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의 진실 진시황제도 모른다
작성 : 2010년 11월 29일(월) 16:40 가+가-

중국의 진시황제가 지시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불이 동남동녀 3000명을 이끌고 거제도 해금강을 찾았다.
역사는 사실이며 전설은 꾸며진 이야기다. 불로장생의 욕망은 동서양이 같다 하더라도 서불의 불로초 기행에 대한 사실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제주도는 서귀포 장방동에 서복전시관을 만들고 거제시 와현마을에는 서복유숙지 기념비를 세웠다. 남해군 상주석각도 서복이 세겼다는 암각문이다.
서복과 관련된 전설을 가진 자치단체들은 서복 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관광상품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가운데 ‘서불제명각자’라고도 하는 상형문자 형태의 남해 상주 석각(경남도기념물 6호)에 대한 재해석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천에 거주하는 조세원(63)씨는 새긴 남해 상주 석각은 진시황제를 위한 불로초를 구하려했던 서불이 남긴 암각이 아니라 하늘의 별자리를 새긴 ‘별자리그림’ 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석각의 탁본에 나타난 그림과 가을철(한로 경 10월 8일~9일) 별자리와 석각도해를 비교해 설명했다.
남해 상주 석각 무엇인가
남해 양아마을에서 상주해수욕장으로 가는 도로 증간쯤에 금산 부소암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이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 중턱쯤에 비교적 넓고 평평한 자연암의 거북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 바위 위에는 문자인지 그림인지 아직 이해나 해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석각이 있는데 이것이 남해 상주 석각이다.
남해 상주 석각에 대한 해석은 환단고기에서 이맥의 태백일사(1520년경)편 선도경전 본훈에 이르되 “남해현 낭하리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이 있다” 이는 환웅천황이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린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관련해서는 지난 1999년 KBS 역사스페셜 ‘추적 환단고기 열풍’에서 남해상주석각을 우리나라 고대문자인 녹도문 또는 가림토문일 가능성을 시사한 적이 있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조선금석총람 상 조선총독부(1919)에는 ‘남해전 서불제명 석각’ 으로 소개하고 ‘암각문 탁본과 지면의 암석에 종 1척 5촌, 횡 3척 2촌 크기로 새김’ 이라고 설명돼있다.
국어대사전(일중당)에 이 석각은 전설에 의하면 진시황때 서불이 이를 새긴 것이라 하는데 중국학자 중에는 서불기례일출(徐巿起禮日出:서불이 일어나 일출에 예를 표하다/ 오경석.오세창)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밖에도 서불과차 또는 서불과지, 고대문자설(최남선), 선사시대각석설(정인보) 등이 있다.
지자체들의 서복마케팅은 ‘남해상주석각’ 의 그림문자가 ‘서불기례일출’ 일 것이라는 해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2010년 제주도 정방폭포 옆 석벽에 세겨지기도 했다. 제주도는 남해상주석각의 모양이 정방폭포 석각의 모형이라는 입장이다.
제주도 정방폭포 석각은 풍화와 낙수 등으로 마멸돼 고증이 어려운 상황이다.
조세원씨는 서불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학작품에서 많이 인용된다고 밝혔다.
심청전과 간양록, 파안록, 조선지, 경세설의 백발가, 기재기이, 금란굴 전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서불이 한반도 또는 한반도 중남부의 해안지대에 정박했거나 불로초를 찾아다녔다는 언급은 없다고 주장했다.
남해 상주 석각은 별자리 그림이다
조세원씨는 남해 상주 석각은 별자리 그림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추정과 추론은 연구의 빌미가 되고 또 다른 연구의 소지가 된다. 그러나 구전설화에 대한 연구나 주장은 큰 오해의 발단과 빌미가 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남해 상주석각은 화강암에다 별자리를 확(구덩이 모양)으로 쪼은 후 홈으로 갈아닦기를 가한 선각이라고 주장했다. 각석의 시기는 고구려 석각천문도, 신라의 첨성대 건립, 남해의 연혁 역사성에 비추어 6세기 전후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매년 10월 초.중순, 절기로는 한로(寒露) 경에 보다 각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꼭 닮은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 별자리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별자리도 마찬가지다. 동양과 서양이 다르고 각 나라에서 붙인 별자리 이름 또한 다르지만 남해 상주 석각은 정교한 선각으로 새긴 것이 특징” 이라고 강조했다.
‘서불기례일출’ 설에 대비한 조씨의 별자리 그림을 대비하면 서(徐)의 모양은 페르세우스 중심의 별자리가 되고 불(巿)은 양자리, 삼각형자리, 물고기자리 기(起)는 안드로메다 중심 및 바깥 별자리 례(禮)는 가을대사각형, 도마뱀, 백조의 별자리 일(日)은 조랑말 중심의 별자리 출(出)은 독수리자리 중심의 별자리와 흡사하다.
조씨는 “남해상주석각은 지금부터 1300여년 전인 6세기 전후에 우리의 선조들이 정교하게 쪼아 갈아딲기 한 우리나라 가을하늘의 별자리 그림(성좌도 또는 천체도)이 틀림없다. 하루빨리 바른 인식과 조명으로 서복과 관련된 모든 의문을 접어야 한다” 고 전했다.
제주도와 거제도 서복과 관련있는 전설이 있다는 점에 대해 언급한 조씨는 남해 금산을 중심으로 상주에는 석각이 두로 산재해 있지만 어떤 석각도 서불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남해 상주 석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온 가운데 제주도 정방폭포 석각은 퐁화 낙수 등으로 고증이 어려운 상황인데다 남해 상주 석각을 판각해 두는 정도이다.
