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
영화 ‘리턴 홈’ 귀향 … 제3국 떠났던 친공포로의 삶
작성 : 2015년 08월 10일(월) 17:51 가+가-

김명복 할아버지
한국전쟁 때 15살 북한군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후 고국이 아닌 제3국을 택해 브라질로 떠났던 김명복 할아버지(79)와 강희동 목사 부부가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거제를 방문했다.
김 할아버지는 학교운동장에 모인 다른 학생들과 함께 조국을 구해야 한다는 징집관의 한마디에 차량에 태워져 2~3일 훈련 받고 곧바로 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양평 근교 전투에서 낙오, 국군에게 맨손 투항해 포로가 됐고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
김 할아버지의 거제방문은 한국전쟁 이후 조국을 버리고 제3국을 택해야 했던 포로의 일생(삶)을, 60여년이 흐른 이후 연어가 회귀하듯 시간을 거슬러 오는 과정을 그리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중이다.
이 영화는 장애인의 성을 소재로 다룬 영화 섹스볼란티어의 감독이었던 조경덕 감독(41)이 제작중이다.
이 영화의 콘셉트는 남과 북이 아니라 한국전쟁 휴전 후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택했던 77명의 전쟁포로들의 삶을, 생존자 중심으로 그들의 시각에서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9일 친공포로들을 수용했던 78수용소가 위치했던 수월들판에선 김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향토사학자 이승철씨가 스크랩 해 보관중인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당시를 기억했다.
“참으로 다 설명하지 못할 엄청난 일들이 수용소에서 많이 일어났었다” 고 당시상황을 기억한 듯 손사래 쳤다. 포로수용소 유적지 방문을 위해 김 할아버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 청심환까지 먹은 후에야 진정이 됐다.
김 할아버지는 고국을 등지고 인도를 거쳐 브라질 서부 마토그로소주(州) 쿠이아바시에서 지금껏 농부로 살아왔다.
1954년 한국을 떠난 이후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를 본 그는 이제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고향 북한 땅을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다.
김 할아버지와 강 목사는 제3국을 택했던 포로로 인연이 시작돼 인도에서 근 3년을 동고동락했던 사이다. 김 할아버지와 강 목사도 근 60년만에 이번에 다시 만났다.
얼굴을 분명히 기억못하지만 이름을 들으니 기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거제에 체류하는 동안 이들은 고현교회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지내며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과 잔존 유적지 등을 둘러봤다. 거제 방문기간 반대식 시의회 의장이 동행했고 의회에서 제공한 차량편을 이용했다.
‘리턴 홈’(귀향)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간 77인의 포로들의 기록을 담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또한 그들의 60년을 거슬러 영상자료화 한 최초이자 마지막 기록물이 될 전망이다.
이 영화의 제작에는 1억5000만원의 거제시예산이 지원된다.
처음 이 예산은 반대식 의원이 직접 나서 5000만원의 의원 포괄사업비에다 같은 지역구였던 유영수 의원이 동참, 5000만원의 포괄사업비를 보태 1억원의 예산을 만들었다. 거제시도 5000만원의 예산을 더했다.
영화제작비에는 턱 없이 못 미치는 액수지만 이 영화의 꺼져가는 불씨를 지폈다.
거제시는 거제도포로수용소와 관련된 값진 자산이며 교훈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점도 주목받을 만 하다. 영화의 기록보존을 위한 추가 지원도 검토가 필요하다.
외신기자에 이어 10일 열린 국내 기자들과의 ‘리턴 홈’ 제작 기자회견장에게 걸린 현수막에는 제작지원을 알리는 거제시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조경덕 감독은 “5년전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중에 사망하신분도 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위기를 수십 번도 더 만났다. 하지만 지금까지 와 있다. 이분들이 가시는 곳 까지 함께 기록을 남기겠다” 고 전했다.
전쟁에 승자는 없다. 적과 싸운 것이 아니라 전쟁과 싸운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제3국을 택했거나 전쟁에서 미망인이 되고 상이용사가 되고 실향민이 되고, 고아가 된 모든 사람에게 피의 유전만 남았다.
