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비하던 서낭당 그 흔적은 어디가고
옛날의 민속 문화를 찾아서 ‘거제도의 서낭당’
작성 : 2006년 04월 21일(금) 15:44 가+가-

거제면 외간마을에 있는 서낭당.
전통적인 모습이 유지되어 있는 시골 마을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큰 나무가 하나 이상 있다. 보통 이 나무에는 금줄이 감겨 있고, 나무 아래에는 둥근 모양의 막돌탑이 세워져 있거나, 서낭당으로 지칭되는 건물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을 떠 올리면, 서낭당에 돌을 올리거나 침을 뱉거나 손을 모아 절을 하며 소원을 빌던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을의 신성한 장소로서 마을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던 서낭당은 세월이 흐르면서 없애야 할 미신으로 생각되어 돌탑은 허물어졌고, 신작로와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나무는 베어지고 막돌탑은 무너져 지금은 일부 마을에 흔적만 남아 있다.
마을을 만들어 모여 사는 사람들은 혈연이든 아니든 ‘멀리 있는 친척보다도 가까이 있는 이웃이 더 낫다’는 말이 있듯이 정으로 얽힌 가족이다. 마을을 이루어 편안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마을을 하나로 엮어주는 믿음이 필요했다. 요즈음이야 인정보다 법이 앞서지만, 예전 우리 조상들은 인정에 바탕을 둔 공동체의식을 더 중요시 하였다.
거제도에는 마을과 지역을 묶어주는 믿음으로 하늘에 제사하는 산신제, 기우제, 당제, 서낭제, 성황제 그리고 어촌에서는 풍어제, 용왕제 등이 있었다. 또 민간 신앙의 한 형태로서 장승(벅수), 솟대, 선돌, 산신당, 서낭당, 신목 등을 마을마다 가지고 있었다. 이는 마을 공동 신앙을 구성하는 신앙 상징물로서 마을의 역사와 생활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민속자료들이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 호에는 거제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흔적을 서낭당을 통해서 찾아보고자 한다. 다행히 거제도에는 다수의 서낭당이 남아 있다. 신복룡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서낭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마을은 남한산성 주변의 마천동 일대와 거제도 옥포만 해안이라고 하였다. 특히 옥포만 해안에는 서낭이 요새처럼 늘어서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거제도의 각 마을에는 서낭당이나 서낭당의 역할을 하였던 흔적들이 다수 남아 있다. 당집이 잘 보존된 곳으로는 거제면 죽림마을, 장목의 관포, 율천, 대금산 마을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거제면 죽림의 당집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마을의 뒷산에는 할배당이, 마을 앞의 바닷가에는 할매당이 위치하고 있다. 계룡산의 정기를 받는 할배당과 산방산의 정기를 받는 할매당이 힘을 합쳐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막돌탑이 보존된 곳으로는 사등면 오량성 근처의 벽담사 앞, 학동마을에서 수산마을로 넘어오는 고갯길, 가라산과 앵산, 옥녀봉 및 북병산의 등산로, 연초면에서 하청면으로 가는 도로 옆 등이 있다. 얼마 전에 장목면 황포 마을에도 길옆에 큰 막돌탑이 2기 있었으나 4차선 도로를 내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당목이나 당숲은 어느 마을에서나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특히 일운면 소동리의 당목은 마을이 만들어질 때 심은 것으로 나무 아래에 마을설립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또, 거제면 외간마을의 당숲과 막돌탑은 규모가 크고 특이하다.
마을 뒷산 계곡 옆에 마련한 당숲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라고, 이곳에는 막돌탑을 여럿 쌓아 성채 모양으로 만든 서낭당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여러 개의 분리된 막돌탑을 조성하여 무게를 더하고 있다. 당숲 앞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와 운동 시설을 갖춘 작은 운동장을 만들어 두었다.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인 서낭당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중국의 강태공이 재상의 자리에 오르자 그를 버렸던 아내가 돌아와 잘못을 빌었지만, 사발의 물을 땅에 부으며 이를 다시 주워 담으면 같이 살겠다고 하였다. 이에 실망한 아내가 숨지자 마을사람들이 돌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돌무더기가 마을과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이정표를 나타내고, 신앙을 비는 장소 및 마을의 지킴이 기능을 하였다고 한다. 여러 연구에서 돌무더기의 역사적 의미는 고대 국가들의 경제활동 구역의 경계로 추정하고 있다.
