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땅 대마도를 꿈꾸며…
가라산 이름의 의미와 역사적인 역할 및 등산
작성 : 2006년 04월 07일(금) 16:47 가+가-

가라산 정상의 표지석.
거제도에 있는 산들은 높이가 낮지만 바다에서 힘차게 솟아올라 있다. 많은 봉우리 중에서 높이와 웅장함에 따라 10개의 명산을 지칭하고 있는데, 이는 가라산(加羅山), 옥녀봉, 산방산, 노자산, 대금산, 계룡산, 북병산, 앵산, 국사봉, 선자산이다.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은 585.5미터의 가라산이다. 가라산을 기점으로 세 개의 산등성이가 펼쳐지는데, 한 줄기는 남해 바다로 뻗어 내려 해금강을 이루고, 다른 줄기는 매물도 방향으로 뻗어 망산과 천장산을 이루고 있다. 또 다른 줄기는 거제도의 등뼈 역할을 하는 작은 산맥을 이루어 노자산, 선자산, 계룡산, 산방산을 거쳐 거제대교 쪽으로 뻗어 있다.
화창한 날씨에 가라산 정상에 올라서면 멀리 대마도가 바라보인다. 가라산의 의미는 대마도에서 바라다 보이는 가야의 산이라는 의미가 맞지 않을까?(기자의 전적인 생각임)
거제도와 인접한 대마도의 동요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파도를 타고 바람을 타고
햇빛을 타고 금방석 구름을 타고
볍씨를 안고 멀리오신 신령님이시여
올해에도 신령님 덕분에 풍작을 이뤘으니 감사하며
내년에도 풍년이 들어 재앙이 없게 하소서
가라 가라 가라
광개토대왕릉비를 비롯한 고려시대 이전의 금석문 및 사서에는 가야(加耶)를 가야, 가라, 가락, 구야, 가량, 하라 등 10여 종류로 표기하였는데, 가장 많이 사용한 이름은 ‘가라’로 총 49번이 나온다. 이 중 일본서기에서 ‘가라’라는 지명은 29번으로 가장 많이 나온다.
동요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마도와 가야의 관계는 가야에서 신령님이 볍씨를 가져다 주는 관계로 종속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특별히 후렴에 붙은 가라의 의미는 가야를 칭송하기 위한 구절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 대마도의 어부들이 거제도 연안까지 고기를 잡으러 왔었으며 강한 바람이나 태풍을 만나면 가라산이 길게 뻗어내려 만들어진 천장산과 망산에 의해 형성된 천연항구인 저구와 율포로 피신을 왔다고 한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그들에게 있어 볍씨를 가지고 오는 신령님이 살고 있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도움을 준 산이 가라산인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가라산이라는 지명에 대한 유래는 503년 금관가야의 국경이 북으로는 가야산이고, 남으로는 거제도였다고 한데서, 남쪽의 가야산이 가라산으로 변음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오늘날 밝혀진 가야의 최북단은 경북 상주 근방이므로 이 말은 이치에 맞지 않다.
거제도가 속해 있는 가야의 역사를 알아보자. 사국시대에 거제도는 변한의 독로국으로 나중에 소가야에 소속되었고, 소가야는 아라가야 권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가야는 조선술이 발달하여 왜, 중국, 낙랑과 대방 등지를 자유로이 왕래할 정도의 수준을 가진 해상국가였다.
아라가야에서 생산된 많은 철은 뱃길을 이용해 여러 나라로 보내지게 되는데, 이때 거제도도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일본서기에 그 당시의 거제도를 사도도라고 하였는데, 아라가야에서 대마국으로 가는 중요한 항구 역할을 하였다.
가라산을 오르는 길은 다섯 갈래가 있다. 학동의 동백림에서 진마이재를 거치는 길(2.4킬로미터, 1시간20분소요), 다대저수지에서 올라가는 길(1.6킬로미터, 50분소요), 다대초등학교에서 망골을 거치는 길(2.5킬로미터, 1시간20분소요), 저구마을 뒤편의 1018번 지방도로에서 올라가는 길(2.6킬로미터, 1시간30분소요), 탑포마을 뒤편의 1018번 지방도로에서 올라가는 길(1.4킬로미터, 50분소요) 등이다.
