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승' 박찬호 '亞 최고 투수 '우뚝'
작성 : 2010년 10월 02일(토) 11:05 가+가-

'코리안 특급' 박찬호(37.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17년 동안 메이저리그(MLB)에서 영욕의 세월을 걸어온 끝에 메이저리그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박찬호는 2일(한국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 3-1로 앞선 5회말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3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퍼펙트로 막아냈다.
박찬호는 리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지만 선발 대니얼 맥쿠첸(4이닝 1실점)이 승리 요건인 5이닝을 채우지 못한 탓에 행운의 구원승을 추가했다
시즌 4승째(2패)를 챙긴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승수를 124승(98패)으로 늘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은퇴)가 보유하고 있던 메이저리그 아시아 투수 최다승(123승 109패)를 넘어섰다.
아시아 투수 최다이닝에 이어 최다승 기록까지 보유하게 돼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아시아 투수로 자리잡게 됐다.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하고 미국 무대 진출에 성공한 박찬호는 데뷔 첫 해와 1995년에는 대부분 마이너리그에 머물렀다. 두 해 동안 박찬호는 빅리그에서 단 4경기에만 등판했다.
이 같은 박찬호 앞에 나타난 것은 노모라는 산이었다. 일본에서 최고의 투수로 군림한 노모는 1995년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박찬호가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었던 1995년, 노모는 13승 6패 평균자책점 2.54를 찍으며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탈삼진 236개를 잡아내며 이 부문 1위에 오른 노모는 그 해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1996년에도 16승 11패 평균자책점 3.19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선수의 반열에 오른 노모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12시즌 동안 323경기에 등판해 통산 123승 109패 평균자책점 4.24의 기록을 남겼다.
노모보다 늦게 본격적인 빅리그 생활을 시작한 박찬호는 1996년에서야 5승 5패 평균자책점 3.64의 성적을 내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으로 올라선 것은 1997년에 14승 8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하면서부터였다.
자연스럽게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최고 아시아 투수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노모의 기록을 넘어서야 했다. 특히 아시아 투수 최다승은 가장 상징적인 것이었다.
박찬호는 숱한 시련 가운데에서도 오뚝이 같은 투지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이를 일궈내는데 성공했다.
2001년 자유계약선수(FA) 대박을 터뜨린 뒤 하락세에 접어들었을 때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마이너리그 강등과 방출의 아픔을 겪었을 때도 박찬호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결국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데뷔 17년만에 노모를 넘어섰다.
지난 9월 5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1이닝을 던진 박찬호는 노모가 갖고 있던 아시아 투수 최다 이닝 기록을 세웠고, 9월 13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통산 123승을 달성하면서 최다승 기록도 눈 앞에 뒀다.
그리고 결국 노모의 기록을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박찬호, 연봉으로만 990억원 벌었다
박찬호(37.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메이저리그(MLB) 아시아 투수 최다승을 향해 달린 17년 동안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
박찬호는 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 3-1로 앞선 5회말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3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퍼펙트로 막아냈다. 리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지만 선발 대니얼 맥쿠첸이 승리 요건인 5이닝을 채우지 못한 탓에 행운의 구원승을 챙겼다.
시즌 4승째(2패)를 챙긴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승수를 124승(98패)으로 늘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은퇴)가 보유하고 있던 메이저리그 아시아 투수 최다승(123승 109패)을 넘어섰다.
박찬호는 아시아 투수 최다승을 달성하기까지 걸어 온 17년 영욕의 세월 동안 연봉으로만 8500만 달러(약 990억원)를 벌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은 것은 1994년이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입단 첫 해 10만9000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빅리그에서 단 두 경기에만 등판했던 1995년 박찬호의 연봉은 11만4000 달러였다.
12만4000 달러를 받은 1996년 박찬호는 48경기에 등판해 5승 5패 평균자책점 3.64의 성적을 올리며 두각을 나타냈고, 이듬 해 연봉이 27만 달러로 상승했다.