이정표로서의 기능은 태종실록에 나타나는데, 각 도의 역을 조사한바 거리가 일정하지 않아 사람을 파견할 때, 기한을 정하기 어려우니 거리를 정확히 재어 10리마다 작은 표시를 하고 30리마다 큰 표시를 설치하는 데에 돌을 쌓거나 흙을 쌓도록 하자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마을끼리의 돌팔매 싸움이나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통영, 고성, 거제 등 바닷가 고갯길에 나타난 돌무더기들은 왜적에 대항하는 병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모은 것들도 많다. 그런가 하면 우리 전통의 삼신신앙이 서낭당의 유래라는 설도 있다.
그 유래가 어디에 있든 누구든지 왼새끼를 감아둔 서낭당을 지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돌을 던지거나 솔가지를 꺾어 얹고, 신대를 세우거나 가진 물건을 하나라도 성의껏 바치고 갔다. 이때 먼 길을 무사히 갖다 오도록, 재수가 있도록 공을 들이거나, 하루의 운수를 점치기 위해, 돌팔매 싸움용으로, 경계 표시로서 돌을 던졌다.
조상들이 만든 작은 것 하나라도 가꾸고 보존하는 전통을 세워야 미래의 우리 후손들도 우리의 작은 결과물을 지키고 보존해 주지 않을까? 4월 19일 문화재청은 전국의 10개 마을의 돌담길을 문화재로 예고 등록하였다.
이것은 시멘트와 벽돌에 밀려 사라져가던 전통 돌담이 이제는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또 옥천군 청마리에는 솟대와 돌탑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해마다 탑신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1976년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기자의 생각에 외간의 막돌탑은 규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클 것으로 생각하고, 모양이 특이하여 보존의 값어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만들어진 시기와 역할에 대하여 연구하고, 전국에 있는 여러 막돌탑과 비교하여 우수성을 파악한 다음, 문화재에 등록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철수 소개
김철수는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2000년 국립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늪과 갯벌의 식물생태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체험학습자료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교육 및 식물생태학 관련 연구논문으로 40여 편이 있고, 여러 학술 및 연구 조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거제중앙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있고, 2003년 행정자치부 신지식인에 선정되었다.
주요 논문에는 ‘박실늪의 퇴적과 교란에 따른 수생 및 습생관속식물의 군집동태와 생산성’, 저서로는 ‘늪 푹 빠진 내 친구야’(공저, 꿈소담이, 2004), ‘거제도’(대원사, 2006)가 있다.
김철수 기자 kcs1217@hanmail.net 기사 더보기
나의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을 떠 올리면, 서낭당에 돌을 올리거나 침을 뱉거나 손을 모아 절을 하며 소원을 빌던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을의 신성한 장소로서 마을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던 서낭당은 세월이 흐르면서 없애야 할 미신으로 생각되어 돌탑은 허물어졌고, 신작로와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나무는 베어지고 막돌탑은 무너져 지금은 일부 마을에 흔적만 남아 있다.
마을을 만들어 모여 사는 사람들은 혈연이든 아니든 ‘멀리 있는 친척보다도 가까이 있는 이웃이 더 낫다’는 말이 있듯이 정으로 얽힌 가족이다. 마을을 이루어 편안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마을을 하나로 엮어주는 믿음이 필요했다. 요즈음이야 인정보다 법이 앞서지만, 예전 우리 조상들은 인정에 바탕을 둔 공동체의식을 더 중요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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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면 죽림마을의 할배당. |
거제도에는 마을과 지역을 묶어주는 믿음으로 하늘에 제사하는 산신제, 기우제, 당제, 서낭제, 성황제 그리고 어촌에서는 풍어제, 용왕제 등이 있었다. 또 민간 신앙의 한 형태로서 장승(벅수), 솟대, 선돌, 산신당, 서낭당, 신목 등을 마을마다 가지고 있었다. 이는 마을 공동 신앙을 구성하는 신앙 상징물로서 마을의 역사와 생활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민속자료들이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 호에는 거제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흔적을 서낭당을 통해서 찾아보고자 한다. 다행히 거제도에는 다수의 서낭당이 남아 있다. 신복룡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서낭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마을은 남한산성 주변의 마천동 일대와 거제도 옥포만 해안이라고 하였다. 특히 옥포만 해안에는 서낭이 요새처럼 늘어서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거제도의 각 마을에는 서낭당이나 서낭당의 역할을 하였던 흔적들이 다수 남아 있다. 당집이 잘 보존된 곳으로는 거제면 죽림마을, 장목의 관포, 율천, 대금산 마을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거제면 죽림의 당집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마을의 뒷산에는 할배당이, 마을 앞의 바닷가에는 할매당이 위치하고 있다. 계룡산의 정기를 받는 할배당과 산방산의 정기를 받는 할매당이 힘을 합쳐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막돌탑이 보존된 곳으로는 사등면 오량성 근처의 벽담사 앞, 학동마을에서 수산마을로 넘어오는 고갯길, 가라산과 앵산, 옥녀봉 및 북병산의 등산로, 연초면에서 하청면으로 가는 도로 옆 등이 있다. 얼마 전에 장목면 황포 마을에도 길옆에 큰 막돌탑이 2기 있었으나 4차선 도로를 내면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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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등면 오량마을 막돌탑. |
그러나 당목이나 당숲은 어느 마을에서나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특히 일운면 소동리의 당목은 마을이 만들어질 때 심은 것으로 나무 아래에 마을설립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또, 거제면 외간마을의 당숲과 막돌탑은 규모가 크고 특이하다.
