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몬드 제과점 ‘동네빵집’이 아니었다
작성 : 2012년 02월 06일(월) 18:04 가+가-

사진제공/이광필
가수겸 산소주의 생명운동가 이광필 한국예술종합전문학교 교수가 최근 벌어진 홍대 앞 리치몬드 제과점 폐업에 관해 안타까움을 <모닝뉴스>에 전했다.
이씨는 리치몬드 제과점 권상범 회장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그의 장인은 제빵왕 김충복(1934~1995)씨다. 이씨는 영국 유학 시절 만난 김씨의 차녀와 1992년 결혼했다.
김씨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중 생계 유지를 위해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제과제빵과 인연을 맺었다.
제과제빵 기술에 흥미를 느껴 목표였던 법조인의 길도 포기한 뒤 기술을 익힌 김씨는 196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양과자연맹 일본대회’에서 ‘세계 평화의 종’이라는 작품으로 대회장상인 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국내 유명 제과점인 태극당의 공장장을 거쳐 국내 최초로 주인 이름을 내건 제과점인 ‘김충복 과자점’을 개업, 인기를 모았다.
빵집 상호도 당시 대세였던 ‘~당’을 ‘~ 과자점’으로 바꿔놓았다. 제과제빵업계에서는 김충복의 재주를 두고 ‘한 세기에 한번 나오기 힘든 장인’이라고 치켜세웠다.
바로 김씨의 수제자가 권 회장이다. 권 회장 뿐만 아니라 국내 1호 제과 명장 박찬회 씨 등 2000년부터 정부가 제과제빵 명장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선정한 8명 중 4명이 김씨의 제자다.
이 교수에 따르면,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김씨를 무작정 찾아온 권 회장은 일을 배우겠다고 했고, 그의 패기와 열정이 마음에 들었던 김씨는 권 회장을 제자로 삼았다. 김씨는 권 회장이 독립을 할 때 리치몬드라는 상호를 지어주며 격려했고, 권 회장의 부인인 리치몬드 산업 김 대표이사를 중매해준 사람도 김씨였다.
이 교수는 “장인이 생전에 ‘리치몬드 제과점의 권상범이 내 수제자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스승인 나 보다 실력이나 재력에 있어서 모두 성공했다’고 칭찬하며 부러워했다”면서 “작고하기 전 내게 김충복 과자점을 맡기며 권 회장의 리치몬드 제과점을 모범삼아 성공시켜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던 일이 기억난다”고 돌아봤다.
이 교수는 김씨의 뜻에 따라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김씨의 아들을 대신해 김충복 과자점을 이어 받았다. 1995년까지 김충복 과자점은 서울 방배동본점과 동부이촌동 을지로4가점 등 몇개의 직영점을 운영 중이었다.
영국에서 마케팅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씨는 제과제빵의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그가 찾은 곳은 권 회장이 운영하는 리치몬드 제과제빵 학원이다.
이 교수는 “권 회장이 부담을 가질까봐서 일부러 내가 김충복 선생의 사위라는 것을 숨겼다”면서 “ 6개월 동안 배웠다.
하지만 김충복 제과점은 1997년부터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해 1998년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교수는 “제과제빵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1997년에 IMF 사태도 벌어졌다. 무엇 보다 김충복 선생이 없는 김충복 과자점의 존재의 의미는 없었다”면서 “결국 가족 회의를 거쳐 문을 닫게 됐다. 당시 미국 하버드대에 교환교수로 계시던 장모님이 정말 슬퍼하시더라”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리치몬드 홍대점은 치솟는 임대료 탓에 30년 역사와 추억를 남기고 사라졌지만 모든 제과업계 종사자들의 오랜 소망은 권 회장처럼되는 것이었다”며 “업계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일이지만 권 회장은 제과제빵 업계의 손꼽히는 재력가다.
리치몬드 성산점과 제과제빵 기술학원이 있는 서울 성산동 5층짜리 빌딩, 10년 전 내가 다녔던 학원이 있었던 서교동 5층짜리 빌딩은 물론 대치동 은마아파트 옆에 있는 리치몬드제과제빵 상가의 상당한 지분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런 성공한 제빵제과인까지 대기업 자본에 밀려난다면 다른 제과제빵인들은 대기업의 부속품 밖에 될 수 없지 않겠는가”라며 개탄했다.
