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후처와 아들' 보도 이후
신동립 뉴시스 문화부장
작성 : 2010년 10월 30일(토) 10:13 가+가-

‘황장엽, 49세 아내와 초등학생 아들 남겼다’는 기사를 10월11일에 송고했다.
유일한 유족인 수양딸 김숙향씨(68·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 대표) 말고도 사실혼 관계인 부인(49)과 아들(11)이 있다는 요지다. 고인이 상당한 재산을 남겼다는 점도 알렸다.
그러자 황장엽을 10년 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는 어느 여성이 전화를 해왔다. 오보라고 주장했다.
“남자아이의 아버지는 국정원 직원이었고, 지금은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해졌다. 황장엽은 학문을 연구하다 앉은 채 잠이 들 정도로 철저한 금욕주의자다. 그 여자가 낳은 사생아를 받아들이면서 ‘내가 남한으로 와서 가장 잘 한 일이 이 여자를 도운 것이다’, ‘친자 확인을 할 뜻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황장엽이 그 여성에게 양도한 논현동의 7층 건물은 당초 (황장엽의 저서들을 출간해온) ‘시대정신’에게 가기로 돼있었다”고 정정했다.
정리하면, 황장엽(1923.2.17~2010.10.10)의 주변에 38세 연하녀와 그녀가 낳은 사내아이가 있고, 황장엽은 그녀에게 수십억원대 빌딩을 선물했다는 얘기다.
2003년 1월에 완공된 지하1층 지상6층 규모의 이 건물을 2001년 4월 황장엽이 매입예약했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61년생 그녀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된 것 또한 확인 가능하다.
그녀가 고깃집을 운영한 이 상가건물과 황장엽이 기거하던 논현동 안전가옥은 지척지간이다. 그녀는 수시로 안가를 드나들며 밥을 지었고, 은행 심부름을 하는 등 통장도 관리했다. 자연스럽게 황장엽 경호팀, 관할경찰서 직원들과도 친밀해졌다.
엄마의 성을 따랐지만, 이름은 황장엽이 직접 지어준 아들은 주로 주말에 안가를 들렀다. 황장엽을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할아버지’와 ‘아빠’ 사이에서 절묘한 호칭을 찾아낸 셈이다.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은 이북 김씨조선 왕조의 황장엽 살해위협이 극에 달하자 지난해 한국을 떠났다. 그녀의 친인척이 있는 미국에서 공부한다.
그녀는 국가정보원의 추천으로 황장엽의 수발을 들게 됐다. 국정원 직원 가운데 선발된 경우는 아니다. ‘황장엽의 비서’라는 일자리부터 만든 뒤 그녀를 천거했다. 황장엽도 쾌히 수용했다. 당국이 지은 한약이 그녀를 통해 황장엽에게 전해졌다. 이따금씩 서울 강남북의 몇몇 특급호텔 방도 잡아줬다.
황장엽 생전, 그녀는 논현동 안가와 저서들에 집착했다. 국가소유로 알려진 이 안가가 사실은 황장엽 개인재산이라고 했으며 사후 저작권과 인세, 판권 등을 걱정했다. 호적상 남남인 터라 어떡하면 유산을 분배받을 수 있을는지 사업가, 점술가와 상의하기도 했다.
황장엽의 곁에 ‘쉰살 여성과 열두살 남자어린이’가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다.
그런데 이 중년여성과 어린이가 황장엽의 유가족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수양딸 김씨는 이들 모자의 존재 자체를 부인함은 물론, 황장엽의 유산이 수천만도 안 된다고 공언했다.
<사진> 촬영 당시보다 소년은 많이 자랐다. 요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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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유족인 수양딸 김숙향씨(68·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 대표) 말고도 사실혼 관계인 부인(49)과 아들(11)이 있다는 요지다. 고인이 상당한 재산을 남겼다는 점도 알렸다.
그러자 황장엽을 10년 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는 어느 여성이 전화를 해왔다. 오보라고 주장했다.
“남자아이의 아버지는 국정원 직원이었고, 지금은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유명해졌다. 황장엽은 학문을 연구하다 앉은 채 잠이 들 정도로 철저한 금욕주의자다. 그 여자가 낳은 사생아를 받아들이면서 ‘내가 남한으로 와서 가장 잘 한 일이 이 여자를 도운 것이다’, ‘친자 확인을 할 뜻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황장엽이 그 여성에게 양도한 논현동의 7층 건물은 당초 (황장엽의 저서들을 출간해온) ‘시대정신’에게 가기로 돼있었다”고 정정했다.
정리하면, 황장엽(1923.2.17~2010.10.10)의 주변에 38세 연하녀와 그녀가 낳은 사내아이가 있고, 황장엽은 그녀에게 수십억원대 빌딩을 선물했다는 얘기다.
2003년 1월에 완공된 지하1층 지상6층 규모의 이 건물을 2001년 4월 황장엽이 매입예약했다는 사실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61년생 그녀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된 것 또한 확인 가능하다.
그녀가 고깃집을 운영한 이 상가건물과 황장엽이 기거하던 논현동 안전가옥은 지척지간이다. 그녀는 수시로 안가를 드나들며 밥을 지었고, 은행 심부름을 하는 등 통장도 관리했다. 자연스럽게 황장엽 경호팀, 관할경찰서 직원들과도 친밀해졌다.
엄마의 성을 따랐지만, 이름은 황장엽이 직접 지어준 아들은 주로 주말에 안가를 들렀다. 황장엽을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할아버지’와 ‘아빠’ 사이에서 절묘한 호칭을 찾아낸 셈이다.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은 이북 김씨조선 왕조의 황장엽 살해위협이 극에 달하자 지난해 한국을 떠났다. 그녀의 친인척이 있는 미국에서 공부한다.
그녀는 국가정보원의 추천으로 황장엽의 수발을 들게 됐다. 국정원 직원 가운데 선발된 경우는 아니다. ‘황장엽의 비서’라는 일자리부터 만든 뒤 그녀를 천거했다. 황장엽도 쾌히 수용했다. 당국이 지은 한약이 그녀를 통해 황장엽에게 전해졌다. 이따금씩 서울 강남북의 몇몇 특급호텔 방도 잡아줬다.
황장엽 생전, 그녀는 논현동 안가와 저서들에 집착했다. 국가소유로 알려진 이 안가가 사실은 황장엽 개인재산이라고 했으며 사후 저작권과 인세, 판권 등을 걱정했다. 호적상 남남인 터라 어떡하면 유산을 분배받을 수 있을는지 사업가, 점술가와 상의하기도 했다.
황장엽의 곁에 ‘쉰살 여성과 열두살 남자어린이’가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다.
그런데 이 중년여성과 어린이가 황장엽의 유가족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수양딸 김씨는 이들 모자의 존재 자체를 부인함은 물론, 황장엽의 유산이 수천만도 안 된다고 공언했다.
<사진> 촬영 당시보다 소년은 많이 자랐다. 요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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