1997년 32경기에서 14승 8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한 박찬호의 연봉은 이후 성적과 비례해 치솟았다.
1997년의 활약 덕분에 1998년 7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고, 1998년과 1999년 15승 9패 평균자책점 3.71, 13승 11패 평균자책점 5.23으로 맹활약을 펼쳐 2000시즌 연봉은 385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2000년과 2001년은 박찬호의 전성기였다. 2000년에는 18승 10패 평균자책점 3.27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고, 2001년에도 15승 11패 평균자책점 3.50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연봉도 명성에 걸맞았다. 성공적으로 2000시즌을 마감한 박찬호의 2001년 연봉은 990만 달러에 달했다.
2001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박찬호는 2002시즌을 앞두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 달러에 계약하며 'FA 대박'을 터뜨렸다.
2002년 688만4803 달러를 받은 박찬호는 2003년과 2004년 각각 1300만, 1400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2005년 연봉은 1500만 달러였다.
그러나 성적은 하락세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박찬호는 14승 18패 평균자책점 5.85로 부진했다. 박찬호는 결국 2005시즌 중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됐다.
2006년 샌디에이고에서 1500만 달러에 이르는 연봉을 받았던 박찬호는 그 해 7승 7패 평균자책점 4.81을 기록한 뒤 장출혈로 시즌을 일찌감치 마감했다. 이후 박찬호는 '암흑기'를 겪었다.
2007년 두 번째 FA 자격을 취득해 뉴욕 메츠에 입단했던 박찬호는 빅리그에서 1경기만 등판한 뒤 방출당했다. 휴스턴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빅리그의 호출은 받지 못했다.
2008시즌을 앞두고 박찬호는 친정팀 다저스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당시 연봉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50만 달러 정도일 것으로 예상됐다.
박찬호는 친정팀에서 주로 중간계투로 나서며 4승 4패 평균자책점 3.40을 기록하며 부활을 선언했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2009년 1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1년 250만 달러에 계약했다.
필라델피아에서 3승 3패 평균자책점 4.43을 기록한 박찬호는 올 시즌을 앞두고 필라델피아와의 계약이 불발되면서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그의 연봉은 지난 해보다 하락했다. 박찬호는 '우승 꿈'을 품고 120만 달러라는 낮은 연봉을 수락했다.
하지만 양키스에서 2승 1패 평균자책점 5.60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박찬호는 지난 달 1일 양키스에서 '지명양도' 선수로 공시됐고, 5일 피츠버그가 웨이버 공시를 풀어달라고 요청하면서 새 둥지를 찾았다.
웨이버 공시를 풀어달라고 요청해 지명양도된 선수를 영입할 경우 이전 팀과의 계약을 승계해야 해 박찬호는 올 시즌 120만 달러의 연봉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박찬호는 자신의 매니지먼트사 '팀 61'을 통해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피트니스 클럽 '피트니스 Park 61'도 설립했다.
전설이 된 '오뚝이' 박찬호
박찬호는 지난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올 시즌까지 17시즌 동안 469경기(선발 287경기)만에 124승째(98패)를 챙겼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아시아 투수 최다승을 수립하기까지의 과정은 영광과 좌절을 넘나드는 영욕의 세월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1년까지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강속구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박찬호는 1996년 다저스에서 중간계투로 풀타임 빅리거로 자리 잡았다. 그해 4월7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4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해 메이저리그 첫 승을 따냈다.
이후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풀타임으로 한 시즌을 보내며 5승5패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듬 해부터는 본격적인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풀타임 선발 첫 해인 1997년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14승8패 평균자책점 3.38의 빼어난 투구를 펼쳤다.
이후 박찬호는 95마일을 넘나드는 불 같은 강속구를 앞세워 1998년에도 15승9패 평균자책점 3.71을 기록했다. 노모에 이어 아시아 투수로는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에서 15승 이상을 기록했다.
