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의종의 한이 서린 폐왕성
작성 : 2006년 05월 05일(금) 11:58 가+가-

폐왕성과 산방산의 모습.
지금은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교도소에 가두어 다른 사람들과 격리시키지만, 예전에는 귀양을 보냈다. 귀양이란 귀향(歸鄕)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는 고향으로 돌아가 잘못을 뉘우치고 앞날을 새롭게 설계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고향에 보냈더니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므로 고향이 아닌 살기 힘든 곳으로 보냈는데, 이를 귀양 또는 유배라고 하였다.
주로 귀양을 많이 보낸 곳을 유배지라고 한다. 유배지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어렵고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섬이나 심산유곡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거제도를 유배의 땅이라고 한다.
거제대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배를 이용하여 섬을 넘나들었기에 이곳에 부임하는 사람들은 유배 간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였다. 과거에 거제도는 유배지로 자주 이용되었다. 조선시대 이곳에 유배 온 사람으로는 조선 연산군 시절 우찬성 벼슬을 지낸 최숙과 숙종 시절의 송시열이 있다.
우리의 역사에 왕이 유배를 가거나 죽음을 당한 경우가 여럿 있다. 고려 7대 임금인 목종이 강조에 의해 충주로 유배되던 중 살해당하였고, 고려 18대 임금인 의종이 정중부의 무신란으로 거제도로 온 일,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폐위되어 강원도 영월 지방으로 간 일, 조선 10대 임금인 연산군이 강화도로 유배된 일, 인조반정으로 폐위 당한 조선 15대 임금인 광해군이 제주도로 유배된 일 등이다.
1170년 의종 24년 정중부의 무신란으로 의종은 쫓겨나고 거제도로 유배 오게 된다. 그 당시 거제도는 진주목의 기성현이었는데, 현의 중심지는 지금의 둔덕면 거림리였다. 그는 이곳에 기성(현 폐왕성)을 쌓고 명종 3년인 1173년에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이 왕의 복위를 꾀하자 경주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서 이의민에 의해 시해되니, 왕이 쌓았던 기성을 폐왕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의종(1127-1173년)은 인종의 장남으로서 이름은 현이고 어머니는 공예태후였다. 1146년에 왕위에 올라 처음에는 왕권 강화에 힘썼으나, 점차 방종하여 문신들과 어울려 연회를 베풀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매일 즐겼다. 문신들은 우대하고 무신들에게는 연회 자리의 경비를 서게 만드니 문신들도 무신들을 얕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김부식의 아들인 김돈중이 상장군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우는 일이 발생하여, 정중부는 원한을 품게 된다. 보현원으로 놀이 가는 길에 불만이 있는 무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왕은 무술 연습을 명하였으나 대장군 이소응이 몸이 마르고 약하여 문신들이 희롱하고 때리려 하자 장군이 도망을 다녔고, 급기야 문신 한뇌가 장군의 얼굴을 때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그 날 저녁 그 동안의 울분이 폭발한 정중부, 이고, 이의방은 문관과 내시들을 죽이고 정권을 잡는다. 정중부는 왕의 아우 호를 새 임금으로 임명하고(훗날 명종이다) 의종은 거제도로 귀양 보내고, 태자는 진도로 유배를 보냈다.
명종 3년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이 정중부를 치려다가 이의민에게 패하여 죽고, 이를 모르는 의종은 장순석 등과 함께 복위를 위해 경주로 나가게 된다. 결국 이의민에 의해 의종과 의종의 신하들은 경주에서 죽는다.
폐왕성은 길이 640미터, 높이 8미터로 둔덕면 우두봉에 있는데, 1170년에 축조된 산성으로 도지정 기념물 11호이다. 성내에는 천지못이 있어 사철 물이 흘러나오고, 북쪽에는 기우제와 산신제를 모시는 제단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성을 쌓을 때, 지리산 신선인 마고할미가 치마에 돌을 가져와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기 위해 발굴하는 과정에서 폐왕성은 사국시대부터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폐왕성을 오르는 길의 초입에는 고려시대에 기성현(1018년에 거제현으로 개칭됨)의 중심지 역할을 한 기성현지(경상남도기념물 제162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발굴 후 관리를 하지 않아 풀만 무성하지만, 이곳에서 남쪽을 바라다보면 의종을 모셨던 신하들이 살았던 마을의 흔적이 계단식 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둔덕면과 여러 마을의 이름에는 그 당시의 흔적이 다수 남아 있는데, 상둔과 하둔에는 호위군의 주둔지로서 넓은 들판에 둔전을 설치하여 식량을 생산 공급한 곳이다. 거림 마을은 숲이 울창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농막 마을은 농사를 짓는 곳, 마장과 시막은 말을 키우던 곳이라는 의미이다.