또 다른 서복 마케팅이 한창인 거제에는 거제해금강 소매물도에 서불과차라고 적힌 석각이 있었다고 하지만 1959 사라호 태풍에 바윗돌이 떨어져나가 당시의 석각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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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사실이며 전설은 꾸며진 이야기다. 불로장생의 욕망은 동서양이 같다 하더라도 서불의 불로초 기행에 대한 사실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제주도는 서귀포 장방동에 서복전시관을 만들고 거제시 와현마을에는 서복유숙지 기념비를 세웠다. 남해군 상주석각도 서복이 세겼다는 암각문이다.
서복과 관련된 전설을 가진 자치단체들은 서복 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관광상품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가운데 ‘서불제명각자’라고도 하는 상형문자 형태의 남해 상주 석각(경남도기념물 6호)에 대한 재해석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천에 거주하는 조세원(63)씨는 새긴 남해 상주 석각은 진시황제를 위한 불로초를 구하려했던 서불이 남긴 암각이 아니라 하늘의 별자리를 새긴 ‘별자리그림’ 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석각의 탁본에 나타난 그림과 가을철(한로 경 10월 8일~9일) 별자리와 석각도해를 비교해 설명했다.
남해 상주 석각 무엇인가
남해 양아마을에서 상주해수욕장으로 가는 도로 증간쯤에 금산 부소암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이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 중턱쯤에 비교적 넓고 평평한 자연암의 거북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 바위 위에는 문자인지 그림인지 아직 이해나 해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석각이 있는데 이것이 남해 상주 석각이다.
남해 상주 석각에 대한 해석은 환단고기에서 이맥의 태백일사(1520년경)편 선도경전 본훈에 이르되 “남해현 낭하리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이 있다” 이는 환웅천황이 사냥 나왔다가 제를 삼신께 드린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관련해서는 지난 1999년 KBS 역사스페셜 ‘추적 환단고기 열풍’에서 남해상주석각을 우리나라 고대문자인 녹도문 또는 가림토문일 가능성을 시사한 적이 있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조선금석총람 상 조선총독부(1919)에는 ‘남해전 서불제명 석각’ 으로 소개하고 ‘암각문 탁본과 지면의 암석에 종 1척 5촌, 횡 3척 2촌 크기로 새김’ 이라고 설명돼있다.
국어대사전(일중당)에 이 석각은 전설에 의하면 진시황때 서불이 이를 새긴 것이라 하는데 중국학자 중에는 서불기례일출(徐巿起禮日出:서불이 일어나 일출에 예를 표하다/ 오경석.오세창)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밖에도 서불과차 또는 서불과지, 고대문자설(최남선), 선사시대각석설(정인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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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들의 서복마케팅은 ‘남해상주석각’ 의 그림문자가 ‘서불기례일출’ 일 것이라는 해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2010년 제주도 정방폭포 옆 석벽에 세겨지기도 했다. 제주도는 남해상주석각의 모양이 정방폭포 석각의 모형이라는 입장이다.
제주도 정방폭포 석각은 풍화와 낙수 등으로 마멸돼 고증이 어려운 상황이다.
조세원씨는 서불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학작품에서 많이 인용된다고 밝혔다.
심청전과 간양록, 파안록, 조선지, 경세설의 백발가, 기재기이, 금란굴 전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서불이 한반도 또는 한반도 중남부의 해안지대에 정박했거나 불로초를 찾아다녔다는 언급은 없다고 주장했다.
남해 상주 석각은 별자리 그림이다
조세원씨는 남해 상주 석각은 별자리 그림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추정과 추론은 연구의 빌미가 되고 또 다른 연구의 소지가 된다. 그러나 구전설화에 대한 연구나 주장은 큰 오해의 발단과 빌미가 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남해 상주석각은 화강암에다 별자리를 확(구덩이 모양)으로 쪼은 후 홈으로 갈아닦기를 가한 선각이라고 주장했다. 각석의 시기는 고구려 석각천문도, 신라의 첨성대 건립, 남해의 연혁 역사성에 비추어 6세기 전후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매년 10월 초.중순, 절기로는 한로(寒露) 경에 보다 각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꼭 닮은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다. 별자리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 모습이 다르다. 별자리도 마찬가지다. 동양과 서양이 다르고 각 나라에서 붙인 별자리 이름 또한 다르지만 남해 상주 석각은 정교한 선각으로 새긴 것이 특징” 이라고 강조했다.
‘서불기례일출’ 설에 대비한 조씨의 별자리 그림을 대비하면 서(徐)의 모양은 페르세우스 중심의 별자리가 되고 불(巿)은 양자리, 삼각형자리, 물고기자리 기(起)는 안드로메다 중심 및 바깥 별자리 례(禮)는 가을대사각형, 도마뱀, 백조의 별자리 일(日)은 조랑말 중심의 별자리 출(出)은 독수리자리 중심의 별자리와 흡사하다.
조씨는 “남해상주석각은 지금부터 1300여년 전인 6세기 전후에 우리의 선조들이 정교하게 쪼아 갈아딲기 한 우리나라 가을하늘의 별자리 그림(성좌도 또는 천체도)이 틀림없다. 하루빨리 바른 인식과 조명으로 서복과 관련된 모든 의문을 접어야 한다” 고 전했다.
제주도와 거제도 서복과 관련있는 전설이 있다는 점에 대해 언급한 조씨는 남해 금산을 중심으로 상주에는 석각이 두로 산재해 있지만 어떤 석각도 서불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남해 상주 석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온 가운데 제주도 정방폭포 석각은 퐁화 낙수 등으로 고증이 어려운 상황인데다 남해 상주 석각을 판각해 두는 정도이다.
또 다른 서복 마케팅이 한창인 거제에는 거제해금강 소매물도에 서불과차라고 적힌 석각이 있었다고 하지만 1959 사라호 태풍에 바윗돌이 떨어져나가 당시의 석각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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