199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 병역 혜택을 받은 박찬호는 겨울에 힘을 뺀 탓인지 정규시즌 초반 고전하는 등, 13승11패 평균자책점 5.23으로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박찬호는 2000년 생애 최고의 해를 보내며 전년도의 부진을 만회했다. 당시 아시아 투수로는 최다승인 18승(10패)을 챙겼고, 평균자책점도 데뷔 후 최저인 3.27을 기록했다. 명실상부한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투수로 자리매김한 것이었다.
2001시즌, 허리 부상이라는 암초를 만났지만 15승11패 평균자책점 3.50의 빼어난 성적을 올린 박찬호는 2002시즌을 앞두고 5년간 6500만 달러를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텍사스 이적 후 박찬호는 기나긴 슬럼프로 고전했고, 부상이라는 그림자는 늘 따라 다녔다.
이적 첫 해 햄스트리 부상에 시달린 그는 9승8패 평균자책점 5.75로 부진한 성적을 남겼다. 이후 2005년 중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될때까지 22승23패 평균자책점 5.79의 저조한 성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당시 텍사스를 맡았던 벅 쇼월터 감독과의 불화도 있었지만 허리가 안 좋아 90마일 중반을 웃돌던 직구 구속이 90마일 초반으로 떨어진 것이 큰 부진의 이유였다.
2005년 트레이드 전까지 텍사스에서 8승을 따낸 박찬호는 샌디에이고 이적 후 4승을 추가하며 그해 양대 리그에서 12승을 챙겨 다시 10승 투수로 올라섰지만 평균자책점은 5점대를 훌쩍 넘었다.
2006년 샌디에이고에서 7승을 따낸 박찬호는 이후 2008년 뉴욕 메츠에 입단했지만 1경기에 선발 등판한 뒤 곧바로 방출당했고, 휴스턴 애스트로스 마이너리그 트리플A팀인 라운드락 익스프레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며 은퇴 위기에 몰렸다.
2008년 친정팀 다저스로의 복귀는 부활의 밑거름이 됐다.
다저스에서 불펜투수로 활약한 그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지난 해에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승리 계투조로 활약하며 팀이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오르는 데 일조했다.
특히, 꿈에 그리던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등판했다. 뉴욕 양키스에 우승 반지를 내줬지만 팀 내 핵심 불펜 요원으로 활약한 덕에 '불펜 투수' 박찬호의 가치를 재확인시켰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박찬호는 올 시즌을 앞두고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 개막 후 계속된 부진으로 8월 방출됐지만 피츠버그의 부름을 받고, 빅리거 생활을 이어갔다.
피츠버그 이적 후 패전 처리조에서 등판해 1승을 챙기기 쉽지 않았지만 최근 연이은 호투로 존 러셀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고, 13일 아시아 최다승 타이기록을 수립한 데 이어 승리를 추가하며 아시아 최다승 투수로 올라섰다.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에서 몸값을 못한다는 일명 '먹튀'의 오명을 썼고, 이후 숱한 부상과 시련을 극복해낸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한 획을 그은 아시아 최고의 투수다.
◇박찬호 연도별 성적
1994년 2경기 승패없음 평균자책점 11.25
1995년 2경기 승패없음 평균자책점 4.50
1996년 48경기 5승5패 평균자책점 3.64
1997년 32경기 14승8패 평균자책점 3.38
1998년 34경기 15승9패 평균자책점 3.71
1999년 33경기 13승11패 평균자책점 5.23
2000년 34경기 18승10패 평균자책점 3.27
2001년 36경기 15승11패 평균자책점 3.50
2002년 25경기 9승8패 평균자책점 5.75
2003년 7경기 1승3패 평균자책점 7.58
2004년 16경기 4승7패 평균자책점 5.46
2005년 30경기 12승8패 평균자챗점5.74
2006년 24경기 7승7패 평균자책점 4.81
2007년 1경기 1패 평균자책점 15.75
2008년 54경기 4승4패 평균자책점 3.40
2009년 45경기 3승3패 평균자책점 4.43
2010년 43경기 4승3패 평균자책점 4.66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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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는 2일(한국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 3-1로 앞선 5회말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3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퍼펙트로 막아냈다.