기성현지에서 폐왕성으로 오르는 길은 차가 서로 피하기에 좁은 길이고, 자가용으로 10분, 걸어서는 1시간이 걸린다. 폐왕성이 위치하고 있는 산의 이름은 우두봉이다. 우두봉은 둔덕면과 사등면 오량 마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산의 정상 부위에는 넓은 초원이 분포하고 있다.
이 초원에는 의종 때부터 말을 방목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때는 이곳에 소를 놓아 먹였기에 약초를 먹고 자란 거제소를 전국에서 알아주었다. 그래서 한때는 거제도를 소섬, 제주도를 말섬이라 지칭하기도 하였으나 예전의 말이 된지 오래이다.
의종의 회한이 서린 폐왕성 내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가장 많은 식물은 곰솔이고, 그 아래에 쥐오줌풀, 광대수염, 줄딸기, 칡, 싸리냉이, 으름덩굴, 인동덩굴 등이 어울려 자라고 있다.
폐왕성은 거제도에 있는 산성 중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통영과 한산도 및 견내량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의종은 이곳에서 바다 건너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부여받고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소명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고려 의종과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법이다. 폐왕성의 성루에 앉아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광을 보면서 현재의 위치에서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김철수 소개
김철수는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2000년 국립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늪과 갯벌의 식물생태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체험학습자료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교육 및 식물생태학 관련 연구논문으로 40여 편이 있고, 여러 학술 및 연구 조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거제중앙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있고, 2003년 행정자치부 신지식인에 선정되었다.
주요 논문에는 ‘박실늪의 퇴적과 교란에 따른 수생 및 습생관속식물의 군집동태와 생산성’, 저서로는 ‘늪 푹 빠진 내 친구야’(공저, 꿈소담이, 2004), ‘거제도’(대원사, 2006)가 있다.
김철수 기자 kcs1217@hanmail.net 기사 더보기
그런데 고향에 보냈더니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므로 고향이 아닌 살기 힘든 곳으로 보냈는데, 이를 귀양 또는 유배라고 하였다.
주로 귀양을 많이 보낸 곳을 유배지라고 한다. 유배지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어렵고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섬이나 심산유곡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거제도를 유배의 땅이라고 한다.
![]() |
| 기성현지의 모습. |
거제대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배를 이용하여 섬을 넘나들었기에 이곳에 부임하는 사람들은 유배 간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였다. 과거에 거제도는 유배지로 자주 이용되었다. 조선시대 이곳에 유배 온 사람으로는 조선 연산군 시절 우찬성 벼슬을 지낸 최숙과 숙종 시절의 송시열이 있다.
우리의 역사에 왕이 유배를 가거나 죽음을 당한 경우가 여럿 있다. 고려 7대 임금인 목종이 강조에 의해 충주로 유배되던 중 살해당하였고, 고려 18대 임금인 의종이 정중부의 무신란으로 거제도로 온 일,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폐위되어 강원도 영월 지방으로 간 일, 조선 10대 임금인 연산군이 강화도로 유배된 일, 인조반정으로 폐위 당한 조선 15대 임금인 광해군이 제주도로 유배된 일 등이다.
1170년 의종 24년 정중부의 무신란으로 의종은 쫓겨나고 거제도로 유배 오게 된다. 그 당시 거제도는 진주목의 기성현이었는데, 현의 중심지는 지금의 둔덕면 거림리였다. 그는 이곳에 기성(현 폐왕성)을 쌓고 명종 3년인 1173년에 동북면병마사 김보당이 왕의 복위를 꾀하자 경주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서 이의민에 의해 시해되니, 왕이 쌓았던 기성을 폐왕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
| 산방산에서 바라본 폐왕성. |
의종(1127-1173년)은 인종의 장남으로서 이름은 현이고 어머니는 공예태후였다. 1146년에 왕위에 올라 처음에는 왕권 강화에 힘썼으나, 점차 방종하여 문신들과 어울려 연회를 베풀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매일 즐겼다. 문신들은 우대하고 무신들에게는 연회 자리의 경비를 서게 만드니 문신들도 무신들을 얕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김부식의 아들인 김돈중이 상장군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우는 일이 발생하여, 정중부는 원한을 품게 된다. 보현원으로 놀이 가는 길에 불만이 있는 무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왕은 무술 연습을 명하였으나 대장군 이소응이 몸이 마르고 약하여 문신들이 희롱하고 때리려 하자 장군이 도망을 다녔고, 급기야 문신 한뇌가 장군의 얼굴을 때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그 날 저녁 그 동안의 울분이 폭발한 정중부, 이고, 이의방은 문관과 내시들을 죽이고 정권을 잡는다. 정중부는 왕의 아우 호를 새 임금으로 임명하고(훗날 명종이다) 의종은 거제도로 귀양 보내고, 태자는 진도로 유배를 보냈다.