그 외에도 노자산을 경유하여 가라산으로 갈 수 있는데, 학동고개에서 뫼바위를 거쳐 가는 길(4.2킬로미터, 2시간20분소요), 동부면 혜양사에서 노자산, 가라산을 저구 마을로 가는 길(8.8킬로미터, 4시간 30분소요)이 있다. 특히 혜양사에서 저구를 거쳐 다시 망산으로 갈 수 있는데, 이 길은 약 12킬로미터로 7시간 30분이 걸린다.
가라산 정상에 올라서면 동으로는 학동해수욕장이, 남으로는 해금강과 다대방파제가, 서로는 망산과 다도해가, 북으로는 노자산 자락과 거제만이 보인다. 가라산은 전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산세도 넉넉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큰 역할을 하였다.
가라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이를 기점으로 남부면 탑포리와 다대리, 동부면의 학동리로 나뉘어 진다. 헬기장이 설치되면서 대부분이 소실되었지만 아직도 석축 일부가 남아 있고, 이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4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거제사찰고에 따르면 가라산 남쪽 견암봉(등망) 아래에 견암사(見岩寺)라는 절터가 있다고 하였다. 이는 세종실록에도 나타나는데, 사찰에 속한 전답이 백결(1결은 조선시대 경작지 단위로 1등급은 3,000평 정도이고, 6등급은 14,500평 정도임)이고 거주하는 승려가 70명이라고 하였다. 한때 이 절에는 많은 스님이 거주하였는데, 왜적들이 쌀뜨물이 바다까지 흘러오는 모습을 보고 많은 승병이 있는 것으로 알고 도망갔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가라산 자락에는 고려시대에 축성된 다대산성이 있다. 원형이 보존된 산성은 서남북쪽에 문이 배치되어 있고, 남문 주변에는 당시의 연못 터와 당산제를 모시던 사당이 있다. 그 외에도 다대저수지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는 산성의 흔적이 능선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고, 예전에 다대에서 학동으로 넘어가든 고갯길인 다대재 주변에는 여러 기의 막돌탑이 있다.
가라산이 펼쳐져 감싸고 있는 다대와 다포마을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에 송변현(松邊縣)의 치소로 여겨진다. 동국여지승람에 가라산 남쪽 10여리에 송변현이 있다는 구절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532년 가락국이 신라에 병합되자 거제도는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677년 문무왕 17년에 거제도에 상군(裳郡)을 설치하고 송변현, 거로현, 매진리현 등의 3속현을 두었다.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마산의 정동행성에서 일본의 구주지방을 공격할 때 송변에서 배를 출발했다는 기록이 있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승리한 옥포대첩 전날 이순신함대 91척이 정박한 항구로서 역사서에는 송미포(松未浦, 송변)로 나온다.
1983년 이곳에 국립수산진흥원 국립종묘배양장이 만들어져 광어, 전복, 보리새우 증식을 하고 있다. 남해의 파도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든 이 곳은 1998년에 600미터의 방파제를 만들었는데, 이 방파제는 그 풍경이 아름다워 영화 촬영 장소로 각광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송혜교와 차태현이 출연한 ‘파랑주의보’이다.
대마도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산인 가라산이 있는 거제도, 얼마나 자랑스런 곳인가.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가 자부심을 가지고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누가 우리 것을 찾아주고 지켜줄 것인가! 특히 사국시대에 거제도가 포함되는 남해의 이름은 창해(蒼海)였다.
즉 푸르면서 무성하게 이루어내는 바다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제도는 태평양으로 뻗어 나가는 교두보로서, 우리 민족이 세계화의 중심이 되어 역사를 이루는데 필요한 밑거름이 되는 바다가 될 것이다.
김철수 소개
김철수는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2000년 국립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늪과 갯벌의 식물생태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체험학습자료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교육 및 식물생태학 관련 연구논문으로 40여 편이 있고, 여러 학술 및 연구 조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거제중앙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있고, 2003년 행정자치부 신지식인에 선정되었다.
주요 논문에는 ‘박실늪의 퇴적과 교란에 따른 수생 및 습생관속식물의 군집동태와 생산성’, 저서로는 ‘늪 푹 빠진 내 친구야’(공저, 꿈소담이, 2004), ‘거제도’(대원사, 2006)가 있다.