서용찬 기자 기사 더보기
이씨는 리치몬드 제과점 권상범 회장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그의 장인은 제빵왕 김충복(1934~1995)씨다. 이씨는 영국 유학 시절 만난 김씨의 차녀와 1992년 결혼했다.
김씨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중 생계 유지를 위해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제과제빵과 인연을 맺었다.
제과제빵 기술에 흥미를 느껴 목표였던 법조인의 길도 포기한 뒤 기술을 익힌 김씨는 196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양과자연맹 일본대회’에서 ‘세계 평화의 종’이라는 작품으로 대회장상인 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국내 유명 제과점인 태극당의 공장장을 거쳐 국내 최초로 주인 이름을 내건 제과점인 ‘김충복 과자점’을 개업, 인기를 모았다.
빵집 상호도 당시 대세였던 ‘~당’을 ‘~ 과자점’으로 바꿔놓았다. 제과제빵업계에서는 김충복의 재주를 두고 ‘한 세기에 한번 나오기 힘든 장인’이라고 치켜세웠다.
바로 김씨의 수제자가 권 회장이다. 권 회장 뿐만 아니라 국내 1호 제과 명장 박찬회 씨 등 2000년부터 정부가 제과제빵 명장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선정한 8명 중 4명이 김씨의 제자다.
이 교수에 따르면,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김씨를 무작정 찾아온 권 회장은 일을 배우겠다고 했고, 그의 패기와 열정이 마음에 들었던 김씨는 권 회장을 제자로 삼았다. 김씨는 권 회장이 독립을 할 때 리치몬드라는 상호를 지어주며 격려했고, 권 회장의 부인인 리치몬드 산업 김 대표이사를 중매해준 사람도 김씨였다.
이 교수는 “장인이 생전에 ‘리치몬드 제과점의 권상범이 내 수제자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이제는 스승인 나 보다 실력이나 재력에 있어서 모두 성공했다’고 칭찬하며 부러워했다”면서 “작고하기 전 내게 김충복 과자점을 맡기며 권 회장의 리치몬드 제과점을 모범삼아 성공시켜보라고 어깨를 두드려주던 일이 기억난다”고 돌아봤다.
이 교수는 김씨의 뜻에 따라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김씨의 아들을 대신해 김충복 과자점을 이어 받았다. 1995년까지 김충복 과자점은 서울 방배동본점과 동부이촌동 을지로4가점 등 몇개의 직영점을 운영 중이었다.
영국에서 마케팅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씨는 제과제빵의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그가 찾은 곳은 권 회장이 운영하는 리치몬드 제과제빵 학원이다.
이 교수는 “권 회장이 부담을 가질까봐서 일부러 내가 김충복 선생의 사위라는 것을 숨겼다”면서 “ 6개월 동안 배웠다.
하지만 김충복 제과점은 1997년부터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해 1998년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교수는 “제과제빵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1997년에 IMF 사태도 벌어졌다. 무엇 보다 김충복 선생이 없는 김충복 과자점의 존재의 의미는 없었다”면서 “결국 가족 회의를 거쳐 문을 닫게 됐다. 당시 미국 하버드대에 교환교수로 계시던 장모님이 정말 슬퍼하시더라”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리치몬드 홍대점은 치솟는 임대료 탓에 30년 역사와 추억를 남기고 사라졌지만 모든 제과업계 종사자들의 오랜 소망은 권 회장처럼되는 것이었다”며 “업계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일이지만 권 회장은 제과제빵 업계의 손꼽히는 재력가다.
리치몬드 성산점과 제과제빵 기술학원이 있는 서울 성산동 5층짜리 빌딩, 10년 전 내가 다녔던 학원이 있었던 서교동 5층짜리 빌딩은 물론 대치동 은마아파트 옆에 있는 리치몬드제과제빵 상가의 상당한 지분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런 성공한 제빵제과인까지 대기업 자본에 밀려난다면 다른 제과제빵인들은 대기업의 부속품 밖에 될 수 없지 않겠는가”라며 개탄했다.
ycseo@morningnews.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