![]() |
| 폐왕성 발굴 모습. |
명종 3년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이 정중부를 치려다가 이의민에게 패하여 죽고, 이를 모르는 의종은 장순석 등과 함께 복위를 위해 경주로 나가게 된다. 결국 이의민에 의해 의종과 의종의 신하들은 경주에서 죽는다.
폐왕성은 길이 640미터, 높이 8미터로 둔덕면 우두봉에 있는데, 1170년에 축조된 산성으로 도지정 기념물 11호이다. 성내에는 천지못이 있어 사철 물이 흘러나오고, 북쪽에는 기우제와 산신제를 모시는 제단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성을 쌓을 때, 지리산 신선인 마고할미가 치마에 돌을 가져와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기 위해 발굴하는 과정에서 폐왕성은 사국시대부터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 |
| 폐왕성루. |
폐왕성을 오르는 길의 초입에는 고려시대에 기성현(1018년에 거제현으로 개칭됨)의 중심지 역할을 한 기성현지(경상남도기념물 제162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발굴 후 관리를 하지 않아 풀만 무성하지만, 이곳에서 남쪽을 바라다보면 의종을 모셨던 신하들이 살았던 마을의 흔적이 계단식 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둔덕면과 여러 마을의 이름에는 그 당시의 흔적이 다수 남아 있는데, 상둔과 하둔에는 호위군의 주둔지로서 넓은 들판에 둔전을 설치하여 식량을 생산 공급한 곳이다. 거림 마을은 숲이 울창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농막 마을은 농사를 짓는 곳, 마장과 시막은 말을 키우던 곳이라는 의미이다.
기성현지에서 폐왕성으로 오르는 길은 차가 서로 피하기에 좁은 길이고, 자가용으로 10분, 걸어서는 1시간이 걸린다. 폐왕성이 위치하고 있는 산의 이름은 우두봉이다. 우두봉은 둔덕면과 사등면 오량 마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산의 정상 부위에는 넓은 초원이 분포하고 있다.
![]() |
| 폐왕성에서 자라는 광대수염. |
이 초원에는 의종 때부터 말을 방목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때는 이곳에 소를 놓아 먹였기에 약초를 먹고 자란 거제소를 전국에서 알아주었다. 그래서 한때는 거제도를 소섬, 제주도를 말섬이라 지칭하기도 하였으나 예전의 말이 된지 오래이다.
의종의 회한이 서린 폐왕성 내에는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가장 많은 식물은 곰솔이고, 그 아래에 쥐오줌풀, 광대수염, 줄딸기, 칡, 싸리냉이, 으름덩굴, 인동덩굴 등이 어울려 자라고 있다.
폐왕성은 거제도에 있는 산성 중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이곳에 올라서면 통영과 한산도 및 견내량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의종은 이곳에서 바다 건너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부여받고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소명의식을 가지지 않으면 고려 의종과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법이다. 폐왕성의 성루에 앉아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광을 보면서 현재의 위치에서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김철수 소개
김철수는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2000년 국립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늪과 갯벌의 식물생태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체험학습자료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교육 및 식물생태학 관련 연구논문으로 40여 편이 있고, 여러 학술 및 연구 조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거제중앙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있고, 2003년 행정자치부 신지식인에 선정되었다.
주요 논문에는 ‘박실늪의 퇴적과 교란에 따른 수생 및 습생관속식물의 군집동태와 생산성’, 저서로는 ‘늪 푹 빠진 내 친구야’(공저, 꿈소담이, 2004), ‘거제도’(대원사, 2006)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