김철수 기자 kcs1217@hanmail.net 기사 더보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은 585.5미터의 가라산이다. 가라산을 기점으로 세 개의 산등성이가 펼쳐지는데, 한 줄기는 남해 바다로 뻗어 내려 해금강을 이루고, 다른 줄기는 매물도 방향으로 뻗어 망산과 천장산을 이루고 있다. 또 다른 줄기는 거제도의 등뼈 역할을 하는 작은 산맥을 이루어 노자산, 선자산, 계룡산, 산방산을 거쳐 거제대교 쪽으로 뻗어 있다.
화창한 날씨에 가라산 정상에 올라서면 멀리 대마도가 바라보인다. 가라산의 의미는 대마도에서 바라다 보이는 가야의 산이라는 의미가 맞지 않을까?(기자의 전적인 생각임)
거제도와 인접한 대마도의 동요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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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동해수욕장에서 바라 본 대마도. |
파도를 타고 바람을 타고
햇빛을 타고 금방석 구름을 타고
볍씨를 안고 멀리오신 신령님이시여
올해에도 신령님 덕분에 풍작을 이뤘으니 감사하며
내년에도 풍년이 들어 재앙이 없게 하소서
가라 가라 가라
광개토대왕릉비를 비롯한 고려시대 이전의 금석문 및 사서에는 가야(加耶)를 가야, 가라, 가락, 구야, 가량, 하라 등 10여 종류로 표기하였는데, 가장 많이 사용한 이름은 ‘가라’로 총 49번이 나온다. 이 중 일본서기에서 ‘가라’라는 지명은 29번으로 가장 많이 나온다.
동요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마도와 가야의 관계는 가야에서 신령님이 볍씨를 가져다 주는 관계로 종속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특별히 후렴에 붙은 가라의 의미는 가야를 칭송하기 위한 구절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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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장산에서 바라본 가라산 전체의 전경. |
조선시대까지 대마도의 어부들이 거제도 연안까지 고기를 잡으러 왔었으며 강한 바람이나 태풍을 만나면 가라산이 길게 뻗어내려 만들어진 천장산과 망산에 의해 형성된 천연항구인 저구와 율포로 피신을 왔다고 한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그들에게 있어 볍씨를 가지고 오는 신령님이 살고 있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도움을 준 산이 가라산인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가라산이라는 지명에 대한 유래는 503년 금관가야의 국경이 북으로는 가야산이고, 남으로는 거제도였다고 한데서, 남쪽의 가야산이 가라산으로 변음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오늘날 밝혀진 가야의 최북단은 경북 상주 근방이므로 이 말은 이치에 맞지 않다.
거제도가 속해 있는 가야의 역사를 알아보자. 사국시대에 거제도는 변한의 독로국으로 나중에 소가야에 소속되었고, 소가야는 아라가야 권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가야는 조선술이 발달하여 왜, 중국, 낙랑과 대방 등지를 자유로이 왕래할 정도의 수준을 가진 해상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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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대에서 학동으로 넘어가는 다대재 주변에 위치한 산성의 흔적. |
아라가야에서 생산된 많은 철은 뱃길을 이용해 여러 나라로 보내지게 되는데, 이때 거제도도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일본서기에 그 당시의 거제도를 사도도라고 하였는데, 아라가야에서 대마국으로 가는 중요한 항구 역할을 하였다.
가라산을 오르는 길은 다섯 갈래가 있다. 학동의 동백림에서 진마이재를 거치는 길(2.4킬로미터, 1시간20분소요), 다대저수지에서 올라가는 길(1.6킬로미터, 50분소요), 다대초등학교에서 망골을 거치는 길(2.5킬로미터, 1시간20분소요), 저구마을 뒤편의 1018번 지방도로에서 올라가는 길(2.6킬로미터, 1시간30분소요), 탑포마을 뒤편의 1018번 지방도로에서 올라가는 길(1.4킬로미터, 50분소요) 등이다.
