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
우리나라 국무총리직에는 ‘징크스’ 있다
작성 : 2010년 10월 18일(월) 16:33 가+가-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

헌법 86조가 부여한 국무총리의 역할이다. 국무총리는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함께 우리나라를 이끄는 3부요인 중 1명으로 비선출직 공직자 중 최고의 지위를 가졌다는 뜻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역대 총리들은 항상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혀왔고 유력 대선주자들도 행정 경험을 통해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키우고자 자천타천으로 총리직에 앉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국무총리직에는 무시무시한 '징크스'가 있다. 총리를 맡았던 정치인은 건국 이래 단 한 명도 직선제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총리서리나 내각수반을 제외한 역대 국무총리 37명(장면·백두진·김종필·고건 총리는 2회 역임) 가운데 대통령이 된 사람은 12대 총리를 지낸 최규하 전 대통령 뿐이다.

하지만 최규하 전 대통령은 이른바 '체육관 선거'라고 불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 방식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으로, 직선 대통령은 아니다.

총리 징크스의 대표적인 사례로 김종필·이회창 전 총리가 꼽힌다.

11대와 31대 두 차례 총리를 지낸 김종필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로, 5·16쿠데타를 주도하며 현실 정치에 참여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서 차기 대권을 노렸지만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사태를 일으키며 집권한 후 야인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이후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3김(金)'시대를 연 김 전 총리는 1987년 12대 대선 당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DJ, YS와 나란히 대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내각제 개헌'이라는 꿈을 갖고 있던 그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YS와 손을 잡았지만 민주자유당내 민정계로부터 퇴진을 요구받았고1995년 민자당을 탈당,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그는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DJ와 공동정부를 구성한다는 합의 아래 DJ를 후보로 내세우는 단일화에 합의,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을 이뤘다. 하지만 DJ 당선 후 DJP 공조는 파국을 맞게 됐고 JP는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26대 총리를 지낸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1997년 15대 대선과 2002년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지만 3회 연속 고배를 마셔야 했다. 특히 15,16대 대선에서는 다른 후보들보다 앞서가다가 막판에 각종 의혹 등에 휩쓸리면서 역전당해 버렸다.1981년 45세의 나이로 최연소 대법관을 지낸 그는 1988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내며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후보 등에게 친필 경고 서한을 보내는 등 특유의 '대쪽'같은 모습을 보이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김영삼 정부 들어 초대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내면서도 정권과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 대중적 인기를 끌어모았고 1996년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정치 입문 1년만인 1997년 신한국당의 대선 후보가 됐지만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이 불거지면서 불과 39만표 차이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 대표는 5년간의 와신상담(臥薪嘗膽)끝에 2002년 다시 도전장을 냈지만 병풍(병역면제 의혹)과 세풍(불법 대선 자금 모금 사건)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또다시 패배했다.

이 대표는 대선 이후 '차떼기의 주역'이라는 불명예를 쓰고 정계에서 은퇴해야 했다. 하지만 5년만인 2007년 무소속으로 다시 대권에 도전장을 냈고 또다시 실패했다.
대통령 문턱까지 갔다온 김종필·이회창 전 총리 외에도 대선 후보로 거론된 전직 총리들은 많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는 이홍구·이수성 총리가, 노무현 정권에서는 고건·이해찬·한명숙 총리가 자천타천으로 대권 후보로 분류돼 대권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현행 대통령제 하에서 국무총리에게는 필연적으로 '2인자'라는 이미지가 생긴다"며 "이런 이미지가 대선에서 치명타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시스
모닝뉴스 기자 기사 더보기

webmaster@morningnews.or.kr

많이 본 뉴스

정치의회

자치행정

조선경제

문화예술

이슈/기획

우리동네

길따라칠백리

“웨딩의 꿈, 거제 지심도에서 이루세요”

경남도(도지사 박완수)는 ‘자연과 함께하는 웨딩·휴양섬’ 거제 지심도에서 리마인드 결혼식을 올리며 특별한 순…

  1. [구성옥의 산행일기] 느재고개
  2. 눈호강 입호강, 상춘객 사로잡을 거제 봄꽃 나들…
  3. [구성옥의 산행일기] 장기 바위

일상에서

거제 지심도, 사랑과 낭만을 담는 특별한 웨딩 …

거제시(시장 변광용)는 지난 10월 31일 지심도 일원에서 ‘숲과 바다 사이, 우리만의 지심도 웨딩’ 셀프(…

  1. [윤석봉 코너] “내 마음에 내가 속지 않는 것…
  2. [구성옥의 산행일기] 동틀 무렵
  3. [봄이 오는 길목] 까치집

기사 목록

모닝뉴스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