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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되짚기] '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의 변절
작성 : 2004년 05월 01일(토) 18:38 가+가-
1910년 일제가 조선을 병탄한 뒤, 한반도에서는 십년간 식민 통치를 반대하는 저항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애국활동, 독립정신의 고취로 때로는 목숨을 걸고, 때로는 감옥에 갈 것을 감수하며 활동을 벌이는 지사들이 많이 나왔다.
1919년의 3·1만세항쟁은 바로 이런 역량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이때 우리의 지사들은 일부 온건하고 타협적인 인사들 때문에 비난이 따랐지만 대부분 민중의 존경을 받았다.
3·1만세항쟁 후 겁을 먹은 일제는 강압만으로는 조선의 민족운동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른바 '문화정치'라는 이름으로 지사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거듭하면서 이권을 미끼로 던졌다. 여기에 걸려든 사람이 민족 지도자로 꼽히던 소설가 이광수, 종교인 최린, 역사학자 최남선 등이었다.
이들은 한번 올가미에 걸려들자 일제에 영합해 궤변을 섞어 식민지 정책의 당위성을 내세우고, 우리 민족이 열등하기 때문에 문명한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논조를 펴나갔다. 이 세 사람은 '동아일보'의 간부로, 천도교의 지도자로, 만주침략을 위해 만주에 세운 건국대학의 교수로 활약했다.
이들은 일제의 회유에 처음에는 버티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넘어갔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두 사람의 경우만 실례로 들어보자.
장지연.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이 날에 목을 놓아 통곡한다)을 써서 나라가 망한 사실을 알렸다가 일제에 의해 구금되었다. 이후 해외로 나가 언론활동을 하기도 하고 다시 국내로 들어와서는 사회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진주의 '경남일보' 주필로 있을 때에는 황현의 '절명시'를 게재했다 하여 신문이 폐간되기도 했다.
그 뒤 한때 실의에 잠겨 술로 세월을 보냈으나 3·1만세항쟁이 있은 뒤 끝내 지조를 꿋꿋이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많은 원고료를 받으면서 친일적 논설을 쓰고 일제의 식민통치를 합리화 하는 오점을 남겼다. 또 한 사람은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을 쓴 안국선이다. 그는 애국계몽을 위해 헌신하면서 동물들의 우화를 빌어 약한 나라를 강한 나라가 집어삼키는 약육강식의 국제 현실을 비판했다. 그리하여 지사로 더 유명해 졌다.
그러던 안국선이 우리의 생산품을 수탈해가기 위해 일본 식민지 당국이 꾸민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이를 선전하는 기관인 '공진회'의 책임자가 되었고, 일제가 주는 월급을 챙기며 소위 친일부역배가 됐다.
장지연은 말년에 곡필을 하며 불행하게 죽었고, 안국선은 편안한 삶을 누리다가 죽었다. 이 두 사람의 행동은 지식인 지사에 흠집을 만든 역사의 불행이었다. 인간의 지조는 세월이 말해준다.
민족의 등불, 한용운과 정인보
만해 한용운.
그러나 모든 지사와 지식인들이 변절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꿋꿋한 지사의 모습을 다음 두 사람을 통해서 볼 수 있다. 한 사람은 만해 한용운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위당 정인보였다.
만해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일제와 타협한 적이 없었다. 끊임없는 탄압과 유혹이 들어올지라도 이를 물리쳤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잡문을 쓰고 소설을 쓰면서 버텨 나갔다.
위당은 아예 교수직을 버리고 서울을 떠났다. 자녀들을 학교에서 중퇴시키고 시골 남의 집 행랑채 신세를 지며 살았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으니, 아예 더러운 곳을 멀리했던 것이다. 위당은 밝은 세상을 만나 그의 지조에 대해 높임을 받았지만, 만해는 끝내 조국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위당 정인보.
일제 식민통치 35년 간은 인간의 지조를 시험하는 모진 기간이었다.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때 참모습을 보이게 된다. 비록 해외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지는 않았으나 정인보, 한용운 같은 분들의 지조는 역사를 밝게 한다.
이 나라의 지사였던 사람이 모두 친일부역배로 변신했다면 역사가 얼마나 비참했겠는가. 근래에 역사문제연구소, 독립운동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그리고 '순국' 같은 잡지에서 친일부역배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는 모습을 본다.
흔히 이런 일을 덮어두자고 말하기도 하나 이것은 역사의 엄정성을 깔보는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일을 과거지사로 돌린다면 현재적 비리와 불의도 덮어두는 꼴이 된다. 그럴수는 없는 것 아닌가.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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