그 외에도 노자산을 경유하여 가라산으로 갈 수 있는데, 학동고개에서 뫼바위를 거쳐 가는 길(4.2킬로미터, 2시간20분소요), 동부면 혜양사에서 노자산, 가라산을 저구 마을로 가는 길(8.8킬로미터, 4시간 30분소요)이 있다. 특히 혜양사에서 저구를 거쳐 다시 망산으로 갈 수 있는데, 이 길은 약 12킬로미터로 7시간 30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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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대산성의 무너진 석축으로 미역줄나무와 으름덩굴이 자란다. |
가라산 정상에 올라서면 동으로는 학동해수욕장이, 남으로는 해금강과 다대방파제가, 서로는 망산과 다도해가, 북으로는 노자산 자락과 거제만이 보인다. 가라산은 전경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산세도 넉넉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큰 역할을 하였다.
가라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이를 기점으로 남부면 탑포리와 다대리, 동부면의 학동리로 나뉘어 진다. 헬기장이 설치되면서 대부분이 소실되었지만 아직도 석축 일부가 남아 있고, 이는 경상남도기념물 제14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거제사찰고에 따르면 가라산 남쪽 견암봉(등망) 아래에 견암사(見岩寺)라는 절터가 있다고 하였다. 이는 세종실록에도 나타나는데, 사찰에 속한 전답이 백결(1결은 조선시대 경작지 단위로 1등급은 3,000평 정도이고, 6등급은 14,500평 정도임)이고 거주하는 승려가 70명이라고 하였다. 한때 이 절에는 많은 스님이 거주하였는데, 왜적들이 쌀뜨물이 바다까지 흘러오는 모습을 보고 많은 승병이 있는 것으로 알고 도망갔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가라산 자락에는 고려시대에 축성된 다대산성이 있다. 원형이 보존된 산성은 서남북쪽에 문이 배치되어 있고, 남문 주변에는 당시의 연못 터와 당산제를 모시던 사당이 있다. 그 외에도 다대저수지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는 산성의 흔적이 능선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고, 예전에 다대에서 학동으로 넘어가든 고갯길인 다대재 주변에는 여러 기의 막돌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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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대재 주변에 있는 막돌탑. |
가라산이 펼쳐져 감싸고 있는 다대와 다포마을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에 송변현(松邊縣)의 치소로 여겨진다. 동국여지승람에 가라산 남쪽 10여리에 송변현이 있다는 구절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532년 가락국이 신라에 병합되자 거제도는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677년 문무왕 17년에 거제도에 상군(裳郡)을 설치하고 송변현, 거로현, 매진리현 등의 3속현을 두었다.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마산의 정동행성에서 일본의 구주지방을 공격할 때 송변에서 배를 출발했다는 기록이 있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승리한 옥포대첩 전날 이순신함대 91척이 정박한 항구로서 역사서에는 송미포(松未浦, 송변)로 나온다.
1983년 이곳에 국립수산진흥원 국립종묘배양장이 만들어져 광어, 전복, 보리새우 증식을 하고 있다. 남해의 파도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든 이 곳은 1998년에 600미터의 방파제를 만들었는데, 이 방파제는 그 풍경이 아름다워 영화 촬영 장소로 각광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영화로는 송혜교와 차태현이 출연한 ‘파랑주의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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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오사카로 가는 중 팬스타드림호에서 바라 본 대마도 전경. |
대마도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산인 가라산이 있는 거제도, 얼마나 자랑스런 곳인가.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가 자부심을 가지고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누가 우리 것을 찾아주고 지켜줄 것인가! 특히 사국시대에 거제도가 포함되는 남해의 이름은 창해(蒼海)였다.
즉 푸르면서 무성하게 이루어내는 바다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제도는 태평양으로 뻗어 나가는 교두보로서, 우리 민족이 세계화의 중심이 되어 역사를 이루는데 필요한 밑거름이 되는 바다가 될 것이다.
김철수 소개
김철수는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2000년 국립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늪과 갯벌의 식물생태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체험학습자료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교육 및 식물생태학 관련 연구논문으로 40여 편이 있고, 여러 학술 및 연구 조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거제중앙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있고, 2003년 행정자치부 신지식인에 선정되었다.
주요 논문에는 ‘박실늪의 퇴적과 교란에 따른 수생 및 습생관속식물의 군집동태와 생산성’, 저서로는 ‘늪 푹 빠진 내 친구야’(공저, 꿈소담이, 2004), ‘거제도’(대원사, 2006)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