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회 장군 간찰 국립진주박물관 기증
임란초기 의병배치상황 등 역사적 가치 높아
작성 : 2005년 08월 22일(월) 10:49 가+가-

논개의 남편으로 알려진 경상우도병마 절도사 최경회 장군의 간찰(간지에 쓴 편지)이 임진왜란사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관장 고경희)에 기증됐다.
국립진주박물관(관장 고경희)은 지난 9일 “조경옥(46.서울) 씨로부터 2차진주성전투에서 순국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 장군의 간찰 1점을 기증받았다” 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이 간찰은 책자로 꾸며졌던 것을 분리한 것으로 세로 45cm, 가로 30cm의 한지 3장이 배접된 상태이며 1592년 10월 20일 작성된 것으로 당시 경상감사인 김성일에게 보내는 것으로 추측된다” 고 설명했다 .
간찰이 보낸진 시기는 1차진주성전투가 끝난 직후로, 자신이 거느린 군사 중 일부를 우지치(牛旨峙)에 배치시켜 경상도의병장 김면과 전라좌도의병장 임계영 등과 연합하려한다 는 것과, 새로 가담하는 의병에 대한 상황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또한 최경회 자신을 ‘고애자(孤哀子)’라고 적어 당시 최경회가 상중(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모친상을 당해 고향 화순에 머물다가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의병을 일으킴)임을 알 수 있다.
최경회는 기대승 등 당대의 유학자에게 수학했으며, 1567년(선조 즉위년) 문과에 급제한 문신이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경운·경장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의병장에 추대됐고, 전라도 장수, 경상도 성주에서 왜군을 격파한 공로로 경상우병사에 임명됐다.
1593년 6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등이 진주성을 다시 공격해오자 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 의병장 고종후 등과 함께 진주성 사수에 나섰으나 9일 만에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 순국했다. 진주 창렬사, 화순 포충사에 제향됐다.
진주박물관은 “이번에 기증받은 최경회의 간찰은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간찰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학계에는 처음 소개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특히 임진왜란사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소재한 진주성과 관련이 깊은 인사의 편지라는 점, 임진왜란 초기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이 직접 경상우도지역의 의병배치 상황을 서술한 것으로 학술적인 의의가 크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 밝혔다.
모닝뉴스 기자 webmaster@morningnews.or.kr 기사 더보기
국립진주박물관(관장 고경희)은 지난 9일 “조경옥(46.서울) 씨로부터 2차진주성전투에서 순국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 장군의 간찰 1점을 기증받았다” 고 밝혔다.
박물관 측은 “이 간찰은 책자로 꾸며졌던 것을 분리한 것으로 세로 45cm, 가로 30cm의 한지 3장이 배접된 상태이며 1592년 10월 20일 작성된 것으로 당시 경상감사인 김성일에게 보내는 것으로 추측된다” 고 설명했다 .
간찰이 보낸진 시기는 1차진주성전투가 끝난 직후로, 자신이 거느린 군사 중 일부를 우지치(牛旨峙)에 배치시켜 경상도의병장 김면과 전라좌도의병장 임계영 등과 연합하려한다 는 것과, 새로 가담하는 의병에 대한 상황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또한 최경회 자신을 ‘고애자(孤哀子)’라고 적어 당시 최경회가 상중(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모친상을 당해 고향 화순에 머물다가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의병을 일으킴)임을 알 수 있다.
최경회는 기대승 등 당대의 유학자에게 수학했으며, 1567년(선조 즉위년) 문과에 급제한 문신이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경운·경장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의병장에 추대됐고, 전라도 장수, 경상도 성주에서 왜군을 격파한 공로로 경상우병사에 임명됐다.
1593년 6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등이 진주성을 다시 공격해오자 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 의병장 고종후 등과 함께 진주성 사수에 나섰으나 9일 만에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 순국했다. 진주 창렬사, 화순 포충사에 제향됐다.
진주박물관은 “이번에 기증받은 최경회의 간찰은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간찰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학계에는 처음 소개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특히 임진왜란사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소재한 진주성과 관련이 깊은 인사의 편지라는 점, 임진왜란 초기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이 직접 경상우도지역의 의병배치 상황을 서술한 것으로 학술적인 의의가 크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