가져갔다. 마찬가지로 기성사회 질서에서 벗어난 존재, 새로운 존재, 자유로운 존재, 역발상적인 존재로 무대에 올랐다. 이들 중 선두주자였던 배두나는 ‘링’에서 양성구유의 한국판 사다코로 영화계에 데뷔, 이후 ‘플란다스의 개’, ‘고양이를 부탁해’, ‘복수는 나의 것’ 등에서 개성적이고 파격적인 캐릭터들을 맡았다. 주로 브라운관에서 활동한 이요원, 버라이어티까지 진출했던 김민희 등도 큰 맥락에서 기존 사회질서에 부합되지 않는 역할들을 주로 맡았다.

신민아도 마찬가지다. 영화계 데뷔작이 무협지식 고등학교의 검도부 주장 역할을 맡았던 ‘화산고’, 첫 TV드라마 주연작이 여성 프로복서로 등장한 SBS ‘때려’였다. 모두 기존 성(性)역할 개념에 반(反)하는 캐릭터였던 셈이다. 이후 영화계에서는 ‘기한 한정 연애’를 제안하는 소녀 역을 맡은 ‘마들렌’, 중년 조폭 보스의 대학생 애인으로 출연한 ‘달콤한 인생’ 등이 이어졌고, TV드라마에서도 초능력을 지닌 도서관 사서 역할을 맡은 KBS2 ‘마왕’ 등에 출연했다.

그러나 여기서 희비가 갈렸다. 배두나는 비록 흥행스타가 되진 못했지만 나름의 노선을 지닌 개성적인 여배우로 인정받았고, 이요원도 나이보다 훨씬 성숙한 역할을 소화하는 브라운관의 차세대 기대주, 김민희도 톡톡 튀는 언행으로 신세대 20대 여성의 상징적 존재가 돼갔다. 그러나 신민아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아무리 독특한 역할을 맡고, 기회가 닿는 대로 꾸준히 자신을 어필하려 해도 잘 먹히지 않았다.

자질 부족 차원이라고 보기엔 힘들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었기 때문이라 보는 게 더 설득력 있다. 신민아는 배두나, 이요원, 김민희 등과 동시기에 유사한 매체를 통해 데뷔했기에 이른바 ‘동종(同種)’으로 분류된 경우다. 그러나 신민아는 애초 이들과는 다른 본질을 지니고 있었다. 파격적이고 신선한 매력을 지녔다기보다, 오히려 고전적인 풋풋함과 사랑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퍼니 페이스 계열 내에서도 베이비 페이스에 속했고, 연기 패턴도 딱딱하고 강직한 역할보다 애교 넘치는 역할이 더 잘 어울렸다. 한 마디로 10대 후반~20대 여배우가 지난 세월 동안 줄곧 맡아오던 역할들, 기성사회 질서에 부합하며 보호심리를 자극하는 역할들에 적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문화산업이 신민아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랐다. 그녀를 론칭시켰던 소녀잡지 속 이미지, 나아가 그녀와 동종인 여배우들의 이미지에 맞춰서 그녀를 이해했다. 단순히 말하면, 대중문화산업이 미디어가 만들어낸 개념에 넘어간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신민아 본인조차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신민아는 실제로 지난 2008년 올리브TV ‘민아의 프렌치 다이어리’에 출연, 프랑스 파리 거리를 걸으며 ‘여성이 동경하는 여성’ 콘셉트를 잡으려 했고, 이듬해에는 이를 ‘프렌치 다이어리’라는 책으로 펴내기까지 했다. 거의 배두나 벤치마킹에 가까운 행보였다.

또한 가장 최근의 인터뷰에서조차도 “나는 대중과 소통이 원활한 배우가 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마니아층의 사랑만 받는 배우가 될 것 같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대중문화산업과 미디어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에 자기 자신조차 함몰돼 버렸던 것이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 신민아가 어떤 경로로 출연하게 됐는지는 여전히 알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야말로 신민아로서는 너무나도 오랜만에, 어쩌면 거의 처음 선택한 ‘자신에게 맞는 옷’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그녀는 데뷔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뒤, 15세 소녀가 27세 여성이 돼버리고 난 다음에야, 자신까지 끼워 한꺼번에 대중문화산업 중심으로 밀어 넣어졌던 군(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씩 신민아와 같은 일종의 ‘피해자’가 대중문화산업에선 종종 등장하곤 한다. 대부분 미디어가 즐겨 만들어내는 세대 분류 탓에 벌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1980년대 할리우드 청춘스타들을 가리켰던 ‘브랫 팩’이라는 명칭이었다. 이 때문에 다양한 개성을 지닌 20대 배우들이 ‘세인트 엘모의 열정’, ‘브렉퍼스트 클럽’ 등 유사한 청춘군상을 그려낸 영화들에 모조리 캐스팅, 이후 그 이미지와 콘셉트가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 제대로 확인도 못해본 상태에서 타입화돼 오히려 개성이 말살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21세기 할리우드 코미디 배우들을 가리키는 ‘프랫 팩’ 개념도 점점 ‘브랫 팩’과 유사한 상황을 낳고 있다.

어찌됐건 이 같은 굴레에서 벗어난 신민아에게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신민아 본인도 더 이상 자신을 ‘마니아층의 사랑만 받는 배우’라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향후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바탕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간다면, 자신이 배두나, 이요원, 김민희가 아니라 오히려 손예진, 임수정, 송혜교에 가깝다는 점을 더 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한국대중문화산업은 또 다른 메이저 플레이어를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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