마을 뒷산 계곡 옆에 마련한 당숲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라고, 이곳에는 막돌탑을 여럿 쌓아 성채 모양으로 만든 서낭당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여러 개의 분리된 막돌탑을 조성하여 무게를 더하고 있다. 당숲 앞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와 운동 시설을 갖춘 작은 운동장을 만들어 두었다.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인 서낭당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중국의 강태공이 재상의 자리에 오르자 그를 버렸던 아내가 돌아와 잘못을 빌었지만, 사발의 물을 땅에 부으며 이를 다시 주워 담으면 같이 살겠다고 하였다. 이에 실망한 아내가 숨지자 마을사람들이 돌무덤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돌무더기가 마을과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이정표를 나타내고, 신앙을 비는 장소 및 마을의 지킴이 기능을 하였다고 한다. 여러 연구에서 돌무더기의 역사적 의미는 고대 국가들의 경제활동 구역의 경계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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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면 수산마을 막돌탑. |
이정표로서의 기능은 태종실록에 나타나는데, 각 도의 역을 조사한바 거리가 일정하지 않아 사람을 파견할 때, 기한을 정하기 어려우니 거리를 정확히 재어 10리마다 작은 표시를 하고 30리마다 큰 표시를 설치하는 데에 돌을 쌓거나 흙을 쌓도록 하자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마을끼리의 돌팔매 싸움이나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통영, 고성, 거제 등 바닷가 고갯길에 나타난 돌무더기들은 왜적에 대항하는 병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모은 것들도 많다. 그런가 하면 우리 전통의 삼신신앙이 서낭당의 유래라는 설도 있다.
그 유래가 어디에 있든 누구든지 왼새끼를 감아둔 서낭당을 지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돌을 던지거나 솔가지를 꺾어 얹고, 신대를 세우거나 가진 물건을 하나라도 성의껏 바치고 갔다. 이때 먼 길을 무사히 갖다 오도록, 재수가 있도록 공을 들이거나, 하루의 운수를 점치기 위해, 돌팔매 싸움용으로, 경계 표시로서 돌을 던졌다.
조상들이 만든 작은 것 하나라도 가꾸고 보존하는 전통을 세워야 미래의 우리 후손들도 우리의 작은 결과물을 지키고 보존해 주지 않을까? 4월 19일 문화재청은 전국의 10개 마을의 돌담길을 문화재로 예고 등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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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운면 소동마을 당산나무. |
이것은 시멘트와 벽돌에 밀려 사라져가던 전통 돌담이 이제는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또 옥천군 청마리에는 솟대와 돌탑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해마다 탑신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1976년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기자의 생각에 외간의 막돌탑은 규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클 것으로 생각하고, 모양이 특이하여 보존의 값어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만들어진 시기와 역할에 대하여 연구하고, 전국에 있는 여러 막돌탑과 비교하여 우수성을 파악한 다음, 문화재에 등록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철수 소개
김철수는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2000년 국립경상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늪과 갯벌의 식물생태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체험학습자료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교육 및 식물생태학 관련 연구논문으로 40여 편이 있고, 여러 학술 및 연구 조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거제중앙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있고, 2003년 행정자치부 신지식인에 선정되었다.
주요 논문에는 ‘박실늪의 퇴적과 교란에 따른 수생 및 습생관속식물의 군집동태와 생산성’, 저서로는 ‘늪 푹 빠진 내 친구야’(공저, 꿈소담이, 2004), ‘거제도’(대원사, 2006)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