박찬호는 리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지만 선발 대니얼 맥쿠첸(4이닝 1실점)이 승리 요건인 5이닝을 채우지 못한 탓에 행운의 구원승을 추가했다
시즌 4승째(2패)를 챙긴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승수를 124승(98패)으로 늘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은퇴)가 보유하고 있던 메이저리그 아시아 투수 최다승(123승 109패)를 넘어섰다.
아시아 투수 최다이닝에 이어 최다승 기록까지 보유하게 돼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아시아 투수로 자리잡게 됐다.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계약하고 미국 무대 진출에 성공한 박찬호는 데뷔 첫 해와 1995년에는 대부분 마이너리그에 머물렀다. 두 해 동안 박찬호는 빅리그에서 단 4경기에만 등판했다.
이 같은 박찬호 앞에 나타난 것은 노모라는 산이었다. 일본에서 최고의 투수로 군림한 노모는 1995년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박찬호가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었던 1995년, 노모는 13승 6패 평균자책점 2.54를 찍으며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탈삼진 236개를 잡아내며 이 부문 1위에 오른 노모는 그 해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1996년에도 16승 11패 평균자책점 3.19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선수의 반열에 오른 노모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12시즌 동안 323경기에 등판해 통산 123승 109패 평균자책점 4.24의 기록을 남겼다.
노모보다 늦게 본격적인 빅리그 생활을 시작한 박찬호는 1996년에서야 5승 5패 평균자책점 3.64의 성적을 내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으로 올라선 것은 1997년에 14승 8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하면서부터였다.
자연스럽게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최고 아시아 투수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노모의 기록을 넘어서야 했다. 특히 아시아 투수 최다승은 가장 상징적인 것이었다.
박찬호는 숱한 시련 가운데에서도 오뚝이 같은 투지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이를 일궈내는데 성공했다.
2001년 자유계약선수(FA) 대박을 터뜨린 뒤 하락세에 접어들었을 때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마이너리그 강등과 방출의 아픔을 겪었을 때도 박찬호는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결국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데뷔 17년만에 노모를 넘어섰다.
지난 9월 5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1이닝을 던진 박찬호는 노모가 갖고 있던 아시아 투수 최다 이닝 기록을 세웠고, 9월 13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통산 123승을 달성하면서 최다승 기록도 눈 앞에 뒀다.
그리고 결국 노모의 기록을 넘어서는데 성공했다.
박찬호, 연봉으로만 990억원 벌었다
박찬호(37.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메이저리그(MLB) 아시아 투수 최다승을 향해 달린 17년 동안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
박찬호는 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 3-1로 앞선 5회말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3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퍼펙트로 막아냈다. 리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지만 선발 대니얼 맥쿠첸이 승리 요건인 5이닝을 채우지 못한 탓에 행운의 구원승을 챙겼다.
시즌 4승째(2패)를 챙긴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승수를 124승(98패)으로 늘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은퇴)가 보유하고 있던 메이저리그 아시아 투수 최다승(123승 109패)을 넘어섰다.
박찬호는 아시아 투수 최다승을 달성하기까지 걸어 온 17년 영욕의 세월 동안 연봉으로만 8500만 달러(약 990억원)를 벌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은 것은 1994년이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입단 첫 해 10만9000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빅리그에서 단 두 경기에만 등판했던 1995년 박찬호의 연봉은 11만4000 달러였다.
12만4000 달러를 받은 1996년 박찬호는 48경기에 등판해 5승 5패 평균자책점 3.64의 성적을 올리며 두각을 나타냈고, 이듬 해 연봉이 27만 달러로 상승했다.
1997년 32경기에서 14승 8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한 박찬호의 연봉은 이후 성적과 비례해 치솟았다.