‘리턴 홈’ 김 할아버지의 귀향은 우리에게 피의 유전이 종식되고 평화의 유전이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용찬 기자 기사 더보기
김 할아버지는 학교운동장에 모인 다른 학생들과 함께 조국을 구해야 한다는 징집관의 한마디에 차량에 태워져 2~3일 훈련 받고 곧바로 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양평 근교 전투에서 낙오, 국군에게 맨손 투항해 포로가 됐고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
김 할아버지의 거제방문은 한국전쟁 이후 조국을 버리고 제3국을 택해야 했던 포로의 일생(삶)을, 60여년이 흐른 이후 연어가 회귀하듯 시간을 거슬러 오는 과정을 그리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중이다.
이 영화는 장애인의 성을 소재로 다룬 영화 섹스볼란티어의 감독이었던 조경덕 감독(41)이 제작중이다.
이 영화의 콘셉트는 남과 북이 아니라 한국전쟁 휴전 후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택했던 77명의 전쟁포로들의 삶을, 생존자 중심으로 그들의 시각에서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9일 친공포로들을 수용했던 78수용소가 위치했던 수월들판에선 김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향토사학자 이승철씨가 스크랩 해 보관중인 사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당시를 기억했다.
“참으로 다 설명하지 못할 엄청난 일들이 수용소에서 많이 일어났었다” 고 당시상황을 기억한 듯 손사래 쳤다. 포로수용소 유적지 방문을 위해 김 할아버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 청심환까지 먹은 후에야 진정이 됐다.
김 할아버지는 고국을 등지고 인도를 거쳐 브라질 서부 마토그로소주(州) 쿠이아바시에서 지금껏 농부로 살아왔다.
1954년 한국을 떠난 이후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거제포로수용소를 본 그는 이제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고향 북한 땅을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다.
김 할아버지와 강 목사는 제3국을 택했던 포로로 인연이 시작돼 인도에서 근 3년을 동고동락했던 사이다. 김 할아버지와 강 목사도 근 60년만에 이번에 다시 만났다.
얼굴을 분명히 기억못하지만 이름을 들으니 기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거제에 체류하는 동안 이들은 고현교회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지내며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과 잔존 유적지 등을 둘러봤다. 거제 방문기간 반대식 시의회 의장이 동행했고 의회에서 제공한 차량편을 이용했다.
‘리턴 홈’(귀향)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간 77인의 포로들의 기록을 담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또한 그들의 60년을 거슬러 영상자료화 한 최초이자 마지막 기록물이 될 전망이다.
이 영화의 제작에는 1억5000만원의 거제시예산이 지원된다.
처음 이 예산은 반대식 의원이 직접 나서 5000만원의 의원 포괄사업비에다 같은 지역구였던 유영수 의원이 동참, 5000만원의 포괄사업비를 보태 1억원의 예산을 만들었다. 거제시도 5000만원의 예산을 더했다.
영화제작비에는 턱 없이 못 미치는 액수지만 이 영화의 꺼져가는 불씨를 지폈다.
거제시는 거제도포로수용소와 관련된 값진 자산이며 교훈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점도 주목받을 만 하다. 영화의 기록보존을 위한 추가 지원도 검토가 필요하다.
외신기자에 이어 10일 열린 국내 기자들과의 ‘리턴 홈’ 제작 기자회견장에게 걸린 현수막에는 제작지원을 알리는 거제시의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조경덕 감독은 “5년전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중에 사망하신분도 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위기를 수십 번도 더 만났다. 하지만 지금까지 와 있다. 이분들이 가시는 곳 까지 함께 기록을 남기겠다” 고 전했다.
전쟁에 승자는 없다. 적과 싸운 것이 아니라 전쟁과 싸운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제3국을 택했거나 전쟁에서 미망인이 되고 상이용사가 되고 실향민이 되고, 고아가 된 모든 사람에게 피의 유전만 남았다.
‘리턴 홈’ 김 할아버지의 귀향은 우리에게 피의 유전이 종식되고 평화의 유전이 이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ycseo@morning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