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도심 공원에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수제 현악기를 누구나 직접 만져보고 연주해 볼 수 있는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린다.

오는 22일부터 1주일 동안 서울숲 커뮤니티센터에서 ‘나무에 새긴 선율’ 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현악기장 박경호 작품전은 박경호씨가 손으로 깎아 만든 현악기 작품 가운데 20점이 전시된다.

완성품과 더불어 바이올린 한 대에 필요한 부품들이 모두 분해 전시되어 ‘나무가 바이올린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실감 있게 볼 수 있다.

전시기간 중 ‘제작자와의 대화’ 및 ‘즉석 연주 및 시연회’, ‘개인 현악기 무료 점검’ 등 다채로운 이벤트와 악기별로 제작 스토리가 담긴 ‘작품집’도 발간된다.

관람시간은 오전11시부터 오후6시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박경호 씨는 2002년 이탈리아 굽비오 악기제작학교를 수석 졸업 후 지금까지 현악기 제작에만 전념해왔다. 지금은 고향 부안에 직접 지은 황토집에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악기를 만들고 있다.

달과 별, 석탑 등 자연과 사물의 다양한 이미지를 악기 제작의 모티브로 삼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창작악기 제작을 실험하고 있으며, ‘분단된 한반도’, ‘노동자의 노래’ 등 작품마다 저마다의 고유한 이름과 스토리를 담아 우리 시대의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다.

현악기장 박경호는 누구

수제 바이올린

현악기장 박경호는 1970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20대에는 패션 업계에 종사했다. 1999년에 이탈리아에 건너가서 피렌체 패션학교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우연히 이탈리아 굽비오 악기 제작학교를 견학하던 중, 나무 향기에 취해 현악기 제작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해 가을 Maestri Liutai Scuola di Gubbio Italia 및 Maestri Archeta Scuola di Gubbio Italia(활 제작학교) 입학시험을 보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응시한 터여서 합격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타고난 손재주와 솟구치는 열정 덕분에 그는, 비록 꼴찌 성적이지만 입학을 허가받았다.

굽비오 악기제작학교 한국인 1호 유학생이 된 그는 이탈리아 명장들의 지도를 받으며 등 현악기와 활 제작 공부에 혼신을 다했다. 그리고 2002년 9월 디플로마 시험에서는 시험관 7명 전원에게서 실기점수 만점을 받았다.

비록 입학시험 성적은 꼴찌였으나, 졸업시험에서는 유럽 학생들을 제치고 수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2년 가을에는 Liutai Maestro Dipuloma와 Archetai Maestro Dipuloma를 취득하고, 굽비오 악기제작학교 교장인 Maestro Spattapi에게서 Chitarra 제작 마스트 과정을 사사한 뒤 2003년에 서울로 돌아왔다.

귀국 뒤 그는 서울 방배동에서 ‘경호 park 현악연구소’를 운영하며 현악기 제작에 몰두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악기 제작에만 전념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경호 장인

대부분의 악기 제작자들은 오래된 악기 수리를 해주며 생계를 이어가느라 그들의 연장은 녹이 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악기 수리공’이 되기를 거부하며 오직 제작만을 고집했다. 덕분에 생활은 날로 곤궁해졌다.

그래서 2004년에는 면목동 집 근처 작은 공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편 그 무렵에는 현악기 제작을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한 해 스무 명 가량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작품 제작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모두 돌려보냈다.

그러다보니 작업실 임대료마저 밀리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공사 현장에 가서 날품을 팔아 입에 풀칠을 하면서 제작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2007년에는. 9대째 조상대대로 살아온 전북 부안 시골마을로 내려가, 홀로 계신 어머니가 여생을 보낼 집을 지었다.

도중에 잠깐 매형의 도움을 받은 것 말고는 온전히 혼자서 무려 2년이나 걸려 2층 황토집을 완성했다. 그런 뒤 서울로 와서 방배동에 있는 친구의 작업실 한 구석을 빌려 작품 활동을 재개했고, 2011년 봄에는 ‘시카고악기사’ 주최로 예술의 전당 로비에서 열린 현악기 전시회에 출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 생활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했다. 그해 가을 방배동 공방에서 철수한 박경호는, 아내와 아들을 서울에 남겨둔 채 시골로 내려가 황토집 2층을 작업실로 개조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부안 황토집에 머물며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조명 아래서 작품을 깎아오고 있다.

오랜 기간 나무 향을 맡으며 선율을 새기는 동안에 그는 천편일률적인 현악기의 모형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달과 별, 석탑 등의 이미지를 악기에 담았다.

나아가 시대의 메시지를 악기의 모형에 담는 실험도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소리가 있다는 믿음으로 행하는, 세계 최초의 창작 악기 제작 실험이다.

소리는 어느 특정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번에 전시회를 열어, 지금까지 내 손으로 완성한 현악기 작품을 시민 누구나 향유하게 하려는 것도 그런 신념이 빚은 또 하나의 실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