1997년의 활약 덕분에 1998년 7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고, 1998년과 1999년 15승 9패 평균자책점 3.71, 13승 11패 평균자책점 5.23으로 맹활약을 펼쳐 2000시즌 연봉은 385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2000년과 2001년은 박찬호의 전성기였다. 2000년에는 18승 10패 평균자책점 3.27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고, 2001년에도 15승 11패 평균자책점 3.50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연봉도 명성에 걸맞았다. 성공적으로 2000시즌을 마감한 박찬호의 2001년 연봉은 990만 달러에 달했다.
2001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박찬호는 2002시즌을 앞두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 달러에 계약하며 'FA 대박'을 터뜨렸다.
2002년 688만4803 달러를 받은 박찬호는 2003년과 2004년 각각 1300만, 1400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2005년 연봉은 1500만 달러였다.
그러나 성적은 하락세였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박찬호는 14승 18패 평균자책점 5.85로 부진했다. 박찬호는 결국 2005시즌 중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됐다.
2006년 샌디에이고에서 1500만 달러에 이르는 연봉을 받았던 박찬호는 그 해 7승 7패 평균자책점 4.81을 기록한 뒤 장출혈로 시즌을 일찌감치 마감했다. 이후 박찬호는 '암흑기'를 겪었다.
2007년 두 번째 FA 자격을 취득해 뉴욕 메츠에 입단했던 박찬호는 빅리그에서 1경기만 등판한 뒤 방출당했다. 휴스턴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빅리그의 호출은 받지 못했다.
2008시즌을 앞두고 박찬호는 친정팀 다저스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당시 연봉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50만 달러 정도일 것으로 예상됐다.
박찬호는 친정팀에서 주로 중간계투로 나서며 4승 4패 평균자책점 3.40을 기록하며 부활을 선언했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2009년 1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1년 250만 달러에 계약했다.
필라델피아에서 3승 3패 평균자책점 4.43을 기록한 박찬호는 올 시즌을 앞두고 필라델피아와의 계약이 불발되면서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그의 연봉은 지난 해보다 하락했다. 박찬호는 '우승 꿈'을 품고 120만 달러라는 낮은 연봉을 수락했다.
하지만 양키스에서 2승 1패 평균자책점 5.60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박찬호는 지난 달 1일 양키스에서 '지명양도' 선수로 공시됐고, 5일 피츠버그가 웨이버 공시를 풀어달라고 요청하면서 새 둥지를 찾았다.
웨이버 공시를 풀어달라고 요청해 지명양도된 선수를 영입할 경우 이전 팀과의 계약을 승계해야 해 박찬호는 올 시즌 120만 달러의 연봉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박찬호는 자신의 매니지먼트사 '팀 61'을 통해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피트니스 클럽 '피트니스 Park 61'도 설립했다.
전설이 된 '오뚝이' 박찬호
박찬호는 지난 1994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올 시즌까지 17시즌 동안 469경기(선발 287경기)만에 124승째(98패)를 챙겼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아시아 투수 최다승을 수립하기까지의 과정은 영광과 좌절을 넘나드는 영욕의 세월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1년까지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강속구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박찬호는 1996년 다저스에서 중간계투로 풀타임 빅리거로 자리 잡았다. 그해 4월7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4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해 메이저리그 첫 승을 따냈다.
이후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풀타임으로 한 시즌을 보내며 5승5패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듬 해부터는 본격적인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풀타임 선발 첫 해인 1997년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14승8패 평균자책점 3.38의 빼어난 투구를 펼쳤다.
이후 박찬호는 95마일을 넘나드는 불 같은 강속구를 앞세워 1998년에도 15승9패 평균자책점 3.71을 기록했다. 노모에 이어 아시아 투수로는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에서 15승 이상을 기록했다.
199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 병역 혜택을 받은 박찬호는 겨울에 힘을 뺀 탓인지 정규시즌 초반 고전하는 등, 13승11패 평균자책점 5.23으로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박찬호는 2000년 생애 최고의 해를 보내며 전년도의 부진을 만회했다. 당시 아시아 투수로는 최다승인 18승(10패)을 챙겼고, 평균자책점도 데뷔 후 최저인 3.27을 기록했다. 명실상부한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투수로 자리매김한 것이었다.
2001시즌, 허리 부상이라는 암초를 만났지만 15승11패 평균자책점 3.50의 빼어난 성적을 올린 박찬호는 2002시즌을 앞두고 5년간 6500만 달러를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텍사스 이적 후 박찬호는 기나긴 슬럼프로 고전했고, 부상이라는 그림자는 늘 따라 다녔다.
이적 첫 해 햄스트리 부상에 시달린 그는 9승8패 평균자책점 5.75로 부진한 성적을 남겼다. 이후 2005년 중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될때까지 22승23패 평균자책점 5.79의 저조한 성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당시 텍사스를 맡았던 벅 쇼월터 감독과의 불화도 있었지만 허리가 안 좋아 90마일 중반을 웃돌던 직구 구속이 90마일 초반으로 떨어진 것이 큰 부진의 이유였다.
2005년 트레이드 전까지 텍사스에서 8승을 따낸 박찬호는 샌디에이고 이적 후 4승을 추가하며 그해 양대 리그에서 12승을 챙겨 다시 10승 투수로 올라섰지만 평균자책점은 5점대를 훌쩍 넘었다.
2006년 샌디에이고에서 7승을 따낸 박찬호는 이후 2008년 뉴욕 메츠에 입단했지만 1경기에 선발 등판한 뒤 곧바로 방출당했고, 휴스턴 애스트로스 마이너리그 트리플A팀인 라운드락 익스프레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며 은퇴 위기에 몰렸다.
2008년 친정팀 다저스로의 복귀는 부활의 밑거름이 됐다.
다저스에서 불펜투수로 활약한 그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지난 해에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승리 계투조로 활약하며 팀이 내셔널리그 챔피언에 오르는 데 일조했다.
특히, 꿈에 그리던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등판했다. 뉴욕 양키스에 우승 반지를 내줬지만 팀 내 핵심 불펜 요원으로 활약한 덕에 '불펜 투수' 박찬호의 가치를 재확인시켰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박찬호는 올 시즌을 앞두고 뉴욕 양키스에 입단했다. 개막 후 계속된 부진으로 8월 방출됐지만 피츠버그의 부름을 받고, 빅리거 생활을 이어갔다.
피츠버그 이적 후 패전 처리조에서 등판해 1승을 챙기기 쉽지 않았지만 최근 연이은 호투로 존 러셀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고, 13일 아시아 최다승 타이기록을 수립한 데 이어 승리를 추가하며 아시아 최다승 투수로 올라섰다.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에서 몸값을 못한다는 일명 '먹튀'의 오명을 썼고, 이후 숱한 부상과 시련을 극복해낸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한 획을 그은 아시아 최고의 투수다.
◇박찬호 연도별 성적
1994년 2경기 승패없음 평균자책점 11.25
1995년 2경기 승패없음 평균자책점 4.50
1996년 48경기 5승5패 평균자책점 3.64
1997년 32경기 14승8패 평균자책점 3.38
1998년 34경기 15승9패 평균자책점 3.71
1999년 33경기 13승11패 평균자책점 5.23
2000년 34경기 18승10패 평균자책점 3.27
2001년 36경기 15승11패 평균자책점 3.50
2002년 25경기 9승8패 평균자책점 5.75
2003년 7경기 1승3패 평균자책점 7.58
2004년 16경기 4승7패 평균자책점 5.46
2005년 30경기 12승8패 평균자챗점5.74
2006년 24경기 7승7패 평균자책점 4.81
2007년 1경기 1패 평균자책점 15.75
2008년 54경기 4승4패 평균자책점 3.40
2009년 45경기 3승3패 평균자책점 4.43
2010년 43경기 4승3패 평균자책점 4.66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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